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5/18 03:36:05
Name   카르스
Subject   5.18의 숨은 피해자 - 손자까지 대물림되는 5.18 산모 스트레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벌어진 5.18 민주화운동.
10여일이라는 기간만 보면 짧을지 모르지만
한국 정치와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중대 기점이 되었고
500여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3000여명 이상의 민간인 부상자를 낳은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비극.
[* 논문에 인용된 한 서적의 추정치로, '공식' 확인된 숫자만 집계하는 정부 공식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광주에서 인간관계 한 단계만 넘어가면 5.18때 죽거나 실종되거나 다친 사람이 반드시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당시 73만명이었던 광주시 인구와 5.18 사상자의 비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5.18의 희생자는 위의 사상자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신군부의 무자비한 진압과 이에 맞선 시민들과 시민군의 저항은
당시 광주를 살아간 광주 시민 전체에게 큰 정신적 스트레스였음이 틀림없습니다. 
태교가 중요한 산모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Lee(2014)는 5.18 때 광주 산모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실제로 산모들의 자녀를 넘어 손자의 건강까지 악영향을 줬음을 보였습니다.

저자는 2000, 2002년 출생 자료를 이용해 
산모의 5.18 스트레스로 태아로서 성장에 악영향을 받았던 1980년 6월-1981년 2월 광주 출생 모의 자녀가 
다른 지역 다른 시기 출생한 모의 자녀에 비해 출생 체중, 임신 기간, 저체중 및 조숙아 여부에서 불이익을 받았는지를 검증했습니다. 
표현이 헷갈리실 수 있는데, 아기 시절 1980년 6월-1981년 2월생이 아니라 '1980년 6월-1981년 2월생 모'의 아기가 기준입니다.

그 결과, 1980년 6월-1981년 2월생 광주 출생 모에서 태어난 자녀는 평균적으로 체중은 55g~58g (회귀모형에 따라 다소 다름) 적었으며, 
임신 기간은 0.33주 짧았고, 저체중과 조숙아 비율은 각각 2.36%p, 1.52%p 늘어났습니다. 
당시 신생아 평균 출생 체중이 3262g, 임신 기간이 39.18주, 저체중 비율이 3.88%, 조숙아 비율은 4.06%임을 감안할 때 무시 못할 수치입니다. 
9개월간 특정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자녀라는 이유 하나로 평균적으로 저 정도 차이가 난다는 거니.  

   





이 부정적인 효과는 5.18 당시 임신 4-6개월차였던 1980년 9월-11월생 모의 자녀에서 제일 크게 나타났으며
(체중은 105g 감소, 임신기간은 0.54주 감소, 저체중 혹은 조숙아 비율은 각각 4.03%p, 4.62%p 증가)  
딸보다는 아들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더 컸다고 합니다.   

이 부정적인 효과는 타국의 사례와 비교해봤을 때에도, 
그리고 출생아의 건강을 결정짓는 다른 변수들과 비교해도 큰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데이터의 제약으로 모가 정확하게 광주 출신인지 식별해내진 못했고 (자녀가 광주에서 출생신고되면 모도 광주 출생이라 간주)
2000, 2002년 기준으로도 많이 이른 시기에 출산하는(20대 초반) 경우에 한정해서 분석하는 등 여러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논문을 보면 수치는 다소 부정확할 수 있어도 결론을 뒤집을 정도의 치명적인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1980년 6월-1981년 2월생 모라고 식별된 집단에는 실제로는 광주 외 출신들도 섞였을 것이기에,
순 광주 출생자를 정확히 식별하면 불이익의 정도가 더 커질 개연성이 크고.   

역사적 비극의 영향이 직접적 피해자들을 넘어, 간접적 피해자들의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씁쓸한 연구입니다. 
5.18을 기념하면서, 역사적인 사건이 개개인에게 어떤 비극으로 이어지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Lee, C. (2014). Intergenerational health consequences of in utero exposure to maternal stress: Evidence from the 1980 Kwangju uprising. Social Science & Medicine, 119, 284-291.



1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564 사회UN 세계행복보고서 2024가 말하는, 한국과 동북아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 13 카르스 24/03/26 1075 7
    14502 사회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355 15
    14480 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168 15
    14467 사회세상에 뒤쳐진 강경파 의사들과 의대 증원 44 카르스 24/02/18 2211 14
    14465 사회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의 사직서 115 오쇼 라즈니쉬 24/02/17 3072 5
    14436 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1792 12
    14380 사회점심 밥, 점심 법(1) -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경우 임대인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과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가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는지 및 그 범위 3 김비버 24/01/05 923 9
    14337 사회한국 철도의 진정한 부흥기가 오는가 31 카르스 23/12/16 1664 7
    14321 사회대한민국 부동산(아파트)문화를 풍자한 영화, 웹툰을 보고 느낀점 right 23/12/09 1108 1
    14223 사회(인터뷰 영상)상대도 안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친 진짜 이유는? 2 치즈케이크 23/10/25 989 0
    14092 사회개평이 필요하다 19 기아트윈스 23/08/05 2130 62
    14082 사회한국 가사노동 분담 문제의 특수성? - 독박가사/육아 레토릭을 넘어서 24 카르스 23/08/01 1935 14
    14077 사회아동학대 관련 법제 정리 및 문제점과 개선방안('주호민 사건' 관련 내용 반영하여 수정) 김비버 23/07/30 1597 8
    14054 사회학생들 고소고발이 두려워서, 영국 교사들은 노조에 가입했다 3 카르스 23/07/21 1759 20
    14043 사회소년법과 형사미성년자 제도에 대한 저의 개인적 의견입니다. 10 컴퓨터청년 23/07/14 2426 0
    14036 사회지금은 거대담론이 구조적으로 변동하는 시기인가 18 카르스 23/07/12 2057 8
    13947 댓글잠금 사회의료/의사/의과대학에 관한 생각들 38 Profit 23/06/04 2826 11
    13886 사회5세 남아, 응급실 사망 사건.. 필수의료의 문제는 정말 수가인가 38 JJA 23/05/20 1896 12
    13882 사회한국인들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기회 수준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13 카르스 23/05/19 1676 8
    13873 사회5.18의 숨은 피해자 - 손자까지 대물림되는 5.18 산모 스트레스 3 카르스 23/05/18 1371 15
    13844 사회반사회적인 부류들이 꼬이는 사회운동의 문제 4 카르스 23/05/13 1636 9
    13758 사회프랑스 국민들이 연금개혁에 저항하는 이유 6 여우아빠 23/04/16 1731 0
    13748 사회의치한약수 열풍은 언제부터 극심해진 걸까요? 28 비물리학진 23/04/12 3597 0
    13747 사회대학입시 제도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14 비물리학진 23/04/12 1475 0
    13699 사회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나치게 높은 징집률이라고 생각합니다. 15 강세린 23/04/01 2081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