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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5/28 17:59:05
Name   王天君
Subject   나 이제 갈 테니까 말리지 말라고
중학교 때의 일이다.

경민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머리에 새치가 엄청 많았다. 영락없이 원숭이 상이었다. 입이 상당히 걸었고 체육 시간에 뛰는 걸 안좋아했다. 애들이 공을 찰 때는 나무 그늘 아래서 실실대거나 철봉 아래서 매달리려는 폼만 잡았다. 별로 잘 살진 않았고 비슷한 형편의 녀석들과 어울려다녔다. 애들은 그를 영감이라 불렀다. 목소리도 허스키했다. 학교에 오는 이유는 쉬는 시간과 하교 시간 두개밖에 없는 그런 녀석이었다.

경민이는 중3때 갑자기 까지기 시작했다. 것도 홀랑. 별로 멋부릴 몸땡이가 아니었는데 통을 줄인 바지를 입었다. 싸움 실력이 교내에서 순위를 다투는녀석들과 복도를 거닐었다. 쉬는 시간에는 몸에서 담배냄새가 났다. 씨밸이라는 욕이 자주 뱉어져나왔고 가래침이 걸쭉해졌다. 위를 노려보거나 아래로 깔아보았다. 애들은 좀 어색해했지만 딱히 삥을 뜯거나 으시대는 건 아니라 별 상관은 없었다. 불만많은 시절은 누구에게든 어떤 식으로 찾아오니까.

발단이 뭐였지. 생각이 안난다. 사건은 담임 선생님이 가르치던 수학 시간에 일어났다. 경민이는 엄청 당돌하게 뭘 외쳤다. 선생님은 갑갑해했다.  경민이는 열이 받아있었고 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했다. 40대의 빼빼마른 여성은 키가 크기 시작하는 아이의 반항을 제대로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경민아 너 정말 어쩔려고 이러니. 너 요즘 왜 이래. 아이들은 칠판이 아닌 두 인물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놔둬요 좀. 씨밸 서울로 날라블랑께. 이미 무엄했다. 그리고 경민이는 더 막 나갔다. 어떻게 선생님한테 욕을 할 수 있는가. 이젠 책가방을 싸서 나갈 태세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는 진짜 놀랐다. 교권이 와르르 무너졌고 아이들은 다 긴장해있었다. 누구한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경민이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 씨밸!!! 학교 때려치면 될 거 아냐!! 안댕긴다고!! 선생님은 그런 경민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경민아 너 이러면 안돼. 경민이는 황소처럼 밀고 갔다. 매달리던 선생님은 질질 끌려갔다. 선생님은 계속 이름을 부르며 탄식했다. 애들은 얼어있었다. 나중에 옆반 영어선생님이 들어와서 우리를 혼냈다. 에라이 이 비겁한 섀끼들, 힘도 센 놈들이 그걸 그렇게 보고만 있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눈과 입을 벌리고 직각으로 의자에 누워만있었다. 수산시장에 진열된 주홍빛 돔들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 때 아무 말도 못한 게 여전히 창피하다.

그 와중에 명수가 펄떡거렸다. 야 경민아 너 이러지 마야. 그 사태에서 유일하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안 어울렸다. 점심 시간에는 초밥이랍시고 밥을 주물거려서 서로 먹여주는 짓거리를 하곤 했다. 교탁 위에서 여자 역을 맡아 다른 놈과 베드씬을 찍곤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음소리는 엄청 열심히 냈다. 다들 의심했다. 저 새끼 진짜로 좋아하고 있다고. 더럽게 나대는 놈이었다. 그런 명수가 히어로처럼 솟아 한 마디를 낸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그 명수 새끼가….위급한 상황에 단 한명이 의협심을 발휘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명수였다. 우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잊었다. 교탁에서 섹스하던 놈이 갑자기 청소년드라마 주인공처럼 구는 게 도통 와닿지 않았다. 너무 안어울려서 우리 중 몇놈은 웃음을 참았다. 입이 씰룩거리는 걸 나는 보고 말았다. 나도 좀 기분이 이상해졌다. 상황이 좀 웃기지도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명수가 경민이에게 다가갔다. 도루를 엿보는 전성기 이종범처럼 신중하게. 경민아, 우리 말로 하자 말로. 선생님은 울고 있었고 우리는 눈치를 봤다. 우리도 나가야 하나….? 경민이는 포효했다. 꺼지라고!!!!! 명수가 경민이보다 싸움을 더 잘했는데 그 딴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 때 명수는 아무 소리도 안냈는데 우리는 다 깨갱 소리를 들었다. 개기는 놈한테 개겨볼려던 이는 빛의 속도로 진압되었다. 우리는 비겁한 처지를 잊고 웃을 뻔 했다. 아 명수 진짜….. 뭘 해볼려던 우리의 의지도 단숨에 꺾였다. 앉아있자. 명수 꼴 나지 말고. 눈빛으로 보낸 사인에 다들 동의했다. 선생님만 불쌍한 꼴이 되었다.

으르렁거리던 경민이는 마침내 교실 밖을 박차고 나갔다. 선생님은 남겨졌다. 우리는 보기만하다가 떨궈졌다. 명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흐느껴울었고 우리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그대로 놔두고 말았다. 칠판에 그려져있던 x와 y옆에 자습이라는 공식이 적혔다. 우리는 미안했고 침통했다. 옆반 선생님이 들어와서 우리를 나무랐고 우리는 웅성거리거나 아무 말도 안했다. 아 선생님 불쌍해….늦게나마 동정만 열심히 했다. 한심한 새끼들이었다.

다음날 수학시간이 되었고 선생님은 평소처럼 교실에 들어왔다. 우울한 표정으로 반장과 아이들의 인사를 받고 숫자들을 열심히 적어나갔다. 분필이 멈췄고 선생님은 등돌린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물었다. 애들아,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은 훌쩍이면서 이 사태에 대해 생각하는 걸 적어보라고 했다. 우리는 다 열심히 끄적거렸다. 그날 수업은 그렇게 중지되었고 우리는 다시 고뇌에 빠졌다. 깨져버린 3학년 4반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여간 명수 새끼 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쉬는 시간에 나랑 친구들은 이야기했다. 아 진짜 경민이 미쳤다고. 까진 건 알았는데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언제부터 까지기 시작했고 누구랑 어울렸으며 평소에 뭔 소리들을 했는지 등등등 프로파일링이 이어졌다. 알 게 뭔가. 나는 애들이 뭐라고 썼는지 알고 싶었다. 한명이라도 선생님을 더 절실하게 위로해줬으면 싶었다. 나는 이 사태에 되게 세게 얻어맞았다. 선생님은 좋은 분이었고 경민이는 나쁜 새끼였다. 어찌됐든 우리는 이 사태를 이겨내야했다. 이제 돌아오지 않을 녀석이었고 선생님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나 경민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비록 학생 한 명이 그렇게 떠나갔지만 아직 여기에 남은 40명의 학생들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경민이를 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경민이가 나쁜 놈은 아니었을 겁니다. 서울이든 어디든 혼자서 선생님한테 한 짓을 뉘우치며 속상해할 거에요. 앞으로 저희가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은 이 일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고 저희들을 보면서 어서 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선생님한테 이렇게 쪽지를 썼다. 애들은 자기가 쓴 쪽지 내용을 시험답안처럼 맞춰보았다. 뭐라고 썼냐? 뭘 뭐라고 써. 경민이는 곧 돌아올테니까 너무 울지 마라고 썼지. 어 나도. 나도 선생님한테 경민이는 올테니까 걱정마시라고 썼다. 나는 좀 당황했다. 내가 너무 비정한가? 경민이는 돌아올거라고 썼어야 했나? 저 사단을 피웠으면 올 리가 없잖아? 종례 시간, 선생님은 애틋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들이 경민이를 굳게 믿어줘서 선생님은 기뻐. 선생님도 그렇게 믿어. 우리 경민이가 다시 돌아와서 이전처럼 학교 생활 보내길 빌자. 뭐지….나 같이 쓴 놈은 나 밖에 없었다. 내가 경민이를 그렇게 싫어하는 게 아닌데. 인간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사건으로부터 정확히 이틀 후 경민이가 학교에 와있었다. 다들 별 말도 안했다. 선생님도 그냥 웃으면서 나무랐고 경민이도 멋적어했다. 나는 경민이가 서울로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간대며. 경민이는 무사히 졸업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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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잘 읽었습니다.뭔가 엄청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저는 글재주가 없어서 정리가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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