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3/28 22:07:37
Name   카르스
Subject   미국 이민가도 지속되는 동아시아인의 저출산 패턴
흔히 동북아시아의 초저출산의 원인을 이야기할 때 여러 사회구조적, 문화적 문제를 거론합니다.
고학력화, 청년 실업과 불안정한 노동시장, 높은 집값, 낮은 아동 및 보육복지 수준, 집단주의적 문화, 시대에 뒤떨어진 젠더 및 가족규범, 낮은 행복도 등등...
틀린 지적은 아닙니다만, 이 이론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커뮤니티에 많이 돌아다녀서 아실 분들도 많을 텐데, 
출산율이 높을만한 사회구조와 문화를 가진, 그리고 실제로 높은 미국에 가서도 동아시아인들은 아이를 적게 낳거든요.
단순히 초저출산이 사회구조나 문화의 문제라면, 초저출산을 불러일으킬 원인이 줄어든 나라에 이민가서도 비슷한 패턴인 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버전은 아이를 적게 낳는다만 강조되었는데, 동아시아 출신의 출산 패턴은 단순히 아이를 적게 낳는 것 이상으로 특이합니다.
출산 시점이 꽤나 늦고, 비혼 출산이 매우 드물고, 사회계층 지위와 출산율 간의 특이한 관계 등 전반적인 출산 패턴이 동아시아 국가들과 흡사합니다. 


Cai and Morgan (2019)는 이를 논문에서 보입니다.
저자는 동아시아 출신인 한국/일본/중국계 미국인을 CJK로 묶고, 출산율과 전반적인 출산 패턴을 백인/히스패닉계/흑인/기타 인종인 미국인들과 비교했습니다.


2000-2015년의 인종별 출산율 추이. 

그 결과는 타 인종에 비해 확실히 낮은 동아시아계 미국인의 출산율입니다.  
2000-2015년 기준으로 동아시아계는 1.5 전후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백인은 물론이고 다른 미국의 주요 인종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입니다.
지금(2020년대 초반)의 동아시아 국가들보다는 현저하게 높은 출산율이지만,
'2000-2015년 동일시점으로' 비교하자면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연령별 출산율 분포. 

동아시아계 미국인은 단순히 출산율만 낮은 게 아니라, 아이를 매우 늦게 낳는 특이성도 관찰됩니다.
다른 인종들은 20대 전반 혹은 후반에 출산을 제일 많이 하는데(20대 후반과 30대 전반이 비슷한 타 인종들Others는 예외), 동아시아계는 출산을 30대 전반에서 제일 많이 하고 심지어 20대 후반보다 30대 후반에서 출산이 더 많습니다. 특히 20대까지의 출산율이 이례적으로 낮아, 연령별 출산율 분포를 그리면 아예 다른 인종과 따로 그려지는 수준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동아시아계 미국인의 평균 출산 연령은 34세인데,
이는 미국인 평균보다 5세, 미국 백인보다 4세 많은 것이며 다른 인종과는 차이가 더 크다고 합니다.
실제로 평균 34세라는 출산 연령은 한국 일본 대만 등 선진 동아시아 지역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인과관계인지는 애매하지만 '출산을 늦게 할수록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잘 알려진 상관관계를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결론일지 모릅니다.




기혼 출산 비율. 비혼 출산 비율은 1에서 이 수치를 빼야 합니다. 

동아시아계는 비혼 출산이 드문 패턴도 관찰됩니다.
백인의 비혼 출산은 전체 출산의 30%가 조금 안 되며, 흑인은 70%에 가까운데,
동아시아계의 비혼 출산은 대체적으로 10% 전후에 그칩니다.
그래도 5%도 안 되는 모국들보단 높지만, 미국 평균은 물론이고 타 인종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습니다.  






연령별 누적 자녀 수. 

이러한 독특한 출산 패턴은 연령별 누적 자녀수를 볼 때 더 확실히 보입니다.
출처를 지금까지 데이터들과 다른 걸 썼는데도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30세 전반까지는 동아시아인들의 자녀 수가 현저하게 적고, 동아시아인들이 출산을 늦게 실현하면서 40대 전반에는 차이가 좁혀지지만 여전히 타 인종들에 비해 적은 자녀 수를 보입니다.





인종과 사회경제적 특성별 출산율. 

성인 되어서 미국으로 이주한 1세대 미국인들은 모국에서 오래 자랐기에 모국 출산패턴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출산율 격차는 1세대 이민자에게만 관찰됐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 이민자이거나, 집에서 영어를 쓰는 등 미국 사회에 동화가 많이 된 이민자들에서도 출산율의 타 인종과의 격차가 관찰됩니다.
아시아계의 사회계층적 지위가 이질적이라 생기는 문제도 아닙니다. 학력과 무관하게 동아시아계는 타 인종보다 돋보이게 출산율이 낮았거든요.

또 하나 말하자면, 동아시아계는 유독 학력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성이 약하게 나타났고, 심지어 소득의 경우 동아시아계는 예외적으로 소득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높아져 다른 인종들과 정반대의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타 인종은 제일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출산율이 제일 높았는데, 동아시아계는 거꾸로 그 계층에서 제일 낮았습니다.
잘 알려진 사회경제적 지위와 출산율 간의 (-) 상관관계가 동아시아계에서는 약하거나 거꾸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 상관관계가 예전처럼 항상 성립하지는 않습니다만(Doepke et al., 2022) 그럼에도 이 정도 패턴 차이는 이례적이지요. 사실 이것들은 동아시아 본국에서도 나타나는 패턴인데 이민 가서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룬 동북아시아 이민자의 독특한 출산 패턴은 사실 문화 경제학 트렌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민자들은 이민 갈 시점의 자국 문화를 그대로 이민국에 가져와 유지하고, 이를 자녀에게 (최소한 어느 정도) 물려줍니다. 출산 패턴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2000-2015년 기준이면 과거에 동북아시아가 출산율이 높고 혼인 연령이 낮을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 온 동아시아인(특히 한국계와 중국계)들도 많이 포함할 텐데, 이들조차 저출산과 늦은 출산으로 유도하는 동아시아의 문화라니.
동아시아는 고소득 환경에선 극심한 저출산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2세대 이민자들도 유지하는 동북아시아의 저출산 패턴이 과연 본국에서 개선이 가능할지, 
그리고 서구의 출산 장려정책이 동아시아에서도 같은 효과를 낼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는 단순히 출산율이 낮은 걸 넘어서, 늦은 출산 연령과 낮은 비혼 출산,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위와 출산율 간의 특이한 관계 등 출산 패턴 전체가 튀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동아시아 저출산의 퍼즐을 풀려면 단순히 1) 낮은 출산율에 주목하는 걸 넘어 2) 늦은 출산 연령 3)낮은 비혼 출산 4)사회경제적 지위와 출산율 간의 특이한 관계 이 네가지를 동시에 설명하는 동북아 문화의 특수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보다 다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봅니다.


출처: Cai, Y., Morgan, S.P. Persistent low fertility among the East Asia descendants in the United States: perspectives and implications. China popul. dev. stud. 2, 384–400 (2019). https://doi.org/10.1007/s42379-019-00024-7



14
  • 숨쉬듯 추게를 정벅하는 자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002 과학/기술신내림 약물과 무당, 주술가, 버서커 6 모모스 16/10/25 7690 15
6470 일상/생각컴패션, 이타심 26 Liebe 17/10/27 4391 15
2637 요리/음식한식판 왕자와 거지, 곰탕과 설렁탕 45 마르코폴로 16/04/18 8488 15
2247 과학/기술이론물리학 vs 신경생물학 ... and 실존주의 23 리틀미 16/02/18 5907 15
1782 일상/생각인용의 실패와 승리, 두 정치인의 경우 9 moira 15/12/15 7272 15
11849 일상/생각나는 그 공원에 가지 못한다. 3 Regenbogen 21/07/06 2942 15
1118 일상/생각수줍수줍..이런걸 한번 해봤어요.. 18 얼그레이 15/09/29 7099 15
9459 일상/생각주말을 보내는 법 18 멍청똑똑이 19/07/20 4878 15
14467 사회세상에 뒤쳐진 강경파 의사들과 의대 증원 44 카르스 24/02/18 2638 14
14404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1877 14
14363 역사올 해 취미생활 회고록. 스윙 댄스. 5 린디합도그 23/12/28 1291 14
14272 일상/생각아이가 집에오는 시간 10시 20분^^; 1 큐리스 23/11/14 1510 14
14131 정치구척장신 호랑이 포수 장군의 일생 3 당근매니아 23/09/05 1501 14
14082 사회한국 가사노동 분담 문제의 특수성? - 독박가사/육아 레토릭을 넘어서 24 카르스 23/08/01 2354 14
13683 사회미국 이민가도 지속되는 동아시아인의 저출산 패턴 27 카르스 23/03/28 2905 14
13498 일상/생각니트라이프 - 1. 새로운 땅에 한 발을 내딛다. 4 BitSae 23/01/22 1730 14
13029 일상/생각(영양無) 나는 어쩌다 체조를 끝내고 레전드로 남았는가 12 Picard 22/07/27 2574 14
12895 일상/생각농촌생활) 5월 초 - 6월 초 7 천하대장군 22/06/07 2148 14
12863 사회연장근로 거부에 대한 업무방해죄 건 헌법재판소 결정 설명 4 당근매니아 22/05/26 2806 14
12757 사회왜 요즘 페미니즘은 성적으로 덜 개방적인가 52 카르스 22/04/28 4882 14
12702 일상/생각신기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란 존재 7 StrPepMint 22/04/07 2970 14
12678 게임요즘은 엑스컴 2를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10 손금불산입 22/03/28 3033 14
12618 의료/건강오미크론 시대 코로나19 감염 경험담 겸 조언 7 T.Robin 22/03/13 3327 14
12560 문화/예술방과후설렘 8 헬리제의우울 22/02/28 3188 14
12514 일상/생각워들에 빗대어 끄적여본 나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5 덜커덩 22/02/13 3216 1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