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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4/04 00:23:11 |
Name | 프렉 |
Subject | 일기 3회차. |
오전 0942 친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경기도권에 살지만 동생은 가정도 꾸렸고 하는 일이 있어 전라도 광주에 살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시간에 광주에서 나에게 전화가 올 일은 열의 아홉 귀찮은 일이라는 거다. 받기 싫었는데 받았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에 있으며 근처에 살고 계신 아버지 집에 있다는 거였다. 점심 먹으러 나오란다. 난 참고로 가족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특히나 아버지와는. 배고픈건 사실이라 대충 씻고 나섰다. 오전 1020 휴일이 그런지 몰라도 같은 시에 살면서 끝에 끝에 있는 행정구역이다보니 오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동생 내외가 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혼자 살고 계신다. 여러 번 재혼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이후엔 그냥 만남만 가지고 결혼까진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계신다. 각설하고, 중년 남성이 혼자사는 집에 젊은 신혼 부부내외가 뚱하니 앉아있다. 아버지는 그 나이대의 다른 아버지들과는 달리 자식들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시는 분이다. 나만 빼고. 비가 와서 우중충한 봄날씨에 딱 어울리게 아버지는 소주를 드시고 계신다. 술 좀 끊으라 노래를 부른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먹다만 족발, 김치, 족발집 인스턴트 냉면이 보인다. 집도 그나마 좀 치운 것 같다. 사람쓰자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싫다고 한다.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해서 언성 높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대충 대화에 어울렸다. 점심 먹을 무렵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후 1250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고기 비슷한 것을 먹은 것 같긴한데 그게 문제가 아니어서. 난 아버지와 식사가 불편하다. 우선 아버지가 늘 술을 달고 사시는게 마음에 안든다. 술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만 하면 역정을 내신다. 그런데 본인은 알까, 지금 자신의 앞니와 송곳니 잇몸 쪽에 꺼멓게 붙어있는 것들을. 누가봐도 이가 썩고 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란거다. 사실 오늘의 모임은 동생 내외의 결혼식 때문이다. 둘은 아이가 생겨서 이미 사실혼 관계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었다. 그 결혼식을 곧 올린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둘이서 조촐히 식을 올리라는 이야기를 했다. 검소하게 라는 말을 덧붙여서. 신혼 초기에 돈 쓰지말라는 충고로 들으면 오산이다, 사람 많은 곳을 기피하는 것이다. 예전엔 저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도 동생 말은 잘 듣는 편이라, 동생 내외가 어떻게 설득을 잘 했는지 식장에 참석하는 것은 결정을 한 모양이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제수씨가 청첩장을 주었다. 잘 받았다. 나는 당일에 접수를 받을 것 같다. 사촌 형들도 온단다. 벌써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오후 1403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샤워 끝나고 컴퓨터를 켜보니 넥센 야구하고 있는 중이다. 박주현이 호투하고 있다. 투수 없어서 구걸하러 다녀야할지도 모르는 이 팀에 쓸만한 선발 신인이라니 고척돔 맙소사. 심지어 자기 책임 이닝중엔 실점도 없었다! 그런데 신인 내려가니 형들이 갑자기 불을 지르기 시작한다. 과연 넥센이야 멀쩡한 게임이 없지. 오후 1801 ㄴ아ㅓ리ㅏㄴㅁㅎ러ㅏ윤 트레져 끝내기!!!!!!! 사랑해요 서건창!!!!! 싸이버는.........하.... 오후 1920 월요일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의 마인드를 달래줄 그 무언가를 하거나 먹거나 해야지 싶었다. 갑자기 팝콘에 콜라를 장착하고 띵작 영화 한 편이 보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이 있었다. 볼거리는 준비했으니 근처 2마트 에브2데이 가서 노브랜드 팝콘과 콜라를 사올 예정이었다. 노브랜드 팝콘이 없다. 아.. 진짜 혜자 상품이었는데.......... 결국 나초로 방향을 선회해서 구입했다. 콜라는 그대로. 오후 2104 "그 누구도 자신의 끝을 알 수는 없네. 누가 우리를 이끌 것인지도. 인간은 왕에게 복종하고, 아들은 아비를 따르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게임을 하게 되는 거라네. 기억하게. 어떤 게임을 누구와 하든, 영혼만큼은 자네 것이야. 게임의 맞수가 왕이든 권력자이든 말일세. 신 앞에 서면 변명이 소용 없어. '누가 시켜서 했다'거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건 안 통하지. 명심하게. (중략) 아주 좋네. 자네는 이벨린에 있는 부친의 집으로 가게. 이제는 자네 집일세. 거기서 순례자들의 길을 지켜주게나. 특히 유대인과 무슬림들을 보호해 주게나. 예루살렘은 모두를 환영한다네. 유용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이야. 힘 없는 자들을 지켜주고, 어느 날 내가 무력해지면 와서 나를 도와주게나." 오후 2325 이래서 주말 밤에 감성터지는 거 보면 안된다. 저 위의 대사 덕분에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전 0006 일기 3회차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0023이 되었다.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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