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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1/29 11:45:11 |
Name | nickyo |
Subject | 독서실 알바 |
누군가 그랬던가. 수험생활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 에이, 공부하는데 무슨 돈이 필요야 했지만 사실 우리는 안다. 숨쉬는 것도 대체로 돈이다. 밥값, 교통비, 책값, 강의료.. 다행히 집에서 학교 도서관등을 다니며 공부하다보니 그나마 방값이나 도서관 이용료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수험생이라고 해서 오로지 생활과 공부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우리는 안다. 누군가를 만나고, 가끔 밥도 먹고.. 가끔 다른 돈도 쓰게 된다. 나는 스무살 이후로 용돈이 궁핍해본적이 없다. 왜냐하면 일을 안한적이 없기 때문이다. 많게는 일주일에 3~4개의 아르바이트를 꽉 채워서 월 250이 넘는 소득을 얻기도 했었다. 직종도 다양했다. 힘을 써야하는 이삿짐, 철거, 용역 같은 것부터 근무시간이 긴 경비,보안,감시. 일반적인 캐셔,피시방,카페 같은 서비스업.. 학원, 연구소 같은 곳에서의 몸도 머리도 같이 쓰는 알바까지.. 하지만 그 중에 독서실 알바는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돈이 안되니까. 사실 최저시급이 이렇게 큰 화제가 된건 근 몇년의 일이다. 물론 이전에도 최저시급은 큰 이슈였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지 싶다. 나는 스무살 재수생시절 친구가 알바하는 독서실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독서실은 하루에 사람을 9시간 앉혀놓으면서 앉아있는것 말고는 할 게 없으니, 공부를 하면 된다고 하고 15만원을 주었다. 당시의 나와 친구는 고심끝에 25만원은 주셨으면 좋겠다며 편지지 두장의 장문의 편지를 사장님께 보내어 인간적인 정에 호소했던 기억이난다. 그리고 정말 25만원으로 월급이 올랐다. 그때의 최저시급이 3800원인가 그랬으니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10만원 올린게 어디냐 했다. 그때 이후로도 독서실 알바는 언제나 지독한 저임금 일자리였고 나는 최저시급도 안주는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수험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시험이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돈이 바닥을 보였기 때문에 나는 수년만에 처음으로 독서실 알바 자리를 찾았다. 공통적으로 모든 사업장이 급여에 대해 협의라는 말을 걸었고, 전화로 이야기하자고들 했다. 뭐 대충 조건은 이러했다. 일 없다. 앉아서 공부만 하면된다. 열람실 좌석을 내주니 근무시간 이외에도 자유롭게 공부해라. 같은말들. 나쁘지 않았다. 수험생이니까. 하지만 괘씸했다. 노동법 어기는게 아주 습관이여 엉? 그렇게 월 1회 휴무에 나머지 기간을 전부 근무하는 조건으로 40만원을 받기로 하였다. 해야할 일은 오픈, 청소, 간헐적인 고객응대와 냉난방관리정도였다. 실제로 하루 근무해보니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아침에 두어시간 일하고 나면 몇시간에 한두번 오는 전화를 받거나 고객등록을 하거나 하는 일이었다. 방학이라 더 한가한듯 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사장이 왔다. 다시 한번 업무에 대해 교육을 하며, 통 크게 밥사먹으라고 첫날의 밥값을 챙겨 준다. 최저시급 6천원 시대에 월 250시간을 근무시키는 사람이 40만원을 주면서 밥값 만원을 통크게 쏜다니. 인간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반도의 노동법으로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풀어졌다. 그래, 공부 많이 할 수 있고 잡무 별로 안시키면.. 나쁠거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독서실 요금은 10년전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고.. 영세사업자라는게 결국 그런거 아니겠냐며.. 나는 금세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는 것이다. "제가 여기 건물주거든요. 그래서 화장실 청소는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뭐? 세상에, 소문으로만 듣던 건물주였다. 건물주가 나머지는 세를 내주고 두 층만 독서실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사장보다 내게 어이가 없어졌다. 대체 난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했단말인가? 서울 서초구에 있는 건물을 쥐고있는 사람이 시급을 2000원도 안되는 값으로 후려칠 수 밖에 없는 절박하고 위태로운 경제적 위기를 걱정하고 있었단 말인가? 설움이 밀려왔다. 걱정도 팔자다. 걱정도 팔자야.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본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고시원/독서실, 최저임금법 바깥의 지독한 노동착취.. 자리에 앉아서 업장을 지키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어떤 무언가라고 생각하는(아마도 공짜라고 생각할) 사람들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일까? 물론 알바자리는 참 맘에든다. 급여를 제외하면 공부하기도 좋고 집과의 거리도 가깝고.. 급여를 제외하면. 급여를 제외하면. 나 참. 건물주였다니. 슬그머니 근무 증거를 모으기 시작한다. 역시 반도의 노동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좀 비겁한가? 음, 내 생각이지만.. 40만원이 더 비겁한거 같다. 하긴, 일이 정말 한가하긴 하지만... 그래도 신체/시간을 구속당하고 간헐적인 사태에 대비해야하는 근로 역시 노동이잖아. 하고 흐물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역시... 수많은 알바를 겪으며 느낀 점이라면 사장걱정을 하는 알바만큼 미련한게 없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독서실 한 열람석에는 '나보다 못생긴 설현도 들어갔는데 내가 왜 못해?' 같은(비슷한 문구가 몇장 더 붙은) 말들을 쓴 포스트잇들이 붙어있다. 그 학생은 아직 출근 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매우, 매우 궁금하다. 그 설현을? 혹시 연예인지망생이 다니는 독서실인건가?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여러 자리에도 경쟁에서 승리하자! 꼭 간다! 2017학번 서울대 모과 이런 쪽지들이 많이 붙어있다. 음. 공부해야겠다. 이왕이면 몇몇 자리에는 '자라나라 머리머리'나 '솔로탈출'같은 메모들도 있었으면 재밌을텐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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