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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8/28 01:45:40수정됨
Name   골든햄스
Subject   언제부터 머리 쓰는 게 두려워졌더라
*주의 : 학벌주의에 민감한 한국 풍토상 내용이 재수 없어 보일 수 있음. 그러나 솔직히 씀. 제가 멍청이인 거 앎.
진실을 위하여!


내가 14학번인데, 그때 문과에서 명문대를 가기는 되게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수능으로 명문대를 가려면 거의 틀린 문제 없이 다 맞아야 했다. 복잡하고 기기묘묘한 기출 문제들과, 꼬아서 내는 수학 문제들을 보다 보면 머리가 아프기 일쑤였다. 비명을 지르며 "대체 어떤 천재들이 연고대를 가는 거야!" 라고 외치고는 했다. 그럼 당시 아버지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조금 실망하며) 바라보다가 돌아가고는 했는데, 하여간 그때는 내가 연고대를 갈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항상 몇 문제 차이로 컷트라인을 빗겨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강한 타입인데다, 예상 외의 갑작스러운 논술 실력 상승, 논술 우선선발 전형 합격 등의 행운이 겹쳐 드디어 명문대 중의 명문대라는 고려대(^^7)에 입학할 수 있었다. 역시 세계 최고의 대학. 고려대는 눈부신 안암에서 빛을 내며 나를 반겨주었다. 드디어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니 기분이 끝내줬다. 바로 입학 전 미리 캠퍼스 투어를 하고 영어 수업을 하는 코스를 등록했다. 열심히 살면 사는 대로 대가가 주어지는 세계에 드디어 들어온 거 같았다. 그런데 웬걸. 영어 토론을 하다가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창의적으로 "이건 죄수의 딜레마와 관련이 있어." 라고 했더니, 나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남자아이가 다른 조와 활동을 할 때 나를 두고 뒷담화를 하는 게 들렸다. "이게 무슨 죄수의 딜레마래." 그런데 내 기억으로 몇 년 후, 나는 다른 외국 학자가 그것을 죄수의 딜레마와 관련시켜놓은 것을 어떤 교재에서 확인하게 된다. 너무 열받았다. 하여간. 그런데 꼭 다 날 싫어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그때까지 공부에 끙끙거린 것 치고, 갑작스럽게 나는 '학구적인' 교수들의 눈에는 띄었고 우등생이 되었다. (간혹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은 나를 엄청 싫어하긴 했다.) 특히 많은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와 표현> 시간에 여러 내용을 발표하고 있노라면 '우리 과 지식인' 이라는 별명이 따라왔다. 지금도 동창들에게는 '깨인 사람이었다' 같은 이상한 평을 듣고 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너무도 당황스러웠지만, 대학의 다른 친구들은 나에게 별다른 지적인 도움도 자극도 주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공부를 하고 싶어" 같은 표정을 하면 이상한 안개 같은 표정이 나오고는 했다. "같은 등록금을 냈으니 더 많은 강의를 듣는 게 이득이지." 라는 내 말에 사교성 좋은 과 대표는 '아. 알겠어. 언니 이상한 사람.'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나를 존중한다는 표시를 억지로 해보였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천재들이 다닐 거만 같았는데.

특히 다들 묘하게 '차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차분했고, 교수님 말에 별 이의가 없었으며, 공부를 할 때 전혀 그 공부에 목적이나 의의를 두지 않았다. 내가 법학통론 교수님을 끙끙거리며 짝사랑하는 동안, 과에서 나의 이미지는 점점 독특해졌고 그럼에도 고려대(^^7) 특유의 학풍 덕분에 질투를 받거나 이상하게 보이기보다는 '우리 과 똑똑한 언니'라는 취급을 받게 되었다. 누구든 나랑 이야기하면 나의 지성을 느꼈고, 내가 다르다 느꼈으며, 수업 중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나의 말들을 두고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도 생각 못한 걸 대답하냐' 라고 말했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당연하잖아' '써있잖아' '그냥 그게 그거잖아'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대부분의 수업은 1회독도 하지 못했다. 나는 한 교수가 평생을 바쳐 이뤄낸 학업 업적을 한 수업에 다 읽고 이해해내라는 게 어이가 없었다. 읽다 보면 시험 시간 전까지 책을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A 이상은 꼭 나왔다. 논술형 문제가 섞이면 A+가 쉽게 나왔다. 가끔은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쓰는 느낌으로 답을 썼는데 그래도 점수가 괜찮았다. 간혹 형식논리학의 어려운 논리 문제 같은 함정이 나왔지만, 시험 현장에서 갑자기 빨라지는 내 두뇌 회전 덕에 위기를 통과하고는 했다.

당시 나의 꿈은 '조금 이 실망스러운 학교를 떠나 하버드를 가면 더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학점을 관리했는데, 어떤 친구가 '올 A+이 아니면 하버드는 꿈도 못 꾼대.' 라고 하기에 순진한 나는 바로 낙담했다. 그리고는 '설마 대학이 이 수준일까? 고려대라 그런 거 아닐까? 연세대로 옮길까?' 를 고민하거나, '서울대를 못 가서 내가 학문다운 학문을 하는 친구들을 못 만나나.' 라고 생각했다. 항상 안개에 낀 느낌이었다.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 형식적인 대화를 했고, 당시 유행하는 아이돌 이야기를 꼭 했다. 서로 옷이나 화장에 대한 칭찬을 했고, 알고 보면 다들 집안이 좋았다. 서로 어느 정도 이상은 가까워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페미니즘 열풍, 일베 논란 같은 것이 찻잔 속 태풍이라면 태풍이었지만 그마저도 우리 과에서는 잘 지나갔다. (일베를 하는 아이랑도 그냥 다들 문제 없이 지냈고, 남자아이들이 단톡에 섹드립을 쓰면 내가 혼냈고, 그렇다고 여자아이들이 이상한 페미니즘에 빠지지도 말라고 조언했다. 돌이켜보면 최고의 조언이었쥬?)

그니까, 어, 한 번도 제대로 토론다운 토론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토론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토론 동아리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과에서 인기 많고 멋진 거로 유명한 사람들이 만들고 활동하는 곳이었다. 로스쿨 교수님도 한 분 전임으로 붙어있다고 했다. 기대에 차 들어간 동아리는 엉망진창이었다. 아무도 신입을 챙겨주지 않았다. 잘생기기로 유명한 과 회장이 어느 날 카톡을 했다. 드디어 토론 동아리 관련 내용이 진행되나? 기대에 차서 열어본 카톡에는 '나도 어깨가 좁았었는데 수영을 해서 넓어졌어. 너도 운동을 해봐.' 라는 조언이 있었다. 부회장은 시험기간에 비비크림을 바르지 않고 나오면 얼굴을 가리고 '나 화장 못했어' 라고 하는 남자아이였다. 텝스 광고에 나왔다. (그리고 이 친구도 나보고 외모를 좀 꾸미라고 조언했다. 휴!)

심지어 모두들 동아리 입회 시험에서 토론동아리장을 발라버리는 나의 토론 실력을 보았음에도, 다들 무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쿨쩍댔다. 교수님은 얄팍한 책들을 썼고, MT도 따라왔지만, 다들 무언가 만들어지다 만 생명체처럼 이야기들을 잘 나누지 못했다. 누구는 게임 선수 덕질을 한다고 구석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고, 누구는 바퀴벌레 잡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했다고 했고, 누구는 목소리 발성 연습을 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들 지독한 사춘기에 억압된 것 같은 느낌들이었다. 외모나 발성, 이런 게 주제였던 거니까. 타인의 시선에 그만 압도되고 만 것일까.

답은 알 수 없었다. 대학 수업도 융합을 하라길래 (융합전공이었다) 융합을 해서, 교수님께 '이 수업이 경제학을 다루는 심리학이니 무차별곡선을 쓰는 게 어떠하냐' 라고 물었다가 무차별 곡선이 뭐냐는 대응을 받았다. 내가 질문하면 내심 귀찮은 것 같았다. 교환학생 면접 시간에는 아주 깔깔 비웃음을 당했다. 내가 생물심리를 고려한 거버넌스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시발. 그건 지금 미국에서는 문제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물론 가끔 특이한 교수님들을 만나 함께 책 얘기를 나누는 기쁨을 누렸고, 결국 '답답하니 내가 뛴다' 정신으로 고급 스터디들을 만들며 스터디생들을 대학원에 보내고는 했지만, 생물심리 지도교수님께서 "공부는 귀족들이 하는 거라네" 라며 어떻게 내가 가난한 걸 딱 알아보고 대학원에 가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도 펄펄 뛰는 머리를 끌어안고, 심리학의 성배라는 '의식'(consciousness)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은 아름다운 기억..까진 아니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꽤 노력을 했는데도 아는 게 없는 걸 보면 학문을 안 한 건 역시 잘한 일이다. 그래도, 도서관은 참 아름다웠다.

https://youtu.be/MHkGjVbH6dw?si=EWsZr56RdIVRc4OH

내 눈물 버튼인 위 영상을 보면, 고려대(^^7) 도서관이 나오니 참고 바란다.

그런데 고려대는 큰 장점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이상한 새끼라도 고려대 잠바를 입고 있고 고려대 구역 안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ㅉㅉ 학생이구나' 하고 동네 사람처럼 봐준단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이득을 얼마나 크게 봤는지. 고시 합격자 수가 괜히 많은 게 아니다. 우울해 하며 혼자 공부에 매진하거나, 코인 노래방을 다니거나, 24시간 열람실에서 공부하다 그 앞에 빨래처럼 늘어져 있어도 우리끼리는 암묵적으로 고대 문화 속에서 모든 게 ok였다. 외국인 학생들도 당당히 축제에 참여했고, 상인들은 항상 학생들을 응원한다고 말해주며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야. 여기 상권 장사는 오직 학생 장사기 때문이다!)

공부에 지쳐 엎드려있던 나를 보고, 자식을 위해 만들어놓은 건데 준다면서 메추리알 장조림을 추가로 내주던 식당도 있었다.
교수님들도 내 가난과 병마를 눈치채고 삼계탕을 계산하고 나가면서 "어. 어. 햄스야. 내가 계산했다. 어." 하고 말하고는 했다.

가난하고 정보 없고 바보인 나는 그냥 석사를 강요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럼 로스쿨 갈게요! 로스쿨도 석사잖아." 라고 선언하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한바탕 싸웠다. 그래도 현실적인 곳을 가겠다는 뜻을 나는 굽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뜬금없이 원자공학을 공부하라거나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과학을 공부하고 싶은 맘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나마 문과 공부를 하는 내가 돈 벌 곳은 거기인 것 같았다. 로스쿨을 가기 전에 일단 야설을 하루에 17페이지씩 쓰며 혹시 야설 작가로 우회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반응이 전혀 없었다. 당시 친하던 동생이 말했다. "언니는 비문학이 맞는 거 같애." 띵! 강타였다. 나는 리트를 준비했다. 2주 동안. 그리고 전국 20위권 안쪽의 성적을 받아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고려대(야호)에 비하면 서울대(우우)는 너무도 차가웠다. 처음에는 나무가 많아서 좋을 거 같았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보리차도 마시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이상한 규정이 많았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옷차림으로 정해진 자세로 앉아있었는데 그런 게 너무 내면화되어있어서, 간혹 내가 비버의 등을 긁어주거나 편안한 자세로 샌드위치를 퍽퍽 먹고 있으면 보고 비웃고는 했다. 한 번은 좀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기분 삼아 입었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고 간 적도 있었다. 관악산으로 서울대가 옮겨온 후 음기가 생겼다는 말이 있다고 한 교수가 설명했다. 정교수가 된 후 갑자기 법학에 회의가 들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교수가 할말은 아니긴 하지만, 글쎄.

환경법 시간에 몸이 찢어져라 아팠지만 맡은 발표를 하고 나니 갑자기 교수가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다른 거 같아요. 나는 인정을 바라고 공부했는데.. 여러분은 지식에 대한 사랑, 필로소피가 있어 보여." 그러더니 다음 수업 시간에는 갑자기 슬픈 얼굴로 누가 봐도 호텔 로비인 곳 같은 곳에서 수업을 열었다.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당시 코로나가 시작되어 다들 줌 수업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교수들은 고려대(야호)에 비해 너무나도 열의가 낮았다(우우). 다들 학내 정치나 다른 대외적 중요한 일을 하느라 더 바빴다. 심지어는 그 학문에 회의가 들었다는 교수는 산을 다니거나 유명 가수를 만나거나 밖에서 서울대 법 교수 이름 팔아먹으면서 놀러다니느라 또 바빴다.

내 발표를 들은 학생 하나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수업을 들은 아이들끼리 네트워킹 모임을 가자고 했다. 나는 바로 수업에서 토꼈다.

어떤 교수는 "똑똑한 여러분에게 공부를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요?" 라고 하더니 리코더를 꺼내서 불었다. 그 분이 지금 대법관 중 하나다.
...리코더 자체는 잘 불었다.

다른 교수들도 대체로 티칭이 형편 없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들.) 정확히는, 티칭을 할 '의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한양대 로스쿨에서 인기 교수였다가 서울대 로스쿨로 온 교수는, 관악의 음기의 공격을 받은 건지, "세상에 법학이란 없고 오직 판례 훈구학뿐이니까요." 라면서 흑화를 해서는 이상한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거나 판례와 전혀 다른 걸 가르치다 학생들과 다투며 문제를 일으켰다. 학생들을 싫어하고 기싸움하는 교수들이 많았다. 시험일정 같은 걸 정할 때면 학생들 예민함이 장난이 아니어서 일부 이해는 갔다. 익명 사이트에서는 서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점 하나에도 예민해하며 서로 무조건 비추천을 눌러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버는 아버지의 유품인 시계까지 학교 안에서 도둑 맞았다. 과 사무실의 직원들은 히스테리를 부려댔다. 학생을 도둑으로 의심하기도 했고, 나를 장학금을 안 주려고 괴롭히기도 했다.

대체로 미친 곳 같은 곳이었고, 나는 따라서 미쳐갔다. 정신과에서 약을 증량했다. 정신과에서 그랬다. 서울대 사람들 많이 와요. 공부하면서 머리를 뜯어서 두피가 다 찢어져있어. 그래도 학생은 마이페이스 같은데? 아니. 18. 아무튼 로스쿨 사람들이 정신과 약을 거의 먹는단 건 유명한 사실이다.

학생들은 수업보다 변호사시험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변호사시험은 순 암기에 인강, 짤막한 두문자(외우기 위해 줄여 부르는 문구들)들이 가득했고, 그렇다고 학교의 법학을 들으면 웬 갑자기 미국 증권위원회로 가야 하거나 벨기에 논문을 읽으라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보고 법학을 제대로 안 하는 게 실망스럽다고 하는 교수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변호사시험은 꼭 붙으라고 했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로를 싫어할까?' 해가 쨍쨍한 어느 날, 17동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내가 떠오른다.

당시 가난, 섬유근육통, 아버지의 유기 등으로 고통을 받던 나는 그저 남자친구와 하루하루를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법대 꼴찌였다.
남자친구는 아직도 자기가 왜 꼴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유일히 발견한 영혼이었다. 교수들의 책을 깊이 있게 읽고 답안에도 내용을 다 썼다고 했다. 그래도 늘 점수가 낮았다. 나중에 국가가 론스타에게 2000억 손해배상 하는 걸 막는 논리를 만든 건 로펌에서 오직 그뿐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냥 법이 아예 안 됐다. 읽으면서 너무 유치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이게 진심이야?' 싶게 진영논리로 느껴지거나, 헌법재판소의 일부 결정문들은 '초등학생이 쓴 느낌'까지 들었다. (솔직히 아무 논리 없잖아요. 죄송합니다.) 그러다 학회 차원에서 모 대법관을 방문하러 가보니 그 대법관님께 아기 같은 품격이 느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제도권의 속살 같은 것. 강보에 싸인 아기. 고생 없이 살아왔고, 유명한 스승을 계승한 것이 그저 자랑스럽고, 인정 욕구로 반짝거리며 조직 내부 정치력은 살아있는.

하지만 모두가 아무 의문이 없었다. 모두 정말 놀랍도록 해맑은 척을 잘했다. 교수님들에게 이벤트를 해드리거나, 자기들끼리 모여 여행을 간 후 즐거운 척했다. 다들 인스타를 했고 운동도 많이 했다. 여자아이들은 평소에도 고급스러운 옷을 자주 입었다. 시험기간에는 부모님들이 차로 데리러 오는 일이 많았다. 다들 시험에 대해서는 엄청난 고수였다. 엄청나게 말도 안 되게 많은 양을 암기시키는 교양 과목 같은 것도 암기 카드를 만들어 다들 순식간에 외웠다. 통조림도 이런 통조림이 없었는데, 아무도 힘들어하지도 않았고 '쉬웠다'고 말했다. 나는 그사이 여러 취직도 시도해봤지만 섬유근육통으로 퇴사하기 일쑤였다. 다른 아이들에게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걸어보기도 했고, 법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는데, 아무도 답하진 않았다. 뒤에서 어디로 초대를 받아 '우리끼리 판사들 사모임 같은 걸 만들어 이어가자' 라는 제안은 받았는데 거기서 '나는 이런 거 안 하려고 여기 왔는데' 라고 거절하고 나와버렸다.... (ㅜㅜ 할걸) 근데 또 어느 교수는 날 불러서는 하버드 같은 데서는 잘할 사람이라고 했다.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 대화를 해보고 이런데 머리가 좋은 걸 모르겠냐고 했다. 그런 교수는 또 있었는데 자기 연구실로 오겠냐고 했다. 근데 거기 연구실에서 벌써 갑질하며 싸게 부려먹으려 하고 허리도 아파서 그냥 나왔다.

그렇게 여차저차 로스쿨에서 겨우 졸업시험만 통과하고, 여전히 의문만 가득한 채, 그리고 무엇보다 로스쿨 내내 느낀 신분 차이의 느낌과 micro agression으로 온몸과 마음이 짓이겨진 채 세상으로 나왔다. 남자친구는 나의 심적 안정을 위해 고려대 근처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간 고려대는 역시 세계 최고 대학교였다. 그런데 고려대 자리에 억지로 공부를 하려고 자리에 앉으니 책상이 덜덜 움직이고 옆의 학생이 나갔다. 아. 나도 모르게 내 허벅지가 떨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 내가 공부를 두려워하게 됐던 것이다.

특히 암기가 너무 무서워서 암기가 되는지 안 되는지 강박증이 생겨 티비를 보다가도 내가 자막을 보고 있는지 혼란이 왔다. 그리고 각 계급마다 다른 도덕의식, 생활양식에 대해서 너무 충격을 받아 일종의 moral injury를 겪었다. MBA를 온 사장님들에게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던 판사 출신 교수님의 모습도 충격이었다. 계속해서 서로의 로펌 서열을 확인하거나, 시험 관련 견제를 넣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내 고민에 대해서 내 은사님들은 입을 모아 "원래 법은 정의랑 거리가 먼 거야." "원래 법은 종이 위에 글자일 뿐이야." 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하긴 내가 가정폭력에 시달릴 때 법이 뭘 해줬는가. 내가 그 가해자의 의료보험 연대채무를 질 때는. 그래서 희귀병 치료를 못 받을 때는? 의사들이 내 가난한 낯빛과 불행을 보고 진통제도 잘 안 주고 (계급 차별에 따라 의사들이 진통제를 달리 주는 경향에 대해서는 김승섭 등 연구 참고) 그래서 따지려고 중산층 티가 나는 남자친구를 늘 데리고 다녀야 했을 때는?

아. 그나마 나는 과외로 생계를 벌었지.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는 사람들과의 오픈 카톡은 또 어땠는가. 성매매로 집을 나왔다는 사람이 다수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학벌의 좋은 집안 아이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진보 신문지 사주 자녀라고 해도 똑같았다. 아무도 아픈 사람에 대한 연민이 없었다. 아무도.

그래도 서울대를 벗어나니 좋은 점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아무리 독하다, 독하다 해도 끝판왕은 서울대 로스쿨 15동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만큼 독하고 눈이 빠르게 깜박이며 주위의 눈치와 형세를 계속 파악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착하게 보였다.

아. 하지만 나의 인권 변호사의 꿈은? 일 년은 쉬었고, 일 년은 도전했지만 도저히 책이 안 읽혀 그냥 지나갔다. 남자친구가 개업을 하겠다고 했다. 급히 돈이 나갈 데가 생겼다. 내가 급하게 학원 강사 자리를 잡았다. 그간 쌓여온 온갖 대인공포증을 안은 채 억지로 강의실에서 칠판 앞에 서자 눈 앞이 새까맸고 신기하게도 그간 내가 느껴왔던 많은 잘못된 생각들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말할 때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해야 덜 비웃음 사.' '이렇게 하면 조롱해.' '이렇게 하면 따 당해.' 그렇게, 말 한마디도 나는 수백 가지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아이들 앞에서 처음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예전의 그 거짓 신념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너 그냥 가난해서 무시당한 거야.' 그게 맞았다. 이제 나는 남자친구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남자친구와 대화를 나눠봐서 사회적인 분위기도 좀 더 풍기고, 학벌도 갖고 있었다. 이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게 약간 배에 힘이 빠지면서 목소리에 진심어린 힘을 못 실으면 비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회참여회로에 대해 공부했다. 신경이 어느 쪽이 활성화되냐에 따라 목소리가 큰 차이가 나고, 그에 따라 주위에서 사회적으로 차별-수용이 오간다는 이론인데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폴리베이걸 이론을 참고하시라.) 클로드와 미친듯이 대화를 하며 날 분석해나갔다. 약을 먹고 버텼다. 몰래 울고 나와 수업하고, 수업하는 내내 덜덜 떨었다.

그나마 내가 사랑했던 인문학을 가르치니 버틸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나중에는 스승의 날 선물도 받고 명강의를 했다.
원장님의 진상에 다른 학원으로 옮겼지만, 거기서도 괜찮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날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난 긴 고통이 나에게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가엾은 아이들. 한국 사회의 약자인 그들을 보면, 나와는 달리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특히 아이들 부모에게서 공통적으로 오는 피드백은 '아이들이 줄글을 읽는 걸 덜 두려워하게 됐어요. 책 읽는 걸 즐거워하게 됐어요.'였다.
신기했다. 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는 사람에게 시장은 가혹했다. '이미 보상 충분하지?' 라는 식으로 목을 죄여왔다.
에고에고. 나도 모르게 강사로 적응하려던 순간, 남자친구가 (이제 남편몬이 되어가는 중) 변호사시험을 다시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고민하다가 그러겠다고 했다.

성북구에 사니까, 근처에 옛 창녀촌이 있다.
오늘 은수저 집안의 평탄하게 산 대학 동창을 보고 오는 길에 창녀촌도 보고 왔다.
법은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나는 법이 두렵다. 정확히는,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계산하던 서울대 로스쿨 아이들의 눈동자가 두렵다. 그들의 검은 자위. 흰 자위. 그들이 처벌하게 되고 심판하게 될 사람들. '법 밖'에 사는 사람들이 '법 안'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고 내가 얘기해도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표정들. 하품을 하고, 겨드랑이를 북북 긁으며 내 이야기를 무시하려 애쓴다. 하긴. 이미 고전 소설과 성경 등에 다 나와있는 얘기 아닌가.

법의 바깥, 사각지대를 돌아본 경험을 통해 단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다. 한 창녀가 모든 대법관보다 위대하다. 왜냐하면 이 사회의 법은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고, 늘 그들을 기만하고, 그들을 속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법의 신관들에게 고개를 조아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한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가난한 사람이 창녀나 사기꾼이 되어 길거리를 헤매게 될 때까지, 혹은 마약 흡입까지 갈 때까지, 일자리들은 과연 노동법을 지켰을 것이며 가정폭력에 경찰은 분리조치를 했을 것이며 언론은 이들을 찾아냈을까?

부촌에서 강사를 하고 나니 법이 더 읽혔다. 법은 '글'보다는 '말'에 가까웠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의 어떤 생활 감각에 가까웠다.
왜 뭐가 더 나쁘고 덜 나쁜지는, 그들이랑 살아보고 부대껴봐야 아는 것이었다.
각 시대마다 법이 독특하게 다른 이유가 납득되는 지점이다.

법이 우리를 보지 않는다고, 살피지 않는다고 절망하는 사람들의 넋두리를 보다가, (근데 또 그걸 돕기가 너무너무 힘들고 인간 에너지로 거의 불가능해진 게 요즘 시대의 구조다! 와!! 구성요건에 딱 맞는 불행은 흔치 않거든!!!) 법은 무조건 옳고 딥페이크 처벌도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 판사 집안 아들로 법조인이 된 사람도 보다가, 다양한 사람들의 희한한 형태로 발현되는 정신적 문제를 느끼고 도와주다가 그만큼 보답을 못 받고 나만 아픈 것에 회의감이 들다가 ...

미친놈처럼 서울대에서 수업을 듣다 문득 이 모든 것에 역겨움이 느껴져 세이브더칠드런에 30만 원을 기부하던 기억이 난다.
죄를 씻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멜라스의 아이 이야기를 아는가.
어슐러 르 귄의 소설에서, 마을이 잘 살기 위해 어떤 아이가 이유 없이 고통을 받아야 한단 걸 알게 되고 대부분이 방관하는 가운데 몇몇이 용기 있게 마을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근데 나는 그 소설을 읽을 때부터 의문이 그 점이었다. "그럼 그 밑에 애는 남아있어?"

치사하고 더러워도 해보자, 하고 공부를 펴니 익숙한 공포감이 밀려온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방향' '내가 공부하는 에너지' 자체를 주위에서 싫어하거나 주목하거나 이상하게 보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조용히 남들이 잘 안 보는 교수저를 보고 있으면 빤히 몇 번이고 보며 가던 아이들. 왜 점수 안 알려주냐고 채근하던, 등수에 미쳐가던 아는 동생. 민희진이 유퀴즈에 나왔는데 쓰고 나온 모자가 재밌길래 비슷한 걸 따라 썼더니 걸어가면서 세 번이나 다시 돌아가며 날 보고 가던 인사도 안 하는 학회 동기 씹X끼.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뭐만 하면 툭툭 부딪히던 우리 친구들이 앞으로 한국을 잘 ... 음 ...

나. 이제 머리 써도 되지? 문득 밤에 씩 웃는다.
겁 많고, 남의 마음을 잘 느껴서 움츠러드는 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지 옛날에 학창시절부터 정신적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너 천재라며?' 라면서 비웃고 가면서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컨셉질로 몰고 가던 (알고 보니 공부에 심각한 열등감이 있었다) 친구도 있었고, 그냥 다들 대놓고 날 물리적으로 괴롭히기보다는 슬슬 분위기로 압박하는 게 이득인 걸 안다는 듯이 잘 괴롭혔었다. 근데, 이제 공간 분리됐잖음. 너희와 나 사이에 다시 현대사회의 법이 생겼잖음. 왜냐면, 돈 있는 비버가 이제 날 지키니까. 너희도 이름값이 이제 중요해지니까.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창은 언니는 항상 깨어있는 사람, 이루고 싶은 건 다 이루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똑똑한 사람 대접을 받으니 눈물이 다 났다. 그리고 그 아이가 좋은 집안->명문대->전문직->조건 맞는 결혼 루트를 탁탁 공장 트레일러처럼 타고 있는 걸 보면서도 눈물이 나왔다. 대체 이 나라에 삶이 있긴 한가. 아무튼.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그랬다. 교육은 항상 그 다음 세대를 짓누르려하고 자기를 모방하게만 하려하고 순종시키려고만 한다. 그런데 인류의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어디선가 뛰어난 사람들이 계속 나타난다는 점이라고. 내가 그 뛰어난 사람인지 아닌지, 도전은 해보게 해주시라.

난 잘 살 거다. 변호사를 하든, 강사를 하든.

넋두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세계 최고의 대학이 고려대(^^7)라는 건 물론 제 애교심을 바탕으로 한 농담입니다. 한 학교를 구성하는 건 단지 교수뿐 아니라 교직원, 주위 상권 등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특히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의 도전 정신이나 학구심은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명문대 문과들은 대체로 실패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고려대가 고향 같은 푸근한 분위기를 주는 점만큼은 다행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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