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4/12/08 15:58:20수정됨 |
Name | 바쿠 |
Subject | '중립' 또는 '중도'에 대한 고찰 |
(*24-12-09 (월) 14:18 -- 위 문장이 주제와 상관없는 소모적 논쟁을 일으키는 것 같아 발언 취소하겠습니다. '강요'한 것은 제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겠습니다.) ‘중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름 고민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1차원적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논리적으로, 가운데가 어디인지를 알려면 ‘이쪽 끝’과 ‘저쪽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사이에 뭐가 있는지를 소상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민 없이 ‘중립/중도’를 ‘주장’하는 건 그냥 ‘1) 가만히 있는 2) 내가 옳다 3) 너희들도 그런 내가 옳음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자신 외의 세력을 ‘극단주의자’로 만들기 위한 포지셔닝으로도 볼 수 있겠죠. 진짜 중립 또는 중도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에 존재하는 모든 입장들을 살핀 끝에 내가 선택한 자리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대충 가운데쯤인 것이 인정되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편의상’ 분류해 주는 것입니다. 즉, 1) 스스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 있어야 하며, 2)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운데’로 인정해줘야 하며, 3) 그것이 어디까지나 ‘편의적’ 분류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현실에서 중립과 중도를 논함에 있어서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세상 만사의 복잡함에 대한 문제. 세상은 1차원이 아닙니다. 왼쪽과 오른쪽만 있는게 아니라, 수십 수백 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자유지상주의 시장경제와 복지 축소를 지지하면서 동성 결혼과 성별정정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은 좌파일까요 우파일까요? 어떤 이슈는 단일 이슈에 입장이 2극이 아니라 3극 이상으로 나뉘기도 합니다(예: 민족주의 vs 국가주의 vs 세계시민주의). 2차원도 아니고 3차원조차 아니고 10차원 이상의 공간입니다.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조차 없는 이 복잡한 공간에서 ‘가운데’가 어디인지 인간이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알 수 없다고 봅니다. 둘째, 비합리적 엣지 케이스에 대한 문제. 세상에는 지구평평설처럼 극단조차 아닌 비합리적 입장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옆건물 할아버지가 자기 집 화장실에 똥을 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옆건물 할아버지는 저희 집 안방 침대 위에 똥을 싸고 싶어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극한 대립이 벌어지자, 보다 못한 뒷집 아주머니가 ‘그러면 서로 양보해서 바쿠 씨네 거실 소파에 싸시는 걸로 하시죠’라고 말하면 중립이 될까요? ‘자기 똥은 자기 화장실에’라는 제 입장이 어느 한쪽 ‘극단’이 될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시민적 공론장에는 ‘모든’ 의견이 고려될 수 없으며, 일정 이상의 기준을 통과한 의견들만이 담론 지평을 구성해야 합니다. 이 기준은 물론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토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토론에는 당연히 ‘중립’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담론의 지도가 아직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묵과 무관심은 자유로운 시민의 마땅한 권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중립과 중도를 자칭하는 것은 제가 보기엔, 다른 맥락을 은폐하기 위한 의미 없는 발화에 불과합니다. *이 문장은 알료샤님의 댓글을 읽은 후 수정했습니다. 원래는 침묵은 가능하다 정도였습니다. 15
이 게시판에 등록된 바쿠님의 최근 게시물 |
안철수가 극중주의?였나를 들고나왔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 때 누군가가 그럼 안철수가 있는 정당 당론은 새누리랑 민주당에서 정해주는 거냐고 했었죠. ㅋㅋㅋ
저는 진짜... 어떨 땐 중도입네 하는 사람들이 가장 혐오스러울 때가 있어요. 정확히는 사안에 대해 극히 피상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양쪽의 극성스러운 놈들 다 똑같다고 진흙탕에서 뒹구는 이들을 비웃으면서 쿨한 행세 하는 분들이 제일 싫더라고요. 모두가 이슈 팔로워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깟것 안 봐도 뻔하다는 듯 어찌 그리도 오만해 보이던지... 솔직히 아예 극단적인 분들보다 더 싫더군요.
보통 뒷집 아주머니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그 싸움에 관심이 없고 넷플릭스 메뉴판이나 보고 있을겁니다. 대개 중도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각자의 화장실에 똥을 싸는게 좋다라는 주장과 그것을 침해하는 자들간의 갈등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면 됩니다. 중간에 싸자고 주장하면서 중도를 자처하면 그건 당연히 침해자와 한패로 규정지으면 될 일이지만 가만히 자기 집에서 평온하게 넷플릭스 보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여보슈 당신도 올바른 목소리를 내주시오. 그것이 시민의 의무요. 당신은 중도가 아니오. 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바쿠님의 주... 더 보기
각자의 화장실에 똥을 싸는게 좋다라는 주장과 그것을 침해하는 자들간의 갈등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면 됩니다. 중간에 싸자고 주장하면서 중도를 자처하면 그건 당연히 침해자와 한패로 규정지으면 될 일이지만 가만히 자기 집에서 평온하게 넷플릭스 보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여보슈 당신도 올바른 목소리를 내주시오. 그것이 시민의 의무요. 당신은 중도가 아니오. 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바쿠님의 주... 더 보기
보통 뒷집 아주머니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그 싸움에 관심이 없고 넷플릭스 메뉴판이나 보고 있을겁니다. 대개 중도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각자의 화장실에 똥을 싸는게 좋다라는 주장과 그것을 침해하는 자들간의 갈등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면 됩니다. 중간에 싸자고 주장하면서 중도를 자처하면 그건 당연히 침해자와 한패로 규정지으면 될 일이지만 가만히 자기 집에서 평온하게 넷플릭스 보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여보슈 당신도 올바른 목소리를 내주시오. 그것이 시민의 의무요. 당신은 중도가 아니오. 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바쿠님의 주장은 그런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허수아비를 치고 있지만, 중도 자칭하는건 중간지점에 똥싸기를 두둔하는 것과 같읍니다, 라는 끝맺음이라면 넷플릭스 시청자의 포지션을 빼앗는 것이라 생각해서 댓글 남깁니다.
이것이 이번 계엄 코메디와 연관된 의견이라면,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기 화장실에 똥을 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읍니다. 중간에 싸세요, 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고 그들이 중도를 자처한다고 중도(중립)의 의미가 변하지도 않습니다.
계엄, 그거 잘못된거지, 지지율 낮은 상황에서 악수를 둔 사람과 꼬리자르기를 못하는 어리석은 집단들은 본인들 잘못한거에 걸맞는 최후를 맞이하겠고.. 룰루랄라~ 그럼 오늘의 넷플릭스 메뉴판은 ~ 이정도가 중도일 겁니다.
우오오 ~~ 이런 엄청난 불의!!! 우리 다같이 일어나 정의를 위해 싸웁시다 - 설마 동참 않하면서 중립이라는 비겁자는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_^ <-- 저한테는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더 거부감 느껴집니다..
각자의 화장실에 똥을 싸는게 좋다라는 주장과 그것을 침해하는 자들간의 갈등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면 됩니다. 중간에 싸자고 주장하면서 중도를 자처하면 그건 당연히 침해자와 한패로 규정지으면 될 일이지만 가만히 자기 집에서 평온하게 넷플릭스 보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여보슈 당신도 올바른 목소리를 내주시오. 그것이 시민의 의무요. 당신은 중도가 아니오. 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바쿠님의 주장은 그런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허수아비를 치고 있지만, 중도 자칭하는건 중간지점에 똥싸기를 두둔하는 것과 같읍니다, 라는 끝맺음이라면 넷플릭스 시청자의 포지션을 빼앗는 것이라 생각해서 댓글 남깁니다.
이것이 이번 계엄 코메디와 연관된 의견이라면,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기 화장실에 똥을 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읍니다. 중간에 싸세요, 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고 그들이 중도를 자처한다고 중도(중립)의 의미가 변하지도 않습니다.
계엄, 그거 잘못된거지, 지지율 낮은 상황에서 악수를 둔 사람과 꼬리자르기를 못하는 어리석은 집단들은 본인들 잘못한거에 걸맞는 최후를 맞이하겠고.. 룰루랄라~ 그럼 오늘의 넷플릭스 메뉴판은 ~ 이정도가 중도일 겁니다.
우오오 ~~ 이런 엄청난 불의!!! 우리 다같이 일어나 정의를 위해 싸웁시다 - 설마 동참 않하면서 중립이라는 비겁자는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_^ <-- 저한테는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더 거부감 느껴집니다..
말씀하신 바에 저도 100% 동의합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제가 글을 잘 못써서입니다.
저 또한, 침묵하거나 관심 없을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믿고,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정치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라 생각하며 분명히 반대합니다.
저 또한, 침묵하거나 관심 없을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믿고,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정치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라 생각하며 분명히 반대합니다.
한 가지 제가 다르게 생각하는 점은, 일단 이 논의에서는 표현의 차이에 불과하겠지만, '넷플릭스 메뉴판이나 보고 있는' 분들은 '중도'가 아니라 '무관심층'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100%를 95%로 수정해야겠네요.)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한 범위를 넘습니다만, 무관심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자기 편으로 포섭하려는 '중도' 정치인 또는 언론들의 정치 테크닉이 있습니다. 여기에 포섭되어 링에 올라온 분들의 포지션은 '중도'는 아니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한 범위를 넘습니다만, 무관심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자기 편으로 포섭하려는 '중도' 정치인 또는 언론들의 정치 테크닉이 있습니다. 여기에 포섭되어 링에 올라온 분들의 포지션은 '중도'는 아니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아뇨 바쿠님 의견이 상식적인 주장 맞습니다. 제가 허수아비를 좀 쳤죠.
애매한건 이걸 일반론적으로 볼것인가 이번 계엄건에 특정할 것인가인데 자연스럽게 지금 터진 일들이 있으니 후자 쪽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유게에 올라온 스펨알바 짤이 참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는데요, 진짜 한국에서 밥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무관심하고 둔하다고 해도 그 스펨알바 정도의 당사자성은 가지고 있거든요. [퇴 진 하 라] 단 네 음절을 알바 중에 타이핑하는 것, 그거 딸각 이후 스펨알바는 자기... 더 보기
애매한건 이걸 일반론적으로 볼것인가 이번 계엄건에 특정할 것인가인데 자연스럽게 지금 터진 일들이 있으니 후자 쪽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유게에 올라온 스펨알바 짤이 참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는데요, 진짜 한국에서 밥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무관심하고 둔하다고 해도 그 스펨알바 정도의 당사자성은 가지고 있거든요. [퇴 진 하 라] 단 네 음절을 알바 중에 타이핑하는 것, 그거 딸각 이후 스펨알바는 자기... 더 보기
아뇨 바쿠님 의견이 상식적인 주장 맞습니다. 제가 허수아비를 좀 쳤죠.
애매한건 이걸 일반론적으로 볼것인가 이번 계엄건에 특정할 것인가인데 자연스럽게 지금 터진 일들이 있으니 후자 쪽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유게에 올라온 스펨알바 짤이 참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는데요, 진짜 한국에서 밥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무관심하고 둔하다고 해도 그 스펨알바 정도의 당사자성은 가지고 있거든요. [퇴 진 하 라] 단 네 음절을 알바 중에 타이핑하는 것, 그거 딸각 이후 스펨알바는 자기 일에 매진하겠죠.
아무리 무관심층이라 할지라도 이번 건에서만큼은 대부분 아주 단편적인 뉴스들만으로도 딱히 특정 세력에 포섭되지 않고 링 위에 충분히 올라와 있고, 한국사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그들은 의외로 무난하게 괜찮은 선택지를 골라 왔거든요.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는 중도가 아닌 어떤 포지션에서 아.. 무관심층들이 걱정되는데.. 걔들이 우리 얘기를 안들어주면 곤란해지는데.. 중도를 강요당하는건 괴로운데.. 라는 우려들이 좀 엄살스럽지 않은가, + 어어 저것봐 저것봐 저기 또 포섭된 애 있다, 하면서 80대 20의 스코어가 79대 21로 바뀌는 듯한 형세조차 용납이 불편하다는 심리는, 평소 다른 사안의 백중세의 대결에서 49대 51이 되었을 때 그 책임을 '무관심층들이 멍청하게 포섭되었기 때문이야' 라는 쪽으로 돌리고 싶은 심리와 연결되지 않나.. 하는 입장입니다. 그럴 때 저는 그 무관심층들의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나 언뜻 무책임해 보이는 기권들로 인한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무관심층의 범주는 과거 중요할 때 썩 괜찮은 선택을 계속 이어왔던 그 무관심층과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정도의 주장인것이구요.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상위 이견이 존재하고 어느정도 바쿠님의 본문에 포함되어 있읍니다만,, 때마침 질게에 올라온 글도 있고 해서 요런 댓글이 달리면 좀더 재미있지 않나.. 하고 굳이 사족을 답니다 ㅋㅋ
애매한건 이걸 일반론적으로 볼것인가 이번 계엄건에 특정할 것인가인데 자연스럽게 지금 터진 일들이 있으니 후자 쪽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유게에 올라온 스펨알바 짤이 참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는데요, 진짜 한국에서 밥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무관심하고 둔하다고 해도 그 스펨알바 정도의 당사자성은 가지고 있거든요. [퇴 진 하 라] 단 네 음절을 알바 중에 타이핑하는 것, 그거 딸각 이후 스펨알바는 자기 일에 매진하겠죠.
아무리 무관심층이라 할지라도 이번 건에서만큼은 대부분 아주 단편적인 뉴스들만으로도 딱히 특정 세력에 포섭되지 않고 링 위에 충분히 올라와 있고, 한국사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그들은 의외로 무난하게 괜찮은 선택지를 골라 왔거든요.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는 중도가 아닌 어떤 포지션에서 아.. 무관심층들이 걱정되는데.. 걔들이 우리 얘기를 안들어주면 곤란해지는데.. 중도를 강요당하는건 괴로운데.. 라는 우려들이 좀 엄살스럽지 않은가, + 어어 저것봐 저것봐 저기 또 포섭된 애 있다, 하면서 80대 20의 스코어가 79대 21로 바뀌는 듯한 형세조차 용납이 불편하다는 심리는, 평소 다른 사안의 백중세의 대결에서 49대 51이 되었을 때 그 책임을 '무관심층들이 멍청하게 포섭되었기 때문이야' 라는 쪽으로 돌리고 싶은 심리와 연결되지 않나.. 하는 입장입니다. 그럴 때 저는 그 무관심층들의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나 언뜻 무책임해 보이는 기권들로 인한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무관심층의 범주는 과거 중요할 때 썩 괜찮은 선택을 계속 이어왔던 그 무관심층과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정도의 주장인것이구요.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상위 이견이 존재하고 어느정도 바쿠님의 본문에 포함되어 있읍니다만,, 때마침 질게에 올라온 글도 있고 해서 요런 댓글이 달리면 좀더 재미있지 않나.. 하고 굳이 사족을 답니다 ㅋㅋ
홍차넷 시스템상 '발언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차단 기능이 있기는 한데 본인이 특정 회원의 글을 읽지 않겠다는 것이고, 해당 회원이 발언을 하지 못하게 만들 방법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회학적으로 특정집단 내에서 소수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는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겠고, 저도 이 현상을 상쇄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만, 그것을 '통제'라고 일컫는 데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시겠지만 표현의 자유는 타인이 내 표현을 반박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혹시 제가 선생님이 암시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상황이나 맥락을 잘못 이해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라면 말씀해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다른 케이스들도 보았습니다만 특정 의견을 물타기로 간주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화자의 실제 스탠스와는 무관하게 부여되는 포지션이 있을 겁니다. 물타기라는 용어부터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사안을 흐리는 행위를 가리킬테니까요. 한 의견을 시작부터 소수의견으로 간주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의견의 내용 그 자체에 더해 가해지는 포지션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겠습니까? 전 의견을 나누는 상대가 중도건 어디건 관심도 없고 제 것도 밝혀야 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만 그러한 압력이 근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타기'라는 게 애초에 명확히 정의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그 말이 지칭하는 비생산적인 토론 방해 행위가 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누구한테 뭘 어떻게 했다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추상적으로 논의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해 보입니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케바케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 보이네요. 실제 말씀하신 행위가 일어났을 때 그 장소에서 '이 행위는 이견을 '물타기'로 몰아가는 부당한 입막음 행위이다'라고 주장하여 토론을 하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거창하게 무엇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의문을 표하신 것들에 대해 제 생각만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제 눈에 보이고 시간이 되는 한 부당하다 생각되는 것엔 그런 의견을 달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감정적인 흐름으로 가지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제 눈에 보이고 시간이 되는 한 부당하다 생각되는 것엔 그런 의견을 달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감정적인 흐름으로 가지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일상에서는 중립을 강요한다기보다 '그런 주제는 여기선 쫌..'에 가깝지 않나요. 성향의 방향보다는 주제의 선택 측면에서 분쟁을 회피하는거죠.
말씀대로 모든 이야기에 TPO 가 있는 건 사실이고 제가 좀 눈치가 없긴 합니다.
다만 모두의 일상이 같지 않은 것 또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제가 겪은 바는, 상대가 '그런 주제'를 먼저 꺼낸 후에 제가 토론을 시도하면 '넌 너무 편향적이야'로 대화를 단절하는 경우 또한 많았습니다.
(사실 저 오프라인에선 상당히 소극적이라 와이프 정도나 되지 않으면 정치 얘기 같은 거 먼저 꺼내지 않습니다...?)
다만 모두의 일상이 같지 않은 것 또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제가 겪은 바는, 상대가 '그런 주제'를 먼저 꺼낸 후에 제가 토론을 시도하면 '넌 너무 편향적이야'로 대화를 단절하는 경우 또한 많았습니다.
(사실 저 오프라인에선 상당히 소극적이라 와이프 정도나 되지 않으면 정치 얘기 같은 거 먼저 꺼내지 않습니다...?)
그 대화도 '중립을 강요했다'라고 표현하기는 좀 이상한것 같습니다. 그 상대도 중립적인게 아니라 편향적이기가 쉬울거 같은데 아무튼 '너랑 이런 얘기 안할거다 내편하고만 떠들거야'에 가까운 상황이죠. 말씀하신 대화단절이 바쿠님한테 중립을 취하라는 취지가 아니잖아요 대화단절 그 자체가 목적인거죠. (제가 지금 상대방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 '중립을 강요한다'는 말 자체가 너무 어색합니다. 보통 '내 편을 강요'하죠. 중립이 강요되는건 사회자한테나 그런것이고..
그 사람은 바쿠님도 자기 편일줄알고 말 꺼냈다가 서로 우쭈쭈 한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튀는거에요..
그 사람은 바쿠님도 자기 편일줄알고 말 꺼냈다가 서로 우쭈쭈 한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튀는거에요..
생각해 보면 중도는 본디 석가의 '中道(Madhyama Pratipat)'가 관용어가 된 것이죠. 원래의 의미를 곰곰이 따져 보면.... 내가 권하는 수행 이외의 모든 것들은 제대로 된 길에서 벗어난 것이니 그릇된 것이며 나 석가만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의 중도는 보통 떠올리는 온건하고 타협적인 그런 게 아니라, 나 이외의 모든 이들은 뭘 모르고 샛길로 빠진 극단주의자들이라는 굉장히 광오한 낱말이었지요.
물론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고 낱말의 의미는 업데이트되는 것이므로, 2천여 년 전 석... 더 보기
물론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고 낱말의 의미는 업데이트되는 것이므로, 2천여 년 전 석... 더 보기
생각해 보면 중도는 본디 석가의 '中道(Madhyama Pratipat)'가 관용어가 된 것이죠. 원래의 의미를 곰곰이 따져 보면.... 내가 권하는 수행 이외의 모든 것들은 제대로 된 길에서 벗어난 것이니 그릇된 것이며 나 석가만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의 중도는 보통 떠올리는 온건하고 타협적인 그런 게 아니라, 나 이외의 모든 이들은 뭘 모르고 샛길로 빠진 극단주의자들이라는 굉장히 광오한 낱말이었지요.
물론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고 낱말의 의미는 업데이트되는 것이므로, 2천여 년 전 석가의 규정을 가지고 지금의 중도의 의미를 바꾸자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냥의 어원이 산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냥을 가서 그냥 산행만 하고 와야 한다고 하면 억지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의 본디 의미를 곱씹어 보면 몇 가지 함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현재에도 중도는 어느 정도 석가적 의미로 쓰입니다. 즉 중도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들 중 적잖은 이가 석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같은 평범하고 상식적인 Normie말고는 모두 틀려'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의도를 자기규정을 통해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조차도 중도는 어느 정도 광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른 한편으로, 중도의 난도는 중요한 문제일수록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문제가 쉬울 때는 어떤 방식을 시도해도 통합니다. 어느 한편에 하지만 애시당초 문제란 것이 그렇게 해결하기 쉬운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라고 부르지도 않죠.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여러가지 방법론들을 '발전적으로 종합'할 때 겨우겨우 풀립니다. 스1으로 예를 들어 보죠. 테란의 메카닉이 개ㅈ 같을 때 이것을 아비터로 타파해야 한다는 학파와 캐리어로 대항해야 한다는 학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테란의 수준의 미개할 때는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무방할 수도 있겠죠. 테란의 수준이 조금 더 올라가면? 아마 양자가 동일한 적합성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며, 둘 중 한쪽이 좀 더 승률이 높을 겁니다. 하지만, 테란의 디폴트가 전프로 BJ, 이를테면 이성은이라고 한다면? 아마 아비터학파든 캐리어학파든 여지 없이 작살이 날 겁니다. 그때는 둘 중 어느 한쪽을 택하는 수준의 솔루션으로 해결이 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아비터를 갈 수도 있고, 캐리어를 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단순한 절충을 시도해 봐야 문제가 풀릴 턱이 없죠. 이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려면 이 타이밍에 일케일케 캐리어를 갔더니 승률이 얼마 올라가더라, 대신 그럴 때는 저러저러한 리스크가 있는데 그때는 아비터를 요 타이밍에 띄워야 하더라, 요런 식으로 무수히 세분화 된 시나리오에 대해서 아비터와 캐리어의 가중치를 정교하게 설정하는 접근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성은을 상대로 승률이 올라갔다는 것이 검증되었을 때, 즉 다음 스테이지로 성장했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 이제까지의 족적을 돌이켜 보면 그 이전의 많은 전략들은 '극단'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 상대가 이영호라면? 지금까지의 성취를 이끌어냈던 방법론 중 많은 것들이 극단으로서 가지치기 될 것이며, 또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기 위해서 부단한 발전적 종합을 해야 하겠죠. 변현제나 장윤철의 경지는 그렇게 도달할 수 있지만, 매우 소수에게만 허락된 길입니다. 대부분은 그러한 '중도'에 이르기 이전에 어느 단계에서 '극단'의 길을 택하면서 치우치게 됩니다.
예시를 스1으로 들었지만 세상만사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중요한 문제란 결국 복수의 경합하는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가중치를 부여할지, 어떤 것을 우선시할지,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란 것이죠. 중요하다는 건 결국 많은 것이 걸려 있는 것이고, 많은 것이 걸려 있으니까 자연히 어려운 겁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또 모두를 배격해서도 안 되며,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극도로 좁은 회랑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야 하죠. 가령 소련의 결정론도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 없는 전략이고, 프랑크푸르트식 자율론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면, 알튀세르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중층결정론이라는 샛길로 진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층결정론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면 다음 '중도'는 어디일까요? 혹은 식근론 논쟁을 생각해 봅시다. 내발론도 틀리다면, 하지만 식근론도 틀리다면, 연구자는 무엇이라 이야기해야 합니까? 이승만이 국부가 아니라면, 그렇다고 김구도 대안이 아니라면, 뉴라이트도 개소리라면, 하지만 민주당식 휘그사관도 개소리라면,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회랑은 갈수록 좁아집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정론이라고 제시되는 것들이 오답이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그 사이 어디로 가야할지는 막막한 것이 보통인 것이죠. 지나치게 많은 트레이닝이 과도 트레이닝으로 인해 퍼포먼스 저하로 이어지는 반면, 자칫 부족한 트레이닝이 과소 트레이닝으로 인해 역시 퍼포먼스 저하로 이어진다면, 올림픽 출전자는 어느 정도로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 걸까요? 트레이닝 레벨이 높아질수록 그 사이에 있는 중도의 스윗 스팟은 희미해져 갑니다.
그러니까 석가적 의미에서 중도란 것이 다음 지점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전적 종합이라고 한다면, 중도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저쪽도 틀렸고 내가 맞다, 그래서 내가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는 것이 석가적 의미의 중도이며, 이것은 독재자를 지향하는 실천가의 길이라는 점에서 흔히 중도하면 떠올리는 관조적 태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또한 양 극단 사이에서 반사이익을 보려는 단순한 절충적 시도와도 궤를 달리하고요. 당연히 앞서 말한 것처럼 석가가 중도에 특허냈냐? 라고 반문할 수 있고 그것이 정당합니다. 하지만 중도라고 스스로 언급하는 이들이 '진짜 문제 해결'을 지향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지 않은가, 문제 해결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중도라고 자처하면서 판에 참전하는 것이 의미는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죠.
요는 중도란 것이 너무 쉽게 이야기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양쪽 사이에서 중도라고 나서려면', 무언가가 극단이므로 미래에는 지양해야 할 방법론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 양자가 제시하지 못하는 기똥찬 비전을 나는 제시할 수 있다는 근거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물론 이건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중도층을 부정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화용론적으로 중도란 것이 참칭되기 참 쉬운 말이며, 씬의 중심에서 중도 운운하는 사람 치고 정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 단적인 예로 이퀄리즘 같은 게 그런 시도였죠. 가운데로 가는 길을 날로 먹으려고 하면 탈이 납니다.
물론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고 낱말의 의미는 업데이트되는 것이므로, 2천여 년 전 석가의 규정을 가지고 지금의 중도의 의미를 바꾸자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냥의 어원이 산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냥을 가서 그냥 산행만 하고 와야 한다고 하면 억지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의 본디 의미를 곱씹어 보면 몇 가지 함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현재에도 중도는 어느 정도 석가적 의미로 쓰입니다. 즉 중도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들 중 적잖은 이가 석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같은 평범하고 상식적인 Normie말고는 모두 틀려'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의도를 자기규정을 통해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조차도 중도는 어느 정도 광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른 한편으로, 중도의 난도는 중요한 문제일수록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문제가 쉬울 때는 어떤 방식을 시도해도 통합니다. 어느 한편에 하지만 애시당초 문제란 것이 그렇게 해결하기 쉬운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라고 부르지도 않죠.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여러가지 방법론들을 '발전적으로 종합'할 때 겨우겨우 풀립니다. 스1으로 예를 들어 보죠. 테란의 메카닉이 개ㅈ 같을 때 이것을 아비터로 타파해야 한다는 학파와 캐리어로 대항해야 한다는 학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테란의 수준의 미개할 때는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무방할 수도 있겠죠. 테란의 수준이 조금 더 올라가면? 아마 양자가 동일한 적합성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며, 둘 중 한쪽이 좀 더 승률이 높을 겁니다. 하지만, 테란의 디폴트가 전프로 BJ, 이를테면 이성은이라고 한다면? 아마 아비터학파든 캐리어학파든 여지 없이 작살이 날 겁니다. 그때는 둘 중 어느 한쪽을 택하는 수준의 솔루션으로 해결이 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아비터를 갈 수도 있고, 캐리어를 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단순한 절충을 시도해 봐야 문제가 풀릴 턱이 없죠. 이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려면 이 타이밍에 일케일케 캐리어를 갔더니 승률이 얼마 올라가더라, 대신 그럴 때는 저러저러한 리스크가 있는데 그때는 아비터를 요 타이밍에 띄워야 하더라, 요런 식으로 무수히 세분화 된 시나리오에 대해서 아비터와 캐리어의 가중치를 정교하게 설정하는 접근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성은을 상대로 승률이 올라갔다는 것이 검증되었을 때, 즉 다음 스테이지로 성장했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 이제까지의 족적을 돌이켜 보면 그 이전의 많은 전략들은 '극단'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 상대가 이영호라면? 지금까지의 성취를 이끌어냈던 방법론 중 많은 것들이 극단으로서 가지치기 될 것이며, 또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기 위해서 부단한 발전적 종합을 해야 하겠죠. 변현제나 장윤철의 경지는 그렇게 도달할 수 있지만, 매우 소수에게만 허락된 길입니다. 대부분은 그러한 '중도'에 이르기 이전에 어느 단계에서 '극단'의 길을 택하면서 치우치게 됩니다.
예시를 스1으로 들었지만 세상만사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중요한 문제란 결국 복수의 경합하는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가중치를 부여할지, 어떤 것을 우선시할지,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란 것이죠. 중요하다는 건 결국 많은 것이 걸려 있는 것이고, 많은 것이 걸려 있으니까 자연히 어려운 겁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또 모두를 배격해서도 안 되며,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극도로 좁은 회랑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야 하죠. 가령 소련의 결정론도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 없는 전략이고, 프랑크푸르트식 자율론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면, 알튀세르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중층결정론이라는 샛길로 진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층결정론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면 다음 '중도'는 어디일까요? 혹은 식근론 논쟁을 생각해 봅시다. 내발론도 틀리다면, 하지만 식근론도 틀리다면, 연구자는 무엇이라 이야기해야 합니까? 이승만이 국부가 아니라면, 그렇다고 김구도 대안이 아니라면, 뉴라이트도 개소리라면, 하지만 민주당식 휘그사관도 개소리라면,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회랑은 갈수록 좁아집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정론이라고 제시되는 것들이 오답이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그 사이 어디로 가야할지는 막막한 것이 보통인 것이죠. 지나치게 많은 트레이닝이 과도 트레이닝으로 인해 퍼포먼스 저하로 이어지는 반면, 자칫 부족한 트레이닝이 과소 트레이닝으로 인해 역시 퍼포먼스 저하로 이어진다면, 올림픽 출전자는 어느 정도로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 걸까요? 트레이닝 레벨이 높아질수록 그 사이에 있는 중도의 스윗 스팟은 희미해져 갑니다.
그러니까 석가적 의미에서 중도란 것이 다음 지점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전적 종합이라고 한다면, 중도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저쪽도 틀렸고 내가 맞다, 그래서 내가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는 것이 석가적 의미의 중도이며, 이것은 독재자를 지향하는 실천가의 길이라는 점에서 흔히 중도하면 떠올리는 관조적 태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또한 양 극단 사이에서 반사이익을 보려는 단순한 절충적 시도와도 궤를 달리하고요. 당연히 앞서 말한 것처럼 석가가 중도에 특허냈냐? 라고 반문할 수 있고 그것이 정당합니다. 하지만 중도라고 스스로 언급하는 이들이 '진짜 문제 해결'을 지향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지 않은가, 문제 해결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중도라고 자처하면서 판에 참전하는 것이 의미는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죠.
요는 중도란 것이 너무 쉽게 이야기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양쪽 사이에서 중도라고 나서려면', 무언가가 극단이므로 미래에는 지양해야 할 방법론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 양자가 제시하지 못하는 기똥찬 비전을 나는 제시할 수 있다는 근거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물론 이건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중도층을 부정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화용론적으로 중도란 것이 참칭되기 참 쉬운 말이며, 씬의 중심에서 중도 운운하는 사람 치고 정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 단적인 예로 이퀄리즘 같은 게 그런 시도였죠. 가운데로 가는 길을 날로 먹으려고 하면 탈이 납니다.
설명이 명료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동석해 있던 혹은 건네 들은 제3자들 '또한' 그런 식의 태도를 보였다, 라고 부연해야겠네요. (다만, 구체적인 어느 한 장면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경험들의 평균에 가깝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을 모두 뭉뚱그려 한 덩어리처럼 말한 것과 적대적으로 해석한 것은 제가 가진 모종의 피해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임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위에서 보이차님과 한 대화의 결에도 상충되는 바가 있군요.
또한 '모난 정이 돌 맞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동조 압력을 발생시키는 사람들이, 명시적으로 '중립'을 표방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제가 생각해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또한 '모난 정이 돌 맞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동조 압력을 발생시키는 사람들이, 명시적으로 '중립'을 표방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제가 생각해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중립, 중도, 중간, 중용이 다 다른데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중립을 표방하면서 중간을 행한다던가요.
0점 부터 100점 중에는 50점이 중간이지만
반 평균은 70점일 수도 있고
중앙값은 또 다른 얘기죠.
그렇지만 시험에서는 가급적 100점을 받는게 좋잖아요...
저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100점을 받으려 노력하는 것이 '중용' 이라 생각합니다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중립을 표방하면서 중간을 행한다던가요.
0점 부터 100점 중에는 50점이 중간이지만
반 평균은 70점일 수도 있고
중앙값은 또 다른 얘기죠.
그렇지만 시험에서는 가급적 100점을 받는게 좋잖아요...
저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100점을 받으려 노력하는 것이 '중용' 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인의 중도 : 뚜렷한 정치적 신념이나 상품이 딱히 없는 상태에서 표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1회용 비닐 포장지
일반유권자의 중도 : 선택에 책임 지고 싶지 않고, 반성하거나 무지를 인정할 생각도 없으며, 그러면서 욕 먹기는 싫은 경우에 사용하는 무임승차자용 면죄부
일반유권자의 중도 : 선택에 책임 지고 싶지 않고, 반성하거나 무지를 인정할 생각도 없으며, 그러면서 욕 먹기는 싫은 경우에 사용하는 무임승차자용 면죄부
동조 압력은 "peer pressure"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느끼는 방식은 각자 어떤 집단에 속해 있나, 나와 같은 집단 구성원(peer)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저는 '(다른/강한)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 불편하다' '가만히 있으라'는 "중도" 층의 동조 압력을 경험해왔으며, 이 글의 주제는 그 "중도"라는 셀프-레이블링이 논리적으로 잘 안 맞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양극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주장이 강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예를들어 전광훈 목사 추종자 100명이 저희 집 앞에 몰려와서 저를 상... 더 보기
양극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주장이 강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예를들어 전광훈 목사 추종자 100명이 저희 집 앞에 몰려와서 저를 상... 더 보기
동조 압력은 "peer pressure"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느끼는 방식은 각자 어떤 집단에 속해 있나, 나와 같은 집단 구성원(peer)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저는 '(다른/강한)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 불편하다' '가만히 있으라'는 "중도" 층의 동조 압력을 경험해왔으며, 이 글의 주제는 그 "중도"라는 셀프-레이블링이 논리적으로 잘 안 맞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양극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주장이 강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예를들어 전광훈 목사 추종자 100명이 저희 집 앞에 몰려와서 저를 상대로 자기들에게 동조하라는 시위를 한다 해도, 제가 느끼는 것은 혐오나 공포일지언정 '동조 압력'은 아닐 것입니다. 이 분들은 저한테 영원한 타자이기 때문에 애초에 (무의식적으로라도) '동조'를 생각할 수가 없고, 제가 이 분들과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될 일도 평생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양극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주장이 강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예를들어 전광훈 목사 추종자 100명이 저희 집 앞에 몰려와서 저를 상대로 자기들에게 동조하라는 시위를 한다 해도, 제가 느끼는 것은 혐오나 공포일지언정 '동조 압력'은 아닐 것입니다. 이 분들은 저한테 영원한 타자이기 때문에 애초에 (무의식적으로라도) '동조'를 생각할 수가 없고, 제가 이 분들과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될 일도 평생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동조압력이 행사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함께 표를 행사하는 같은 국민이니까요
밖에서 보면 전광훈 목사 추종자도 바쿠님과 같은 동일 집단 구성원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넓게 보기 싫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한표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면 이런 논의가 무슨 필요겠습니까?
뭐 심정적으로 납득 안가실 수 있으니 다른 좁은 예를 들어 말하면 가족이 있겠네요
연로한 부모님이 가족 톡방에 친구들에게 받는 동조압력 행사를 퍼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집단으로 묶이는 것이 싫다고 가족과 쉽게 의절 할 수 있나요?
그리고 ... 더 보기
밖에서 보면 전광훈 목사 추종자도 바쿠님과 같은 동일 집단 구성원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넓게 보기 싫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한표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면 이런 논의가 무슨 필요겠습니까?
뭐 심정적으로 납득 안가실 수 있으니 다른 좁은 예를 들어 말하면 가족이 있겠네요
연로한 부모님이 가족 톡방에 친구들에게 받는 동조압력 행사를 퍼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집단으로 묶이는 것이 싫다고 가족과 쉽게 의절 할 수 있나요?
그리고 ... 더 보기
동조압력이 행사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함께 표를 행사하는 같은 국민이니까요
밖에서 보면 전광훈 목사 추종자도 바쿠님과 같은 동일 집단 구성원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넓게 보기 싫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한표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면 이런 논의가 무슨 필요겠습니까?
뭐 심정적으로 납득 안가실 수 있으니 다른 좁은 예를 들어 말하면 가족이 있겠네요
연로한 부모님이 가족 톡방에 친구들에게 받는 동조압력 행사를 퍼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집단으로 묶이는 것이 싫다고 가족과 쉽게 의절 할 수 있나요?
그리고 라벨링 이야기로 돌아가면 중도의 동조압력을 행사 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미인데
실상은 아마도 아니겠죠? 정치이야기를 안하고 싶으니 침묵해라 라는 의미겠죠
이 상황에서 동조압력은 바쿠님이 행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 중도층의 셀프 라벨링의 논리는 안맞아도 별 상관이 없는 것이
그런 사람들일수록 대외적으로 극단으로 포지셔닝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 시 스윙보터가 될 확률이 높고 대부분 여론조사 결과와 비슷한 투표 성향이 드러납니다
(괜히 힘 뺄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여조 말씀을 드린겁니다)
나와 같은 세계관이 아니라고 괴물로 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특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는 관계는 공통분모가 어느정도 있다는 전제가 되는데
정치를 화두로 삼으면 어색한 관계가 될 수 있죠
밖에서 보면 전광훈 목사 추종자도 바쿠님과 같은 동일 집단 구성원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넓게 보기 싫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한표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면 이런 논의가 무슨 필요겠습니까?
뭐 심정적으로 납득 안가실 수 있으니 다른 좁은 예를 들어 말하면 가족이 있겠네요
연로한 부모님이 가족 톡방에 친구들에게 받는 동조압력 행사를 퍼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집단으로 묶이는 것이 싫다고 가족과 쉽게 의절 할 수 있나요?
그리고 라벨링 이야기로 돌아가면 중도의 동조압력을 행사 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미인데
실상은 아마도 아니겠죠? 정치이야기를 안하고 싶으니 침묵해라 라는 의미겠죠
이 상황에서 동조압력은 바쿠님이 행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 중도층의 셀프 라벨링의 논리는 안맞아도 별 상관이 없는 것이
그런 사람들일수록 대외적으로 극단으로 포지셔닝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 시 스윙보터가 될 확률이 높고 대부분 여론조사 결과와 비슷한 투표 성향이 드러납니다
(괜히 힘 뺄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여조 말씀을 드린겁니다)
나와 같은 세계관이 아니라고 괴물로 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특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는 관계는 공통분모가 어느정도 있다는 전제가 되는데
정치를 화두로 삼으면 어색한 관계가 될 수 있죠
쟤가 자기 말이 맞다고 주장을 막 하는데 뭔가 시끄럽고 불편하네? 이런 게 동조 압력이 아닙니다.
이사람들과 계속 한 무리에 있고 싶다면 집단의 의견과 움직임에 따라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오는 심리적 압력이 동조 압력이죠.
전광훈 말고 반대 편으로 예를 들어서 페스토님께 여쭤보죠. 주한미군철수를 외치는 NL 우리민족끼리 운동권의 외침에 ‘이사람들 말대로 안하면 왕따될것 같은 감정’을 느끼시나요? 저는 그냥 반감만 들던데요?
동조압력에 대한 정의가 저랑 전혀 다르신 것 같아서 추가적인 논의는 어려울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이사람들과 계속 한 무리에 있고 싶다면 집단의 의견과 움직임에 따라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오는 심리적 압력이 동조 압력이죠.
전광훈 말고 반대 편으로 예를 들어서 페스토님께 여쭤보죠. 주한미군철수를 외치는 NL 우리민족끼리 운동권의 외침에 ‘이사람들 말대로 안하면 왕따될것 같은 감정’을 느끼시나요? 저는 그냥 반감만 들던데요?
동조압력에 대한 정의가 저랑 전혀 다르신 것 같아서 추가적인 논의는 어려울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저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해오신 정치적 참여와 노력을 존경하고, 지금 느끼시는 울분에 대해서도 (저는 선생님에 비하면 훨씬 소극적이고 냉소적인 부류입니다만) 많이 공감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지금 침묵하는 자 모두 죄인' 같은 종류의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첫째로 그 주장에 깔려 있는 아마겟돈적인 세계관이 좀 불편하고요. 둘째로 세계의 회복탄력성은 다양성에 그 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침묵과 무관심 또는 불참여 그룹도 그 다양성을 미래로 실어날라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잡소리로 마음을 어지럽혀드렸을지 걱정되네요. 오늘 하루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지금 침묵하는 자 모두 죄인' 같은 종류의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첫째로 그 주장에 깔려 있는 아마겟돈적인 세계관이 좀 불편하고요. 둘째로 세계의 회복탄력성은 다양성에 그 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침묵과 무관심 또는 불참여 그룹도 그 다양성을 미래로 실어날라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잡소리로 마음을 어지럽혀드렸을지 걱정되네요. 오늘 하루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상계엄은 다음 시나리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선관위 장악, 뉴스공장(여론조사 꽃) 서버실 탈취 → 부정선거(?) 증거 확보 → 이를 근거로 국회의원 구금 및 권한 박탈 시도.
이런 상황에서 중도는 어디였을까요? 차분하게 부정선거파와 계엄령 비난파(단, 의견이 선넘으면 계엄사령부가 밤에 와서 문 두드림)가 나뉘어서 토론을 하면 좋았을까요? 그 중간쯤인 국회의원 석방 단, 이재명 등 핵심 관계자들 구속 계엄 유지 정도에는 차분하게 동의해야 중도 의견을 따르는 것이었을까요?
선관위 장악, 뉴스공장(여론조사 꽃) 서버실 탈취 → 부정선거(?) 증거 확보 → 이를 근거로 국회의원 구금 및 권한 박탈 시도.
이런 상황에서 중도는 어디였을까요? 차분하게 부정선거파와 계엄령 비난파(단, 의견이 선넘으면 계엄사령부가 밤에 와서 문 두드림)가 나뉘어서 토론을 하면 좋았을까요? 그 중간쯤인 국회의원 석방 단, 이재명 등 핵심 관계자들 구속 계엄 유지 정도에는 차분하게 동의해야 중도 의견을 따르는 것이었을까요?
배려와 관용은, 그 틀을 부수는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과 비판이 성립되어야 비로소 이야기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핵심 축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겠지요.
제 반감?과는 별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운동권 100명이 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상황에서 각자 의견을 말한 후 저에게 소신발언 한마디를 요구하는 상황이되면 그게 동조압력이죠.
널리 알려진 사람의 SNS에 "이 시국에~"라며 지적하는 댓글을 다는 행위 같은 것이랄까요.
의견이 같더라도 밝히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이고 대화를 나누면 관련 발언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내용을 화제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을 중립에 대한 동조압력으로 본다? 글쎄요... 흑백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로 두겠다는 것을 동조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 더 보기
널리 알려진 사람의 SNS에 "이 시국에~"라며 지적하는 댓글을 다는 행위 같은 것이랄까요.
의견이 같더라도 밝히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이고 대화를 나누면 관련 발언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내용을 화제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을 중립에 대한 동조압력으로 본다? 글쎄요... 흑백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로 두겠다는 것을 동조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 더 보기
제 반감?과는 별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운동권 100명이 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상황에서 각자 의견을 말한 후 저에게 소신발언 한마디를 요구하는 상황이되면 그게 동조압력이죠.
널리 알려진 사람의 SNS에 "이 시국에~"라며 지적하는 댓글을 다는 행위 같은 것이랄까요.
의견이 같더라도 밝히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이고 대화를 나누면 관련 발언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내용을 화제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을 중립에 대한 동조압력으로 본다? 글쎄요... 흑백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로 두겠다는 것을 동조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논의를 계속 하자는 뜻으로 댓글을 단 것은 아닙니다. 제 댓글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좋은 저녁 되십시오.
널리 알려진 사람의 SNS에 "이 시국에~"라며 지적하는 댓글을 다는 행위 같은 것이랄까요.
의견이 같더라도 밝히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이고 대화를 나누면 관련 발언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내용을 화제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을 중립에 대한 동조압력으로 본다? 글쎄요... 흑백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로 두겠다는 것을 동조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논의를 계속 하자는 뜻으로 댓글을 단 것은 아닙니다. 제 댓글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좋은 저녁 되십시오.
깊이 있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더 잘 해주신 것 같고, 많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는 최적해를 찾기 위한 노력은 염두하지 않고 다만 가운데가 있기 어렵다는 주장을 적었는데, 선생님의 논의는 현실에 더 많은 시사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도란 어떤 고정된 입장이나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케바케로 노력과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는 유연함과 지혜가 필요한 쉽지 않은 '태도'일 것 같습니다.
(다만, 무지한 엉터리지만 나름 불교 신봉자로서 석가모니의 '중도'에 대한 해석에는 이견이 있는데요, 주요 논지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니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무지한 엉터리지만 나름 불교 신봉자로서 석가모니의 '중도'에 대한 해석에는 이견이 있는데요, 주요 논지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니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대체로 정치적 성향이 연속적인 1차원 스팩트럼 또는 n 차원 hyperplane에 존재한다고 생각 하지만, 전 그 성향들을 구성하는질문들을 최소단위로 쪼개면 해당 축에서 취할 수 있는 스탠스는 동의, 비동의, 그리고 무지의 불연속적 선택지로 나눠진다고 생각해요.
어떤 질문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긴 하겠지만 결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1~4차원 정도의 정치적 스팩트럼은, 그 수 많은 질문들의 개인적 해답을 단순히 투사한 것이고 무지 또는 판단 유보가 아닌 중립이란 단순히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쉬운 정치적 스팩트럼으로 투사하는 와중에 생긴 그림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질문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긴 하겠지만 결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1~4차원 정도의 정치적 스팩트럼은, 그 수 많은 질문들의 개인적 해답을 단순히 투사한 것이고 무지 또는 판단 유보가 아닌 중립이란 단순히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쉬운 정치적 스팩트럼으로 투사하는 와중에 생긴 그림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