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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2/22 16:00:40
Name   카르스
Subject   이명박 정권 초기를 보는듯한 2023년 한국정치
(* 편의상 좀 편한 말투로 쓰겠습니다)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서 기시감을 많이 느낀다.
단순히 여야가 잘한다 못한다를 넘어
정치 구도, 정치적 이슈, 여야의 구조적 문제 등이 이명박 정부 초기를 연상시킨다.
고유명사나 시기만 가리면 뉴스들이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2010년 때와 구분이 안 될 정도.  

내가 정치에 처음 눈을 뜬 게 이명박이 당선된 17대 대선 전후라서 그런걸까,
요즘 뉴스를 보면 그때가 많이 연상된다.


1. 보수세력의 비판으로 민주당계 정당에서 보수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됨
노무현 정부가 보수세력에게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았는지는 말을 말자,
문재인 정부도 비슷했다.
두 정권 모두 보수정당으로의 정권교체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정권교체로 집권한 이명박, 윤석열 정부는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청산하겠다는 새로운 드라이브를 밟았다.


2. 보수 내부에서는 비주류인 보수세력의 집권.
이명박은 사실 보수정당계에서는 계보적으로 적통이 아니고, 비주류에 가깝다.
그래서 세력도 팬덤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명박 박근혜는 연이어 집권했고, 모두 감옥에 갔지만
석방을 탄원하는 극성 팬덤이 있었던 박근혜와 달리 이명박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결함은 3.의 특성으로 이어진다.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출신은 아니며, 민주당계 정권에서 검찰총장을 하다가 전향했다는 아이러니까지 있다.
보수 정당에서 자력으로 키워낸 정치인이 아니다.  
윤석열은 민주화 시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다.
(이재명도 당선됐다면 마찬가지지만)
그래서인지 관료 + 검찰이라는 비선출직 세력에 크게 의존한다.

더 재미있는 것. 윤석열 정부 인선을 보면 MB정권에서 한몫한 출신들이 꽤나 많다.
두 정권의 구조적 유사성 때문인지 인사까지 서로 연결이 된다.


3. 초기부터 삐걱거리는 대통령실과 여권의 정치력
이명박 대통령은 초기부터 '고소영 내각' 인사 논란이 있었고, 인수위에서 영어몰입교육, 한반도 대운하 등 무리수 공약을 들고나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민과의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독선적이었다. 이로 인해 불통정부, 불도저, 삽질정부라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는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을 통해 촛불시위로 터지게 된다. 그리고 집권 1년차에 지지율 20%대라는 굴욕을 맞는다. (한국갤럽 기준)
저 시절 정책들이나 언행을 돌아보면 제정신인가 싶다. 지금만큼 매니페스토 개념이 강한 시대가 아니라 그런가.
아마 저번 대선에 윤석열이 한반도 대운하급 공약을 내세웠으면 선거에서 졌을 게 분명하다.

윤석열도 연이은 부적절한 언행 논란과 펠로시 방한 논란 등으로 1년차에 지지율 20%대라는 진귀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이것보다 더 못할 수 있을까 싶은 기괴하고 일관성 없는 언행의 연속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이명박저처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같은 한 방이 없었기에, 어찌보면 이명박보다 더한 참사이다.

이명박은 이 위기를 돌파하려 전임 대통령 노무현을 수사했다가 자살로 몰고가 정치적 후폭풍을 만들어낸다. 이는 문재인 당선으로까지 이어진다.
윤석열은 현재 이재명 전 대선 라이벌을 수사 중이다. 과연 어떤 결말을 맺을까.


4. 야당(특히 민주당계 정당)의 상대적인 무능함
이명박 정권은 임기 초부터 지지율이 매우 낮았다.
반-이명박 세력은 강했고, 특히 인터넷의 반MB 정서는 극에 달했다.
그리고 분명히 욕먹을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

그럼에도 민주당계 정당들은 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정치감각이 없어 보였고, 툭하면 도를 넘은 막말을 내뱉어서 역풍을 불게 했고,
강성 야권 지지자들에나 영합할만한 소재를 사용했고,
무조건적인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
이로 인해 반MB 시민들도 "MB는 싫지만 야권도 솔직히 무능하고 답답하다"는 정서를 가져야 했다.
이는 문재인으로 정권교체된 이후 보수정당의 태도와 완전히 일치하다.

윤석열 정부도 비슷하다.
지지율은 집권 시기를 생각하면 역대 정권 중 제일 낮은 축이지만,
그럼에도 여당 국민의 힘은 제1야당 민주당보다 지지율이 비슷하거나 높아왔다.
국회의원은 많지만 중심되는 인물이 없고,
강성 지지자들 말고는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보다보면 민주당에 도대체 중도층 전략이 있긴 한지 의심스럽다.
김건희, 천공스승, 이재명은 분명 불투명한 윤 정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소재이지만,
지금같은 경제위기 시기엔 민생 위주로 키워드를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5. 히스테릭한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
사소한 정치적 해프닝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일이 터진 양 구는 강성 지지층들이 있다.
이명박 초기때 극성 민주당계 지지층들이 그랬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자면 광우병 문제는 한국인들을 멸종시킬 수 있는 건이고,
(물론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이고 불투명한 태도가 화를 키웠지만, 루머도 분명히 있었다)
이명박은 어마어마한 독재자일 따름이며,
세계의 모든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은 이명박의 간악함을 깨달아서 왕따시키고 있고,
이명박 때문에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하도 무리수가 많다보니, 보수 인터넷 세계에서
이것 모두를 일으킬 수 있는 이명박은 신이라는 조롱조의 이명갓 드립도 있었을 정도.

문재인 때는 보수정당계 지지층들이 이런 식이었고 많이 답답했는데, 
지금은 다시 민주당계 지지층들이 이러고 있다.
행보 하나하나를 과대해석해서 윤석열을 한국 정치계의 둘도 없는 최악의 정치인으로 만들고
(물론 많은 부분에서 최악인 건 맞다)
세계의 모든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은 이명박의 간악함을 깨달아서 왕따시키고 있고,
방역정책의 구조적 변화를 생각지도 않은 채 확진자가 급증했는데 정부는 뭐하는가를 외쳐대고,
근래의 경제위기가 전부 윤석열 때문인 것처럼 말한다.

이런 극성 지지층의 행보는 4. 요소와 합쳐져서 민주당계의 낮은 확장성 문제로 이어진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그런 레토릭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수다.


6. 경제위기 리스크
이명박 초기에 세계 금융위기가 덮쳤다면 윤석열 초기에 세계 경제 침체를 맞이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잠재적 수준은 많이 다르지만.
어느정도의 불필요한 삽질(이명박 정부때 환율정책, 현 정부 때 김진태의 레고랜드 위기 등)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


15여년 간격으로 정치구도, 이슈, 국제경제상황 등이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단순히 흥미로울 수 없다.
글을 읽어보면서 느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야 모두 그때의 나쁜 행태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15년 전의 구도에서 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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