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훨씬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 없는 술자리에 너무 시간을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어떤 남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 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결국 모든 친구들과 다 헤어지게 되요. 이십대에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그 친구들과 앞으로도 많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렇잖아요. 다 헛되요.
A.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이런게 더 중요한 거에요. 모든 도시를 다 가보고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고 그래도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해요.밤새 술먹고 그런거 안했어야 하는데.
Q. 금욕적이라고 하셨잖아요. 별로 안 좋아하는 데도 술자리에 갔던 건가요.
A. 그 때에는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공허한 술자리에 술먹고 밤새고 동아리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 하고. 동아리는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요. 지금도 잘만 있더라고요.그때에는 당시에 대단한 고민이라도 하는 것처럼요 앞으로 동아리는 어떻게 될까를 논의하고 그랬어요. 어릴때의 친구들은 더 배려도 없고, 불안정하고 인격이 완전하게 형성되기 이전에 만났기 때문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막 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면이 있어요.
Q. 가깝기 때문에 좀 더 강압적이고 폭력적일 수도 있죠.
A. 요시모토 바나나가 어릴 때 친구도 안만나고 책만 읽었대요. 친구도 없이 요시모토 바나나 아버지가 유명한 학자인데, 일본 같은 사회에서 친구없이 지낸다는 건 좀 위험한 일이잖아요. 주변에서 걱정을 하니까 요시모토 바나나 아버지가 그랬대요. 친구라는 건 다 쓸데없는 거라고, 애가 그냥 책을 보게 냅두라고. 인간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둠이에요. 친구들 만나서 낄낄거리고 웃고 떠들고 이러면서 세월을 보내면 그 당시에는 그 어둠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게 사라지는게 아니라 빚으로 남는거에요. 나중엔 그 빚을 갚아야 해요. 트위터에 정성일씨가 사람들은 시시한 영화를 보면 자신들의 인생이 시시해 진다는 걸 모른다고 했어요. 시시한 일을 하고 살기엔 너무 아까운 게 인생이잖아요.
밑에 헤칼트님이 쓰신 글을 보고 이 인터뷰가 생각났습니다. 최근에 읽은 글인데 제 마음에 너무나도 새겨졌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참 불만이 많았습니다. 친구들도 싫었고 선배들도 싫었고 선생님들도 싫었고 시스템도 싫었죠.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보사를 했는데 정말 몸을 불살랐었죠. 좋은 신문 만들어보자면서 며칠 방에도 안 들어가고 신문만 만들었던 기억이 수없습니다. 교수들과 싸우는 일도 많았고요. 이후에는 등록금 투쟁 비스무리한 것에 참여하기도 하고 현실을 비탄하면서 술로 밤을 지새웠고요.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살지 않고 싶습니다. 뭐, 그렇게 똑같이 살게 되더라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을 가질 겁니다. 그 시간에 잠을 더 자고 책을 더 읽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가급적이면 주변 사람들 다 무시하고 행복하게 나를 위해서 살았을 겁니다. 고등학교 시스템이 어쨌든 학보사의 운명이 어쨌든 좀 더 즐기면서 살았을 겁니다. 불만을 가지고 불태우면서 노력했어도 사명감이 아니라 다가온 일이기에 해야하는 의무감만 남긴 채 재미있게 해봤을 겁니다. 선생님한테 반항도 해보고 학보사에서 밤도 새워보는 일들을 즐겼을 겁니다. 사회에 나가면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비교도 안되지만 또 그저 그렇게 즐기면서 살았을 겁니다. 제 앞에 놓인 일이 불의에 항거하고 내가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 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찾아온 일이니 내가 해야만 한다면 하겠습니다. 혁명 전사처럼 살아볼 기회는 흔치 않은데 잡아야 겠죠. 뭐, 그냥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니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