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4/29 00:00:09
Name   헤베
Subject   [조각글 23주차] 희나리.
제목 : [조각글 23주차] 도둑

[조각글 23주차 주제]
인류 멸망 시나리오

*주제 선정자의 말
1. 멸망하는 이야기를 다뤄도 좋고
2. 멸망이후를 배경으로 쓰셔도 좋습니다.

- 분량, 장르, 전개 방향 자유입니다.

맞춤법 검사기
http://speller.cs.pusan.ac.kr/PnuSpellerISAPI_201504/

합평 받고 싶은 부분

부분은 따로 없지만, 합평 환영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요.


본문

S는 낡고 녹슨 문틈 사이로 반쯤 몸을 집어 넣다가 끼익- 하고 나는 소리에 기절할 듯 까무러 치며 숨 넘어가려는 사람처럼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 전 3일동안 날 밤을 새며 세운 계획에 이 같이 끼익-하는 소리는 변수에도 놓지 않았기에, S는 그 자리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현관 문고리를 부서질 듯 움켜쥐고는 얼어 붙고 말았다.

실행에 옮기기 전 이 근방에서 1시간 동안 요분질치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온 시간이 단 2~3분 만에 허사가 되어버렸으니, S의 콧망울을 타고 굵은 땀이 흘러 내렸다.

저 밖에선 이 밤 중에 여러 발의 총성소리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S에게 그건 언제나처럼 중요하고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S는 호기롭게 집 안으로 들어서지도, 도로 문을 닫고 서둘러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혼란의 가운데에 놓였다.

목석이 되버린 듯 삽시간에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금방이라도 신음소리가 튀어나오려 하였다.

몸을 비집고 들어가기엔 어중간하게 열린 탓에 침입을 결심하고 다시 들어가려 한다면 소리가 나던 철문을 조금 더 열어 젖혀야 했다.

'분명 다시 문고리를 놓고 문을 닫아버려도 소리가 나겠지만 도망가 버리면 잡지 못한다.'

이미 경직되어 버린 근육을 움직여 문을 열 수나 있을까, 고뇌마저 근육을 죄어왔다.

'3일이었다. 내가 이 집을 털어 먹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사흘이나 걸렸다.'

이대로 빈 손으로 돌아가기엔, 그간 고생한 시간이 떠올라 S의 마음이 굳어졌다.

일단 온 몸에 들어간 힘을 나즈막하게 빼도록 노력하며 아주 부드럽고 천천히 문고리를 조금씩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이 집에 내려앉은 무거운 적막 사이를 채우는, 마치 조그만한 아기새가 수차례 끼익-끼익 거리듯 문이 열렸다.

S는 이 과정에서 난 소리에 천둥이 쏟아져 내리는 듯 하였으나, 이미 결심한 그의 마음에 변화는 없었기에 다만 이 집 어딘가에서

무거운 잠을 자고 있을 누군가가 듣지를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잠을 자라. 잠을 자. 깨버린다면 더 안좋아질 뿐이야.'

S의 몸이 들어가기엔 이미 충분한 틈이 열렸으나  내친 김에 활짝 열어놓았다. 다행히 어느 정도 열린 문에서 방금과 같은 S의 신경을 긁어 놓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
다만 바깥의 추운 공기가 밀려 들어오는 듯 하였으나, 곁눈질로 살펴본 집 안 내부에 문이란 문들은 모조리 닫혀 있는 듯 하여, 자고 있을 누군가의 '따뜻한 피부' 에 닿아버릴 일은 없어보였다.

그가 거사라도 끝마친 듯 조용히 내쉰 한 숨이 적막한 집 내부의 어떤 것들을 모조리 잠에서 깨워버리고 돌고 돌아 오는 듯 하였으나 그는 성공적으로 침입한 것에 대해 -아무도 달려나오진 않았으니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으쓱해져 코를 킁킁거렸다.

낯선 사람이 사는 곳에 그 낯선 냄새에 이상하리 만큼 기분이 좋아진 S는 가볍게 손을 털며 긴장을 떨쳐내려 하였다.

'문제가 있었지만 잘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잠에서 깨지만 않는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적어도 당신의 신변엔 말이오.'

신발 위로 두터운 양말을 덧대 신은 S는 마치 외밧줄 위 줄광대처럼 조심히 그러나 조금은 수월해진 동작으로 집 안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안 살림은 단촐하기 짝이 없다. 단조로워 보이는 거실엔 오로지 오래된 2인용 가죽쇼파와 협탁 위 조각조각 부서진 수석만이 보였기에, S는 바보같은 공간낭비라며 혀를 차며,

베란다 좁은 문틈으로 우는 바람소리를 따라 까치발을 들고 부엌으로 가보니

물기하나 없이 건조한 싱크대 위, 식기를 정리해 놓은 것으로  2개의 사기그릇과 오래된 동수저 두 쌍이 보였고, 가스레인지 위엔 먼지만이 켜켜히 쌓여진 채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이 집도 통조림으로 연명하고 있나 보군.'

찬장을 열었더니 부연 먼지가 쏟아져 나왔다. S의 얼굴이 먼지로 뒤덮혔다.

입꼬리를 찡그리며  고양이처럼 고개를 휙하고 돌리더니 뒤꿈치를 들고 한 쪽에 보이는 화장실로 총총거리며 걸어갔다.

습관처럼 불을 키려던 S는 이미 오래 전 도시전력이 바닥이 난 걸 상기하고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떠 칫솔이 몇 개인지 가늠하였다.

두 개가 세면대 위에 버려진 듯 놓여있었고 마치 커다란 거인 두 명이 양쪽에서 비틀어 짠 듯한 치약이 한 쪽에 보였다. 이미 수도가 말라버린 지 오래라, 어느 세대나 화장실은 제 구실을 못하는 애물이었다.

다시 부엌과 거실의 경계로 나와 가만히 서있으니 달빛으로 집 안이 환해졌다. 문득 부서진 수석에 눈이 향했다. 수정만큼은 아니지만 다소 투명한 감이 있으며, 곳곳에 불규칙적으로 검은 자갈들이 총총히 박혀 있어 희귀성을 가지고 있는 종이었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호기롭게 걸어가 창 밖 눈부신 달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는 작은 조각을 쥐었다.

수석에 빛을 전하던 달빛은 S가 눈 앞으로 수석을 들어올렸음에도 집요히 쫓아오며 마치 형광체처럼 빛을 발하게 하였다.

'주먹도끼로써 딱이군.'

S는 마치 보석을 감정하듯 세심하게 살피다가  다시 내려놓으려는 듯 살며시 협탁 위로 내려놓다 도로 주어 가방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는 부드럽게 선을 그리며 거실 한 쪽 구석으로 가 집 안 전체를 관망할 수 있도록 서서 침을 꼴깍 삼키곤, 두 곳의 닫힌 방문을 차례로 무겁게 쳐다보았다. 그는 마치 눈빛으로 방문을 일그러트릴 듯 하였다.

집 안의 모든 어둠이 S의 눈으로 들어왔다. 그나마 밝은 곳은 좌측에 안방 문과 정면에 보이는 문, 들어오면서 힐끗 보았던 주방 옆 깊숙한 곳의 문을 보이지 않았다.

'이 쪽 문과 이 쪽 문, 저쪽 도합 세 개의 문 너머 중 내가 원하는 게 있는 곳이 어딜까. 어디로 가면 수월해질까, 이미 내 눈을 어둠에 익숙해져 있다. 정신이나 몸이든 마찬가지로.....두려울 게 무엇이냐,
오로지 기근만이 내 적이요, 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 내 것이 되야만 한다.'

S는 가방 속 부서진 수석을 도로 꺼내 힘껏 쥐었다.

'이 얼 빠진 놈이, 주먹도끼로써 딱 좋다니까.'

S는 안방 문과 부엌 옆 작은 방을 제쳐두고 현관 옆 작은 방으로 긴장된 발걸음으로, 무언가 모르게 조금은 표홀해진 발걸음이 집 안의 공기를 울렸다.

좀 전 이 집의 현관문을 들어 설 때와는 정 반대로 쾌락과 묘햔 흥분이 그에게 뒤덮어져 있었다.

밤 중의 차가운 달빛이 정말 '도둑놈'처럼 문고리를 살며시 돌리는 그의 등 뒤로 업혀 있었다. 가벼운 나무문 이었기에 무리 없이 열렸다.

등 뒤에 업힌 달빛이 어깨 위로 먼저 고개를 내미니  방문 사이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갔다.

다소 환해진 작은 방 안에 적치된 물건들은 어둠에 익숙해진 S의 눈으론 손쉽게 식별이 가능하였다. 한 쪽 구석모서리에 둘둘 말아 비스듬히 세워 놓은 여름용 격자무늬 대나무카펫이 마치 정승처럼 서있었고

낡은 베이지색 러그에 흩어져있는 오래된 잡지들 위로 작동이 불가해 보이는 재봉틀이 저 하늘에서 던져놓은 듯 내팽개처져 있었으며, 키가 제각기 다른 양초들이 흘린 눈물들이 러그 위로 뿌리내려 비석처럼 붙어 서있어 작은 동산의 공동묘지를 연상케하였다.

S는 머리를 흔들며 방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이제 두 곳이군, 두 곳 중 적어도 한 곳엔 사람이 있을 게다. 어디 일까.'

안방처럼 보이는 곳을 바라보며,

'가장 크고 넓은 방. 여기엔 분명히 누군가 있을 것이다. 굳이 깨우지는 말지.'

그는 오른쪽으로 돌아 작은 부엌을 지나 이 집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위치한 방 문 앞에 섰다. 그곳을 잠식한 어둠에서, 마치 검은 잉크가 뚝뚝 떨어지는 듯 하였기에 어둠에 익숙해진 S의 눈에도 그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었더니 별안간 단단히 닫힌 방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휘파람처럼 새나오는 게 미묘하게 느껴졌다.

'창문이 열려있나, 안방을 같이 쓰나보군'

S는 방문을 열었다. 과연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으며 초겨울의 서리어린 푸른 바람이 S의 얼굴을 송곳처럼 쑤시며 지나갔는데,

S의 온 손가락과 발가락이 얼음물을 넣은 듯 차가워지며 팔뚝과 종아리까지 저릿해졌다. 바람 덕분은 아니었다.

'거기서 숨을 쉬고 있었구나!'

창문 바로 아래 세로로 놓인 침대 위로 사람 하나가 홑이불만 덮은 채 오롯이 불어 닥쳐 들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누워 있었다.

너무 어두웠기에 성별이나 나이, 몸이 올곧은 사람인지, 어딘가 하자가 있는지, 그 모든 게 제대로 파악이 되진 않았지만 이는 분명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핏기 빠진 얼굴색이 그의 놀라움을 대신 하였다. 하마터면 쾅-하고 문을 닫고 나갈 뻔 하였으나 그는 재빨리 평정을 되찾으며 수석이 깨질 듯 움켜쥐었다. 손목과 손마디가 시큰해졌다.

와중에 내려치기에 알맞도록 날카롭게 모가 난 부분으로 다시 틀어 잡고는,

'깨어버렸나! 나를 노리려 그 어두움 속에서 가자미 눈을 뜨고 나를 살피고 있는 것이냐! 왜 그러고 있는 것이지! 덤벼들지 않고 뭐하는 짓인가!'

S는 왜인지 모르게 광분하여 눈에 칼을 세우고 당장이라도 누워 있는 그 '인간'의 피로 수석을 물들이려는 듯, 다가들었다.

그 때까지도 그 사람은 꿈적도 하지 않고 마치 옛 여인과의 달콤한 꿈에 빠진 듯 뒤척이는 것도 없었다. 그냥 잎을 친 마른 수숫대처럼 길고 깡마른 몸을 쭉 뻗고 가지런히 손을 모아 단전 위로 살며시 올린 채로, 착각인 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깨어있다면, 당장 나와 무릎을 꿇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게 해주지.'

다정하게 손을 뻗으면 어루만질 수 있을 정도로 다가섰으나, 무정하게도 S는 모가 난 부분의 수석을 천천히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그 때,  메마른 목소리와 폐병환자처럼 피틑 토하는 듯한 쿨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저승에서 들리는 듯 이 작은 방과는 너무나도 먼 곳에 있는 거 같은 목소리였다.

"안타깝지만 그 녀석은 쇠망치로 내리쳐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몸에서 온 힘이 빠져나갔다. 얼굴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 보았다.

"늙으면, 잠도 없어지고.....이렇 듯 귀만 밝아져서 큰일이지요."

"나를 놀리는 것인가?"

"애비가 애타게 불러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죽어버린 거라오."

노령의 남자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로 이 작은 방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이 등 뒤로 쏟아지며 역광 탓에 남자의 얼굴엔 그늘이 끼어있었다.

".....괜히 마른 게 아니로군."

가까이서 자세히 바라보니 과연,  채 마르지 않은 장작 같아 보였다.

S의 눈에서 잠깐 동정이 피어오르다가 가라앉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그에게로 몸을 돌려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남자의 몸이 좌우로 조금씩 흔들렸다. 거동이 불편한 것이었다.

"병원 사람들도 기피하더군요. 이 녀석은 방사능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애먼 데로 향하는 듯 하였다. 얼마 간의 침묵이 흐를 동안 S는 자신과 이들을 둘러싼 이 어둠, 그의 슬픔이 더욱 짙어지는 듯 하였다.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버리고는, 집으로 데려왔지만 삼일을 꼬박 토하고 눈과 코와 귀에서 피를 쏟아내더니, 사흘만에 죽어버렸습니다."

"당신도 몸이 성치만은 않아 보이오."

노령의 남자는 발을 절뚝거리며 한 걸음 다가섰다.

"아들을 간호하는 동안 방사능이 몸에 쌓여버려서 눈이 멀어버렸고, 몸이 말을 잘 안 듣게 됐지요."

"그거, 참 안됐소. 많은 사람이 반병신이 되거나 불구가 되었지. 죽은 사람 모양새가 더 귀하게 보일 정도로 말이요."

"......죽은 아들은 저리 편하게 누워 있지요. 그리고 나는 산 지옥에서 살고 있다오."

노령의 남자는 누워 있는 아들 쪽을 바라보는 듯 하였다. 불편한 몸으로 한 걸음 더 다가오려는지 지팡이를 들썩거렸다.

"이 쪽으론 오지 않는 게 반갑겠소. 우리가 가까이서 얼굴을 맞댈 사이는 아니잖소."

"간청하오."

"무얼 말이오?"

그가 돌연 비통한 어투로, 그간의 고통과 비애를 모조리 쏟아내더니

"마,마지막으로  아이 얼굴이라도 어루만졌으면 하오, 허락해주시오!." 라며 통곡하였다.

S는 크게 당황하였지만 콧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마지막이라니,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구만, 아직 당신의 방은 살펴보지 못했소. 나도 여기 오래 있고 싶지는 않군."

S는 그 노령의 남자의 목소리에서 저물어가는 마지막 세대로써의 울분과 절규, 이런 식으로 밖에는 사그라질 수 없는 현 인류의 운명에 대한 통탄한 비애를 느꼈다.

"쓸만한 게 있을리 없겠지만, 둘러나 보겠소."

그는 가방에 수석을 집어 넣고, 도로 빼낸 손엔  담뱃갑이 들려 있었다.

늙은 아버지는 희파란 달빛을 등에 지고 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눈을 탁 감았다.

"차라리,죽어도 좋습니다. 차라리 머리가 깨져 죽는 편이 나을 지도......"

"어느 식으로든, 곧 그리 될 것 같소."

S는 작은 방에서 걸어나와 노령의 남자 앞을  (노령의 남자는 마치 유령처럼 느껴졌다)쌩하니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섰다. 노령의 남자의 허한 눈길이 S를 쫓았다. 어두운 안방의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그의 목이 칼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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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참가해봅니다. 조각글......유익하네요.
전개가 빠른 감이 없지 않아 있네요. 문맥, 맞춤법이나 어색한 곳은 여러 차례 손보려고 했지만 서두른 탓에 깔끔해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얼그레이님이 24주차 주제 올리셔서......저 역시 부랴부랴 올립니다.

소주 한 잔 마시고, 비 오고 난 후 바람 부는 이 밤에 마무리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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