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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13 22:37:45
Name   삼공파일
Subject   지역주의와 패권주의 (글 완성)
이른바 최장집주의라고 불리던 한국 정치의 해법 중 하나로 제3세력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를 계급적 기반으로 하고 지역 사회 위주로 활동하되 자유주의 사상을 대변하는 제3정당 말입니다. 최장집은 참여정부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죠. 요즘은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에 기여한 이후 실제로 참여한 현실 정치는 망쳐놓았다는 이야기가 익숙하지만 386과 친노를 까는 이 논리 자체는 최장집이 만든 겁니다. 운동권 자체를 경험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새누리 성향의 젊은 층이 안철수를 지지했던 것을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쪽에서 얼치기 취급했지만 (실제로 무당파의 속성이 정치적 무지로부터 오니 맞는 말이긴 한데) 현상 자체는 이 맥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그럴 법합니다.

그렇지만 의회주의자인 최장집은 무당파가 답인 것처럼 얘기하던 안철수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후 재보궐 선거를 통해 빠르게 정계의 복귀한 안철수는 노골적으로 최장집에게 러브콜을 보냅니다. 귀국 후 공항 인터뷰에서 최장집 책을 팔에 끼고 링컨 이야기를 합니다. 최장집이 영화 링컨에 대한 평론을 쓰며 현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죠. 실제로 대선 토론 당시에 안철수가 했던 친노 비판론의 대부분이 최장집으로부터 나온 얘기였습니다.

결국 끈질긴 구애 끝에 최장집이 안철수에 합류합니다. 이 때 개인적으로는 큰 기대가 있었습니다. 첫 문단에 밝힌 제3정당을 현실로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죠. 최장집과 결별 이후에는 희망은 접었습니다. 다만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 자체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랬듯이) 관심 있게 봤습니다. 윤여준 자체는 싫었지만 필요하면 만날 수도 있겠다고 봤고 민주당 지지자들이야 친이라고 싫어하지만 비운동권에 반독재세력이 현실 정치에 몸담아서 친이가 된 게 대부분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jTBC 끝장 토론을 보고 있었던 날이었는데 김성식이 나와서 제3정당의 필요성을 열심히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후보 인물난에 시달리자 김성식은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독박 쓸 수 있는 서울시장에 나갈 수도 있다는 점도 밝히더군요. 보다가 자고 일어나니까 안철수가 김한길이랑 손을 잡고 있더군요. 지지자를 배신하는 행위를 넘어서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날 끝장토론은 왜 봐서 김성식에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그래서 이후 지금 안철수가 탈당하는 막장드라마까지는 말그대로 막장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감정 없이 봤습니다. 그런데 안철수가 탈당을 결심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에서 안철수의 특성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한국 정치의 설계입니다. 안철수 혼자 저러는 게 아니라 야권에서는 온갖 인간이 다 나가서 신당을 꾸린다고 나서니 씨앗도 씨앗이지만 토양의 문제도 봐야하는 거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박정희입니다. DJ에 의해 대통령 선거에 당선권이 위협 받자 아예 선거를 없애버리는 참신한 발상 이전에 여론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깁니다. 이 시기에는 DJ도 백제의 후손을 자처할 정도로 지역 감정이 원시적인 상태였습니다.

(이 사이에 DJ와 YS의 후보단일화 실패는 대한민국 정치의 영원한 저주로 남아 있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대선 후보로 나오겠다고 말하기 몇 년전부터 이미 단일화의 대상으로 언론에 오르내렸습니다. 아직 정치하겠다고 말도 시작 안 한 사람들이 도대체 왜 단일화를 해야할까요? 후보단일화는 DJ와 YS의 설계라기보다 실책으로 인한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고착화된 지역주의의 진정한 설계는 YS가 한 것이죠. YS의 정말 대단한 설계는 싫어하는 당이라서 인정 못할수도 있겠지만 삼당합당입니다. 오늘날 친이계와 친박계로 분류되는 세력의 원형이 군부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결집입니다. 김문수 이재오로 대표되는 상징적 운동권들과 각 분야에서 활약하던 전문직과 명망 인사들을 YS가 모두 취합해 당내로 끌어들이고 제1여당 내에 균형을 설계합니다. 지금 새누리당의 정치적 실력은 양쪽 세력의 경쟁과 그를 통해 누적된 갈등 해결의 노하우입니다. 민주당에 없는 그것이죠.

DJ는 YS의 군부세력 끌어안기와 더불어서 JP가 상징하던 충청도를 끌어안아 지역구도에서 중간지대에 있던 충청도를 새롭게 부각시킵니다. 안희정으로 위시되는 충청대망론은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이죠.

사실 진짜 하려던 얘기는 지금 민주당 내분의 시작이 된 것은 노무현의 설계입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들이 사실 정치지도자들이 참신하게 들고 온 새로운 설계들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모두 알다시피 부산 사람입니다. 민주당에서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되면서 나온 것이 바로 영남 후보론입니다. 지금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이 친노들이 모여서 뭔가 작당하는 것처럼 사용되지만 원래는 영남 패권주의였습니다. 즉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영남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TK는 모르겠는데 PK 표를 가져와야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험지출마론, 오뚜기론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결국 근본은 영남 후보론입니다.

이 영남후보론으로 시작된 갈등과 대북 송금 특검으로 인해 민주당의 내홍이 극에 달합니다. 이후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서 지금의 민주당 설계가 들어옵니다. 수도권에는 이른바 탄돌이라고 불리는 386 세력이 들어가고 호남은 물갈이와 혁신의 대상이 되어 민주노동당 계열이나 새 인물들이 들어갑니다. 여기서 탈당 이후 살아 돌아온 사람도 있고 새롭게 호남으로 정치를 입문하는 사람들도 발생하죠.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던 세력이 맹비난을 받으면서 영남 패권주의에 맞서는 호남 호족론이 등장하죠.

이후 호남에서는 노무현에 대한 감정이 점차 안 좋아집니다. 더이상 호남 소외론에 의존하지 않고 마치 민주당이 호남을 전략공천과 자기 세력의 인물을 심는 맘대로 텃밭 정도로 인식하게 됩니다. 새누리당에서는 TK와 PK의 갈등을 기반으로 하여 각자 지역에 대한 챙기가 있었고 그 지역을 관리하고 챙겨주는 리더가 있었습니다. 수도권은 민주당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심한 경우가 아니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전략을 씁니다. 이런 투트랙 전략은 친박과 친이의 역사 깊은 갈등에서 나온 나름의 합의점이었지만 민주당은 올오아낫씽으로 한쪽이 쓸어가면서 호남에서는 지역 기반 인사들이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나죠. 대선을 앞둔 총선에서는 야권연대라는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에 심취하여 호남의 지역구 상당과 수도권의 야권 강세 지역을 통합진보당에 내주는 일을 합니다. 이런 전략적 실패가 문재인 필패론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하는 안타까운 실패였습니다.

안철수라고 다른 방법을 쓰진 않았습니다. 처음 맞는 재보궐선거에 광주에는 권은희를 내려 보냅니다. 그리고 동작에서 박원순 챙기기하다가 거하게 말아먹죠. 여기서 호남 민심은 친노 쪽 지분이었던 서갑원을 박근혜의 오른팔인 이정현에게 패배시키는데 극에 달합니다. 호남 입장에서 안철수는 문재인의 대안으로서 그동안 노무현의 설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바로미터였던 것입니다. 시작은 제3정당에 대한 꿈이었을지 모르나 결국 민주당 내부에서 호남 민심을 대변하는 대안이 되어버린 것이죠. 처음에는 문재인처럼 부산 사람이라서 대통령이 된다던 안철수가 지금은 호남의 사위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은 호남 기반 정당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뽑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오만으로 바꾸는 행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지난번 총선과 대선은 낙동강 벨트라는 전략으로 노무현의 설계의 일환에서 치뤄졌지만 실패했습니다. 부산에서 3선을 하는 조경태 같은 사람은 끌어안지 못하는 설계가 되는 이유는 결국 부산에서 영남 패권주의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상존합니다.

박지원을 위시로 하는 호남과 비주류로 대변되는 호남을 관리하지 않고 민주당을 제대로 수습할 수는 없습니다. 호남을 참신한 인물이나 혁신론으로 정계 입문의 장소롤 활용할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 발전론으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역구 인계가 가능하게 현실 정치를 해야할 것입니다. 문재인은 본인의 약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중도층 끌어안기와 낙동강 벨트에만 공을 들이다가 호남 민심의 역풍을 맞고 안철수에게 빌미를 주고 말았습니다. 이는 여론조사 같은 것을 넘어서 지금 민주당 갈등의 근본적인 설계를 뜯어고치고 새 판을 짜야 극복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인터넷 여론은 노무현의 설계에 익숙합니다. 천정배와 정동영 같은 사람을 호남 호족으로 비하하면서 철새 취급하는 것도 나름의 타당성이 있지만 정치에 이골이 난 그들이 그런 계산을 하고 심지어 천정배는 당선에 성공한 (새누리당도 뽑는데 천정배는 못 뽑을쏘냐하는 호남의 민심으로) 것입니다.

대통령이 된 사람 중에 기존에 있던 판을 활용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그 판 그대로 정치를 한 사람은 없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하는 자신만의 설계를 가지고 들어와서 당선이 됐습니다. 문재인도 오늘날 위기를 극복하려면 영남 후보론이나 낙동강 벨트론, 386 논리로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철수 개인과의 관계에 어떻게 설정하든 결국 지금 나가려고 하는 호남 국회의원들을 관리해서 다시 데려오고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이어가지 않으면 새로운 판을 설계해야만 하고 설계하지 않고서는 본인이 대통령도 못 될 겁니다. 호남 민심, 호남 민심 떠드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죠.

어차피 대의 민주주의 체계에서 지금 우리가 인터넷에서 떠드는 이야기들은 카리스마적 정치 지도자들이 이미 한 번 이상 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제3지대의 정당도 안철수의 개인의 한계로 망했고 민주당의 새판도 문재인 개인의 역량에 달린 것일 겁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생각이 노무현 설계에 머물러 있어도 문재인이 새로운 설계를 제시하면 잘 따라올 겁니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 다들 DJ나 YS 설계에는 익숙하게 들어보셨는데 노무현 설계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서 이야기가 많지 않아 지금의 안철수 탈당의 뿌리는 그 설계에 있다는 얘기를 해봤습니다.

P.S. 충청대망론을 위시로 하여 이해찬이 문재인이 총선에서 제껴지면 안희정을 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계에서 돌고 있죠. 친박에서 반기문을 설계하고 이원집정부로 개헌한다는 건 공공연한 얘기고 이걸 저격해서 이해찬이 새 판을 설계한다는 겁니다. 친노에서 지난번 혁신안 때 이해찬을 내줄테니 박지원도 나가라고 하던 이야기가 이 갈등이 나타난 거라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다음 대선이 충청대망론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제발... 다들 물밑에서 설계하고 있는데 당대표도 뭐 좀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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