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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19 11:55:02
Name   nickyo
Subject   노동자 잔혹사
2003년, 한진중공업 노조 김주익 지회장이 홀로 농성하던 크레인 위에서 129일 만에 목을 맸고, 2주 뒤 곽재규가 도크에서 투신했다. 두 분의 희생으로 그동안 한진중공업 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사람들이 모두 복직되었다. 해고된 지 20년이 된 박영제,이정식도 2006년 1월 1일 복직되었다. 그러나 김진숙은 제외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반대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창수 열사는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배관공으로 입사하여, 1987년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으로 1990년 7월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93% 찬성이라는 신화적인 지지를 얻고 당선됨으로써 그동안의 어용노조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듬해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산하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대우조선노조 파업과 관련, 3자개입 혐의로 구속되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구치소안에서 의문의 부상을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틀 만에 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1991년 5월 6일). 그때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안기부의 전노협 탈퇴 압력에 저항하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나 노태우 정권은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 벽을 부수고 열사의 주검을 탈취, 부검 후 '자살'이라고 발표하여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장례식은 최초의 전국노동자장으로 치러졌으며, 박창수 열사의 죽음은 그해 노동운동의 노화선이 되었다.

2002년, 한진중공업에서는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65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파업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김주익 지회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20명의 임금, 주택, 노동조합비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를 함으로써 생활에 고통을 주는 동시에, 이들을 사법 당국에 고소, 고발하였다. 검찰과 경찰은 10월 1일 김주익 지회장을 포함한 여섯 명의 금속노조, 지회 간부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높이 35미터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회사 측에 대화를 촉구하며 129일을 버텼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10월 17일 회사와 싸움을 계속할 것을 유서로 남긴 뒤, 재벌의 노동자 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뒤이어 10월 30일 15시 50분,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곽재규 열사가 85호 크레인 근처의 4도크에서 투신하였다.

IMF 시기에 김대중 정부가 한국중공업을 두산그룹에 헐값에 매각하면서 이름이 바뀐 두산중공업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2002년 노조 간부 여든아홉 명을 징계해고하고, 65억원 손해배상 청구, 노조원 재산 가압류 신청 등을 단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스물두 명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22년 동안 두산중공업에서 일해 왔던 배달호 열사는 두산의 부당 해고와 징계에 맞서 싸우다가 2002년 7월 23일 구속, 9월 17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나 모든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당했다. 노무관리 대상자로 회사의 감시를 받던 중, 생계를 담보로 회사에서 노조 활동 중단 각서를 요구하자, 2003년 1월 9일 가족을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회사 안 '노동자 광장'에서 분신했다.

조수원 열사는 대우정밀에 입사, 병역 특례자로 편입되어 4년 6개월을 복무하던 중 노조 편집부장을 맡았다가 1991년 6월, 복무 만료 6개월을 남기고 해고되어, 병역 특례자의 신분을 박탈당했다.
1993년 마포 민주당사에서 38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고, 대우그룹으로부터 1994년 5월 27일 복직 합의를 받아 냈다. 그러나 정부는 병역 문제가 복직 합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병역 특례 해고자들에게 입대할 것을 요구했다.
'정든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며 간절한 소망을 말하던 조수원은 1995년 12월 15일 새벽 부당 징집을 거부하며 민주당 서울시 지부에서 목매어 세상을 등졌다.

화물운송 노동자는 일명 지입제라는 '차량위탁관리' 형식의 불평등 계약에 따라, 책임은 사업자처럼 무한으로 지고, 권리는 노동자처럼 침해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2005년, 고유가와 어려워진 경기로 김동윤 열사도 이미 1,200만 원의 부가세 체납자가 되었다. 그해 추석을 앞두고 경유가 인상분에 대한 유류 보조금 환급이 있었는데, 환급 과정에서 세금과 과태료 등 미납자의 보조금을 압류키로 하였다. 김동윤 열사도 6개월 만에 환급받은 유류 보조금 420만 원 전액을 세무서에 압류당했다. 장시간의 노동과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극심한 압박 속에서, 2005년 9월 10일 오전 10시경 부산 신선대 부두 정문 앞에서 유가 보조금 압류 현실에 분개하며 분신, 죽음으로 화물 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권미경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세 살 때부터 홀어머니와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오빠와 어린 동생 둘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글재주가 유난했던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똑똑하면 안 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혹시 아십니까?
미싱만 잘 밟으면 되는 공순이가 그림 잘 그리는 저주를 받아 초등학교 6년 내내 게시판에 걸렸던 그림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혹시 상상해 보셨습니까? 미경이의 글재주는 작업 시간에 빵 먹었다고 조장한테 터지고 온 날, 구비구비 서러운 일기를 써 내려가는 데 밖엔 써먹을 데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이 유서 같았던 일기장을 몇 권이나 남겨 놓고 공장 옥상에서 고단하기만 했던 스물두 살의 몸뚱이를 끝내 날렸던 미경이의 유서는 그러나 막상 짧기만 했습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라고 왼쪽 팔뚝에 볼펜으로 비명처럼 새겨 넣고 갔습니다.
미경이를 신용길 선생님의 바로 앞자리에 묻으면서 신 선생님께 부탁했습니다.
"작가가 되는 꿈을 꾸었으나 살아서는 도저히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던 미경이가 선생님 곁으로 갔습니다. 수만 벌의 옷을 만들었지만 단 한 벌의 주인도 될 수 없었던 미경이의 소원은 제비꽃 한복을 입어 보는 거였습니다. 여기저기 터지고 부러진 스물두 살 몸뚱이 여며서 그 옷을 수의로 입혀 보냈습니다. 비록 눈으로 보실 수는 없더라도 제비꽃 향기가 나는 아이가 있거들랑 시도 읊어 주시고 문학도 가르쳐 주시구려."

...........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_ 권미경의 왼쪽 팔뚝에 쓰인 유서

이외에도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 포함 28명 이상이 돌아가셨고..
삼성서비스센터 지회 2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했던 21세기..
고작 제가 아는 몇 개의 일만도 이럴진데..
서울시 버스 간접고용 청소미화 노동자..
삼성반도체,유성기업, 재능교육, 콜트콜텍, 현대차 비정규직, 이랜드, 홈플러스, 대형마트 노동자, 택배노동자..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싸움들..

2015년 기준, 현 행정부 이후 노동자의 노동탄압/신변비관 등에 의해 자살한 분들은 약 20여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가려진 것이 어느정도일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손에 들고 불타 죽은 후 무려 45년하고도 일주일이 되어가는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처럼 죽어야만 대화가 열리고, 해결하려는 기미라도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비폭력과 평화를 외치면서도, 비폭력과 평화적인 무관심 아래 목숨을 끊게 되는..
어쩌면 그 어떤 폭력보다도 처절하게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비극들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복수는 커녕 생존조차 포기해야 했던 시대에서 얻은 아주 약간의, 아주 미약한 승리들마저 손바닥 뒤집듯 한 순간에 바뀌어가는 시대에 유감을 표합니다.
평화롭고 순수하지 않으면 들어주지조차 않으려 하는 시대에 유감을 표합니다.
자기를 죽여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작은 승리조차 얻어내기 힘들었던
목숨으로 얻어낸 비극으로 관심을 얻어낼 수 밖에 없었던
공정하고 비폭력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말들 뒤에 숨어서 바라보는 사람들을 뒤로한채
그저 죽음으로 남겨져도 때로는 '자살특공대'같은 소리를 들으며 조롱당해야 했던 많은 죽음들을
막을 생각도 없이 희망과, 긍정과, 힐링을 떠들어댔던 이 시대에 유감을 표합니다.


본문의 글 대부분은 김진숙씨가 저술하고 후마니타스에서 출간한 소금꽃나무라는 책에 의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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