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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1/29 09:56:20 |
Name | 까페레인 |
Subject | 기인 큰아버지 |
기인 큰아버지 저에게 남편의 큰아버님은 참 재밌는 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쉽게 만나기는 어려운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인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구요. 결혼 후 처음 만나게된 남편의 큰아버지, 키도 작고 파마 머리에 색안경을 쓰신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노란색 지붕을 둔 아담한 집에 살고 계셨던 큰아버지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먼츠킨 같다 라는 첫인상을 들게 만드신 분이셨습니다. 처음에는 근처에 살게되어서 자주 뵈었는데, 뵐때면 그는 저에게 라틴어로된 성경구절을 암송하시면서 66권 성경에는 말이다 라는 말로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성경이야기를 재밌게 이야기해주셨어요… 목사님보다도 성경을 더 많이 알고 계셔서 간혹 목사님을 곤란케도 하셨구요.. 라틴어로 성경책을 읽으신다는 말이야? 응… 식구들은 워낙 알고 있으셔서 저의 반응이 놀랍지도 않으셨어요. 독학으로 배우신 라틴어 성경책이 있기도 하셨어요. 큰아버님이 아들과 딸을 70년대에 학교 보내실때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교육제도가 마음에 안들어서 인천에서 화교들이 하는 중국인 학교에 두 자녀들을 보내어서 중국어 한국말 두 언어로 자녀들을 공부를 하게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시게되었는데 처음 정착하신 곳이 코네티컷 주인데요. 백인들 그중에서도 유태인과 부유한 백인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동네였다고 합니다. 그때도 가족에게 전해지는 일화가 있습니다. 큰 아버님은 이민후에 영어를 배우시겠다고 어린이들이 처음 학교에서 가서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배우면 쉽게 배울 수 있다하시면서 코네티컷의 초등학교에 가셔서 어린이들 옆/뒤?에 앉아서 영어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이 많이 드신 후에 히스패닉들을 상대로 작은 가게도 하셨는데 히스패닉 초급강좌부터 혼자 도서관에서 비디오 교재랑 오디오 교재 빌려서 나중에 히스패닉과 대화를 하시면서 장사도 하셨구요. 어느날 70대에 혼자 유럽여행을 1년 다녀오신 적도 있으시지요. 재밌게 보내셨어요 여쭈었더니 응…빨래하기가 힘들었어..유럽 어디선가 늘 코인라운드리에서 빨래 한다고 힘들었어 하던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그저께 추수감사절이어서 큰아버님을 뵈러 다녀왔습니다. 예전 6.25 때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재밌습니다. 저같이 전쟁을 모르고 자란 전후시대 세대에게 생생한 전쟁시절 이야기는 어느 소설보다도 흥미롭지요. 한동안 못뵈어서 다시 예전에 어른들 말씀하신 부산 피난시절 이야기를 여쭈었지요. 정말 어린 중학생시절이셨는데 엿이나 과자 같은 걸 팔으셨어요? 어떻게 파셨는지 세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요. “그 때 기억나지… 내가 엿이 아니라 빵을 팔았어..”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전 기억을 되살리시던 큰아버지.. 그럼…빵을 얼마나 떼오셨나요? “응…하루에 새벽에 나가서 100개에서 150개 떼서 팔았지..” 우와 그러면 많이 고생하셨겠어요..100개나 150개면 무척 많은 양 아닌가요? 그걸 며칠동안 파셨나요? 힘드셨겠어요..어린 나이에 그렇게 팔려면, “아냐…흐… 순식간에 팔았지..한 두시간만에..” 네? “금방 만든 따끈한 빵을 가지고 부산 부둣가에 가는 거야…그러면 흥남부두에서 막 도착한 피난민을 싣고 내리는 배들이 들어와.. 배타고 온다고 배고픈 사람들이 너도 나도 빵을 사지… “ 재밌는 큰아버지… 큰아버지랑 이야기하면 주위 사람들이 금새 모여들어서 이야기 듣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답니다. 이제는 아프셔서 그렇게 못하시는데… 예전 큰아버님한테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그냥 어느 개인의 한 역사로 묻히는 것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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