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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6/04 10:41:31수정됨
Name   사슴도치
Subject   대선 결과 소회
제가 정치글은 잘 쓰지 않지만, 이번 대선은 간단하게 소회가 있어 작성했던 글을 공유해봅니다.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자는 글은 아니고, 그냥 비전문가의 방구석 소회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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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리고 대선 전부터 사실상 정해진 결과로 보이기는 했지만, 나는 이재명이 이긴다면 50프로 미만으로 이겼으면 하긴 했다. 비록  계엄/탄핵 이슈와 그 이후의 여러 이슈를 고려하면 국민의힘이나 개혁신당은 대안적으로라도 답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은 표들이 견제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표로서 작동하기 바랐기 때문.

과반의 득표를 했을때 초기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순기능은 있을 수 있지만, 폭주의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두고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를 정리해야 하지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할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강해질수록,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아무리 '개혁'을 기치로 내건 권력이더라도, 권력은 본성상 자신을 확대하고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이겼는가'보다 '어떻게 통치하는가'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 승리한 세력이 초기에 추진력을 얻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민의 전부라고 오해되거나 면죄부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 같은 정치적 양극화 상황에서, 한쪽의 과반 득표가 곧 절대적 정당성으로 착각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더 많은 국민을 대표한다는 자세로, 혹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우려나 목소리도 정책에 녹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정치의 품격이다. '이겼으니 다 할 수 있다'는 사고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정치를 다시 불신의 수렁으로 빠뜨린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것이 미래의 방향성을 갉아먹지 않도록, 과거에 대한 정리는 감정적 보복이 아니라 제도적 성찰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과거와의 단절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과 실행 가능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정치의 질은 시민의 수준에 비례한다. 우리는 투표로 역할을 다했다고 해서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감시하고 비판하며, 때로는 지지하고 응원하는 균형 잡힌 시민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권력의 폭주를 막고,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계속된다.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구조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선택지 없는 투표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에서 가장 뼈아픈 지점은, 그것이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모두가 패자가 된 게임이었다는 사실이다. 정치가 팬덤화되고, 후보가 일종의 구원자처럼 추앙받는 순간부터 이 선거는 승리자 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어느 한 편의 정책이나 자질이 평가받기보다, 진영 논리와 적개심, 그리고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이분법이 지배하는 구도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정치는 더 이상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 소비의 무대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 안에서 후보는 리더가 아니라 아이돌이 되었고, 정책은 사라진 대신 ‘충성도 테스트’만 남았다. 민주주의는 토론과 조정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의 풍경은 일방향적 확신과 절대적 지지로 덧칠된 종교에 더 가깝다.

이런 정치 구조 속에서는 누가 집권하든 상대 진영을 ‘청산’의 대상으로만 보고, 사법의 판단조차 ‘우리 편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왜곡된다.법은 불편할 때도 지켜야 하는 것이고, 정치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틀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런 태도를 보여준 정치세력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두 졌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를 말하기 전에, 그런 선택지밖에 없었던 현실을 먼저 직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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