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7/19 01:11:45
Name   헤베
Subject   [34주차] 땀
주제 : 열대야
권장 조건 :
1. 소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 밝게는 아니더라도 결말을 너무 처지지 않게 써주세요.
3. 어두운 글이면 비꼼으로 유우머러스하게 써주세요.
4. 위트있는 소설로 부탁드립니다.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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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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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대로 숨을 쉬고는 있는 걸까- 라는, 병적인 의문이 들고서야
나는 지금 심각한 더위를 마시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리 즈음에서 시작된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 턱 끝에 맺혔다. 혀로 입술 주변을 내두르니 시큼한 맛이 느껴졌다. 나는 면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훔쳐냈다. 거뭇한 얼룩이 생긴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 속엔 내다 버린 장갑들이 대충 묶어 버린 자투리 노끈들 사이에 무수하였다.
'이러다간 정말 쓰러지고 말 거야.'
전공서와 먼지가 쌓여있는 선반 위로 두 손을 짚고 죽은 듯이 땀을 식혔다.
한참 후 눈을 뜨니 시선이 닿는 곳이 회오리치듯 돌았다.
긴 숨 한 길에 먼지가 타고 올라와 뺨에 엉겨 붙었다.
내 안에서 나온 그 숨마저 얼마나 뜨뜻하고 미지근한지 숨 쉬는 것도 불쾌해진 나머지,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 이런 더위엔, 나 하나 죽어도……. 심지어 누군가를 죽여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이 땅 아래 지하 창고가 나를 가두고 옥죄는 듯하였다. 평소처럼 숨을 쉬는 게 불편해졌다. 귓속에선 이상한 소리까지 들려왔다. 나는 절박해져 속으로 외쳤다.
'이 더위에서 이만 벗어나야 해, 모두를 위해서!'
나는 어깨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으로 걸어가 밴딩 프레스 머신의 전원을 내렸다. 그것은 노쇠한 엔진처럼 수 초간을 탈탈거리다 이내 숨이 넘어가더니 진동이 멎었다.
그리고 머리 위 벽붙이 선풍기까지 끄고 나니 기분이 조금 상쾌해졌다.
'이런 날까지 작업장으로 내모는 사장은 반드시 벌 받을 거야.'
지상으로 데려다줄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상승버튼을 눌렀다.
도르래 기계가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렸다.
나는 점차 가까워지는 지상의 빛과 냄새, 그 안에서 희열과 낭만으로 충만해졌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난청이 들리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기계 소리! 오늘은 이만 안녕이다!'
창고 위 성냥갑만 한 사무실에 올라서자 나와 마찬가지로 온 얼굴이 땀으로 흥건해진 총무가 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부채를 연신 부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괴로운지 힘겨운 표정이었다.
"성수 씨 왜 벌써 올라오는 거야?"
그녀는 잔뜩 찡그린 표정과는 상반되는 상냥한 어투였다.
나는 그녀의 책상 위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수백 장의 서류 더미들을 보자 다시금 땀이 흐르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답답한 속내를 삼키며 이만 가야겠다고, 어색하게 말하자 그녀가 토끼 눈이 되어 캐물었다
"어머, 왜 벌써 가려는 거야? 왜 가야 되는데?"
그녀는 여전히 맹렬한 태세로 부채질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모습이 나를 더 지치게 하였는지 조금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 이상 더했다간 쓰러질 것 같거든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며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은 듯하였다.
"그래 날도 더운데 가봐요. 성수 씨는 참 좋겠네. 가고 싶으면 가버리고……. 난 일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나는 그녀의 말투에서 비아냥거리는 어조를 눈치챘지만 무시하며 소지품들을 챙겼다. 와중에 그녀는 자꾸만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구시렁대고 있었는데, 심지어 부채를 책상 위로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나도 감정이 격해져 온갖 것들을 가방에 쑤셔 던지듯 집어넣고 돌아 나오며 말했다.
"그 정신 사나운 서류들 제발 좀 정리해가면서 일하면 안 돼요?"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난 그녀가 따지려 입을 여는 걸 다물게 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아니꼬우면 차라리 내 집으로 같이 가시죠. 맥주나 한잔 하게, 그러다 보면 뭐 더 좋은 것도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녀의 대답도 듣지 않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등 뒤에서 그녀가 씩씩거리며 저 짐승 같은 새끼, 입을 쥐어 뜯어버리겠다는- 흉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차 문을 열었다.
뜨겁게 데워진 차 안의 공기가 한증막의 그것 같았다. 시트에 앉자 팔뚝의 살갗이 벗겨지는 듯하였다.
'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잖아.'
나는 그녀가 쫓아 나올까 싶어 재빨리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오후의 태양은 위세로운 불꽃으로 온 동네를 들쑤시고 있었다.
녹을 대로 녹은 아스팔트는 끈끈이덫처럼 자동차들의 바퀴를 잡고 있었고 길 위의 노점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이 빠진 표정이었는데,
마치 그 자신이 길 위에서 익어버릴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었다. 한쪽에선 동네 여남은 아이들이 나무 그늘로 모여선 돌멩이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모든 것이 삐걱거리고 무기력하며 제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음에
나는 놀라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단지 입구를 막고 서있는 경비원 하나가 차창을 내리게 하였다.

"만차요, 다른 곳에 주차하십시오."
그의 곁엔 만차를 가르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한 번도 이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것도 이 오후에 말이요."
"날이 더우니 모두 외출하기를 꺼리는 것 같소."
그는 위험할 정도로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기에 안위를 물었더니,
"난들 어쩌겠소? 전부 맹하고 까막눈인지라 사람이라도 서 있지 않으면 밀고 들어와 버리는 걸." 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모자를 벗어 주름으로 자글자글한 이마의 땀들을 닦아냈다.
"내 나이도 이제 60줄인데 이렇듯 미련하게 서 있는 것이 자살행위가 아니고서야 무엇이겠소?"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후에 구급차 소리가 들려온다면 나인 줄 아시오……."
그가 형광봉을 흔들며 내 뒤로 붙은 차로 향했다. 그는 그 차주에게도
내게 했던 말들을 반복하였다.
나는 속으로 저런, 측은한 영감님- 이라고 되뇌며 한산한 골목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왔다.
여전히 반자동인형처럼 형광봉을 흔들고 있는 경비원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줄까 싶었지만, 마음을 접기로 하였다.
그 영감의 사정에 동조를 하게 되면 어째서인지 나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였다.
단지 내로 들어서자 멀미가 날 정도로 빼곡히 들어찬 색색의 차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차창이나 보닛에 튕겨 나온 반사광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것보다 고역인 것은 수백 대의 차체에서 발산되는 열기였다. 그 쇳덩어리들은 묵묵히, 비인간적인 더위를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자주 뱉어내고 있었는데, 그 사이를 걸어가려니 내장까지 삶아지는 느낌이었다. 걷고 있어도 집에서 멀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속이 메슥거려 쓴물이 올라왔다. 여전히 태양은 위에 있었다.
바란다고 이루어질 리 만무하지만, 단 몇 초라도 태양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빨리하였다. 이러다 정말 졸도하지나 않을까- 했지만, 노력은 곧 결실로 돌아왔다. 집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완주한 마라토너처럼 수그려 앉아 팔꿈치를 허벅다리에 올린 채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마침 앞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가 나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청년이 죽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탁탁거리며 다가왔다.
"총각 괜찮아요? 낯빛이 허옇게 뜬 게 가여워 어찌할꼬 쩍하니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날이 매우 무덥네요."
그녀는 손으로 내 이마와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고랑이 패인 손에 땀이 묻어났다.
"아무리 장사라 혀도 이런 날은 조심해야 혀, 까닥하면 픽하니 쓰러져분당께……. 언능 올라가 냉수 마시고 드러눠 있어요."
그녀는 나를 부축해 1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탔다. 내게 몇 층에 사냐 물어보고는 층도 눌러주었다. 곧 그녀는 내리면서도 내가 걱정되는지 측은한 눈길로 몸조리 잘하라며 당부해주었고 나는 짧게 대답하였다 문이 닫히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내 집에 들어간 나는 곧바로 옷을 벗어 아무 데나 던져놓고 샤워를 하였다. 욕실에 놓아둔 시계가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6시인데 비해 고작 30분 빨리 온 것이다. 나는 조금 허탈해졌지만 30분이 어디냐며 만족하려 하였다. 샤워하고 나와선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3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났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건 아니었는데, 침대 시트가 푹 젖을 만큼 여전히 더운 탓도 있었지만, 윗집의 에어컨 실외기가 소란스럽게 가동 중이었다. 마치 쇠고랑으로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였고 이 때문에 나는 조금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스스로 이까짓 쯤이야 그리 예사로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잘 타이르려고 윗집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맥주가 생각보다 달았다. 낮에 모조리 소진해버린 힘이 생기는 듯하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건지 무엇에 취하기라도 한 듯 비틀거렸는데 그때, 착각일까, 거짓말처럼 소음이 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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