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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8/06 22:12:11
Name   사슴도치
Subject   그게 뭔데 씹덕아

우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는 말을 참 쉽게 내뱉는다. 그런데 정말로 상식은 존재하는가?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유된 상식은 존재하는가?

‘상식’이란 결국 어떤 집단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전제 위에서만 작동하는 유령 같은 것이다. "다들 알잖아"라는 말은 실은, "나와 같은 맥락에 네가 있기를 바란다"는 일종의 기대이자 강요다. 상식 논란이 매번 뜨거운 이유는 그 ‘같은 맥락’에 있다는 착각이 너무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접속되지 않은 채 "그게 뭔데, 씹덕아" 한 마디로 봉인된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정의(定義)를 단단히 박아놓는다. 계약서 제2조, 낯선 이들이 처음 악수하는 조항이다. ‘갑’이란 누구고, ‘서비스’는 어디까지고, ‘기밀’은 뭐까지고. 단어 하나하나에 맥락의 고리를 채워 넣는다. 그래야 나중에 “그게 뭔데요?”라는 질문에 “제2조에 명시돼 있습니다”라고, 무미건조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정의 조항은 사실 맥락의 주파수를 동조하는 장치다. 소음 속에서 같은 주파수에 있는 사람끼리는 서로의 신호를 읽는다. "이 정도는 알잖아"의 레인지가 확실해지면, 혼선이 줄고 분쟁이 줄어든다. 물론, 완전히 줄어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jargon이 탄생한다. 전문용어, 은어, 밈.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맥락의 축약어들이다. 이와 같은 말은, 이미 그 안에 들어온 자들에겐 설명 없이도 통하지만, 바깥에 있는 자에겐 외계어일 뿐이다.

우리는 늘 착각한다. 내가 쓰는 말이 ‘일반적’이라고. 내가 아는 정보가 ‘보편적’이라고. 그 착각은 대화를 단절시키고, 논쟁을 감정 싸움으로 바꾸며, 상대에게 "그게 뭔데, 씹덕아"라고 말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씹덕"도 하나의 맥락이다. 그 말을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그 언어의 일부가 되어 있다.

결국 문제는 언제나 ‘다름’이 아니라 ‘동기화’다.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 뒤, 맥락을 공유하려는 시도. 그게 대화의 시작이다. 정의 조항을 써 내려가는 일, 같은 주파수를 찾기 위한 아주 인간적인 사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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