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12/06 19:47:28
Name   카르스
File #1   20241206_193341.jpg (77.5 KB), Download : 45
Subject   임현정의 '세계최초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전곡 독주 편곡 리사이틀' 감상 (2024.12.05)


계엄령과 탄핵 이슈로 시끄러운 시국인데, 기분전환으로 어제 갔다오신 클래식 연주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목에도 말했듯이 어젯밤에 임현정의 '세계최초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전곡 독주 편곡 리사이틀'에 다녀왔어요.
무려 '라흐마니노프 피협 1,2,3,4번' 그리고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자 본인이 피아노 독주곡 버전으로 편곡해서 한 콘서트에서 3시간동안 다 치는 미친 콘서트였어요.
클래식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미친'이라는 표현이 이해되실 거예요.

해석의 호불호는 갈리는 편이지만 대단한 기교를 소화하는 연주자로 호평받는 임현정이,
세계 최초로 매우 높은 수준의 체력과 기교를 요구하는 콘서트에 도전했기에 꼭 가려고 마음먹었어요.
어제 컨디션이 살짝 안 좋아서 안 갈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했어요.

결과는 대만족이었어요.

사실 임현정이 중간 정도로만 쳤어도 대단한 연주라고 생각해요.
만삭의 몸으로(팜플렛에 따르면 다음 달 출산 예정이라고...), 3시간짜리의 긴 콘서트를, 그것도 높은 기교를 요하는 곡들로만 가득 채웠으니까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임현정의 해석은 호불호가 갈리는 축이라,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도 임현정의 베토벤소나타 음반은 곡마다 호불호가 갈렸고, Ravel/Scriabin 음반은 솔직히 별로였어요.

그런데 이 어려운 도전을, 약간 아쉬웠던 피협 2번을 제외하면 대체로 훌륭하게 해냈어요.
- 피아노협주곡(이하 피협) 1번은 곡 스토리라인이 난해해서 잘 듣지 않았던 곡인데, 곡의 숨겨진 매력을 일깨우는 데 성공했어요.
- 피협 2번은 서정적인 멜로디를 잘 못살려냈고 불어버린 국수처럼 끊기는 느낌이라 아쉬웠지만,
다섯 곡 중 제일 서정적이라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하기 어려워보였다는 참작사유가 있어요.
- 연주 자체로 대단한 피협 3번은 1,2악장까지는 평이하다가 3악장에서 버르츄오소다운 웅장함이 폭발해서 멋지게 끝났어요.
- 피협 4번은 피협 1번과 비슷했어요.
-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도 전반적으로 괜찮았어요. 피협인 원곡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들어요.

앵콜도 대단했어요. 라흐마니노프 피협 5번(뒤에 설명하겠지만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작곡한 건 아니에요) 2악장 독주 편곡버전. 후대의 한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편곡해서 피협으로 만든 곡인데,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전곡을 편곡해서 연주하는 콘서트의 앵콜다웠어요.
금관악기 하나와 결들어 연주했는데 악기 이름은 까먹었어요.

임현정이라는 피아니스트의 개성을 좋은 의미로 드러낸 프로그램이었어요. 만삭 상태인게 연주회장에서도 확 보여서 더 매력이 느껴졌어요.
순산을 기원하고 앞으로도 독특한 시도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호불호가 갈려서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도 자주 듣고 싶고 도전을 응원하고 싶은 연주자예요.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78 일상/생각습관 만들기 - 2달째 후기 40 카야 20/01/14 6764 35
    10368 오프모임[마감] 3월 13일 금요일 7시 압구정 곱떡 벙개 56 카야 20/03/11 7254 4
    1456 의료/건강물들어 올때 노젓는 잡담 23 카서스 15/11/04 10799 0
    15251 일상/생각요 몇년간 스마트폰 기변 후기. 14 카바짱 25/02/06 2312 0
    14365 꿀팁/강좌해외에서 ESIM 번호이동(010) 성공 후기. 카바짱 23/12/29 4412 3
    8449 도서/문학(리뷰±잡설) 골든아워 그리고 시스템 4 카미트리아 18/10/31 4935 5
    13305 스포츠국가대표 4 카리나남편 22/11/09 3794 3
    15693 경제한국을 다루는 경제사/경제발전 연구의 발전을 보면서 2 카르스 25/08/28 1411 5
    15627 사회서구 지식인의 통제를 벗어난 다양성의 시대 3 카르스 25/07/19 1596 5
    15620 사회동남아시아, 장애인 이동권, 그리고 한국 5 카르스 25/07/16 1511 13
    15208 정치윤석열이 새해 초 작성한 '국민께 드리는 글' 전문 [장문] 14 카르스 25/01/15 2337 0
    15203 사회생활시간조사로 본 한국 교육의 급격한 변화와 (잠재적) 문제 3 카르스 25/01/13 2403 2
    15103 음악임현정의 '세계최초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전곡 독주 편곡 리사이틀' 감상 (2024.12.05) 3 카르스 24/12/06 2608 1
    15109 사회오늘의 탄핵 부결에 절망하는 분들에게. 6 카르스 24/12/07 2488 16
    14968 정치민주당계 정당의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소극성,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21 카르스 24/10/08 3068 0
    14934 도서/문학이영훈 『한국경제사 1,2』 서평 - 식근론과 뉴라이트 핵심 이영훈의 의의와 한계 6 카르스 24/09/19 3356 15
    14801 정치양당고착구도에 대한 짧은 고찰 - 제3정당들은 왜 양당에 흡수되었는가 10 카르스 24/07/22 2852 6
    14746 사회한국 청년들이 과거에 비해, 그리고 타 선진국에 비해 미래를 낙관한다? 12 카르스 24/06/16 3517 0
    14729 사회한국 징병제의 미스테리 19 카르스 24/06/06 3779 4
    14723 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1 카르스 24/06/03 3106 11
    14690 도서/문학제가 드디어 에어북을 출간했습니다. 14 카르스 24/05/19 3522 36
    14594 정치절반의 성공을 안고 몰락한 정의당을 바라보며 10 카르스 24/04/11 3649 18
    14565 도서/문학양승훈,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서평. 5 카르스 24/03/30 3382 12
    14564 사회UN 세계행복보고서 2024가 말하는, 한국과 동북아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 14 카르스 24/03/26 4212 7
    14499 정치이준석의 인기 쇠퇴를 보면서 - 반페미니즘 정치는 끝났는가? 21 카르스 24/03/03 4134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