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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5/31 00:19:19
Name   눈부심
Subject   그들의 놀라운 시스템 - 고릴라사건
http://www.wlwt.com/news/police-responding-incident-at-cincinnati-zoo/39773436
http://abcnews.go.com/US/zoo-witness-gorilla-protecting-year-wasnt-hurting/story?id=39467509



미국 신시네티 주의 동물원에서 일어난 사건이에요. 고릴라 우리에 3살짜리(우리나라 나이로 4살) 아이가 떨어졌어요. 고릴라가 아이를 딱히 위협하지는 않지만 힘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아이의 발목을 잡고 당기니 아이가 순식간에 휩쓸려 가요. 어떤 장면에선 마치 고릴라가 아이를 도닥이고 보호하고 있는 느낌마저 주죠. 이 사건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제 인식의 전개는 이랬어요.

1) 고릴라우리에 아이가 떨어졌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릴라를 사살함.
=> 가장 먼저 든 느낌은 고릴라가 너무너무 불쌍하단 거였어요. 아이를 돌보지 않은 부모가 너무 미운 거예요. 정말 속상했어요. 그치만 고릴라가 그만큼 위험한 동물인가보다란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가 중태라는 소리도 들어서 속시원히 고릴라를 애도하지 못하는 상황도 속상했어요. 다행히 아이가 중태란 건 낭설이고 무사합니다 : )

2) 고릴라가 아이를 일으켜주는 영상으로만 편집된 화면을 보게 됨
=> 고릴라가 불쌍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그리고 동물원이 너무 성급했단 생각도 했어요. 마취총을 쏘면 될 일이지 굳이 사살을 해야했나 싶었어요. 마취총을 쏘아도 바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과잉방어인 것 같았어요.

3) 전체 영상을 보고 동물원의 입장을 들어 봄.
=> 고릴라가 폭력성을 띤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힘은 정말 가공할 만했어요. 고릴라가 아이를 위협한 건 아니었지만 180킬로가 넘는 거구에 어마어마한 근력을 자랑하는 '짐승'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무슨 일이 터질지는 알 수 없으니 결국 아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 맞다고 동물원은 판단했죠. 마취총을 쏜대도 쓰러지기 전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니 고릴라를 사살해야겠다는 진단은 얼마나 신속하게 내려졌겠나요.

고릴라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고 이번에 사살된 하람베라고 하는 고릴라는 올해 17살의 위용당당하고 아름다운 고릴라예요. 동물원관계자가 "They made the tough choice, and they made the right choice." 라고 말하는데 그들의 시스템과 신속한 대응이 저는 가장 놀라워요.. 동물원에서 그들 나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에 훈련을 하는데 이번일이 그 첫번째 사건이라고 해요. 하람베가 사살당했을 당시 아이는 고릴라의 다리 사이에 있었다고 합니다.

동물원 바깥에서는 미미한 규모의 피켓시위가 눈에 띄기도 하네요. 동물원은 마취총을 쐈어야 한다는 내용이에요. 아름다운 짐승 하람베를 돈으로 환산하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할 거예요. 동물원입장에서 하람베를 당장 사살해야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실행하고 아이를 구한 그들의 대응은 놀라워요. 그들의 시스템과 결정력이 정말 부럽습니다. 동물원직원들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하람베의 사망이 너무 슬퍼요. 그는 너무너무 아름다웠어요.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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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릴라 움직임이 엄청나게 날렵하네요.
    아이가 소리를 지르지 않는데 뭔가 엄청난 공포와 위압감에 눌렸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친근함을 느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은 것 같구요.
    눈부심
    아마 공포에 완전히 압도당하면 무력해져 버리는 그 단계가 아니었나 싶어요.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고 울고불고 하는 건 무서움에 압도당해 뇌의 회로가 몽땅 끊겨져 버리기 전의 덜 무서운 상태란 건 역설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엄마가 '엄마 여기 있어'라고 안심시켜주는 목소리도 들리는데 전문가들의 대응을 침착하게 믿고 따라준 것 같네요. 보통 저 상황에서 이성을 잃기 매우 쉬울텐데 말예요.
    마취총을 쏴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했다가 아이가 죽을 경우 그 후폭풍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겠죠. 저 고릴라도 참 안타깝네요.
    눈부심
    네.. "만약 그 반대였다면"을 상상해보면 동물원이 정말 현명했어요. 유툽댓글엔 부모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던데 결국 모두가 원하는 건 아이가 무사한 거지 아이 죽인 고릴라는 동물원에서 몸값 비싼 괴물로 남거나 고릴라 나름의 벌을 받거나 오 생각하니 정말 고통스러워요..
    이 사건 보고 궁금해저서 나무위키에서 고릴라를 찾아 봤는데 재미있게 읽었네요. 혼자보기 아까워서 링크 남깁니다.

    https://namu.wiki/w/고릴라

    생각보다 온순한 녀석이었다는 점에서 뭔가 더 안타깝네요.
    눈부심
    언젠가 고릴라 줄리아인가 할튼 암컷고릴라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여자의 일생> 읽는 것 같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인간의 애완용 동물로 채택되었다 버려졌다 다시 어디로 옮겨졌다 인간에 의해 이리 저리 굴러다니다 불쌍하게 죽었어요. 저렇게 큰 녀석이 풀 먹고 곤충 잡아먹고 산다니 푸잉 ㅠㅠ.
    파란아게하
    선택의 상황이 애초에 없도록 하는게 우선이지만
    선택의 상황이라면 사람목숨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부심
    우리는 같은 인간이다보니 '저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하고 대입해 본 순간 답이 명백.. 인간으로 태어난 건 엄청난 기득권인 것 같아요.
    엄마곰도 귀엽다
    저도 이 소식 듣고 안타깝더라구요.
    처음부터 아기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았었다면 저 고릴라는 아직도 살아있겠죠 ㅠㅠ
    그래도 아기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이런 결정을 할수밖에 없었다는걸 이해하고
    그들의 신속한 대응에 박수를 치고싶어요.

    하람베 안녕~
    동물에겐 영혼이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좀 슬픈 생각인거 같아요.
    그래서 하람베의 영혼이 동물원이 아닌 자유로운 곳에 닿길 바랍니다 ㅠㅠ
    눈부심
    같은 우리에 있었던 고릴라가 아마 충격이 클 것 같아요..
    에고...
    으으 이 동영상 많이 돌아다니던데 안봐야지 안봐야지 하다가 여기서 보게 되었어요.
    고릴라가 아이를 끌고 물속을 촤아아악 가는 장면에서 숨이 탁 막혔어요. 그리고 나서 아이 옷을 만져주고, 또 그리고 다시 촤아아악....
    아 자연이란 이런 것이구나, 자비도 미움도 없는.
    눈부심
    오..묘사가 확 와 닿는..
    극강의 순수함이기도 한데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고릴라를 이해하는 방식도 인간처럼 이해하는 경향이 분명 있을 거예요. 아마 인간이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은 인간식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중 reality를 직면하고 사는 이는 아무도 없는지도..
    자비도 미움도 없다는 표현이 그나마 인간적 사고를 가장 배제한 현실인 것 같아요.
    거기다 인간의 방식으로 드라마를 입히면 현실이 채색이 되고 그러는 거신가 하노라..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덕분에 동영상 보기를 잘 했어요. 안 봤으면 후회했을 거 같아요.
    아이가 죽었다면 끝내 안 봤을 텐데, 희생자가 고릴라라서 볼 마음이 났던 듯해요. 아 인간중심주의 관세음보살..
    세계구조
    들어보니까 마취총을 사용할 경우 그 성분이 마취가 되기 전까지 고릴라를 흉폭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군요. 다만 부모는 어떻게 처벌이 안 될까 싶네요. 현실이야 동물원의 시설 미흡이라고 역고소할 것 같지만.
    눈부심
    그렇죠.. 부모가 애를 잘 봤어야.. 문득 미국 시스템의 힘은 강력크리한 고소의 힘일 거란 생각도 덩달아 들어요.
    제인 구달을 위시한 동물학자들이 동물원 측을 과잉대응했다고 비판하고 있네요. 촤아아악 끌고 가는 건 칭얼대는 고릴라 새끼를 데리고 이동시키는 전형적인 행동 패턴이라고.. 흐잉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746536.html
    눈부심
    그렇군요.. 동물원측은 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같은 대응을 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무사한 이후에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비판인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이제 하람베를 애도할 시간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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