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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4/04 23:48:54
Name   프렉
Subject   일기 4회차.
오전 0210

월요일이 와버렸지만 지금은 일요일의 연장이라고 믿고 싶다. 내가 못 논 만큼 인저리 타임이 있어서 주말을 늘려주는거다.....
하지만 이 시간에 달리 뭘 할 수 있을까. 애꿎은 마우스만 클릭하며 이리저리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생각해보니 출근하면 웹툰을 볼 수가 없다. 월요일 것들 중에 재밌는 것들만 골라서 본다. 곧 개막하는 메쟈리그에 앞서 한국 선수들 영상도 본다.
슬슬 졸려온다. 굳은 마음가짐으로 잠이 든다.

오전 0834

일어나자마자 보일러 켜고 물 덥히고 샤워한다. 마실 물도 올려둔다.
씻고 나와서 머리 말리고 얼굴에 스킨로션 대강 바르고 나가기 전에 비질을 한 번 한다. 밤새 쌓인 머리카락이랑 먼지가 수북하다.
혼자 살아도 이 모양인데 둘 셋이 사는 집은 대체... 한 번 뒤돌아보고 문 잠그고 출근.

오전 0936

출근 찍으니 사무실에 팀장과 사원 한 명이 먼저 나와있다. 아침인사를 한다.
오늘 아침은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 가볍게 인사하고 책상 옆에 마실 물이랑 탕비실에서 간식을 꺼내서 세팅한다.
이제 신나게 가라 글을 적어대면 된다. 못 먹은 아침은 탕비실에서 꺼내온 간식으로 대체한다. 초코바 하나 다 먹으니 관리자가 출근했다.
초코바 마지막 조각을 아작아작 씹으면서 물을 마셨다. 먹을 거 다 먹었으니 이제 글을 적어보자.

오전 1055

확실히 오늘 뭔가 기분이 좋다. 글이 술술 써진다. 열 시 반쯤에 하나 마무리하고 지금 두 개째 완결중이다.
오늘 기분이 좋을만한 큰 요인이 있었다. 이사가 안오고 있다. 갑자기 팀장님이 사내 메신저로 오늘 이사님이 강남 사무실로 출근했다는 말을 한다.
아. 갑자기 사무실 공기가 쾌적해지고 엔돌핀이 샘솟는듯한 기분이 든다. 적어도 밥 먹기 전까지는 이사 얼굴을 안봐도 된다.
글을 완료하고 세 개째 글로 돌입한다. 키보드 치는 소리가 좀 컸는지 옆에 앉아있던 관리자가 "xx씨 오늘 일 열심히 하네."라는 되도 않는 말을 한다.
언제는 열심히 안했나. 글 적다가 키 하나 부수면 우수사원증 받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오후 0030

인생에 몇 없는 즐거운 날임에 틀림없다. 관리자의 멜론 선곡에 신곡들이 대거 침투했다. 대부분 옛날 노래지만.
글 쓰면서 새로운 리듬이 귓가에 들리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다. 점심 먹기 전에 네 개째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마마무 진짜 좋아하네 넌 is 뭔들이랑 1cm의 존심은 빠지질 않어.

오후 0103

이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점심식사 약속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혼자 밥을 먹으러 나왔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도 안 모르는 곳에서 편안하게 밥을 먹으면 컨디션이 이어질 것 같다.
길 건너에 맛있는 선지해장국 집이 있다. 왠지 모르게 건물 근처 블럭에서만 밥을 먹게되서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
가서 철분 보충 간만에 했다. 국물 뜨근하니 든든하다. 날이 풀려도 맛있는 건 뜨거운 줄 모르고 먹게된다.

오후 0156

이사가 들어왔다. 주말에 사내에서 내기 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어쩌다가 졌느냐고 깔깔 웃는다. 뭔 소리야.
신경 안쓰고 목례만 한 다음에 손가락을 열심히 놀렸다. 기본적으로 일하는 척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별 말 안하는 사람이다.
뭐 실제로 '열일'하고 있으니 당당하게 일을 계속했다. 새삼 느끼는거지만 우리 팀원들 참 커뮤니케이션 안한다.
대부분 업무적인 내용은 사내 메신저로 이야기하고 따로 이야기 해야하는 것 들은 그 사람 자리 옆에 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게 기본 매너인 것은 맞지만 뭐라고 하지. 분위기가 딱딱하다고 할까. 서로 간섭 안하면 나도 좋은 일이니 별 말 하지 않는다.

오후 0245

졸린다. 느낌이 왔다. 이건 키보드 치다가 졸면서 키 하나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다가 옆에 앉은 사람에게 걸려서 잠을 깨워지고 챙피를 당할 필이다.
바로 일어나서 탕비실로 향한다. 컵에 얼음을 서너개 담고 더치 커피를 좀 부은 다음에 찬물에 타서 마신다. 두 세 모금 마시고 다시 물을 타서
책상으로 가져온다. 이거 꾸준히 마시면서 졸음을 쫓을 생각이다. 오늘은 글이 정말 잘 써진다. 간만에 터치 없는 하루 좀 보내보자.

오후 0449

잠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복도를 걸어 회사로 가고 있었는데 맞은 편 사무실에서 엄청 이쁜 여성이 나오는 걸 봤다. 눈호강.

오후 0645

글을 열 두개나 썼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열일할만하다 싶어서 썼는데 평소보다 많이하긴 했다.
덕분에 오늘 근무시간 내내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이 일에 집중했다. 관리자도 뭐라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는듯 쳐다보고 있다.
집에 가게 음악이나 끄라고 속으로 생각하니까 한 5분 있다가 음악을 끄고 서류 점검을 한다. 바로 퇴근할 수 있다.
창문 닫고, 쓰레기통 비우고 겉옷을 걸쳤다. 인사하고 퇴근 찍고 나오니 정확히 정각 오후 7시다. 좋은 근무였다.

오후 0730


결론만 말하면 아침에 나올때 물 올려놓은 걸 까먹었었다.
인덕션인 덕분에 화재가 나진 않았지만 문 열자마자 자욱한 수증기가 밀려와서 정말 깜짝 놀랐다.
불이야하고 소리 지르려다가 탄내가 덜나서 들어가봤더니 냄비가 저 꼴이 났다.
뇌를 어디에 떨어뜨리고 다니는 건가. 가스 레인지였으면 나 때문에 사람이 다치거나 큰 불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아주 오랜만에 자괴감을 느낀다.

오후 0934

한 시간 동안 왜 그랬는지만 중얼 거렸던 것 같다. 얼굴 모르는 이웃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인덕션이라 다행이다.
창문과 현관을 계속 열어두고 있다. 아직 물탄내가 덜 나갔다. 빨래도 해야한다. 아 병신새끼...천하의 등신새끼..

오후 1030

배가 고프다. 너무 격정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나보다. 심하게 고프다.
편의점에서 라면이랑 삼각김밥을 사왔다. 물 끓이고 붓고 뜯어서 먹었다.
왜 그랬을까라는 말만 입에서 나온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끼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미안하다.

오후 1148

빨래가 끝났다. 방에서 냄새도 안난다. 빨래를 널었다.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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