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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5/14 15:12:43 |
Name | 리틀미 |
Subject | \"God\'s terrific\" \"하나님은 끔찍해... 굉장해...\" |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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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흡에 끝까지 읽었어요. 곡성이 대단하긴 하네요. 그냥 막 사람들이 글을 쓰고 또 쓰고 막 고백의 수사를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강한 텍스트가 인풋하면 아웃풋도 강하게 나오는 법이니까... 영화를 꼭 봐야겄다는 생각이.
원인과 결과를 짝짓는 인과율이 꼭 종교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인과율의 제1원인으로 두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과학은 언제든 종교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지요. 속류화된 심리학이나 생물학이 오늘날 종교(무당)의 영역을 담당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선동하며 사회 속에서 기능... 더 보기
원인과 결과를 짝짓는 인과율이 꼭 종교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인과율의 제1원인으로 두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과학은 언제든 종교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지요. 속류화된 심리학이나 생물학이 오늘날 종교(무당)의 영역을 담당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선동하며 사회 속에서 기능... 더 보기
한 호흡에 끝까지 읽었어요. 곡성이 대단하긴 하네요. 그냥 막 사람들이 글을 쓰고 또 쓰고 막 고백의 수사를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강한 텍스트가 인풋하면 아웃풋도 강하게 나오는 법이니까... 영화를 꼭 봐야겄다는 생각이.
원인과 결과를 짝짓는 인과율이 꼭 종교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인과율의 제1원인으로 두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과학은 언제든 종교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지요. 속류화된 심리학이나 생물학이 오늘날 종교(무당)의 영역을 담당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선동하며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언젠가 우리가 (아마도 흄처럼) 인과율 자체를 폐기하고, 어떤 비극에도 원인이 없고 어떤 악행에도 책임(결과)가 없다고 믿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신인류가 탄생하겠죠. 곡성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황정민 무당이 \'그냥 미끼를 문 거여\'라는 말을 한 건 상대에게 인과율을 뛰어넘어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절망하고 절망하라\'는, 한니발의 말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까지도 종교가 인과율에서 여타의 경쟁자들(의사들, 공무원들, 과학자들)보다 우세한 것은 \'하필 왜 내가?\'라는 지점에서 무보수 만능 하인인 신의 얼굴을 호출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겠죠. 과학은 확률만을 이야기하는데 종교는 \'바로 나\'라는 고유함의 인과를 이야기하니까요. 아마 언젠가는 과학이 어떤 얼굴(페르소나)을 가지게 되어, 그 고유함을 위로해 줄지도 모르겠어요.
원인과 결과를 짝짓는 인과율이 꼭 종교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인과율의 제1원인으로 두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과학은 언제든 종교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지요. 속류화된 심리학이나 생물학이 오늘날 종교(무당)의 영역을 담당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선동하며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언젠가 우리가 (아마도 흄처럼) 인과율 자체를 폐기하고, 어떤 비극에도 원인이 없고 어떤 악행에도 책임(결과)가 없다고 믿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신인류가 탄생하겠죠. 곡성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황정민 무당이 \'그냥 미끼를 문 거여\'라는 말을 한 건 상대에게 인과율을 뛰어넘어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절망하고 절망하라\'는, 한니발의 말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까지도 종교가 인과율에서 여타의 경쟁자들(의사들, 공무원들, 과학자들)보다 우세한 것은 \'하필 왜 내가?\'라는 지점에서 무보수 만능 하인인 신의 얼굴을 호출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겠죠. 과학은 확률만을 이야기하는데 종교는 \'바로 나\'라는 고유함의 인과를 이야기하니까요. 아마 언젠가는 과학이 어떤 얼굴(페르소나)을 가지게 되어, 그 고유함을 위로해 줄지도 모르겠어요.
과학자나 의사도 일상 언어로 돌아갔을 때는 과학에서의 확률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의사 교수님들이 확률에 대해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과학 공부하는 친구들은 논문 쓰고 실험할 때는 잘 이해하다가 말싸움할 때는 궤변론자로 바뀌고요. 과학에서의 확률의 의미와 가장 가깝게 설명한 걸 본 게 언제냐면, 소아암 환자 병동에서였어요. 부모들이 갖게 되는 절망감이나 죄책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뉴얼화되어서 설명하는 것이긴 하지만요. 최신 논문에 있는 지견들을 의학에 무지한 소아암 환자 부모들에게 설명... 더 보기
과학자나 의사도 일상 언어로 돌아갔을 때는 과학에서의 확률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의사 교수님들이 확률에 대해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과학 공부하는 친구들은 논문 쓰고 실험할 때는 잘 이해하다가 말싸움할 때는 궤변론자로 바뀌고요. 과학에서의 확률의 의미와 가장 가깝게 설명한 걸 본 게 언제냐면, 소아암 환자 병동에서였어요. 부모들이 갖게 되는 절망감이나 죄책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뉴얼화되어서 설명하는 것이긴 하지만요. 최신 논문에 있는 지견들을 의학에 무지한 소아암 환자 부모들에게 설명하는 의사의 모습... 천우희와 이분법으로 보자면 그저 미끼를 문 거라는 황정민의 모습에 훨씬 가깝겠죠. 어떻게 보면 부모 입장에서는 \"그저 절망하라\"라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고요.
지금 설명한 이 모습이 과학이 그 고유함을 위로하는 페르소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P.S. 사족이지만, 밑에 글에 있는 케이스는 아주 안 좋은 예이고, 소아과 혈액종양 교수님들은 \"그저 절망하라\"라는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절망해야 할 상황도 많지 않아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소아암 완치율 높습니다.
지금 설명한 이 모습이 과학이 그 고유함을 위로하는 페르소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P.S. 사족이지만, 밑에 글에 있는 케이스는 아주 안 좋은 예이고, 소아과 혈액종양 교수님들은 \"그저 절망하라\"라는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절망해야 할 상황도 많지 않아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소아암 완치율 높습니다.
음... 원래 의미는 리더십? 그런 거에 가까워요. 지도자 (군주)의 지도자로서의 아우라, 품새, 행동거지, 품격, 캐릭터 같은 걸 퉁쳐서 인(仁)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인군 (仁君)이라고하면 어진 임금이라기보단 좋은 임금? 임금 다운 임금? 그런 느낌이에요.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정치철학이 격변하게되면서 인에 대한 해석이 좀 달라졌어요. 이거 이쪽 전공하시는 분들이 보면 비웃을 텐데;;; 대충 공자-맹자-주자로 이어지는 제일 정통(?)에 가까운 해석체계에선 사심(私心)없이 공정한 것,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걸 말... 더 보기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정치철학이 격변하게되면서 인에 대한 해석이 좀 달라졌어요. 이거 이쪽 전공하시는 분들이 보면 비웃을 텐데;;; 대충 공자-맹자-주자로 이어지는 제일 정통(?)에 가까운 해석체계에선 사심(私心)없이 공정한 것,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걸 말... 더 보기
음... 원래 의미는 리더십? 그런 거에 가까워요. 지도자 (군주)의 지도자로서의 아우라, 품새, 행동거지, 품격, 캐릭터 같은 걸 퉁쳐서 인(仁)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인군 (仁君)이라고하면 어진 임금이라기보단 좋은 임금? 임금 다운 임금? 그런 느낌이에요.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정치철학이 격변하게되면서 인에 대한 해석이 좀 달라졌어요. 이거 이쪽 전공하시는 분들이 보면 비웃을 텐데;;; 대충 공자-맹자-주자로 이어지는 제일 정통(?)에 가까운 해석체계에선 사심(私心)없이 공정한 것,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걸 말해요. 그런데 이 때 사심 없이 공정하다는 건 내가 중재자고 A와 B 간의 이해관계에 대해 사심 없이 공평하게 판결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나와 A간의 이해관계에 대해 사심 없이 공평하게 판결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다시말하자면 엄마가 두 아이들에게 과자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경우의 공정성이라기 보다는 나와 A 사이의 다툼에 있어서 내 쪽에 아무 가중치를 주지 않는다는 마음가짐 같은 거에요.
이 경우도 사실상 개개인 보다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품격이라는 점에서 공자이전 시대의 용법이 이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지도자 입장에서 자기 개인의 안위보다 백성의 안위를 더 챙겨야 한다? 그런 느낌이에요.
물론 모든 낱말은 그 의미가 다층적이에요. 인(仁)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아주 소박한 종류의 동정심도 다 퉁쳐서 인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몇몇 유가 사상가들은 자기들이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품덕으로서의 인은 그냥 동정심 수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후자를 아녀자의 인(婦女之仁...? 맞나?) 같은 식으로 구별해서 불렀어요. 우리가 바라는 인군은 단순히 \"어머 울 멍무이 다쳤나봥 불쨩해 ㅠ.ㅠ\" 마 그런 게 아니라는거지요. 지금 기준으론 몹시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매장될 테지만 뭐 당시엔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_-;
그럼 지도자가 왜 인 해야하는가가 문제가 되지요. 이 때 밥먹듯이 소환당하는 게 천명(天命)이에요. 천명은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지도자에게 주어진다는 거지요. 그래서 해당 왕조에서 폭군이 나타나면 하늘이 그 폭군의 선조에게 주었던 자기 천명을 번복하고 더 어진 인물에게 준다는 거에요. 그러므로 지도자 당신은 늘 천명이 바뀔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어진 임금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뭐 그런 논리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왕의 상급자처럼 등장해요. 마치 왕이 자기 영토 안에서 백성을 가혹하게 굴리는 공작이 미워서 그놈 작위를 뺏어서 딴놈에게 줄 수 있는 것처럼 하늘도 왕을 그렇게 갈아치울 수 있다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사(士)->대부(大夫)->공경(公卿)->왕(王)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위에 이상화된 왕의 모습으로, 그 어떤 왕보다도 더 어진 (仁) 천(天)을 하나 더 얹어 놓은 것과 같아요.
이런 정치철학에 어깃장을 놓으려면 역시 먹이사슬의 정점을 건드리는 것 만한 게 없지요. \"하늘이 어질어? 응? 사람 잘만 죽이던데?\" 이러면서요 ㅎㅎ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정치철학이 격변하게되면서 인에 대한 해석이 좀 달라졌어요. 이거 이쪽 전공하시는 분들이 보면 비웃을 텐데;;; 대충 공자-맹자-주자로 이어지는 제일 정통(?)에 가까운 해석체계에선 사심(私心)없이 공정한 것,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걸 말해요. 그런데 이 때 사심 없이 공정하다는 건 내가 중재자고 A와 B 간의 이해관계에 대해 사심 없이 공평하게 판결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나와 A간의 이해관계에 대해 사심 없이 공평하게 판결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다시말하자면 엄마가 두 아이들에게 과자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경우의 공정성이라기 보다는 나와 A 사이의 다툼에 있어서 내 쪽에 아무 가중치를 주지 않는다는 마음가짐 같은 거에요.
이 경우도 사실상 개개인 보다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품격이라는 점에서 공자이전 시대의 용법이 이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지도자 입장에서 자기 개인의 안위보다 백성의 안위를 더 챙겨야 한다? 그런 느낌이에요.
물론 모든 낱말은 그 의미가 다층적이에요. 인(仁)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아주 소박한 종류의 동정심도 다 퉁쳐서 인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몇몇 유가 사상가들은 자기들이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품덕으로서의 인은 그냥 동정심 수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후자를 아녀자의 인(婦女之仁...? 맞나?) 같은 식으로 구별해서 불렀어요. 우리가 바라는 인군은 단순히 \"어머 울 멍무이 다쳤나봥 불쨩해 ㅠ.ㅠ\" 마 그런 게 아니라는거지요. 지금 기준으론 몹시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매장될 테지만 뭐 당시엔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_-;
그럼 지도자가 왜 인 해야하는가가 문제가 되지요. 이 때 밥먹듯이 소환당하는 게 천명(天命)이에요. 천명은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지도자에게 주어진다는 거지요. 그래서 해당 왕조에서 폭군이 나타나면 하늘이 그 폭군의 선조에게 주었던 자기 천명을 번복하고 더 어진 인물에게 준다는 거에요. 그러므로 지도자 당신은 늘 천명이 바뀔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어진 임금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뭐 그런 논리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왕의 상급자처럼 등장해요. 마치 왕이 자기 영토 안에서 백성을 가혹하게 굴리는 공작이 미워서 그놈 작위를 뺏어서 딴놈에게 줄 수 있는 것처럼 하늘도 왕을 그렇게 갈아치울 수 있다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사(士)->대부(大夫)->공경(公卿)->왕(王)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위에 이상화된 왕의 모습으로, 그 어떤 왕보다도 더 어진 (仁) 천(天)을 하나 더 얹어 놓은 것과 같아요.
이런 정치철학에 어깃장을 놓으려면 역시 먹이사슬의 정점을 건드리는 것 만한 게 없지요. \"하늘이 어질어? 응? 사람 잘만 죽이던데?\" 이러면서요 ㅎㅎ
78플을 보며 모처럼 싸움인가 생각하곤 팝콘을 준비해왔는데 실망이네요. 곡성을 볼지 말지 고민이군요. 이미 스포는 자발적으로 다 당했지만 평들이 제법 갈리니 뀽 호평들은 또 많이 호평인 경우가 많아서요.
절대자를 가정하고 그 절대자와 닮은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 있는 와중에 옆에서 과학자란 것들이 넌 그저 자기 복제 욕구를 가진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라고 하면 악마 같겠죠. 이런 일종의 자부심과 존재 가치를 사회에서 찾는 건 어떨까요? 가령 넌 네 생존을 위해 자연 상태가 아닌 사회를 만들어냈고 그를 위해 희생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면 느낌이 좀 약할까요? 애초에 생존을 위한 거라고 했으니 별 차이가 없나...
절대자를 가정하고 그 절대자와 닮은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 있는 와중에 옆에서 과학자란 것들이 넌 그저 자기 복제 욕구를 가진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라고 하면 악마 같겠죠. 이런 일종의 자부심과 존재 가치를 사회에서 찾는 건 어떨까요? 가령 넌 네 생존을 위해 자연 상태가 아닌 사회를 만들어냈고 그를 위해 희생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면 느낌이 좀 약할까요? 애초에 생존을 위한 거라고 했으니 별 차이가 없나...
중국 고전 번역으로 유명한 제임스 레게라는 19세기 서양 양반이 옮긴 도덕경을 보면 \"Heaven and earth do not act from (the impulse of) any wish to be benevolent\"라고 번역했어요. 그러니까 \'천지는 자비롭고자(仁하고자) 하는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고 번역한 셈이죠.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내용과 사실 유사한 거예요. 최근의 해석 경향은 제가 알 수 없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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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번역으로 유명한 제임스 레게라는 19세기 서양 양반이 옮긴 도덕경을 보면 \"Heaven and earth do not act from (the impulse of) any wish to be benevolent\"라고 번역했어요. 그러니까 \'천지는 자비롭고자(仁하고자) 하는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고 번역한 셈이죠.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내용과 사실 유사한 거예요. 최근의 해석 경향은 제가 알 수 없어용.
https://en.wikisource.org/wiki/Tao_Te_Ching_(James_Legge) (5장 첫구문)
우리같이 한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동양 고전을 볼 때는 영어 번역으로 읽는 편이 좀더 이해가 빨라요. 왜냐하면 한문을 잘 아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익숙한 한자 단어(인, 의, 예, 지, 도, 덕 등등)는 좀처럼 번역을 잘 안해주고 토씨만 달아주고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으므로... 서양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번역을 하기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해석이 편협하게 될 가능성을 각오하고 대담하게 번역해 주는 편이에요. 사실 이런 단어들은 당대에 쓰인 뜻이랑 우리가 아는 뜻이랑 많이 다르면서도 또 같은 부분이 있고 한문의 그물망 속에서 엄청난 두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양어권 전공자들이 번역하기가 더 어려워요.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동양고전 번역들은 인터넷에 다 올라 있으니까 위키와 구글님을 참조하셔요. 저랑 한문 수준이 비슷하신 듯하여(죄송;;) 비슷한 눈높이로 조언을 드려봤어용.
https://en.wikisource.org/wiki/Tao_Te_Ching_(James_Legge) (5장 첫구문)
우리같이 한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동양 고전을 볼 때는 영어 번역으로 읽는 편이 좀더 이해가 빨라요. 왜냐하면 한문을 잘 아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익숙한 한자 단어(인, 의, 예, 지, 도, 덕 등등)는 좀처럼 번역을 잘 안해주고 토씨만 달아주고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으므로... 서양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번역을 하기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해석이 편협하게 될 가능성을 각오하고 대담하게 번역해 주는 편이에요. 사실 이런 단어들은 당대에 쓰인 뜻이랑 우리가 아는 뜻이랑 많이 다르면서도 또 같은 부분이 있고 한문의 그물망 속에서 엄청난 두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양어권 전공자들이 번역하기가 더 어려워요.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동양고전 번역들은 인터넷에 다 올라 있으니까 위키와 구글님을 참조하셔요. 저랑 한문 수준이 비슷하신 듯하여(죄송;;) 비슷한 눈높이로 조언을 드려봤어용.
http://ctext.org/
레게역은 여기서 보면 편해요. 크로스 레퍼런싱도 되고 좋지요.
하지만 레게역은 정말 조심해서 봐야해요. 한문고전의 서구어역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한데 어디까지가 번역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물론 레게가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믿진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역자들이 일부러 (혹은 귀차니즘으로인해) 그런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레게역의 경우 그가 한문을 배운 경로가 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원래 배경이 크리스찬인 양반이... 더 보기
레게역은 여기서 보면 편해요. 크로스 레퍼런싱도 되고 좋지요.
하지만 레게역은 정말 조심해서 봐야해요. 한문고전의 서구어역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한데 어디까지가 번역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물론 레게가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믿진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역자들이 일부러 (혹은 귀차니즘으로인해) 그런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레게역의 경우 그가 한문을 배운 경로가 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원래 배경이 크리스찬인 양반이... 더 보기
http://ctext.org/
레게역은 여기서 보면 편해요. 크로스 레퍼런싱도 되고 좋지요.
하지만 레게역은 정말 조심해서 봐야해요. 한문고전의 서구어역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한데 어디까지가 번역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물론 레게가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믿진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역자들이 일부러 (혹은 귀차니즘으로인해) 그런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레게역의 경우 그가 한문을 배운 경로가 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원래 배경이 크리스찬인 양반이 청말 주자쟁이들에게 배운 한문실력으로 번역한거라 해석이 특정 방향으로 고정된 느낌이 있지요. 또 용어선택에 있어서도 아무래도 100년 전 양반이다보니 그간 서구학계에서 치고박는 논쟁 끝에 사장시키기로 합의한 번역어가 많이 나온다거나 하는 시대성 문제도 있구요.
아직도 위엄있는 역작이라는 덴 이견이 없지만 요즘은 덮어놓고 인용했다간 지도교수에게 혼난다능..ㅠ.ㅠ
레게역은 여기서 보면 편해요. 크로스 레퍼런싱도 되고 좋지요.
하지만 레게역은 정말 조심해서 봐야해요. 한문고전의 서구어역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한데 어디까지가 번역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물론 레게가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믿진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역자들이 일부러 (혹은 귀차니즘으로인해) 그런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레게역의 경우 그가 한문을 배운 경로가 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원래 배경이 크리스찬인 양반이 청말 주자쟁이들에게 배운 한문실력으로 번역한거라 해석이 특정 방향으로 고정된 느낌이 있지요. 또 용어선택에 있어서도 아무래도 100년 전 양반이다보니 그간 서구학계에서 치고박는 논쟁 끝에 사장시키기로 합의한 번역어가 많이 나온다거나 하는 시대성 문제도 있구요.
아직도 위엄있는 역작이라는 덴 이견이 없지만 요즘은 덮어놓고 인용했다간 지도교수에게 혼난다능..ㅠ.ㅠ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하늘의 도는 활 메우는 것과 같아서 높은 곳은 눌러 주고 낮은 곳은 올려 주며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곳은 메꾼다는 이야기라 하던데요.
이런 이치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영화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해서 상벌 징벌 혹은 하늘의 무관심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려는 하늘의 뜻인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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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하늘의 도는 활 메우는 것과 같아서 높은 곳은 눌러 주고 낮은 곳은 올려 주며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곳은 메꾼다는 이야기라 하던데요.
이런 이치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영화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해서 상벌 징벌 혹은 하늘의 무관심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려는 하늘의 뜻인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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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하늘의 도는 활 메우는 것과 같아서 높은 곳은 눌러 주고 낮은 곳은 올려 주며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곳은 메꾼다는 이야기라 하던데요.
이런 이치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영화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해서 상벌 징벌 혹은 하늘의 무관심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려는 하늘의 뜻인것이지요.
위의 머리를 길렀는 비니어린이의 케이스도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모두가 왜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한편으로 7세어린이가 벌써부터 봉사를 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남을 위해 돕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남다른 이도 있었을꺼에요. 근래의 국내사회는 결과론과 성공중시로 우리들이 사고하게끔 유도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경계해야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결과는 안타깝지만 그 어린이와 부모님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 같구요. 결과에 촛점을 맞추지말고 그 안의 의미를 생각하면 좀 더 주위를 생각하고 사는 것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기사인 것 같았어요. 기자가 처음 글을 쓸 때에 과연 어린이가 노력을 하고 커뮤니티를 생각했는데 하나님도 안계시지 이런 어린이에게 소아암을 주셨다니 하는 흥미를 이끌기 위한 마음에서 쓴 기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안타까움에 어린이 가정을 돕자는 마음에서 기사를 썼고 처음 제가 도네이션했을때 2만불인가 모였는데 오늘 다시 체크해보니 3-4일만에 45만불이 모였어요.
리틀미님이 가지고계신 질문의 끝 도전의 의미에는 매슬로의 히어아키 마지막에 나오는, 내가 일을 하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내가 궁극적으로 필요로 하는 Need 는 무엇인가 생각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봐요. 나의 자아만족 자아성취가 주위에서 말하는 성공을 이루면 나올것 것인가 아니면 셀프빙 Self-being, Free-will and decision 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함께 있는 것인지도요. 이태석신부님 같은 경우에는 Self-Actualization 을 이루신 분으로 저는 보아요. 그런분에게 신은 없습니다 라고 과연 이야기할 수가 있을까요. 오히려 도덕경의 균형을 이룬다는 말씀처럼 그 분을 데려가시고 그 분의 선행을 널리 더 알리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한편,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열을 내고 옆지기에게 봉사하러 가자고 그러면 자기일이나 열심히 하시오 라고 화살이 되돌아옵니다. 열심히 일합시다!!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하늘의 도는 활 메우는 것과 같아서 높은 곳은 눌러 주고 낮은 곳은 올려 주며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곳은 메꾼다는 이야기라 하던데요.
이런 이치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영화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해서 상벌 징벌 혹은 하늘의 무관심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려는 하늘의 뜻인것이지요.
위의 머리를 길렀는 비니어린이의 케이스도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모두가 왜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한편으로 7세어린이가 벌써부터 봉사를 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남을 위해 돕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남다른 이도 있었을꺼에요. 근래의 국내사회는 결과론과 성공중시로 우리들이 사고하게끔 유도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경계해야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결과는 안타깝지만 그 어린이와 부모님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 같구요. 결과에 촛점을 맞추지말고 그 안의 의미를 생각하면 좀 더 주위를 생각하고 사는 것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기사인 것 같았어요. 기자가 처음 글을 쓸 때에 과연 어린이가 노력을 하고 커뮤니티를 생각했는데 하나님도 안계시지 이런 어린이에게 소아암을 주셨다니 하는 흥미를 이끌기 위한 마음에서 쓴 기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안타까움에 어린이 가정을 돕자는 마음에서 기사를 썼고 처음 제가 도네이션했을때 2만불인가 모였는데 오늘 다시 체크해보니 3-4일만에 45만불이 모였어요.
리틀미님이 가지고계신 질문의 끝 도전의 의미에는 매슬로의 히어아키 마지막에 나오는, 내가 일을 하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내가 궁극적으로 필요로 하는 Need 는 무엇인가 생각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봐요. 나의 자아만족 자아성취가 주위에서 말하는 성공을 이루면 나올것 것인가 아니면 셀프빙 Self-being, Free-will and decision 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함께 있는 것인지도요. 이태석신부님 같은 경우에는 Self-Actualization 을 이루신 분으로 저는 보아요. 그런분에게 신은 없습니다 라고 과연 이야기할 수가 있을까요. 오히려 도덕경의 균형을 이룬다는 말씀처럼 그 분을 데려가시고 그 분의 선행을 널리 더 알리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한편,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열을 내고 옆지기에게 봉사하러 가자고 그러면 자기일이나 열심히 하시오 라고 화살이 되돌아옵니다. 열심히 일합시다!!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MgaZ&fldid=I46l&datanum=29
존 힉이란 사람의 \'영혼-형성 신정론\'이란 게 뭔가 검색하다가 좀 신경질이 났어요.
신이 절대선이며 전지전능한데 악이 공존하는 현실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어떤 합리화를 시도하는지를 설명하는 동영상에서 언급이 됐던 설이에요.
... 더 보기
존 힉이란 사람의 \'영혼-형성 신정론\'이란 게 뭔가 검색하다가 좀 신경질이 났어요.
신이 절대선이며 전지전능한데 악이 공존하는 현실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어떤 합리화를 시도하는지를 설명하는 동영상에서 언급이 됐던 설이에요.
... 더 보기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MgaZ&fldid=I46l&datanum=29
존 힉이란 사람의 \'영혼-형성 신정론\'이란 게 뭔가 검색하다가 좀 신경질이 났어요.
신이 절대선이며 전지전능한데 악이 공존하는 현실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어떤 합리화를 시도하는지를 설명하는 동영상에서 언급이 됐던 설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9AzNEG1GB-k 죽 옮기다가 그냥 지웠어요.
결국 리틀미님의 글에서 얘기됐듯 이 세상의 많은 재앙과 불행을 두고 \'왜?\'라고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노력, 즉 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은 부질없는 겁니다.
신정론은 결국 신학이 악의 존재를 변호하는 형국입니다. 순전히 신의 존재를 설파하기 위해서죠.
무신론자인 제게는 거의 성경이 악이에요. 현실세계의 끝은 종말론이고 절대신과 조우하며 기쁨을 맞이하는 해피엔딩은 죽어서야 가능합니다.
누구에게는 보이는 천국 같은 거 제게는 없어요.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대형목사의 비리, 성폭행으로 기사에 나는 목사들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도 신경질이 납니다. 현실세계에서 처단하지 않으면 수백억 횡령하고 호의호식하다 죽을 것들인데 저것들이 죽고 나면 지옥간다니, 지옥 안 믿는 저는 환장할 노릇이죠. 반드시 인간이 심판해야 할 것들이죠.
종말론이 진실이라면 우리 현실세계는 점점 더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자연은 파괴되고 삶이 지옥같이 변할수록 신의 말씀은 옮았다 돼요. 그래서 기후변화나 기술혁신으로 인해 어쩌다 진보가 아닌 재앙이 일어날 것 같으면 신이 더 가까이 강림할 것으로 느끼고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 재앙이 오히려 반가울 지경입니다.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어찌 될려고\'라며 성경에 기술된대로 정말 말세가 오려나부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종말을 학수고대하는 변태같아요.
천국에 임하기 위해 현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겐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부탄은 공식불교국가죠. 부탄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지만 크리스찬 부탄인들은 온갖 핍박을 받으며 난민수용소에서 지냅니다. 이 기사를 크리스챤언론 사이트에서 읽었는데 그 기사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부탄과 부탄 크리스챤들의 힘겨운 삶을 고발하는 논조였지만 저 같은 독자는 그 곳 부탄사람들 전도한 놈들 어떤 새끼들인지..라는 분노였어요. 부탄의 크리스찬인들은 그들의 고통이 천국의 약속이라고 속삭이는 악마들에 속고 살고 있는 거죠.
존 힉이란 사람의 \'영혼-형성 신정론\'이란 게 뭔가 검색하다가 좀 신경질이 났어요.
신이 절대선이며 전지전능한데 악이 공존하는 현실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어떤 합리화를 시도하는지를 설명하는 동영상에서 언급이 됐던 설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9AzNEG1GB-k 죽 옮기다가 그냥 지웠어요.
결국 리틀미님의 글에서 얘기됐듯 이 세상의 많은 재앙과 불행을 두고 \'왜?\'라고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노력, 즉 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은 부질없는 겁니다.
신정론은 결국 신학이 악의 존재를 변호하는 형국입니다. 순전히 신의 존재를 설파하기 위해서죠.
무신론자인 제게는 거의 성경이 악이에요. 현실세계의 끝은 종말론이고 절대신과 조우하며 기쁨을 맞이하는 해피엔딩은 죽어서야 가능합니다.
누구에게는 보이는 천국 같은 거 제게는 없어요.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대형목사의 비리, 성폭행으로 기사에 나는 목사들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도 신경질이 납니다. 현실세계에서 처단하지 않으면 수백억 횡령하고 호의호식하다 죽을 것들인데 저것들이 죽고 나면 지옥간다니, 지옥 안 믿는 저는 환장할 노릇이죠. 반드시 인간이 심판해야 할 것들이죠.
종말론이 진실이라면 우리 현실세계는 점점 더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자연은 파괴되고 삶이 지옥같이 변할수록 신의 말씀은 옮았다 돼요. 그래서 기후변화나 기술혁신으로 인해 어쩌다 진보가 아닌 재앙이 일어날 것 같으면 신이 더 가까이 강림할 것으로 느끼고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 재앙이 오히려 반가울 지경입니다.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어찌 될려고\'라며 성경에 기술된대로 정말 말세가 오려나부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종말을 학수고대하는 변태같아요.
천국에 임하기 위해 현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겐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부탄은 공식불교국가죠. 부탄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지만 크리스찬 부탄인들은 온갖 핍박을 받으며 난민수용소에서 지냅니다. 이 기사를 크리스챤언론 사이트에서 읽었는데 그 기사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부탄과 부탄 크리스챤들의 힘겨운 삶을 고발하는 논조였지만 저 같은 독자는 그 곳 부탄사람들 전도한 놈들 어떤 새끼들인지..라는 분노였어요. 부탄의 크리스찬인들은 그들의 고통이 천국의 약속이라고 속삭이는 악마들에 속고 살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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