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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11/11 17:08:50수정됨 |
Name | 하마소 |
Subject | 과자를 주세요 |
"과자! 과자! 과자!" 오늘도 모처럼 시작되었다. 과자를 향한 솜이의 집념어린 열망이 크레센도로 울려퍼지는 저녁. 그런데 이를 어쩌나. 저녁식사가 차려진 지금은 과자가 끼어들 틈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얼른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하고 책을 보며 부드러운 우유를 마시자. 짜여진 일정은 어른의 사정 같지만 아이의 몫이기도 하다. 일과를 지키는 건 아이를 위한 부모의 덕목 중 하나일테니. 그러니, 슬슬 과자타령은 그만하고 밥을 먹으러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모처럼, 아니 이정도 즈음에 오르는 건 처음인 듯 싶게 거부가 완강하다. 목청이 더욱 커지는 게 아마도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으니 생각해보자. 어찌 해야할 지. 여러 사정으로 솜이는 남들보다 조금 빠른 6개월이 조금 지날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가게 된 이유로, 사모님과 나는 솜이의 안부에 이런저런 걱정을 얹곤 했다. 다른 것 보다도 바깥음식에 대한 친밀도가 식습관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지금도 완전히 내던지진 않은 문제로 한 구석에 자리해있긴 하니까. 아마 주말 중 한두번만 겨우 집밥을 해먹는, 주방활용도가 몹시 낮은 우리의 일과에도 불구하고 솜이의 밥과 반찬은 어떻게든 직접 만든 녀석들을 사수하겠다는 지리한 노력이 냉동고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이 문제와 두텁게 이어져 있을게다. 다행히 일시적인 부침 속에서도 솜이는 제법 가리는 것 없이 밥 잘먹는 아이로 자라고 있고, 그래서 한 두끼의 식사량이 출렁이는 건 괘념치 않는 편이다. 손에 가득 들고 오물오물 씹어 삼키던 아기곰 젤리와의 행복한 모습이 어린이집 사진에 담겨지긴 했지만, 할로윈의 특별함이 허락한 기적 정도로 여겨도 무방하겠지. 밖으로 나가 아이를 동반한 다른 이들과 조우할 때마다 간식을 손에 드는 일이 꽤 있다. 일상보다는 경험의 순간들이기에 이는 별로 단속의 대상으로 두지 않으려 하는 주의이며, 우리 또한 밖에서의 활동으로 아이에 대한 신경을 분산할 수밖에 없어지니 간식을 쥐어주는 건 울타리 너머에 대한 관심을 덜 갖길 종용하는 좋은 단서가 된다. 그 대신, 외지가 일탈을 향해 제법 열려있는 만큼 집에서의 식습관은 꽤 정돈된 편이다. 치즈나 요거트, 야생 블루베리 정도가 집에서 나눌 수 있는 그럴싸한 간식이려나. 아무튼 오늘은 밖에서 제법 많은 크래커를 먹었지만, 그래도 뒤이어 우리가 가져간 점심도시락도 맛있게 먹었기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저녁이 지나가는 듯 싶다. 그런데 갑자기 사모님과 책을 읽던 솜이가 토해낸 염원이 거듭하여 울려퍼지는 게 심상치 않다. 과자를 향한 울분 섞인 고함이 울려퍼지고 이내 거실 매트 위를 구르기 시작하는 솜이. 일전의 경험들은 1-2분의 제지만으로 정리되던 상황이기에 별다른 참고가 되지 않아, 우선 5분 정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문득 오늘 만난 어느 분과 심하게 떼쓰는 아이를 다스린 일화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등장하는 건 복선도 아닌 예언일까 하는 놀라움이 들지만, 이에 경탄할 새는 없다. 잔뜩 뒹굴며 아우성치는 솜이를 어찌해야 할까. 지금은 밥을 먹어야 할 때라는 걸 주지시키며 요청을 제지하던 5분의 시간이 지나도 변화는 없고, 거실의 불을 끄고 스스로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다시 5분을 기다려 본다. 소용이 없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울음과 과자를 향한 열망에 가득차 점점 더 또렷해지는 발음의 외침을 겪으며 우리는 이 작은 생명이 지닌 거대한 에너지를 경외하면서도, 그냥 이대로 둘 수는 없기에 잔뜩 헝크러진 머리의 아이를 번쩍 들어 의자에 앉힌다. 지금은 식사시간이고, 밥을 먹자는 말과 함께.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당연한 거부반응이 돌아온다. "과자!" 라는 단호한 반복과 함께. 그리고 이내 쳐대는 발버둥은 문자 그대로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를 뒤집어 엎을 뻔 했다. 그러면서도 과자를 위해 자리를 사수하겠다는 의지인지 의자를 떠나지 않는 솜이를 꺼내기 위해 의자 채로 들어올려 침대로 향한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그 의자는 아이를 앉힌 방향으로만 꺼낼 수 있기에, 자세를 완강히 유지하려는 아이는 의자 채로 침대에 눕혀 내보내는 수 밖에 없으니. 촌극을 벌이며 솜이를 의자에서 내려놓은 후, 꼭 안았다. 사실 하찮은 욕심의 발로였겠지만, 우리가 너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게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에. 그리고 말을 건넸다. 과자는 없고, 지금은 식사를 위한 시간이 주지 않을 것이며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며, 거듭되는 과자라는 단어엔 이따금의 "아니야"로 응답했다. 실랑이부터 20분 째, 드디어 솜이의 입에서 과자 이외의 단어가 나왔다. "아니야!" 라고. 하찮은 변화에 안도하며 안고 있던 손으로 아이를 토닥인다. 이제는 여전히 울먹이지만 과자와 아니야를 번갈아 말하는 솜이를 향해 밥을 먹자, 배고프지 않니 하는 말을 꺼내며. 서서히 잠잠해지려는데 갑자기 다시 큰 소리로 울음을 토해낸다. 이렇게까지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원에 억울한 마음이었을까. 다시 소동의 첫 자리였던 거실로 데려가 그 자리에 있던 애착인형을 갖다주니 녀석을 쓰다듬는 동안 서서히 힘이 풀리며 매트에 몸을 눕힌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잔뜩 지칠만큼 헝크러진 머리로. 그런데 안될 말 같긴 하지만, 그 얼굴이 너무 사랑스럽다. 모든 정념을 소진하여 해소된 마냥 세상의 모든 평화를 담은 그 표정으로 잠든 모습은 아까의 소동을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나보다. 그래. 잠깐이지만 곤히 잠들고, 푹 쉬면서 마음의 생채기도 보듬어지기를. 아기들의 회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는 걸 알고 있기에, 염치없지만 이번에도 이를 기대해본다. 다만 너무 오래 잠들면 배고픈 한밤을 버틸 수 없을테니 조금 있다 깨워야지, 하며. 숙면으로 깊게 빠지기 전 깨운 솜이를 향해 우유를 먹을지 물어보니 너무 밝은 표정으로 "네!" 하고 대답한다. 부모의 당황과 미진한 대처 속에서도 아이들은 금방 자라나보다. 반가운 마음으로 약간의 우유를 주고, 그러고나니 드디어 숟가락을 드는 솜이. 예정보다 1시간은 넘게 늦었지만 어쨌든 하루가 제법, 소란스러우면서도 아무 일 없이 마무리된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의 습관같은 건데, 솜이를 재울 때마다 베개 머리맡 대화를 시도한다. 21개월에 이른 이제는 제법 많은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게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에 응답하는 단어를 듣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 솜이를 재우는 시간은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그날 있었던, 내지는 있었을 법한 일들을 솜이에게 이야기하고 어땠는지에 대한 반응을 살피고, 더 즐거울 내일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대화들. 그리고 오늘은 할 말이 정해져 있다. 별 게 아니라도 원하는 걸 언제나 얻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그게 진짜로 필요한 순간에 요청한다면 우리가 이에 응답하리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솜이는 오늘, 처음으로 '진짜'라는 단어를 배웠다. 가만히, 신기한 듯 거듭 되뇌이는 "진짜". 그래. 솜이에게 진짜 필요하고 진짜 얻고 싶은 게 뭔지 찾기 위해 많은 혼란과 괴로움의 시간이 올 수 있겠지. 그래도 마냥 괴롭지 않을 수 있게, 외로이 겪는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겪을 수도 있는, 필요한 시간임을 상기할 수 있기 위해 우리가 함께 할 거란다. 무섭지 않게 아까처럼 꼭 안아줄테니까, 필요한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진짜로. 그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잠을 청했다. 예상대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잠든 솜이를 확인하고 침실 밖으로 나왔다. 약간의 걱정이 가시지 않은 채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육아가 어려운 건, 특히나 요즘처럼 휘발적이고 즉물적인 매체와 정보 - 정확히는 정답 - 전달에 익숙한 입장에서 정답은 불명확하고 오답지만이 사방에 깔린 듯한, 행위에 대한 확신을 얻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에 기인할 듯 싶다. 아까의 상황과 대처도 솔직히 우리가 잘했다는 확신은 별로 들지 않는다. 더 단호했어야 할 지, 요구에 대한 우회책을 재빨리 확보했어야 할 지, 내지는 얼마간의 시간을 기울였어야 했을 지 따위의 문항들까지도. 전문가 분들이나 주변의 유경험자 분들의 입장에서 우리를 관찰했다면 필경 지탄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지 않았을까. 다만 어떤 길로 향하든 아이와의 앞날에 필요한 게 믿음에 기반한 단단한 결속임을 긍정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여러 번 있을 오늘 같은 일이 그리 걱정의 대상만은 아닐테니까. 그래서 굳이 틀렸다 자책할 것 없이 이 시간을 짊어지며 지켜보면 될 일이다. 성장이 통증과 연결되는 건, 하나의 세계는 무를 지언정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어쨌든 이를 파손하며 넓어지는 거니까. 그리고 그 벽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테고. 그러니 아픈 건 함께 극복해보도록 하기로 다짐한다. 진짜를 발견해가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니. 우리 부디, 오늘 일을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당분간 편의점은 가지 않기로 하자 솜이야. 미안하진 않단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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