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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1/08 09:08:12
Name   王天君
Subject   빠이빠이~
이누이트 족의 풍습이라는 게 떠오른다. 가까운 누군가가 죽으면 다들 모여서 사흘 밤낮을 죽은 사람의 이야기만 한다고 했던가?  그런 다음 다시는 그 사람 이야기를 입에 담지도 않는댄다. 우리랑은 다르다. 잊혀질까, 잊을까봐 두려워 기억의 광을 내고 모셔놓는 일엔 어쩜 이렇게 열심일까 싶은 답답이들. 이누이트족은 분명 덜 감정적이고, 보다 현명한 구석이 있다. 죽으면 곁에 없다. 없는 사람은 잊혀진다. 부재에서 오는 슬픔은 차츰 익숙해진다.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아서 괜히 슬프고, 더 시간 지나면 슬프지도 않아서 그냥 쓰기만 할 것이다. 누구도 이를 피할 수 없다. 이누이트 족은 알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모진 풍화의 과정을 견디며 힘들어하느니, 산 자나 죽은 자나 빨리 망각의 강을 건너는 게 이롭다는 사실을 말이다.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자는 튀어나올 때보다 꺼내볼 수 있을 때가 훨씬 더 아름답다. 내가 이 이야기를 영화에서 봤던가, 책에서 읽었던가. 이누이트 족 이야기가 맞긴 맞는 건지.

한 회원이 부재 중이다. 그렇다고 그 회원이 죽었다는 건 아니다. 멀쩡히 살아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이 때쯤이면 밥을 먹고 있을 수도 있고 회사를 가고 있을 수도 있고. 역시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이건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그 회원의 패턴 덕에 생긴 고정관념이다. 알 수 없다. 앞으로의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그 회원은 아무 글도 쓰지 않을 것이고 어떤 댓글도 달지 않을 것이다.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고로 당사자가 내 멋대로의 추모사에 뭐하는 짓이냐고 화만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 없는 사람은 늘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그래도 다행인 줄 알아야지. 없지 않았다면, 나나 그 회원은 친목질로 어떤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없었던 “탓”만 헤아릴 게 아니라 없었던 “덕”도 생각할 줄 아는 이 긍정의 힘.

사실을 밝히자면 나는 그 회원의 글을 별로 읽은 게 없다. 일단 그 회원의 글은 팔 다리가 따로 놀면서 읽고 넘길 만한 글이 아니었다. 까딱거리면서 씹어 삼키기에는 체하기 딱이었다. 갑자기 철학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머리를 들이미는 통에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회원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듀오백 의자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팔짱을 낀 채로 터치패드 위 손가락을 오르내리며 방어 태세를 갖춰야 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이 문단은 뭘 말하는거지. 여기저기서 스크롤은 교통체증을 일으켰다. 낱말 사이사이 이해했냐는 질문이 들어올 때면 나는 적당히 흘리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확신에 찬 답을 주면서 나아갔다. 그렇게 글을 밟고 또 밟으며 도착한 종점에는 미묘한 성취감이 있었다. 난 아직 아무 것도 모른다는 그 유쾌한 부끄러움. 그 회원의 글 말미에는 미지의 영역을 정복했다는 깃발이 나부끼지 않았다. 대신 무지의 영역으로 향하는 초대장이 놓여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일 뿐입니다, 라며 늘 다음과 그 다음을 향한 문이 열려있었다.  

그런데도 선뜻 그 문 너머로 발을 내딛은 적은 적다. 스포일러를 피해야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읽으리라 별렀던 책들의 감상이라 묵혀놓았다. 보다 온전한 이해를 가지고, 호들갑에 걸맞는 지적 허세를 갖춘 뒤 만나자고. 그래도 자신있었다. 이 회원은 필시 언제라도 댓글 알람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요란스레 대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그렇지요, 맞아요, 라고 서두를 떼며 결국은 크레센도로 글을 향한 모든 애정을 한뭉탱이 지지고 볶았을 게 뻔하다. 총출동한 형이상학이 요란스레 폭죽처럼 터지는 댓글로 적지 않은 이에게 위화감을, 적은 이에게는 배타적 향락을 쥐어줬을 것이다. 이런 건 나와  다르다. 난 애정과 숭배를 저리 야단법석으로 나누기에는 숫기가 모자라다. 한편으로는 좀 참고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건 잘난 척 같은데 - 라고 의식하는 자체가 잰 체하는 자세 아닌가. 거리낌없이 떠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VJ 특공대의 송도순 성우처럼 어머머머 세상에 이게 뭐야 하며 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리란 법도 없으니까.

많은 글 중에서도 내 기억 속에 꽉 박혀있는 한 글이 있다. 라깡과 들뢰즈를 빌릴 수 밖에 없는 숙명에 관한 글이다. 아마 다른 회원들도 그 글을 통해 그 회원이 보통 geek 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것 같다. 보다 흠없는 진리에 다다르기 위해, 선대의 온전치 못한 사상들에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아무리 물고 뜯으며 부정해도 그 작업 자체가 결국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고, 그렇게 계속해서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후대의 인간들. 단 한번도 남의 언어로부터 자유로운 적 없어서, 계속 돌려막기를 하다 보면 가끔 자신만의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그렇게 헷갈리는 순간을 다시 찾고자 계속해서 빚만 끌어쓰지만 파산할 수도 없는 언어적 존재의 탐욕. 지금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떤 글들은 독해가 다 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마지막 읽었을 때의 인상은 아직도 선연하다. 아무 시각적 심상이 없는 본문에서 어떤 광학적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았다.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인상이라는게 항상 납득가능하게 설명 가능한 거면 그냥 텔레파시를 쓰고 말지.

처음에는 글 속에서 헤매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정성을 중요시 여기는 편이다. 하다못해 윈도우 쇼핑을 하면서도 다음에 올께요 라는 인삿말 정도는 남기는 게 좋다. 그래서 내 글에 달린 댓글과 글쓴이의 성향을 유추해 얼렁뚱땅 댓글을 달았다. 글 내용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뻘소리였다. 그런데 자기 글을 너무 잘 읽어줬다고 하니 좀 뜨끔했다. 좀 미안했다. 빈 소리를 던졌는데 혼자 가득 채워서 받으니 진짜 뭐라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있다보니 그 회원은 다른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열심이었다. 별로 좋은 결과를 얻진 못한 모양이다. 내가 다 안타까웠다. 알맹이 없는 남의 댓글에는 희희낙낙하고, 알맹이 있는 자기 글은 소화를 못시켜서 끙끙대고. 읽다보니 알 듯 말 듯 한게 있었다. 깅가밍가 어슴푸레한 단서를 낚아채 다시 댓글로 던졌더니 그 회원은 아주 많이 기뻐했다. “뛸 듯이” 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반응이라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왜?

글자 몇 자를 끄적거리기만 해도 주려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수 있을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쓴다는 건 “써주는” 게 되고, 읽는다는 건 “읽어주는” 게 될 때도 있다. 그렇게 명랑하게 뽐내면서 포근하게 고마워할 수도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일관되지 못한 그 태도가 신선했다. 어느 날은 혼자 분을 참지 못해 그 회원은 다른 이에게 조소를 날렸다. 그런 적이 있었고, 그럴 수도 있었다. 의외는 아니다. 야누스의 두 얼굴은 동전 한 쪽에 다 그려져 있다. 그리하여 주인공을 제외한 예비 송별회가 열렸다. 은밀하고 단촐한 자리였다. 단호한 고별사와 딱딱한 체념이 이어졌다. 떠날지도 모르는 이에게 우리는 기꺼이 작별들을 고했다. 원래 세상사는 그러게 얽혀서 돌아가는 법이다. 열 번 웃다가 한 번 화를 내면 그 사람은 웃고 있어도 화가 나 있을지 모르고, 화를 낼 때는 그럴 줄 알았던 사람이다. 세상의 누구도 야누스의 두 얼굴을 50:50으로 판정하지 않는다. 화를 내는 그 얼굴이 야누스의 본심이 된다.

나랑 다르지 않은 부분을 이런 식으로 발견하면 가슴이 차다. 미성숙한 자는 죽음으로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는 앤톨리니 선생의 말을 떠올렸지만, 아마 말릴 수는 없었겠지. 아무 관계도 없는 나는 절필, 절교, 절연이라는 벼락같은 선언에 얻어맞았다. 떠나드린다는 그 말은, 떠나라 한 적 없는 사람이 잡기에도 받기에도 날이 벼려져 있었다. 어떤 말들을 삼켜야 했다. 그러시다면야 - 라는 말을 나는 한 적이 없다. 그저 누군가의 마지막 말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는 모양새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격럴한 어조가 조용한 음성을 타고,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에 실려나갔으리라 - 며 내 멋대로 정갈한 현장을 위조할 뿐이다.      

불완전함은 얼마나 눈에 쏙 들어오는 부분인가. 왜 우리는 누군가를 미괄식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할까. 그럼에도 - 라는 논리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가 보다. 결국 이 모든 건 도마뱀처럼 꿈틀거리는 꼬리만 남겨놓은 채 자기 글을 꾸리고 바삐 떠난 본인의 책임이다. 나도 별로 오래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복수도 뭣도 아니다. 남들만큼 적당히 게으르고 말테니 말려볼테면 말려보든가. 어차피 여기에 있지도 않은 이의 항의는 가볍게 묵살하도록 하겠다. 떠난 이는 떠나 도착한 곳에서 마음대로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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