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15/11/18 18:34:42 |
Name | 얼그레이 |
Subject | [조각글 4주차] 득임이 |
주제 : '자신'의 첫경험에 대해 써주세요. 1. 짧고 찐득하게 나올수록 좋습니다. 2. 고민이 많이 투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파고든 글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분량 : 최대 3~4000자 이내에서 마무리 할 것. 주제선정 이유 글을 쓴다는건 지속적으로 타자화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저 개인적으로는) 한번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첫 경험(그게 엄청 진하게 남아있을수도 혹은 별거 아닐수도있지만)을 가지고 에스프레소 내리듯이 찐득하고 진하게 진하게 짧은 글에 표현하는게 글을 쓰는 자신과 마주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정했습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ex) 맞춤법 틀린 것 있는지 신경써주세요, 묘사가 약합니다, 서사의 흐름은 자연스럽나요?, 문체가 너무 늘어지는 편인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글 구성에 대해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맘에 안 드는 것은 전부 다 말씀해주세요, 등등 자신이 글을 쓰면서 유의깊게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 등등을 얘기해주시면 덧글을 달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 창작게시판 신설 축하해요! 본문 득임이란 아이가 있었다. ‘있다’가 아닌 ‘있었다’라고 쓰는 것은 그 애가 죽었기 때문이다. 득임인 안재환과 최진실이 자살했던 그해에 성적비관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 수학 주관식 답을 쓰는 것을 깜빡해 성적이 떨어졌다고 한다. 득임인 그 전날에 밤을 새우는 바람에 너무 피곤했다고 한다. 미처 못 썼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또래의 죽음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또 자살이기는 더더욱.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득임이도 그랬다. 득임인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고, 나보다 한 층 위에서 공부했다. 나는 문과, 득임이는 이과. 우리는 자주 그렇게 분류되곤 했다. 위층과 아래층, 문과와 이과, 산 자와 죽은 자. 득임이네 가족은 가족끼리 사이도 좋고 화목한 가정이라고 했다. 득임이의 언니는 공부를 잘했었고, 좋은 대학에 갔다고 했다. 언니도 같은 고등학교였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득임이를 잘 알고 무척 예뻐하셨다고 했다. 부모님께선 득임이에게 그와 같은 기대를 하셨다고 했다. 득임인 그 기대에 잘 부응했었다. 득임이도 공부를 아주 잘했고, 성실했고, 착했다고 한다. 그래서 득임이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의 탓을 해야 가혹하지 않을지를. 그런데 8년이나 지난 지금에서도 내가 득임이를 기억하는 것은 사실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득임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득임인 내 친구도 아니었고, 같은 반 친구의 친구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학교에 다니는 어떤 애였다. 그 이름조차 그때 처음 들어봤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껏 그 애를 자주 떠올리곤 한다. 꽤, 많이. ‘첫 경험’이라는 주제를 받자마자 내가 떠올린 건 뜻밖에 득임이었다. 매주 글을 쓴다는 것은 힘들지만, 이번에는 유독 힘들었다. 컴퓨터 앞에 앉기 싫어서 괜히 다른 곳을 서성였다. 몇 번인가는 글을 엎고 새로 쓰기도 했다. 이번에는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도 잘 못 이루었다. 괜히 책을 뒤척이다가 결국 고등학교 시절에 쓰던 시노트를 펼쳤다. 쓰레기 더미들이었지만, 그중 제일은 득임이를 위해 썼던 시였다. 태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오그라들어서가 아니라 내 기만에 새삼 질겁했기 때문이었다. 득임이가 자살한 지 얼마 안 돼 나는 아빠와 크게 싸웠다. 아빠 나는 글을 쓸 거야. 취미로 해. 응, 나더러 그냥 죽으라고 그래. 결국 이제 와 글은 내게 취미가 되었지만, 글이 그렇게 내게 절박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유가 득임이 일 거라고 나는 종종 회상하곤 했다. 술을 마시다가 문득, 길을 걷다가 문득. 나는 종종 득임이를 얘기하곤 했었다. 사실 입에 담은 지는 2년 정도밖에 되진 않았지만, 어쨌건 내 기만은 계속이었으니까. 내가 득임이를 위해 썼다는 그 시는 정말 형편이 없었다. ‘문장’을 쓰지도 못했고, 시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해하고 있느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글을 모르겠다.) 책 좋아해요, 글 쓰는 거 좋아해요, 작가가 될 거라고 말하고 다니던 나인데, 나는 글을 못 썼다. 존나 못 씀. 내가 써놓고도 진짜 못 썼다는 걸 느꼈다. 충격적이었다. 아, 나는 글을 못 쓰는구나. 그런데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온 동네에 나는 글을 쓸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백일장도 보러 다녔다. 입시를 위해서. 기가 찰 노릇이다. 상도 두 번이나 받았다. 연세대 윤동주 기념 백일장과 겨레얼 살리기 대회. 둘 다 시로 상을 받았다. 윤동주가 땅속에서 솟아나 야, 너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할 일이다. 윤동주를 기념하겠다는 사람들이 잘도 그런 시를 뽑았다. 이런 수준 낮은 시에도 상을 주는구나. 줄 사람이 없었나 봐. 한국 문단의 미래가 어둡다 어두워. 그런데도 나는, 그깟 입시에 참도 도움이 될 거라고 기뻐했더랬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입이 썼다. 그래, 그래도 양심도 있었고, 주제도 알았다. 내 깜냥이 안 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당시 내겐 대학 당락이 그렇게 중요했으므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기억한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글이 가장 적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글의 테마는 늘 기억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득임이의 자살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글을 쓰려고 했다. 내 마음대로 쓰이진 않았지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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