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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12/08 15:58:20수정됨
Name   바쿠(바쿠)
Subject   '중립' 또는 '중도'에 대한 고찰
수십 년 간 일상에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 할 때마다 소위 ‘중립’을 강요당하면서,
(*24-12-09 (월) 14:18 -- 위 문장이 주제와 상관없는 소모적 논쟁을 일으키는 것 같아 발언 취소하겠습니다. '강요'한 것은 제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겠습니다.)

‘중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름 고민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1차원적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논리적으로, 가운데가 어디인지를 알려면 ‘이쪽 끝’과 ‘저쪽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사이에 뭐가 있는지를 소상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민 없이 ‘중립/중도’를 ‘주장’하는 건 그냥 ‘1) 가만히 있는 2) 내가 옳다 3) 너희들도 그런 내가 옳음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자신 외의 세력을 ‘극단주의자’로 만들기 위한 포지셔닝으로도 볼 수 있겠죠.

진짜 중립 또는 중도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에 존재하는 모든 입장들을 살핀 끝에 내가 선택한 자리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대충 가운데쯤인 것이 인정되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편의상’ 분류해 주는 것입니다.

즉, 1) 스스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 있어야 하며, 2)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운데’로 인정해줘야 하며, 3) 그것이 어디까지나 ‘편의적’ 분류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현실에서 중립과 중도를 논함에 있어서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세상 만사의 복잡함에 대한 문제.

세상은 1차원이 아닙니다. 왼쪽과 오른쪽만 있는게 아니라, 수십 수백 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자유지상주의 시장경제와 복지 축소를 지지하면서 동성 결혼과 성별정정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은 좌파일까요 우파일까요? 어떤 이슈는 단일 이슈에 입장이 2극이 아니라 3극 이상으로 나뉘기도 합니다(예: 민족주의 vs 국가주의 vs 세계시민주의).

2차원도 아니고 3차원조차 아니고 10차원 이상의 공간입니다.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조차 없는 이 복잡한 공간에서 ‘가운데’가 어디인지 인간이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알 수 없다고 봅니다.

둘째, 비합리적 엣지 케이스에 대한 문제. 세상에는 지구평평설처럼 극단조차 아닌 비합리적 입장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옆건물 할아버지가 자기 집 화장실에 똥을 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옆건물 할아버지는 저희 집 안방 침대 위에 똥을 싸고 싶어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극한 대립이 벌어지자, 보다 못한 뒷집 아주머니가 ‘그러면 서로 양보해서 바쿠 씨네 거실 소파에 싸시는 걸로 하시죠’라고 말하면 중립이 될까요? ‘자기 똥은 자기 화장실에’라는 제 입장이 어느 한쪽 ‘극단’이 될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시민적 공론장에는 ‘모든’ 의견이 고려될 수 없으며, 일정 이상의 기준을 통과한 의견들만이 담론 지평을 구성해야 합니다.

이 기준은 물론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토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토론에는 당연히 ‘중립’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담론의 지도가 아직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묵과 무관심은 자유로운 시민의 마땅한 권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중립과 중도를 자칭하는 것은 제가 보기엔, 다른 맥락을 은폐하기 위한 의미 없는 발화에 불과합니다.

*이 문장은 알료샤님의 댓글을 읽은 후 수정했습니다. 원래는 침묵은 가능하다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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