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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01 01:29:35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영유아 영어교육이야기
근래 학교에서 한국어 가르치시는 선생님 연구조교가 되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열람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중 특히 한국의 영어교육에 대한 걸 좀 읽었기에 가가마게 썰을 풀어보려구요.


1. 영어유치원


흔히 말하는 영어유치원은 2014년 당시 전국에 306개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평균 월별 학비는 75만원 선이었구요. 물론 저 수치는 공개된 "학비"만을 따진 것이어서 교재비 교구비 원복비 등등은 안들어간 수치입니다. 따라서 실제 비용은 저것보다 더 비쌀 겁니다. 뉴스타파의 탐문취재에 따르면 서울 모처의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1년 맡기는 비용은 실제로는 2500만원가량 든다고 하더군요 (영국보다 훨씬 비싸네요 -_-;).


2. 영어유치원의 지역적 분포


강남에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교육지청 단위별로 가장 많았던 곳은 35개소를 보유한 용인시였습니다 (서울은 5~6개 지청이 있어서 단위별 합산에선 불리). 강남 지역은 28개소가 있었구요. 광역단위별로는 경기도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를 합치면 전국 영어유치원의 7할이....


3.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니다?


네 그렇습니다. [유치원][어린이집]은 법률로 명확히 정의된 용어인데 요즘 성업중인 영어유치원들은 이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학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나오는 지원금 같은 건 없으며 사실상 그점이 고비용의 주범입니다. 국가 지원금을 떼고 보면 일반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들도 월 40~50만원씩 하지요. 이들 사립 유치원이 만약 [영어유치원]들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원어민 교사들을 대거 고용하고 어쩌구 한다고 생각하면 월 75는 금방 넘길 겁니다.


4. 영어유치원이 아니더라도 영어교육은 다들 한다.


2014년 당시 전국 유치원 수는 8900여곳, 어린이집은 43000여곳이 있었습니다. 영어유치원이 306개소인 것과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많지요. 그리고 이들의 대다수는 어떤 형태로든 [영어 교육 특별 활동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돌립니다. 물론 주당 평균 운용 시간은 60분~90분 사이로 많지는 않지만 여튼 돌리긴 돌립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수까지 합산해서 감안하더라도 요즘 아이들의 70% 이상은 이미 초등학교 입학 전에 어떤 형태로든 영어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누가 주도해서 그렇다기보다 순수하게 학부모의 요구와 압력 때문인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정부 및 일선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들은 영유아 영어교육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만 (08년 조사에 따르면 대략 5:5로 갈립니다), 학부모들을 설문해보면 80% 이상이 영유아시기 영어교육을 원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자신만의 교육철학이 투철한 어떤 유치원 원장이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없앤 것도 아니고) 많이 줄였더니 당해년도 원아모집에서 미달사태가 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났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100명 모집에 49명 응모). 이는 시설수의 절대부족으로 인해 없어서 못다니는 한국 영유아 보육/교육 현실상 무척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5. 부모의 소득/학력 별로 영어교육열이 다르다.


한 연구자는 아버지의 학력수준과 직업, 어머니의 학력수준과 직업을 중심으로 이들의 교육열, 더 정확히 말해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받는 심적 압박감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어머니의 학력 수준이 전문대졸인 경우 조기영어교육에 가장 적극적이며 동시에 [입시]에 대한 압박도 가장 높게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어머니의 학력 수준이 올라갈 수록 입시와 조기영어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었구요. 반면에 [아이의 장래 학업 성취와 미래]에 대한 압박감, 걱정은 부 쪽이나 모 쪽이나 학력과 정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저학력 어머니들이 당신들이 입시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을 대물림하거나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불쾌한 경험이 구체적으로 수능 외국어영역과 강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반면에 예컨대 석사이상 학력의 어머니들이 입시에 대해서 느끼는 압박, 특히 외국어 부문에 대해 느끼는 압박이 적은 것은 그들 본인이 나름 무난하게 외국어영역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뭐 그렇습니다. 반면에 전반적인 학업 성취,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학력과 정비례해서 나타나는 건 고학력 계층이 본인들의 현재 사회상의 계급을 [수성]하는 데 있어 우려가 많다는 걸 암시해줍니다.

재밌는 건 소득수준과도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월별 가구소득이 올라갈수록 [아이의 장래 학업 성취와 미래] 항목에 대한 압박감과 우려가 유의미하게 상승합니다. 이 역시 계층이동상의 [공격자]측보다 [수비자]측이 느끼는 압박감이 더 크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점이 [한국은 계층이동이 활발해서 수비자 측이 불리한 사회다]라는 걸 의미하진 않습니다. 이게 이렇게 해석되려면 사회 전반의 상징재(symbolic goods, 계급재?)의 총량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만약 사회 전반에 걸친 상징재의 총량이 조금씩 감소중이라면 (예컨대, 중산층의 수가 꾸준히 줄고 부유층의 수는 그대로 있는 상태라면) 계층이동이 유연하건 경직됐건 간에 수비자측이 느끼는 추락공포증은 당연히 크게 나타날 수 밖에 없지요.


6. 영어가 수문장인 사회.


이병민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 (2014) 에서 한국의 영어교육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시도합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이 영어를 외국어가 아니라 제2의 언어로 (additional language) 받아들이고 사용하려면 대략 11,600 시간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정도는 시간을 투자해야 자막 없이 외화를 보고 양키랑 수다 떨거나 전화통화할 때 긴장 안하고 그런다는 거지요. 헌데 현재 정규교육과정 상 공교육이 제공하는 강의시간은 최대치로 잡아도 1천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압도적으로 부족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수능 외국어영역을 돌릴 수 있고 또 학습시간에 비해 영어 학습 성취도가 이 정도라도 되는 건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영어 공교육은 "고비용 저효율" 과 같은 세간의 비판과는 달리 "저비용 고효율"교육을 하고 있다고 해야 옳습니다 (물론 이게 옳다거나 잘하고 있다거나 그런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의견) 문제는 한국에서 사실상 영어가 계층이동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능에서 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쭉 영어능력이 번번이 장판파를 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검문하지요 (너 몇 점이야?). 이 기이한 구조에서는 공교육 1,000시간 이상으로 영어에 자원을 투자한 수저들이 훨씬 유리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영어 사교육 시장의 활황은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괴기스런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르겠습니다 -_-; 이게 고질이거든요. 길게 잡아 지난 2천년 간, 짧게 잡아 고려 무신정권 이후 지난 800년 간 외국어=권력=계급인 역사가 있어서 이게 단기간에 어떻게 될 성질이 아닙니다. 요즘 보면 영어유치원 말고 중국어유치원도 여기저기 생긴다고 해요. 미래에는 중국어가 영어를 대체할 거라나 뭐라나, 영어는 다들 하니까 중국어도 해야 경쟁력이 있다나 하면서요. 즉, 한국이 세계 제1의 패권국이 된다거나 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에서의 외국어=권력=계급 공식이 깨질 것 같진 않아요. 영어가 지나가도 다른 언어가 와서 자리를 차지하겠지요. 100여년 전에 일본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지금 영어가 차지한 것처럼요.


7. 결론

음....'-';; 인터넷 상에 글을 쓸 땐 늘 결론이 제일 어렵네요. 댓글 캐리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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