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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2/16 20:34:51 |
Name | 얼그레이 |
Subject | [8주차 조각글] 꽃+bgm♪ |
[조각글 8주차 주제] "사랑하는 사람 묘사하기" 조건 다음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글을 쓰시오. 1. 전지적 작가 시점 2.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외모를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자세하게 묘사 (외모를 묘사하는 것을 중점으로 보시면 됩니다.) 3. 특정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상황을 묘사 주제 선정자의 말 기본적이고 쉬운 글쓰기로 하되 구체적으로 주제를 정하고 싶어서 정했습니다. 합평 방식 특별한 조건은 없으나 묘사한 얼굴을 떠올려 비슷한 사진을 찾아 덧글에 첨부할 것! 합평 받고 싶은 부분 주제의 조건에서 부족한 점과, 이런 부분을 개선하면 더 글이 풍부해지겠다는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감상이나 다른 부분에서도 환영입니다:) 하고 싶은 말 '은경'은 저희 할아버지 이름에서, '종희'는 할머니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름만 빌려왔어요! (두분은 중매로 만나셨고, 경기도 분이세요.) 소재는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글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친구가 글 주제를 조금 바꿔보라는 조언이 있어서 이런 간질간질한 글이 나왔네요.. 쓰다가 오글거려 죽을 것 같았어요.. 8^8 사투리를 잘 몰라 검수가 필요합니다. 모쪼록 잘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본문 ------------------------------------------------------------------------------------------------------------- 하늘엔 벌써 달꽃이 피었다. 아버지가 알면 경을 칠 일이다. 종희는 어차피 늦은 거라는 심산으로 아예 주저앉았다. 매봉산 중턱에 있던 저수지였다. 가시나가 어딜 밤에 느즈매기 나댕기노! 아버지의 일갈이 벌써 귀에 쟁쟁하다. 좋은 머쓰마 달라꼬 쩌 산 마래이 용운사에 댕겨왔어예. 그래도 변명할 말 한마디 정도는 준비해 두어야 한다. 종희가 심란한 이유는 며칠 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 때문이다. 야아, 느 저 윗마실 산대리에 살구나무집 아들 알제? 그 집 아가 잘났다 안 카나. 내달 소서 지나 날 받아 놨다. 난데없는 결혼 소식이라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자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은경이었다. 은경은 종희가 사는 양월리에 그나마 배운 청년이었다. 집안 교육을 잘 받아 행실도 곧고 발랐다.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이유로 은경은 면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했다. 말이 좋아 서기지 잡다한 일을 맡아서 했다. 그중 하나는 우편배달이었다. 깡촌 안까지 우편부가 다니지 않아 은경이 그것을 대신하곤 했다. 은경은 아침마다 동네를 오가며 편지를 전해주곤 했다. 은경은 인기가 많았다. 그가 지나가는 아침을 손꼽아 기다리는 처녀가 한둘이 아니었다. 아침에 그가 지나갈 시간이면 동네 처녀들은 장독대 근처를 서성이며 뚜껑을 열다 장독 뚜껑을 깨트리기도 했으며, 괜히 고추장이며 간장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종희 역시 그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엄마를 대신에 편지를 몇 번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은경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종희는 처음에는 귀까지 빨개졌다. 은경의 얼굴은 희고 이마도 훤칠하고 코도 곧았다. 눈썹 산도 시원하게 솟아있어 남자답게 생겼다. 입술이 얇아서인지 선이 굵다기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다만 그의 적은 말수만큼 입은 늘 굳게 닫혀 있었다. 종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힐끗거리는 것을 아침의 낙으로 삼았다. 어느 샌가부터 종희도 은근히 아침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종희는 처음엔 은경이 허우대만 멀쩡한 벙어리인가 싶기도 했다. 편지를 부탁하느라 불러도 알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부받은 대로 저 윗마실 어느 집 누구헌티 잘 부탁한다고 조곤조곤 말을 하면 은경은 씨익 웃으며 늘 '들어가 봐라'하고 반말이었다. 처음에는 은경이 반말하는 것을 보고 얼굴값 하는 재수 없는 놈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은경은 그런 사내는 아니었다. 은경은 처녀들의 교태에도 꿈쩍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지가 부처야? 빨래터에서 빨래하다가 한 인네가 말하면 여자들은 소란스레 웃었다. 응가들도 저마다 속살을 보여주었던 무용담을 펼치며 꿈쩍도 안 하는 은경더러 저거 고자 아닌가 하는 짓궂은 농담도 일삼곤 했다. 종희가 조심스레 은경이 말 놓은 것을 말하자 갸가 저것을 찍었나보다고 놀리곤 했다. 더러는 뒤에서 종희를 예끼년이라고 욕하기도 했지만, 이미 얼레리꼴레리 하고 소문이 다 났다. 주변에서 어찌나 놀려대는지 둘은 아침에 편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곤 했다. 종희가 어찌할 줄을 몰라 부끄럼을 타는 것을 은경은 귀엽게 보았다. 종희도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저만 특별히 여긴 것인가 싶어 어느 날은 왜 내한테는 말 놓으시는교? 하곤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은경은 가만 종희를 보다가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내는 공구한티 말 안 높인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이번 연도엔 절기가 길었다. 날이 따듯해서 그런가 저수지를 따라 6월인데도 매발톱꽃이 작작했다. 창꽃은 끝물이나 벌개미취가 벌써 야단이다. 종희는 은경과 별일 없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제 식구를 운운하는 사내에게 어찌 마음이 안 흔들리랴. 싱숭한 마음에 저 멀리 은경이 산에 올라오는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은경이다. 종희는 제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닌 것을 확신하자 가슴이 두방망이질이다. 심장이 펏떡하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은경을 보는 것이 기쁘다. 은경은 아무 거리낌도 없는 양 종희 옆에 턱 앉는다. 은경은 여느 때처럼 아무 말도 없다. 종희는 제 콩닥이는 심장 소리가 들킬까 애꿎은 치맛자락만 꼬옥 잡고 있다. 은경과 종희는 같이 풀밭에 앉아 저수지를 바라본다. 반딧불이들이 저수지 근처를 조용히 날아다닌다. '들었다.' '…무얼요?' 종희는 은경이 성례 소식을 들었나 싶어 조마하면서도 그가 알면 무엇하나 싶어 가만있는다. 은경은 종희의 야속한 마음을 모르는지 아무 말도 없다. 달빛에 녹녹한 물가가 반짝인다. 은경은 대뜸 풀밭에 눕더니, 묻는다. '누군지 아나.' 아버지가 말한 총각은 종희도 동네 인네들한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연안들 그 짝이 다 그 집 땅이라더라, 그 집안은 대대로 선생 집안이더라. 요전에 다시 지은 서원도 그 집안 것이더라 하는 얘기들. 깡 시골이라도 소문날 것들은 다 나곤 했다. 종희는 무슨 말을 할까 하다 가만있는다. 다 부질없어라. 말도 몇 마디 못 나누어봤는데. 종희가 서글퍼지려는 찰나 은경이 종희의 손을 잡는다. '내는 니가 꽃 같다.' 종희는 놀라 은경을 본다. 은경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 누워있다. 아, 종희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뻔했다. 은경을 이렇게 가까이 본적이 있던가. 늘 흘끔거리기만하다 가까이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은경의 머리는 학생처럼 짧았다. 그의 성긴 머리칼이바람결에 잔잔히 움직이고 있었다. 은경의 눈썹은 생각보다 짙었다. 미간에서 시작하는 눈썹은 이마로 곧게 뻗어있었다. 이마는 어찌나 반듯한지, 그의 이마가 달빛에 훤했다. 그의 콧망울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는데, 곧게 뻗은 것이 종희는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은경의 코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무슨 주책이람. 종희는 얼굴을 붉혔다. 그때 은경이 눈을 떴다. 왼쪽 눈이 조금 작은 짝눈이었다. 그의 얼굴에 흠을 잡자면 굳이 뽑을 수 있을만한 점이었다. 종희는 제가 콩깍지가 씐 것인지, 아니면 은경이 정말 잘생긴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강직하고 굳은 눈동자가 종희를 마주한다. 종희는 놀라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여 심장이 쿵쾅거려 손을 빼려 한다. '내 니 아부지한테 말을 하면 내한테 올낀가?' 은경이 종희의 손을 더 꼬옥 잡는다. 은경의 눈이 진지하다. 종희는 머리가 벙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은경이 종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허락 맡으러 가는 길이 멀면서도 금세다. 두 남녀의 발그레한 볼이 밤길을 밝힌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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