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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7/11 17:32:46
Name   묘해
Subject   [33주차 조각글] 운수 좋은 날

주제  : '음주운전'이 들어간 글을 쓰세요.

권장과제 :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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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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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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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최영감은 뒷꼭지에서 애옹대는 소리를 모두 무시하고 현관바닥에 놓인 에스빠드를 꿰신었다. 마당에 한발짝도 떼기 전에 거센 비가 후두둑 떨어져서 황급히 문을 닫았다.

"아시바 신발 밑창이 그새 다 젖었잖아"

쿵쿵대는 이어폰을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는, 삼선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무릇 사람은 외양이 전부다는 신조를 가지고 살았지만 단칸방을 애옹이네가 차지하고 부터는 무채색 패션만 고수 중이다. 그나마 삼선 운동화는 방수가 되고 튼튼하여 이렇게 비가 추적거리는 날에도 달리기를 하기엔 손색없다.

"삐용 삐용"

"애옹애옹애애애애옹"

"아오 시끄러 망할노무 괭이생키들"

신발을 갈아신고 뒤를 돌아보니 그새 방안에 누워있던 녀석들이 몰려나와 애옹거린다. 초롱한 눈빛이며 연신 입술을 핥아내리는 혓바닥이 마음을 붙잡지만, 최영감은 욕지꺼리부터 내뱉고 본다.

"계속 시끄럽게 울면 다 나비탕으로 만들어버릴테다. 이딴 인력거 모는 것 보다 네 식구 다 탕재료로 내다파는게 훨 이득이라고!!"

"냐아아아앙ㅇ냐앙냐아앙앙앙"

"아 알았다고 올때는 캔 사올게 흑 내팔자야"

고양이줄 왼쪽 맨 끝에 앉아서 배웅한답시고 삐삐-거리는 삐약이가 눈에 밟혔다. 콧물을 연신 흘리고 재채기도 하는데 이틀 전부터는 눈꼽도 끼기 시작했다. 고양시 지식인에서 찾은 허피스인가 쿨피스인가 하는 병에 걸린 건가 싶어서 걱정이 된다. 하지만 라면 끓일 가스비 내는 것도 빠듯한 형편이다. 고양이 다섯마리를 키우는 것도 분에 벅차는 일이다. 비만 그치면 이번에는 기필코 내쫓고 말리라. 피맛골 구석탱이 월세촌을 내달리면서 최영감은 오늘은 따불 손님만 걸려라 주문을 외웠다.

보통 비오는 날은 인력거 장사가 잘된다. 왜냐하면 28년 은평올림픽을 위해서 나라 전체에 탄소계엄령이 내렸기 때문이다. 뭐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그건 신의 한수였다. 블렉시트 후 유럽 권력구도가 재편되나 싶더니 텍사스보다 먼저 은평구가 서울시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리란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정말로 은평구가 독립을 했다는 데 있다. 어디서 재력을 긁어모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지자체 자립도 1위 성남시를 누르고 은평구는 한반도 최고의 인프라와 금융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올림픽을 개최하겠단다. 88년 이후로 30년 만에 올림픽 재탕이라니 이것 참. 18년도에도 온실가스 감축으로 나라 체면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이제는 행정은 스탈린이 최고랜다. 나랏님께서는 매연을 내뿜는 자차를 말끔히 허가운영제로 바꾸고는 이윽고 타이어값을 아파트 한채 값으로 올려버렸다. 그러니 유가가 떨어지고 전기차가 나오면 뭐할까. 바퀴가 없으니 말짱 도루묵이다. 그리고 은평구에서는 서울시와 협력을 맺고 인력거조합을 만들었다.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명분까지 내세웠다. 바퀴 파동 후엔 택시도 수지타산이 안맞아 멸종 수준이고 버스카드는 부의 상징이 돼버렸지.

구질구질한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종로 차고지까지 도착했다. 철인59호를 꺼내서 말끔히 닦고 뒷자리에 폭신한 방석도 깔고 방울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면서 영엽개시를 했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왜죠.

빗방울은 가늘어지는데 그칠 기미는 안보인다. 종로에서 종각을 지나 광화문까지. 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차하던 길이라고 역사책에서 본 적 있다. 그렇게 왕이 앞으로 뒤로 사람을 잔뜩 끌고 마실을 나가면, 하찮은 백성들은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왕을 찬미하거나 뒷길, 즉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피맛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조선이 끝나고 일제가 끝나고 현대전이 오면 뭣하나. 여전히 종로바닥은 있는 자들의 통로다. 나 같은 불가촉천민은 피맛골에 기거하고.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자가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고, 호주제가 폐지되고, 그리고 노력을 하면 누구나 대학을 가게 되었다. 세월이 현대에 가까울수록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이 언문을 깨치고 대학을 갔다. 학력은 천청부지로 올라갔는데 그 고학력으로 뚫을 수 있는 자릿수는 고꾸라지기 시작했지. 누군가 내게 너도 대학 나와 인력거 몰 거라 귀뜸해줬으면 웃어 넘겼을테다.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내 장점은 흙수저 동기 중에 유일하게 학자금을 다 갚았다는 점, 그리고 4대보험에 퇴직금에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가졌단 것 뿐이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사납금을 어케 납부해야 하지...

"이보시오. 인력거 양반"

상념에 젖어 터덜터덜 종로바닥을 훑은지 3시간째, 이제 점심때가 다가올까 싶어 단성사 골목까지 내려왔더니 자그마한 손님이 우산을 들고 나를 불렀다.

"예에. 타십시오. 어디까지 가십니까"

"읏챠. 이 인력거는 방석도 폭신하니 좋구만. 내 담배 하나만 물고 목적지를 알려줄테니 자네도 잠깐 숨고르게나."

뻐끔뻐끔

작은 손님은 앞섶에 손을 넣고 부시럭 거리더니 본인 팔길이보다 더 긴 곰방대를 꺼냈다. 그리고 또 앞섶을 뽀시락 거리더니 부싯돌을 꺼내 불을 피웠다.

최영감의 눈이 휘둥그레지기엔 아직 더 남았다. 그는 그보다 더 요상한 것을 보았다. 부싯돌을 탁탁 튕기는 손가락에, 곰방대 중간쯤을 살짝 움켜진 손에 복슬복슬한 털이 잔뜩 나있는 것이 아닌가. 최영감은 노골쩍으로 침을 꼴딱 넘겨버렸다.

"저어.. 어디까지 가십니까?"

"뻐끔뻐끔. 날이 축축해서 그런가 담배가 눅눅하구만. 일단은 여기 종로에서 종각까지 갑세. 가서 내 자세한 길을 한번 더 알려주겠네"

아무래도 오늘은 재수가 옴 붙은 날인 것 같다. 최영감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와서 소개팅 때 신으려 샀던 새 에스빠드를 홀딱 적셔버렸다. 급한데로 거꾸로 세워는 뒀는데 물이 빠져도 쪼글쪼글해지진 않을런지 냄새가 나진 않을까 싶다. 게다가 내 뒷통수에 점을 찍고 애옹대던 고양이들. 연신 코를 훌쩍이던 삐약이도. 여느 때와 달리 손님이 없는 한산한 종로길도 이상하다. 이윽고 첫손님을 이렇게 박물관에서 튀어나온듯 괴이쩍은 인물로 태워버렸다.

첨벙첨벙

빗방울이 떨어지는 종로 도로를 뛰면서 최영감은 어짜피 대로에 아무도 없는데 이 손님을 패대기 쳐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이보게. 자네 옷에 괴이한 털이 잔뜩 묻어있구만?"

"아..아하. 네. 집에 고양이가 잔뜩 있어서 그놈들이 벗어놓은 옷 위에 자꾸 올라탑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고양이 털이 묻었네요."

"호오. 고양이가 한마리가 아니라 여러마리란 말인가?"

"네. 작년 겨울부터 밥 달라고 앵앵 거리던 조그만 애옹이를 몇번 방에 재웠더니 아예 올 봄에는 배가 불러서 해산하려고 찾아왔더라구요. 그덕에 집에 입이 늘었습니다."

"새끼들이 털 색이 다 다른가 보군. 자네 옷에 묻은 털이 그렇네."

"네. 눈 빼고 죄다 시커먼 녀석도 있고 고등어도 있고 발만 하얀 깜둥이도 있고 그리고 삼색이도 있습니다. 삼색이가 막내라 날때부터 조그맣더니 근래는 코를 훌쩍이네요."

"그렇구만. 쩝쩝. 그런데 자네는 이름이 뭔가?"

"저요? 음.. 이름은... 인력거꾼에게 무슨 거창한 이름이 있겠습니까. 애늙은이 성질이 있어서 친구들은 최영감이라 부릅니다."

"껄껄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영감이 뭔가 영감이. 그래도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을 것 아닌가."

“그게 하도 사람들이 놀려서요. 최모호입니다. 모을 모(募) 여섯 냥쭝 호(䤣) 자를 씁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이름이구만. 그래 여섯 냥씩 모으고 있는 건가?”

“네에. 보통 그런 반응을 하십니다. 이름보다 육백원으로 더 불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최가나 최영감 쪽이 더 편합니다.”

뻐끔뻐끔

“그런데 손님. 이제 종각까지 거의 다 왔습니다. 어디에 내려드릴까요?”

“기왕 온 김에 광화문까지 가보겠나? 실은 내가 서울시청으로 가는 길이거든”

“음.. 손님 저는 종로대로 출입권만 가진지라 광화문 지나 서울시청 가는 길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게 출입권이 있으니 걱정말게. 인력거도 출입 가능하단 말이네. 영 저어하면 내 요금을 따따불로 줌세. 어떤가?”

“시켜만 주십시오”

괴이쩍다 괴이쩍다 했지만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린가 싶기도 하다. 은평구가 서울시로부터 독립할 무렵부터, 국가 체제가 바뀌었고 나랏님이 연임을 했다. 자립도 1위 은평구와 2위 성남시가 버티고 있어도, 행정수도 세종시가 있어도 여전히 힘을 가진 곳은 서울시이다. 서울시에서 모든 계약이 이뤄지니까. 때문에 나랏님은 경찰 외에도 군을 투입해서 통행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는 게 바로 광화문 너머 서울시청이다.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자들도 고작 서울시 공무원일텐데 세종시 정부청사보다 더 엄중한 경비를 선다니 우습기도 한다. 여하간 출입권이 있다니깐 좋으면 들어가서 따따불로 받는거고. 아니면 입구에서 요금만 받고 손놈은 패대기를 칠 테다.

“그런데 말이네. 아마도 자네는 날 내려주고 바로 집으로 내달려야 할거세.”

“네? 무슨??”

“글쎄 자네는 날 내려주고 바로 집으로 가야한다니깐”

“저.. 그게.. 손님. 제가 오늘 끼니도 거르고 종로바닥에서 4시간째 인력거를 몰고 있는데 손님이 첫손님이에요. 따따불로 주신다고 해도 오늘 사납금을 다 낼 수 있을지 모르고요. 때문에 퇴근시간대는 물론이고 밤까지 해야됩니다.”

“내 요금을 5배 줌세. 그러면 어떻겠는가.”

최영감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체 이 손님은 누구일까. 목소리 가운데 가릉가릉 소리가 들린다. 담배를 사탕처럼 쩝쩝거리며 피운다. 게다가 손에 잔뜩 난 복슬복슬한 털은 무엇이란 말인가. 최영감은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손님의 정체가 무엇이든 여느 손님과는 아니 일반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의심이 솟구쳤다.

최영감은 광화문 사거리 앞 우체국 앞에서 멈춰섰다.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는 엉거주춤 허리를 들었다.

“손님”

“뭔가?”

“잠깐만 실례를 해야겠습니다”

“자네는 후회할걸세. 이대로 왼쪽으로 돌아 목적지에 날 내려주는게 나을텐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지”

“하지만 저는 고양이가 아닙니다”

“난 이미 자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주었다네. 그런데 자네는 그걸 무시했지. 여기까지는 괜찮았어, 이제는 불필요한 호기심으로 오늘 단 한번의 여섯냥쭝 기회를 걷어차려하고 있네. 이제 고양이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최영감은 허리를 들다 말고 멈췄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계속 달리느라 신발께부터 무릎 아래까지 죄다 엉망이다. 그런데다 지금 자세가 민망하리만치 어색하다. 이대로 허리를 돌려 좌석 가림막을 젖히고 손놈의 얼굴을 확인해야할까.





손님이 피우던 곰방대로 팔걸이를 세 번 두드렸다. 최영감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허리를 다시 구부려 손잡이를 잡았다.

아. 모르겠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혹시 지금은 꿈 속이고 나는 귀신에 홀린 게 아닐까. 삐약이 놈이 가슴팍에 또 올라와 웅크리고 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꿈이라면 일어나서 삐약이 눈꼽이나 떼줘야겠다.

모퉁이를 돌아 왼쪽으로 꺽자마자 헌병이 인력거를 막아섰다. 해골그림 마스크, 두툼한 방탄헬멜, 선글라스를 낀 시커먼 장정이 총을 오른팔 위에 얹어놓고 집게손가락을 걸쇠 옆에 뒀다. 위압적인 모습 아래 중저음으로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그게.. 저...저는...(꼴깍)”

최영감이 또 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 뒷좌석의 가림막이 촤르륵 걷혔다. 덩달아 지붕의 방울이 딸랑거려 최영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석 위에는!

커다란 삼색 고양이가 왼손으로 곰방대를 오른손으로 술병을 쥐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게 아닌가. 이 비오는 날 연보라색 도포를 입고 머리엔 갓을 쓴 고양이가 형형한 칼눈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뚱뚱한 삐약이를 본듯하여 입을 벌리고 꿈뻑꿈뻑 뒷좌석을 지켜보던 최영감은 빗물이 묻은 손등으로 연신 눈알을 비볐다. 두 눈을 다시 크게 뜨고 보아도, 뒷 좌석 손님은 삐약이, 아니 큰 고양이였다. 아까 내가 태웠던 손님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했다.

“통과하십시오”

어리숙하게 고개를 반쯤 젖히고 섰던 최영감은 헌병이 통과를 외치고 통행문은 열고 거수경레를 붙이는 광경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그냥 이 모든 것이 꿈밭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자네 좀 놀란 기색이더군”

“지금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습니다.”

“꿈은 아닐걸세. 빗물이 자네 몸을 차갑게 젹시고 있지 않은가”

“대체 손님은 누구십니까”

“나? 나는 대낮에 도포를 입고 곰방대를 물고 인력거 방석 위에서 홀짝홀짝 술을 들이키는 한량이지”

“종속과목강문계 중에서 어디에 속하시나요?”

“음... 자네들 인간계 분류로는 아마도 고양잇과가 아닐까 싶네만. 그런데 그게 중한 것인가? 아까 자네도 군인을 보아서 알겠지만, 세상엔 자네가 모르지만 당연한 것도 많다네”

“제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이 제 돈을 떼먹지 않을까 싶은 걱정뿐입니다요”

“하하핫 자네의 소심한 호방함이 마음에 든다니깐. 당연히 보수를 두둑히 챙겨줌세. 그러니 나를 내려주고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게. 아직 늦지 않았다니까. 대문을 넘자마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걸세. 자 저만치 팻말이 보이는가. 저 앞에서 나를 내워줌세”

인력거는 손님의 곰방대가 가리킨 팻말 앞에서 정확하게 정차했다. 가림막을 확 젖히고 예의 우산을 펼치고 손님은 내렸다. 최영감은 멀뚱히 서서 손님의 그 우아하고 사뿐한 발사위를 감상하고 있었다.

손님은 붉은 비단 주머니를 건넸다. 최영감은 손가락을 휘감는 비단 감촉 너머로 묵직한 은전의 무게를 분명히 느꼈다. 사르륵 비단 촉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손님은 들고 있던 술병을 건넸다. 얼떨결에 술병까지 잡고서 어리둥절하여 말을 더듬었다.

“어...쓰레기 처리는 아무리 그래도 좀...”

“이녀석아. 그건 쓰레기가 아니야. 모양새가 볼품없어도 조선백자니라. 그리고 백자 값만 해도 타이어 10개는 사고 남을 거다. 하지만 병보다 그 안에 든 것이 더 귀한 것이지. 자네 집에 골골대는 삼색이에게 먹이게. 명심해야 하네. 그건 고양이에겐 명약이지만 인간에겐 독이야. 해로워도 이보다 해롭지 않을 만큼 해로운 약이라네. 한 방울도 먹어서 안된다네. 알겠나. 지금 당장 집으로 달려가게. 이따위 인력거는 여기다 버리고 집으로 가란 말이네. 자네 집에 있는 삼색이는 아주 귀한 분이라네. 나도 왜 그분이 자네를 택했나 모르겠다만, 역시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있지. 그 분께 그 약을 먹이게나”

“어.. 삐..우리 삐약이 말씀이죠?”

“.....”

“꼭 그런 촌시런 이름으로 그분을 칭해야겠나”

“그치만 삐약이는 막내라 그런지 조그맣고 젖도 잘 못 물고 소리도 희미하게 지르는데다 형제들이 눈도 뜨고 제 어미 사료를 뽈뽈 거리며 뺏어먹는데도 발걸음도 잘 못 떼는걸요. 오늘 내일 할정도로 기침이랑 콧물이 심하고 눈꼽도 꾀어서 영 비실..”

딱!

곰방대가 허공을 가르고 최영감의 이마 정중앙을 찍어버렸다.

“아이코 내 대가리가 깨진다. 고양이가 사람을 친다. 아이고 아이고 두야”

“이녀석아. 여기서 나랑 농담 따먹으며 엄살 피운 시간이 없다. 어서 한달음에 달려가거라. 그 분을 살려야 너가 산다.”

“... 근데 진짜 이거 제가 먹으면 안되나요?”

“응 안돼. 그거 먹으면 너 고자된다”

“후딱 가겠습니다.”

최영감은 비단 주머니와 술병을 가방에 넣고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뭐가 먼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되는데 그런데 그냥 질주했다. 일단은 그 뚱뚱한 고양이가 시키는 대로 해볼 셈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술병 안에서 찰랑 대는 술을 들이키고 싶은 충동이 스믈거리지만 그게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데 혹시 먹었다 진짜 고자가 되면 안되니...깐. 그리고 두둑이 넘긴다던 보수는 5배가 훨씬 넘는 것 같다. 그런 촉이 온다. 그러니깐 집으로 가자. 가는 길에 애들 캔도 사서 가자.

끼이이익

문을 열어젖히고 축축한 신발을 벗지도 않고 방에 들어왔다. 아침과 달리 고양이들은 방 한가운데 동그랗게 모여 집주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최영감은 전구불을 밝히고 방 가운데로 갔다. 고양이들이 모두 모여 체온을 옹기종기 나누고 있는 그 가운데 삐약이가 축 처진 채 누워있었다. 최영감은 손바닥만한 삐약이를 주워들어 자기 심장께에 올렸다. 찬장에서 깨끗한 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감싸고는 손바닥을 비벼 삐약이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조그만 녀석이 움찍거리지도 않는다. 뭔가 배꼽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다. 연신 손바닥을 비벼서 삐약이의 가슴 언저리와 머리를 문질렀다. 그러기를 30분째. 드디어 가늘게 삐-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영감은 조심스럽게 왼쪽 어깨에 삐약이 머리를 걸치고는 부엌에서 미지근한 물을 만들었다. 아까 손놈이 건넨 붉은 비단 주머니 끝을 젹셔서 눈꼽이 붙어 더러운 삐약이의 눈을 살살 닦아 주었다. 손눈썹이 엉켜붙어 애를 먹었지만 마지막 눈꼽까지 떼어내니 살짝 눈을 뜬다. 연한 녹색과 초록색과 노란색과 그리고 보라색이 뒤섞인 눈동자가 최영감과 시선을 맞추더니, 눈을 감았다 다시 가늘게 눈을 떴다. 최영감은 술병의 액체를 그릇에 부어 바닥에 놓았다. 삐약이는 그것에 처음부터 제것인양 핥기 시작했고, 다른 식구들은 애옹대는 소리 하나 없이 이를 모두 지켜보았다.

비는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그 일이 있고부터 열흘을 더 쏟아부었고,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 대문 여는 것도 버거웠던지라 최영감은 방구석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다. 마침내 비가 그친 뒤, 대문을 살포시 열고 나가니 근 이주만에 보는 햇살이 하얗게 부셔서 최영감의 눈을 마구 때렸다. 햇살조각을 함빡 들이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최영감네 단칸방 외엔 건물이 죄다 부서졌다. 마치 산사태라도 난 모양새로 토사와 나뭇가지가 지천에 깔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상황 파악이 되지않는 최영감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꿈인지 생신지 자기 볼을 마구 꼬집었다. 바로 그때

“이보게 인력거 양반. 내 가볼 데가 있는데 여기에 내가 아는 인간이라고는 자네가 유일하니, 그대가 나를 좀 데려가 주질 않겠는가”

익숙한 손님의 기운을 느끼며 최영감은 대답했다.

“삐약이 너이생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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