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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23 18:56:25
Name   nickyo
Subject   [조각글 5주차]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
제목 : [조각글 5주차]

주제

[타인의 입장이 되어 일기 쓰기]

조건

- 영화로만 쓰셔야 합니다. (드라마나 게임, 소설 등은 다음 기회에)
- 분량 제한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 (본문은 아래에 있습니다)

제가 고른 영화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입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벌어진 1973년 피노체트 군부 쿠테타 사건의 암호였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구절이 제목이 된 영화입니다. 본문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당시 칠레의 경제는 구리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민영화가 되면서 미국의 거대 자본들이 칠레의 구리산업을 장악, 2천만 달러의 투자로 42억 이상의 이익을 쓸어담아 갑니다. 칠레는 이러한 상황속에서 생활경제의 궁핍과 높은 물가상승을 겪게되고 민중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삶 속에서 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뽑습니다. 구리광산의 국유화, 물가의 안정을 필두로 건 아옌데 대통령 정권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옌데 대통령은 그를 뽑아준 민중의 소망대로 구리산업을 하나하나 국유화하고 각종 산업과 물가를 안정화시켰으며, 일자리를 늘려 칠레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습니다. 그러한 성과 때문에 의회 역시 좌파 정당이 크게 득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존 자본주의 체제의 기득권층이었던 자본가/부르주아 계급의 불만은 점점 높아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누렸던 호사를 국가가 계속 제한하고, 빼앗아 나누기 때문이었죠. 그들의 불만은 이런것이었습니다. 칠레는 모든 아이들에게 1통의 우유를 지급하고 싶어했으나, 기득권 계층은 그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미용에 쓰거나 애완동물에 먹일' 우유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상황속에서, 미국은 구리무역에 차질이 생기자 칠레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7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체제경쟁이 가장 심화된 시기였고, 따라서 남미에 대해 강력한 패권을 갖던 미국은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이 '썩은 사과'와 같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표방하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자본주의'만을 위한 패권국이었던 미국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투표로 수립된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남미의 한 사회주의 정권이 성공적으로 남는다면 남미 전체가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썩은 사과를 사과 바구니에 넣어두면, 다른 사과들이 금세 부패하듯이요. 그래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로서 전면에서 칠레를 공격하는 대신 CIA를 통한 공작에 착수합니다. 당시 미국의 닉슨 정권은 이를 강력히 부정했으나 이후 CIA 비밀문서가 해제되며 공식적으로 공작이 밝혀진 사안이었습니다.


우선 그들은 칠레의 무역을 봉쇄하고, 국제 구리시장 가격의 하락이라는 악재가 겹쳐 칠레의 경제가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칠레 자본가 계급과의 결탁을 통해 칠레의 산업을 마비시킵니다. 칠레는 고지대다보니 철도가 발달하지 못했고, 따라서 트럭이 주된 유통수단이었습니다. 미국과 자본가계급이 먼저 작업한 것은 생필품의 공급억제와 유통수단의 마비였고 이를 위해 트럭회사에 강제적으로 파업을 시키고 생필품과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이는 성공적으로 칠레 내부의 갈등을 키우게 됩니다. 동시에 CIA는 칠레의 군부를 비밀스럽게 지원하며, '48시간 내에 쿠테타를 성공할 계획을 만들어라' '모든 뒷일은 우리가 책임진다' '쿠테타의 전문가를 섭외하라'같은 정책을 명확하게 명시하여 쿠테타를 준비합니다. 결국 칠레의 군부는 미국과의 결탁 후 군부평의회를 소집, 우익세력과 자본가계급, 미국의 비호 아래 아옌데 정부에게 최후 통첩을 날립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미국이 정당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의 목숨을 빼앗는 순간이었습니다.

칠레의 민중, 노동자, 학생들은 이에 분노하여 끝까지 싸우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쿠테타군은 도시곳곳을 장악하고 여러 공장, 학교, 방송국들을 점령하며 철저하게 민중을 사살하였습니다. 후에 이들은 쿠테타 과정에서 100명의 사망자 정도가 집계되었다고 했으나 뉴욕타임즈의 한 기자는 실제로 시체안치소에서 자신이 센 것만 100구는 훨씬 넘는다고 증언했습니다. 결국 거의 대부분의 통신이 장악당한 상황속에서, 대통령은 점령당하지 않은 유일한 국영방송 마가야네스 라디오와 전화를 연결하여 마지막 대국민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말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제 박해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려는 것은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목숨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조국의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

군부쿠테타 세력은 방송 직후 대통령 궁을 완전히 포위하고 최후통첩을 날립니다. 공중에는 칠레 공군 전폭기들이 선회비행중이였고, 쿠테타 주모자 피노체트는 대통령에게 망명을 종용하는 최후 통첩을 보냅니다. "당신과 당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어느 국가로 가든지 풀어주겠다. 이건 매우 인간적인 대우이다. 죽기를 위해 죽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아옌데는 이를 거부합니다.

아옌데는 폭격이 시작되기 직전 경호대에게 대통령 궁을 떠날 것을 명령했고, 대통령의 두 딸을 포함해 대부분의 여성들도 내보냈습니다. 정오가 되자 쿠테타군의 탱크와 전폭기가 궁전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쿠테타군이 대통령궁에 진입하고나서 얼마 후, 몇 발의 총성과 함께 쿠테타군을 지위한 팔라시오스 장군은 군사평의회에 짤막한 전문을 보냈습니다.

"임무 완수, 대통령 궁전 완전 장악, 아옌데 사망."

이 소식을 받은 자본가/기득권들은 삼폐인을 터뜨리며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당시 좌파세력/사회주의자 당원들은 패배자가 되어 숙청당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칠레에서 싫은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을 맑시스트라고 부르라. 그러면 한 시간 내에 군인들이 그를 총살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기나긴 피노체트의 악질적인 군부독재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73년과 그 이후의 칠레는 잃은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민주적으로 성숙한 정치체제의 전환을 이루고도 패권국가의 권력과 기득권계급의 자본이 가진 힘,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폭력에 의해 유린당한 권리와, 명예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던 칠레의 서정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죽음과... 피노체트 치하에서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는 슬로건으로 새 노래 운동의 중심에 서있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가 군중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 군의 개머리판으로 손목이 으스러지고 총살당해야 했던 순간들.. 그의 마지막 노래.. "얼마나 더 천천히 더 많은 죽음들이 일어날까? 그러나 곧 양심의 물결이 나를 건드리고 이렇게 우리들의 주먹은 새로이 일어설 것이네."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언제고 올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역시 언제나 커다란 위기와, 체제붕괴의 공포를 갖고 있었으며 다만 그것을 어떻게든 버티고 지나왔을 뿐이었죠. 이제는 몰락한 대안이 된 공산주의나 현실 사회주의 역시, 만약 체제경쟁과 군비경쟁에 의해 파시즘이 창궐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 시대를 살아간 민중에게 더 나은 시민의식이 정찰될 시간이 있었더라면.. 어쩌면 또 다른 대안체제는 지금 우리가 단순히 언급조차 필요없는 것처럼 보이는 몰락하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위기를 극복해내고,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찾아내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칠레의 저 역사를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거나, '당연한 일' 같은 걸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지독한 군부독재를 겪었고, 반공주의가 극에 달했던(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우리나라와 닮은 곳도 참 많고요.

본문은 영화를 보고 짧게 쓴 '아옌데 대통령이 민중 동지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 입니다. 제가 자작한 것이며, 감히 아옌데 대통령의 명예에 누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습니다.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함을 전합니다.



본문


오전 10시 50분. 경호대와 여성들이 빠져나간 궁궐에는 저를 비롯한 마지막 동지들만이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무력한 저항 이후, 나와 함께해준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돌아갈 지독하고 흉악한 탄압만이 오로지 내게는 마지막 걱정입니다.
우리의 칠레는 바뀔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잘못도 아닙니다.
나와 여러분은 열심히 싸웠고,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저들의 총탄이 두렵지 않습니다.
함께해준 동지들의 목숨이 다만 걱정될 뿐입니다.

칠레의 민중, 학생, 노동자 여러분!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명예로울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그저 매일 살아남기만을 바라는 가축과도 같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삶의 목적이 있었으며
그것을 위해 함께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그러니 이 비극적인 결말이 우리 앞에 있다고 하여도
우리의 그 어떤 명예도 그들의 총칼로 훼손시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무너뜨릴수는 있을지언정
나와 이 곳의 동지들, 그리고 민중 여러분들이 세운 신념과 양심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의 죽음을, 우리의 패배를 기뻐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노래를 부르며
칠레 민중의 고통에 기뻐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칠레의 위대한 민중, 학생, 노동자 여러분.
그러나 미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증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를 탄압한 것은 저 흉폭한 군부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었으나
그들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파시스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더 이상 그들이 마음대로 동지들을 유린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록 이번의 패배가 우리에게 큰 상처로 남을지라도
미움과 슬픔은 내려앉히고, 희망의 시와 노래로 절망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나는 비록 여기에서 죽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의 민중들의 기억이 우리를 승리케 할 것입니다.
지지 마십시오. 그리고 싸우십시오. 그러나 미워하지도, 증오하지도 말고
오직 칠레 민중, 학생, 노동자들의 더 나은 삶과 명예를 위하여 죽어간 동지들을 위해서
함께 기억하고, 글 쓰고, 노래하십시오. 우리가 함께 했던 칠레의 혁명을..

자본가계급도, 중산층도, 민중도, 학생도, 노동자도
칠레의 울타리 안에서 누구나 명예롭고 긍지롭게 살아가며
성숙한 민중으로서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이 죽음에, 지금의 패배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너무나 크고, 거대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조차 점점 알기 어렵게 될 것이며
탄압과 공포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다시 흘리게 될 지를..
그러니 절망하기에는 이릅니다. 조국은 민중의 것이며, 민중을 위해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잠시 총칼에 유린당할지라도, 칠레는  다시 민중을 위해 일어서리라 믿습니다.

민중, 학생, 노동자 여러분, 이제 총성이 더욱 가까워 진 듯 합니다.
먼저 동지들의 곁을 떠나게 되어 미안합니다.
나는 마지막 한 발의 총알을 남기지 않고
끝까지 여러분들의 가장 앞에서 싸우다 떠나겠습니다.
부디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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