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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4/09 14:09:34수정됨
Name   골든햄스
File #1   D9AED2DF_3BE9_40D2_BBF5_5B0A4D3D2B08_1711859306_resized.jpg (372.1 KB), Download : 4
Subject   다정한 봄의 새싹들처럼


(초보 기독교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찾아간 교회는 마침 한 목사의 은퇴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낡고 지친 눈으로 40년 목회 인생을 마치는 흰 머리의 (그나마도 머리숯이 얼마 남지 않은) 목사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많은 단체들의 행사에 참여해보았지만, 항상 형식적인 행사의 형식적인 관람객이 되는 기분이었지, 그 말이 와닿은 적은 없었다.
어린 마음에 초등학교 때 그것을 꼬집은 그림을 그려 상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한 아주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나의 옆에 앉았다. 내가 그냥 교회 식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예배실이 가득 찬 탓에, 지하식당에서 예배실의 중계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부가 합창을 진행했다. 한 청년이 독특한 악기를 가져와서 쨍쨍 울릴 때마다 귀가 아팠다.
과감하게 끝에 들어 올린 카드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 행복해.' '*** 어서 오고.' 전 대표목사와 새 대표목사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밈에 넣어 언급한 뻔뻔스러운 그 태도에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 대표목사의 차분한 성정을 두고 농담을 하고, 이전 대표목사가 데려온 자녀들을 두고 '딸이 많이 컸다!'고 놀라며 이야기를 나눴고, 잘 나오지 않는 스피커는 세네 명이 번갈아 가며 고치려 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무엇이 기독교가 아닌지, 무엇이 기독교인지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기독교인 것은 실천하며."

새 대표목사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행되었지만 사실 꽤 다부진!) 포부를 들으며 행사는 끝을 맞았다.
파송(교회가 커지면 일부러 작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나누는 일)된 다른 교회의 담당 목사들도 자리에 있었다.
끝나고 나오는데,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돈까스를 먹고 예배를 들어가겠다고 해서 귀찮게 하던 놈이었다.

"파송이었어. 나는 네가 교회가 여럿이라 해서 안 좋게 싸워서 교회가 갈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내가 이 교회를 안 좋게 봤던 거야."
"파송이 뭔데?"
"파송은 ~~한 건데 ..."
"그렇구나."
"내가 이 교회를 그냥 '--한 정치적 성향'의 교회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 우파, 좌파,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보다 더 복잡한 건데."

사적으로 쉬는 시간에는 우리도 남들이 그렇듯 쉽게 정치적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 그러던 남자친구가 반성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남자친구를 칭찬하는 의미로 등을 두드려주었다.

남자친구는 교회를 갔다 오더니, 생각이 달라졌다며 '로펌에 시야가 매몰되어있었다' 라고 말했다.


봄은 눈부시게 찾아왔지만 정녕 내 인생에 봄이 찾아온 것은 이 봄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교회를 갔다 오는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봄기운을 만끽했다.
행복을 즐기고, 이어폰을 빼며 '정말 이 노래는 봄 노래야' 라고 말하는 내 얼굴을 보는 남자친구의 얼굴에는 기쁨이 서려있었다.
내가 무아지경으로 무언가에 빠지는 모습이 제일 귀엽다며 그때마다 사진을 찍는 남자친구다웠다.


나는 문학평론가로 평생 글과 우리말에 충실했던 그 은퇴한 목사님의 이력 때문에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문학에 걸었던 기대, 한국 문단에 실망했던 점, 여러 가지 문학에 대해 느꼈던 점들을 이야기했다.

말하자면 참 고통스러운데, 어린 시절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보내던 때 내게 위로가 되어주던 한 아동문학가 분이 있었다.
나는 그 분을 너무도 존경한 끝에 그 분이 진행하는 소설 수업에 자기소개서, 면접을 거쳐 어렵게 들어가게 되었다.
비쌌던 수업료는 친구에게 빚을 져서라도 준비한 상태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상했다. 그때 늘 신고 다니던 4cm짜리 낮은 굽 구두 때문이었을까.
"가죽가방을 착 메고 구두를 또각이며 들어오는데 내 생각이 났어요. 나도 그렇게 날씬하고 예뻤는데."
"글을 왜 그렇게 못써요?"
"우리 자식은 미국에 갔는데 ..."
"스토커인 줄 알았어요." (내 글에 담긴 어린 시절 엄마와 날 돌봐주는 아저씨에 대한 추억에 대해 다들 웃으며)

모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은 이상했다.
애써 2차 자리에서 다가간 작가님과 나눈 대화의 끝은 실망스러웠다. 작가님은 그저 내가 어린데도 이리 잘 어울리는 것이 기특하다고만 했다.
내가 글에 대해 느낀 점, 한계, 열망, 이런 것들을 얘기했지만 작가님은 어울리는 문단의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야기만 얕게 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작가님의 정의로운 이야기를 담은 글을 읽고 실천에 옮긴 끝에 곤란에 빠진 아이와 학부모의 편지를 받았는데도 '웃고 넘겼다'는 게 슬펐다.

"사실 내 아이는 그거랑 반대로 행동했거든. 선생님께 완전히 충성해서 위기를 넘겼는데... '이러면 어떨까?' 해서 반대로 써본 게 그 글이었어요."
"하지만 선생님, 그러면 그런 글을 보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래도 글이 세상을 바꾸는 거지."

전혀, 더 다른 이야기가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단단한 그 표정을 보고 나는 돌아섰다. 울면서 사무실 쪽에 전화해 수업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문학의 꿈을 끝내고 법률가의 길에 들어섰다.
아무리 더럽고 치사한 모습들을 보더라도, 단 1명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비겁하게 글 뒤에 숨어있는 작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한평생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한 목사님의 끝은 참 아름다웠다.
눈빛과 기세, 꼿꼿한 허리, 분위기만 봐도 그 강건함, 강인함, 기쁨이 느껴졌다.
악수를 청하는데 '기운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목사님과 절친한 변호사 중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보호시설을 직접 세우며 노력하여 남자친구가 존경하는 분도 있었다.
그런 어려운 길을 갈 수 있게 힘을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또.
하루 1컷씩 그린 만화 일기에 나오듯 나는 또 실수하겠지.

똑같은 남자친구를 두고도 실망했다, 좋았다 난리법석.
법과 글을 두고도 난리법석.
그게 나라는 걸 오랫동안 만화 일기를 그려보고 나니 알게 됐다.

남자친구도 남자친구다.
남자친구도 남자친구대로 고질적인 단점이 있다.
약간 안 좋은 일을 부풀려 말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 탓에 나는 3년 이상을 이 녀석이 의료사고의 피해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참..



교회든, 자전거 동호회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항상 싸움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우린 왜 항상 이렇게 서로에게 잔인할까.
브로콜리너마저가 한 노래에서 부른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트라우마를 서로에게 투사하고,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고,
미움과 슬픔을 퍼뜨리고,
인정받고 싶어서 못된 짓을 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부분, 스스로도 잘 모르는 사이 일어나는 거라 사람들은 자기가 한 줄도 모른다.
소크라테스가 답답해 죽은 이유가 있는 셈이다.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다. "사람들이 나쁠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면에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될까봐 두려운 거 아니에요?" 그곳에서는 웃는 얼굴로 무마했지만, 돌아 나오니 그 말이 맞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고 약한 개체 중 하나였을 때,
나는 온 세상 개체가 무서웠다.

심지어 작은 풀 하나도 자기를 지키기 위한 작은 독이라도 품고 있다는 생명의 현실이 두려웠다.
각자가 각자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 말과 행동을 하고, 그것의 뿌리는 결국 자신들의 생존과 인정투쟁이기에,
모든 사람들은 일종의 권력의지를 갖고 있고, 그 현실 속에서 약자는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내가 느낀 비정한 현실인식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해파리처럼 각자의 독을 품고 있는데 나만 없는 거 같다' 란 것이 몇 년의 고민인 적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가끔 주위를 보면, 보인다.
아. 저 사람, 마음이 아프다.
... 그러면 그 사람은 보통 주위의 가장 약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그 사실을 잊는다.
여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의 끝없는 화풀이와 모순과 트라우마의 재현을 당하다 세상에서 도망가 버린다.

외모지상주의건, 천민자본주의건,
그것의 가장 끝의 날카로운 칼날은 결국 약자에게 간다.

그럼에도 생존한다는 것.
매 호흡마다 순환계를 회전시키며,
또 어떤 것을 먹어서 다른 것의 죽음을 내 몸 안의 양분으로 삼으며
살아간다는 게 조금은 두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겠다고 떠들어도, 사실, 그것 또한 결국 하나의 모순으로 귀결될 것을 알기에.


"그런데 말이야. 영종도에 나 몸 최악일 때 요양 갔을 때. 뭔가 해야 할 거 같아서. 특히 머리가 이대로 죽어버릴까봐 무서워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단권으로 된 거로 샀어.
그래서 매일 무인카페에 나가서 정해진 페이지만큼을 읽었어.
죽을 만큼 힘들었어.
그리고 얼마나 지루한지...
근데 그렇게 생각했어. 왠지는 모르게.
'구원은 다음줄에 있다.'
그래서 또 읽고, 읽고, 읽으면.
꾸역꾸역 읽으면.
다음 페이지에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재밌는 이야기가,
'아니 이렇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있었어?' 싶은 게 적혀있는 거야.
그래서 끝까지 읽었는데, 그 책 덕에 다시 문학을 좋아할 수 있게 됐었어."

여전히 내가 그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다들 제일로 꼽는 '대심문관' 챕터보다는, 가난의 시름에 충격 받아 죽은 어린 아이의 챕터지만.

"잘은 모르지만, 그냥 계속 나아가는 거야. 교회도 계속 찾으니까, 더 좋은 교회가 나오잖아."
"맞아."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우리가 이루지 못한다 해도, 다음 세대도 있고, 다다음 세대도 있고... 언젠가는 이뤄질지도 모르잖아."
"맞아."

그때 영종도에서 친한 친구가 하는 와인바에 갔을 때 나는 방명록에 그렇게 적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맨앞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인용해놓은 성경 구절이다.

오랫동안, 겨울의 동토 같은 삶을 살면서
이건 봄이 되길 기다리느라 고통스러운 것일 거라 생각하며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문단을 가슴 서리게 외우게 다녔다.
'겨울은 차라리 따뜻했다.. 가장 잔인한 사월..'

이제 봄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봄이 된다는 건 또 퇴장하는 겨울들을 지켜본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상하게 나는 유독 많은 사람들의 장례식, 은퇴식 등에 연이 있는 것 같다.
이 목사님의 끝도 지켜봤지만, 그 외에도 많은 '뛰어난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봤었다.
학생들을 더 위해주기를 당부하며 은퇴를 하던 교수님, 마지막 강단에 섰다고 말하던 교수님, 상조회사 사람조차 감동했을 정도로 온 사람들이 진심으로 슬퍼했던 남자친구 아버님의 그 위대한 장례식.

아버지 없이 자란 나에게 그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가 되어줬는지도 모르겠다.

봄은 결국 겨울을 앞두고 있는데, 괜한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열심히 살아서 나도 또 다른 봄을 키워내면 되고, 그것만이 생명이 용서 받을 길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상처를 줬지만, 나도 정말 많은 죄를 지었어. 신을 믿으니까 오히려 그 점에 겸허하게 돼.
세상에서는 지금 '죄가 없는 게 보통' 인 것처럼 생각하잖아. 작은 죄라도 지으면 엄청 단죄하려고 하고.
그런데 종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니까. 그걸 인정하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하면 사실 나도 죄인인데, 그걸 부끄러워 인정 못하고 있다가 다 같이 인정하니 할 수 있는 거야.
근데 참 그냥 다들 서툴렀어."

나는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남자친구는 그 밤의 이야기가 좋았다고 했다.

"그거 알아? 예수님이 성경에서 뭐가 '맛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
"아 진짜?"
"어. '이 떡이 맛있다.' 이런 식으로. 음미해. 완전 고독한 미식가야."

남자친구 식의 엉터리 성경 해석(?)을 들으며, 또 잠에 든다.

내일은 내일의 빵을 맛있게 먹어야지.
새싹은 자라는 게 일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qjzh3CwaY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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