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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4/18 03:21:56
Name   커피최고
Subject   서평 -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에 반하는 사람들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김시천 지음, 더퀘스트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에 반하는 사람들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개별 시민들은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사회'라는 시스템을 구성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라, 그것을 수정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저항의 역사라고 부른다. 저항이 성공하면 모를까, 혹여 그것이 실패한다면 '반체제적'인 행위로 규정되기 십상이다.

반체제, 이단, 그리고 역적 등과 같은 표현은 '사제' 프레임에서 비롯된다. 한국, 그리고 더 나아가 동북아 사회 시스템의 근간은 이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뿌리깊게 자리잡은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두 세계 간의 간극은 바로 여기서 기원하는 문제이다.

'사제' 프레임, 즉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이들간의 관계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설정하는 프레임이다. 스승의 뜻에 반하는 제자는 문제아이며, 이단이고, 비판의 대상이다. <논어>는 이른바 '사제모델'에 근거한 최초의 책이며, <논어>의 막강한 영향력은 바로 이러한 모델의 파괴력에 기인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제모델'이 등장하기 이전의 중국은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된 군신관계로 묶인 사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혈연 관계의 결속력은 약해지기 마련이고, 그 사회는 분열의 양상을 보인다. <논어>의 사제모델은 바로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혈연 대신 '가르침'이라는 가치를 통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혈연은 물론이거니와 시공간을 초월하는 확장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방향성은 그 속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성향에 따르게 되어 있다. 공자가 그 중심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시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하나의 시스템은 단 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으며, 무엇보다 편집자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논어>와 유가에 있어서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자공이며,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역시 이와 같은 '사람들'을 조명하는 것에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논어>의 텍스트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유가 사상을 이해하고, 공자와 자공 같은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적인 논의인 것이다.

잠깐 현대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만들어내고,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가? 누군가가 부르짖는 가치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그 이면에 깔린 개개인들의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지 모른다면 우리는 단상 위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고, 또 설명하기 위해 활용하는 각종 이즘적 도구들의 객관성과 보편성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특정 집단들과 각종 권력들이 유착하여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담론들을 허구로 간주하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대중들은 그러한 도구들을 올바른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것의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면 현실이 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들이 반체제적, 이단의 프레임에 갇혀 비난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러한 프레임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누가 이러한 프레임을 구축하였는지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며, 그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비판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갖추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각종 NGO 단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인권'운동을 벌이는 이유,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한국의 판도 등 다양한 현상들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러한 맥락에서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참 나쁜 제자'로 여겨져 온 '재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재아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못된 제자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공자가 언급했던 공문사과의 가장 뛰어난 제자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출중한 인물이었던 재아에 대한 평은 부당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공자와 자공의 시스템에 반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부당한 평가를 받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적되면서 그 부당성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공자의 인도 사상에서 발전한 '천도' 사상의 시발점이자, 그가 사용한 가정법 논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인물들은 늘 시스템의 발전을 불러왔다. 우리가 반시스템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이유이다.

당신이 만약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사람을 읽어야 한다. 사람을 읽지 않고서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과 그 작동원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없다. 또한, 주의해야 할 점은 한 시스템은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구축된 것이기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지 않고 그 속의 사람을 읽으려 한다면, 맹목적인 찬양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찬양을 하면, 역으로 그것으로부터 먼 자기자신의 비참함을 힐난하게 된다. '소외'되는 것이다.

맑스는 이를 자본주의 체제에 대입하여 이러한 소외 현상을 '물신화'라고 이야기하였다. 자신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 주는 노동이 좋은 노동이기에,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만드는 노동은 피하게 된다.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한 이들은 외려 그들의 물적 풍요로 인해 찬미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현대 다원사회에서는 각 분야마다 상기한 메커니즘이 형성된다. 나는 그것을 모두 묶어 '시스템 종속화'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을 읽는 것은 물론 중요하나,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지 않고서는 시스템에 종속되고 자기소외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시각을 갖출 능력을 함양할 필요가 생기고, 지식인들의 의무는 그런 대중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이 책은 아주 먼 옛날의 책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기저에 있는 시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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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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