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1/12 16:15:43
Name   삼공파일
Subject   [조각글 3주차] 바꿀 수 없는 것
주제: 능력자 배틀물

- 배틀 종목 자유
- 능력 자유
- 최소 단편(만화로 치면 3편 이상)
- '능력', '배틀'이 키워드
- 등장인물은 특수능력이 있어야 하고, 배틀을 해야 합니다.

=================================================================

☆★☆★☆★작중 인물은 실존 인물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완전한 허구 창작임을 밝힙니다☆★☆★☆★

나는 아버지를 평범하고 싶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기 어렵다. 아버지를 생각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싶었다’는 아마 맞는 단어일 테다. 그런데 무엇을 바라는 지 그것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한편으로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런 감정을 갖고 싶다. 그런 것을 뜻하는 동사가 있다면 ‘평범하다’가 아닐까. 나는 아마, 아무래도, 아버지를 평범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존경 받는 분이셨다. 권위주의적인 사람이었지만 따뜻한 마음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그런 원리원칙주의자였다. 꽉 막힌 부분도 있었겠지만 때로는 뚫어낼 줄도 알았다.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엄격하셨지만 우리는 사랑을 느꼈다. 내가 아버지를 대하기 힘들어진 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였다. 사고였을까, 우연이었을까. 주변 사람들은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보다도 마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음을 내몬 것처럼 손가락질했기 때문이었다. 표현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는 나보다 더 슬퍼하셨고 외로워하셨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친구들이 아버지를 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조차도 인식할 수 있는 피해망상이 나를 잠식했을 때 나는 옷장으로 숨었다. 옷장으로 숨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 혼자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이 대학교에 진학할 때 나는 최대한 조용한 시골 학교를 선택했다. 대학교 친구들은 하나 같이 시위를 나갔다. 친구들이 거리에서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곳에 없는데도 친구들의 답답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 아버지를 향해서 왜 그렇게 고독하게 사셨냐고 왜 힘들어 하시면서도 한 마디 말도 자유롭게 못하셨냐고 원망하는 것 같았다.

옷장에 숨는 습관은 계속되었다.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켜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버지를 욕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미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옷장으로 들어갔다. 제발 이런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았으면 한참 울다가 내가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머릿속에서 달력을 꺼내서 날짜를 오른손 검지로 짚고 왼팔 손목시계의 다이얼을 돌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는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죽음을 되돌려야겠다. 병풍 뒤로 온 것 같다. 노래 부르는 여자를 뒤로 하고 김에게 소리쳤다.
“야, 아버지 쏘지마!”
막 총을 꺼내던 김은 당황하더니 그대로 차를 쏘았다.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는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김이 포기하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있는 찰나에 뒤에서 누가 나타났다. 총을 든 여자가 아버지를 쏘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때서야 아버지를 보았는데 이미 숨이 끊어지신 상태였다.
“누구야!”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는데 나였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갑자기 무서워서 뒤로 넘어졌다.
“야, 너가 여기서 아버지를 살려서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를 욕하잖아! 너 때문이야! 돌아가시게 그냥 두라고!”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대로 도망쳐서 옷장으로 돌아갔다.

숨을 고르고 역사책을 폈다. 김은 당황해서 중정이 아니라 육본으로 도망쳐서 사형을 당했다. 잘됐다. 김이 대통령이 되면서 아버지가 이뤄낸 경제 발전 이야기가 다 누락됐는데 이제는 많이 쓰여 있다. 그렇구나. 과거는 바꿀 수 있어도 역사는 바꿀 수가 없다. 바꿀 수 있는 건 역사교과서다. 집으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힘들어 하지 말고 내 손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다시 쓰자.



9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642 방송/연예그아탱! 2016년 한국갤럽 아이돌 선호도 조사 결과 2 Leeka 17/05/15 6807 0
    8351 과학/기술[확률론] 당신은 암에 걸리지 않았다 - 의사들도 잘 모르는 사실 12 Sophie 18/10/11 6807 10
    9475 과학/기술[번역] 인종 평등을 위한 과학적 기초 下 4 구밀복검 19/07/27 6807 9
    9569 일상/생각Routine과 Situation으로 보는 결혼생활과 이혼 36 Jace.WoM 19/08/22 6808 38
    1541 창작[조각글 3주차] 바꿀 수 없는 것 20 삼공파일 15/11/12 6809 9
    5418 육아/가정유치원/어린이집 이야기 46 기아트윈스 17/04/12 6811 4
    1784 기타오늘 커뮤니티 베스트 & 실시간 검색어 요약 정리(12/15) 3 또로 15/12/16 6812 9
    8735 게임북 오브 데몬즈(book of demons) 소개 2 포르티시모 19/01/06 6815 1
    2850 정치핑크코끼리와 나치행진 72 눈부심 16/05/21 6816 0
    3796 기타미군과 대한민국 공군의 대레이더 미사일 (Anti-Radiation Missile) 4 모모스 16/09/29 6816 0
    9228 역사모택동 사진 하나 디벼봅시다 21 기아트윈스 19/05/24 6816 43
    1108 영화[약스포?] 사도를 보고 왔습니다. 5 NightBAya 15/09/27 6817 0
    660 영화다 죽어가던 [백 투 더 퓨처]를 살린 영화...[로맨싱 스톤] 3 Neandertal 15/07/26 6821 0
    1015 일상/생각공포영화 싫어하시는 분들은 네이버 동영상을 열지 마세요.(추가) 6 바코드 15/09/16 6823 0
    801 정치미국보수가 도널드 트럼프에 열광하는 이유 18 눈부심 15/08/16 6825 0
    4526 사회대리모 문제 37 烏鳳 17/01/03 6825 11
    9190 댓글잠금 일상/생각예쁘다 라는 말, 쓸데없는 소모적 감정풀이 좀 그만. 55 Jace.WoM 19/05/13 6829 34
    2575 도서/문학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22 Moira 16/04/08 6830 4
    6075 일상/생각실리콘밸리의 좁은 상상력 73 다시갑시다 17/08/08 6834 12
    870 방송/연예장동민의 지니어스 파트너 정준용과의 인연 이야기 3 Leeka 15/08/30 6840 0
    7570 영화귀여움이 우주를 구한다 56 하얀 18/05/22 6840 11
    928 기타머릿 속에 이미지가 안 그려지는 사람 10 눈부심 15/09/06 6841 0
    6361 오프모임오늘 오후 3시 50분 강남CGV 킹스맨 14 와이 17/10/02 6841 1
    701 도서/문학사라, 쥬디, 앤 그리고 블루 - 여자와 아버지 7 뤼야 15/08/02 6843 0
    1227 음악BBC Voice 2015 파이널리스트 - 스티브 맥크로리 4 까페레인 15/10/11 6844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