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7/23 14:01:24
Name   팟저
Subject   우리는 백윤식을 용납해야하는가.
본문은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 김자연에 대한 넥슨의 교체 결정과 및 그로 인한 인터넷 상의 광범위한 논란을 주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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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영화, ‘운지의 꿈’이 개봉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노무현이 죽기 전날 아침입니다. 도입부에 당시 검찰의 노무현 조사 관련된 언론 보도가 다큐멘터리로 삽입되고요. 영화로서 첫 장면은 노무현의 경호원 둘의 잡담으로 시작합니다. 둘은 간밤에 노무현에게 걸려왔던 어떤 전화에 대해 떠드는데요. 그 전화란 변양균의 부인이 걸어온 것으로, 신정아와 놀아난 건 정작 노무현인데 중간에서 연결책 노릇이나 했을 뿐인 내 남편만 억울하게 되었다며 이번 기회에 신정아 건의 진실까지 검찰에 넘겨볼까 협박하는 투의 내용이었음이 경호원들의 잡담을 통해 드러납니다. 둘은 어젯밤 자신들마저 피곤하게 만들었던 전화의 주인공을 불평하는 한편, 제 입지를 위해 측근을 판 노무현과 그런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며 스스로를 희생한 변양균을 비웃습니다. 이어 장면은 노무현에게로 넘어갑니다. 간밤에 결려온 전화의 영향인지 마침 노무현 역시 변양균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권양숙에 대한 괘씸함이 뒤를 잇습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감옥에 가는 것까지 불사하며 의리를 지킨 변양균과 달리, 함께 산 세월이 얼만데 끝끝내 잡아떼는 부인이 곱게 보이지 않는 거죠. 상념은 억척스러운 부인과 달리 온화한 마음씨와 세련된 매너로 자신을 꼭 안아주었던 신정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집니다. - 이처럼 영화는 노무현의 마지막 몇 시간 동안 검증된 사실은 물론 검증되지 않는 오만 소문까지 덧붙여서 그의 죽음을 비웃습니다. 결국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갈 수 없음을 깨달은 노무현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면서 영화는 끝나고요. 프롤로그에서 그러했듯 에필로그 역시도 다큐멘터리가 삽입되는데, 노무현 사후의 촛불시위가 그 내용입니다. ‘운지의 꿈’이란 이때 깔리는 음악으로 일베 유저 MC현무가 제작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논란이 될 겁니다. 연출은 물론 각본까지 맡은 감독,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더 황당한 건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인데요. 백윤식, 송재호, 윤여정, 조지은, 조상곤, 한석규, 김상호 등등... 걸출한 배우들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에 출연을 결심한 사실은 당신을 경악케 하고 이들의 섭외할만한 제작비를 턱하고 내놓은 제작사를 생각하면 골머리가 아픕니다. 무슨 생각일까요. 똘기 넘치는 감독 하나가 저 좋다고 찍은 3류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예고편만 봐도 때깔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죠. 보니까 김윤아의 음악을 쓰고 있던데... 그럼 분명 김윤아 역시도 자기 음악을 쓰게 허락했다는 거겠죠? 슬슬 당신은 이런 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현 사회에 위기감을 느낍니다.

영화는 당연히 명예훼손으로 고발됩니다. 노건호가 손해배상과 영화상영금지를 청구하는군요. 그러나 법원은 손해배상 청구만 들어줬을 뿐, 상영금지를 내리진 않습니다. 그저 관객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다큐멘터리 부분만 삭제하라고 하죠. 노무현 지지자를 중심으로 이 영화에 대해 반대여론이 모이고, 당신 역시 그에 한 몫 거들지만 영화는 멀쩡히 잘만 상영됩니다. 아니, 부산영화제에서는 아예 삭제 장면까지 복원한 원본이 걸리고요. PIFF가 우경화되었다더니 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개봉 전 논란에 비해 흥행은 못해서 관객수 백만 정도에 그치지만 저딴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감독은 여기저기서 제작비 잘만 받아 다른 영화 멀쩡히 찍는 중이고 배우들 역시 승승장구하죠. 대한민국을 일베충이 점령한 걸까요? 위기감은 이제 무력감으로 나아갑니다.......

한데 이 판국에 당신이 느끼는 무력감은 좀 새삼스럽습니다. 지금껏 당신, 당신하며 떠들었으니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전 상황이 저렇게 흘러가도 딱히 대단한 위기감을 느낄 거 같진 않아요. 그리고 만약 저 영화를 찍은 감독이나 출연진이 해당 영화로 인한 반대 여론으로 이후 영화 제작 및 특정 영화 출연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전 도리어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또한 반대 목소리를 낼 용의가 있습니다. 이는, 단지 저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그동안 제가 보아온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봐도 마땅히 그럴법하다고 생각하고요.

왜냐면 ‘운지의 꿈’은 사실 제가 망상한 먼 미래의 위기 따위가 아니라 당장 10년 전에 있던 사건이고, 영화 외적인 이런저런 맥락들은 그 10년 전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거든요. 아, 하나 차이가 있네요. 10년 전 ‘운지의 꿈’ 주인공은 노무현이 아니라 박정희와 김재규였습니다. 영화 제목은 ‘운지의 꿈’이 아니라 ‘그때 그 사람들’이었죠.

‘그때 그 사람들’ 본 분들이라면 아마 출연진에서 대강 눈치 채셨을 겁니다. 영화는 분명 전 대통령과 그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의 사회상에 대한 짙은 냉소를 담은 블랙코미디지만, 관점에 따라 오만 고인드립과 패드립이 난무하며 박정희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루머(윤정희 스캔들, 심수봉의 엔카, 여대생 성접대 등)를 끌고 와 그를 모독하기 위해 찍은 영화라고 볼 수 있거든요. 한국이 좌경화되었고 한국 영화판을 빨갱이가 접수했다고 떠들 때 일베가 가장 먼저 끌고 오는 사례기도 하죠. 물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상영금지처분을 내리는 것에 “영화가 갖는 창작의 본질을 형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던 한국 법원의 결정에 동의하거든요. 또한 영화 출연진을 말하며 저들의 이런저런 영화 출연에 일단 어깃장을 놓고 보자는 의견은, 심지어 일베에서조차 곧잘 찾기 어려운 의견이고요. 일베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로 놓고 보자면 말할 것도 없겠죠. 그러니 실제로 백윤식, 송재호, 윤여정, 조상곤, 한석규, 김윤아 등은 지금도 자기 분야에서 활동 잘만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만약 법원의 판결과 별개로 저런 문제적인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다른 제작사들에서 감독은 물론이거니와 출연진 모두 다른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면? 제작 과정에서 누굴 뽑고 뽑지 않는 거야 제작사 마음이고 법적 문제가 없습니다만, 이 상황은,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용인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분명 문제적입니다.

박정희를 모독하는 영화에 기꺼이 참여한 게 문제라면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를 욕보일 수 있는 영화 ‘괴물’은 어떻습니까. 언론사에 날을 세운 ‘내부자들’은 어떻고 80년대 범죄를 처단하던 공권력을 비꼬았던 ‘범죄와의 전쟁’은 또 어떨까요? 물론 이 영화들 각각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온도 차이는 분명할 겁니다. ‘그때 그 사람들’에 비해 배경으로 삼은 사건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크지 않은 ‘괴물’, 혹은 ‘내부자들’에 느끼는 감상은 다를 법하지요. 그리고 각각이 자신들의 소재 및 배경을 형상화하는 정도의 차이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영화마다 어느 의견이 부당하고 무엇이 정당한지에 대한 기준이 갈리겠죠. 하지만 ‘운지의 꿈’이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불편한 노래인 만큼,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지지자에게 불편할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이 되었건, 어떤 작품에 걸린 민감한 정치성으로 인해 그 매체에 참여한 배우에 대한 여론이 결정되며, 그 여론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제작자로 하여금 특정 배우를 반려할 정도가 된다면, 전 그 사회를 도저히 건전한 사회라고 말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우리 사회는 ‘운지의 꿈’에 출연할 어떤 배우를 용인할 수 있을까요? 아마 며칠 전이었다면 전 그러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벌써 10년 전 이야기인데요. 그렇지만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에 출연한 어떤 성우의 이야기를 접한 뒤로, 전 이를 자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은 전 대통령에게 고인드립을 날리는 영화에 주연 출연한 배우 백윤식은, 과연 패드립을 날리다 고소당한 유저들의 패소 대비 후원금을 모집하기 위해 메갈리아에서 제작한 티셔츠를 구매한 성우 김자연보다 정치적 문제성이 덜한 걸까요. 아, 출연이 아니라 모금이라 그런 걸까요. 그렇다면 메갈리아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성우로 출연한 것뿐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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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개인사를 속속들이 알 정도로 친한 친구들 중 페미니즘이란 이름하에 가장 많이 시달린 사람은 단연 수진입니다.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으로 유명하죠. 아마 이 글을 읽을 어지간한 분들까지 포함해도 비슷할 거예요. 대강 사연을 소개한다면, 당시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에 있던 유수진에게 같은 단체에 있던 어떤 학생에 대한 성폭력 고발이 들어옵니다. 이 ‘어떤 남학생’이 했다는 성폭력이란 이별을 통보하며 담배를 피웠다는 것이지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별을 통보하며 줄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부각하여 상대를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헤어지고자하는 자신의 의사를 밀어붙였다는 것...입니다. 고발을 한 건 그 학생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여학생이었고요. 학생회장은 이를 기각했지요. 그러자 이 여학생은 자신이 소속된 전국학생행진과 관악 여성주의 장치 모임인 ‘공간’을 통해 해당 사건의 ‘성폭력 대책위’를 만들어 자신에게 2차 가해를 가했다는 이유로 학생회장 유수진을 소환하지요. 이 성폭력 대책위에 불려나가면서 유수진은 정서적으로 굉장히 시달리게 되는데요. 거식증을 앓게 되고, 그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이후 사건이 여론에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되지요. 대부분은 여기까지 아실 겁니다. 헌데 사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지요. 이러한 사건을 겪으며 소위 한국 여성 운동권에 만연한 ‘피해자 중심주의’의 폐해에 대해 피...는 아니고 음식물을 토할 정도로 느낀 유수진은 자신이 속한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가 채택한 여성운동 노선을 수정하길 요구합니다. 성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성은 담보해야하니까요. 그러나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는 페미니스트와 연대를 고려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를 반려하고요. 이 과정에서 신나게 키배를 뜨다가 지친 유수진은 이를 계기로 해당 단체에서 탈퇴합니다.

이쯤 되면 유수진이 페미니즘과 그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단체에서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이로 대변되는 ‘정치적 정당성’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지는 알만합니다.

헌데 그런 사람이 이번 성우 교체 사건에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그녀의 포스트는 여기저기로 날려가며 오만 욕을 다 처먹고 있죠. 대체 뭔가요. 말도 안 되는 피해자 중심주의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던 그녀가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스톡홀름 증후군일까요?

메갈리아를 잘 몰라서 그럴까요? 글쎄, 당장 얼마 전까지만해도 메갈리아 페이스북 링크해놓고 동성애자, 성매매 여성, 빈민, 노동자, 비만 등의 사회적 약자를 혐오한다며 신나게 키배를 뜨고 있던 걸 봐선 그런 거 같진 않습니다. 아니면 나무위키나 오늘의 유머에서 흔히 떠드는 것처럼 ‘작은 사회 법칙’ 같은 걸까요? 이미지 그럴싸해보이는 연예인도 MC몽이 음반내니까 좋다고 하고 감싸는 뭐 그런 것처럼 말이죠. 근데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은 게... 애초에 그러게 ‘자기와 같은 이념의 단체’라고 일단 덮어놓고 생각할 사람 같으면 대책위 사건때 그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을 거고 그 이후 자기 운동권 단체에서 뛰쳐나오지도 않았을 거 같거든요. 아, 그럼 그때 한번 나오고 보니 조직 없는 설움을 깨달아 이번 기회를 통해 메갈리아랑 어떻게 샤바샤바해보려고 그런 걸까요?

뭐 저 포스트 올린 이후 따로 이야기 나눈 게 없어서 본인 진짜 심리야 어떨지 함부로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전 그녀가 왜 그런 의사를 표명했는지 전 알 거 같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겠죠. 굳이 메갈리아 티셔츠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그걸 한 건 ‘김일성 개새끼해봐’란 물음에 대고 ‘김일성 만세’라고 외친 반골기질이 아닐까 싶고요.

허나 이걸로 욕을 먹는 거야 ‘김일성 만세’라고 외친 사람이 감당해야할 당연한 몫이겠죠. ‘표현의 자유’란 ‘욕 먹지 않을 자유’ 같은 게 아니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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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란, 정확히 말해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란 어떤 사람이 어떤 개소리를 하든 그 말을 존중하며 언제나 하나의 의견으로서 받아들인다는 걸 뜻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 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공적 공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인터넷상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 사회적 반감을 사, 이로 인해 절차적 문제는 없을지언정 자기 커리어에 타격으로 돌아오는 것에 회의를 표할 근거는 충분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어떤 말을 했다고 백주대낮에 끌려가 능지처참 당하지 않을 권리만을 ‘표현의 자유’라고 한정짓지 않는다면 말이죠.

어느 PC방을 생각해봅시다. 사장이 어떤 여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려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걸 봐야하니 잘하나 못하나 하루 정도 써보고 근로계약서는 그 후에 작성하려고 했죠. 꼬부랑말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네요. 사실 PC방 일이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그럭저럭 일도 하는 거 같으니 쓸까 싶습니다. 그런데 PC방 손님 중 하나가 말하길 저 꼬부랑말 적힌 티셔츠가 메갈리아에서 파는 거랍니다. 한남충인 사장은 잠시 고민하다 여학생에게 다른 애를 쓰겠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사장은 어떤 남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려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걸 봐야하니 잘하나 못하나 하루 정도 써보고 근로계약서는 그 후에 작성하려고 했죠. 부엉이가 묘하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네요. 사실 PC방 일이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그럭저럭 일도 하는 거 같으니 쓸까 싶습니다. 그런데 PC방 손님 중 하나가 말하길 저 꼬부랑말 적힌 티셔츠가 일베에서 파는 거랍니다. 깨시민인 사장은 잠시 고민하다 남학생에게 다른 애를 쓰겠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사장은 어떤 대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려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걸 봐야하니 잘하나 못하나 하루 정도 써보고 근로계약서는 그 후에 작성하려고 했죠. 왠 잘생긴 남자가 그려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네요. 사실 PC방 일이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그럭저럭 일도 하는 거 같으니 쓸까 싶습니다. 그런데 PC방 손님 중 하나가 말하길 저 티셔츠에 그려진 잘생긴 남자가 골수 빨갱이 체게바라라고 합니다. 직장 다니던 시절 강경노조에게 학을 뗀 사장은 잠시 고민하다 대학생에게 다른 애를 쓰겠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어떤 신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려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걸 봐야하니 잘하나 못하나 하루 정도 써보고 근로계약서는 그 후에 작성하려고 했죠. 이상한 티셔츠를 입고 있지도 않고요. 사실 PC방 일이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그럭저럭 일도 하는 거 같으니 쓸까 싶습니다. 그런데 PC방 손님 중 하나가 말하길 저 신학생이 자기 동기인데,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되었던 ‘동남아시아를 휩쓴 쓰나미는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벽보’라던 목사의 말에 동조했답니다. 무신론자인 사장은 잠시 고민하다 신학생에게 다른 애를 쓰겠다고 말합니다.

학생에 지친 사장은 이번에 백수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려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걸 봐야하니 잘하나 못하나 하루 정도 써보고 근로계약서는 그 후에 작성하려고 했죠. 이상한 티셔츠를 입고 있지도 않고요. 사실 PC방 일이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그럭저럭 일도 하는 거 같으니 쓸까 싶습니다. 그런데 PC방 손님 중 하나가 말하길 저 백수 놈이 자기 고등학교 동기인데, 고교 시절 일본의 오만 AV는 물론이거니와 여성이 왠 남자한테 배를 처맞거나 개, 소, 말과 같은 동물들과 수간하는 영상들을 아이들에게 공유해주던 야동본좌랍니다. 평소 성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투철했던 사장은 잠시 고민하다 백수에게 다른 애를 쓰겠다고 말합니다.

네, 이 모두는 딱히 사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습니다. 아마 현실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그럴법한 일이라고 웃어넘기거나, 혹은 청차의 정치 성향에 따라 몇 번 씹고 그만이겠죠. 아마 이번 성우 사건 앞에서 피로를 호소하는 대부분은 이 정도의 스탠스일 겁니다.

그런데 이게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어찌저찌 알게 된 게 아니라 이것이 모두에게 당연하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바뀐다면 말입니다. 예컨대, 기업이 입사공고에 적힌 구직자의 이메일 주소를 이용, 해당 구직자의 아이디를 구글링하며 그가 ‘과연 우리 회사에 어울릴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본다면 말이죠. 나아가,

기업이 입사공고에 구직자의 페이스북 주소를 요구한다면?
기업이 입사공고에 구직자의 블로그 주소를 요구한다면?
기업이 입사공고에 구직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당시의 모든 아이디를 요구한다면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당연해진다면요?

물론 고작 현재 넥슨 성우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저 정도로 변화하진 않을 겁니다. 당연히 기업에서 저런 정보를 요구하면 사법적 판단 이전에 수많은 구직자가 인권침해라고 부르짖으며 해당 기업을 규탄하겠죠. 실제로 얼마 전 직원의 SNS나 블로그를 감찰하던 회사가 비슷한 이유로 욕을 처먹기도 했고요.

다만 제가 당신께 묻고 싶은 건 이겁니다.

아르바이트를 뽑는 PC방 사장이 있고, 구직자에게 페이스북 주소를 요구하는 기업이 있고, 직원의 블로그를 감찰하는 회사가 있으며, 그리고 넥슨이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과연 여러분은 어디쯤 ‘선’을 그을 생각이신지요. 그리고 그 ‘선’을 어떻게 정당화할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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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런저런 웹툰 작가들이 성우 김자연에 대한 지지성명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즐겨보는 웹툰이 없어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걸 말할 순 없고... 다만 그들이 느끼고 있을 어렴풋한 두려움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자신들도 김자연과 마찬가지로 서브컬쳐계에서 컨텐츠를 생산하고 있고, 역시나 김자연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SNS와 블로그를 언제나 들여다 볼 수 있는 인터넷 유저들을 기반으로 상품을 팔아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자연 사태를 통해 자신이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쓴 포스트들이 언제든 자기 계약을 좌우할 수 있으리란 걸 깨달았겠죠.[*진짜 웹툰을 보지 않아 몰랐는데 웹툰 작가들이 독자를 개돼지 취급하는 식의 웹툰을 그렸다더군요. 음... 이하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해당 발화를 용인하고 지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느낄법한 어떤 공포를 이해한다는 맥락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치 레바나 장동민 사태처럼 말입니다.

전 이번 사건의 본질이 장동민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건 메갈의 포지션이죠. 레바나 장동민 때는 욕을 했고, 김자연 때는 처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메갈의 포지션이, 완전히 같은 세 사건의 인식을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아, 엄밀히 말해 김자연은 레바, 장동민과 같은 궤에 놓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레바, 장동민은 스스로 문제가 된 컨텐츠를 생산한 장본인이었던 반면 김자연은 특정 컨텐츠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을 뿐이니까요. 레바, 장동민 사태에 빗대자면 저 둘보다는 저 둘의 만화와 팟캐스트에 후원을 했는지 여부겠지요.

그 한심함이 서울대 사태에 비견될 레바 건은 차치하더라도, 장동민의 경우 분명 그 문제성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니 무한도전 식스맨에서 탈락하기까지 했고 한동안 공중파에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지요.

그러니 여러분 중 혹 장동민의 팟캐스트를 즐겨 들으신 분이 있다면, 후원하신 분이 있다면 주의하길 바랍니다. 언제 김자연과 같은 꼴 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상간물, 수간물, 배빵 등을 즐기시는 분들 역시 주의하십시오. 근친상간이나 수간이 뭡니까. 패륜이거든요. 아니, 근친상간이야 배우들이 실제 혈연관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그렇다쳐도, 수간은 진짜 당한 걸 찍은 거거든요. 그야말로 리얼 패륜입니다. 패드립의 후원자나 패드립의 향유자나 다를 게 있을까요. 아니, 애초에 메갈리아 티셔츠를 문제삼은 의식의 경로가 “메갈리아 티셔츠 구매->메갈리아 패드리퍼들 패소 대비 모금->평소에 패드립을 얼마나 즐겼으면 ㅂㄷㅂㄷ” 정도 아니겠습니까. 이쯤 되니 우리가 지금껏 여성부를 왜 욕했는지 모르겠네요. 다소 기준이 빡빡하다뿐이지, 우리가 바라는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계셨는데 말입니다. 아니, 어찌 보면 작금의 기준이 너무 약한 것도 같아요. 그러니까 수위야 문제될 게 없는데 거르는 틀은 좀 더 강화할 여지가 있을 거 같아요. 전국민이 자발적으로 자기 블로그와 SNS를 감찰할 권한을 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인권침해라고요? 찔리는 게 없으면 문제될 것도 없지 않을까요.

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하지만 메갈리아가 장동민이나 레바에 대해 극성 패악을 부릴 때, 소라넷하니 계정을 통해 소라넷 회원들의 트위터 주소를 인터넷상에 공표할 때, 몰카가 문제라며 학우와 통행인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바라볼 때 사람들이 느낀 공포가 이와 같았을 겁니다. 그리고 국내의 여러 서브컬쳐계 종사자들이 느끼고 있을 심정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블로그와 SNS와 달리, 저들은 정말 윗 문단에서 말할 ‘주의해야할 우리’가 될지 모르거든요.

수간물을 즐긴다고 욕을 먹는 것과 수간물을 즐긴다고 계약이 끊기는 건 분명 같은 이야기가 아니죠.

그리고 우리 모두는 모두 어떤 부분에선 다들 이 사회가 표준으로 제시하는 건전성을 어기고 있습니다. 아, 어떤 분은 아니라고요. 축하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습니다. 전 수간물을 즐겨봤고 ‘운지의 꿈’을 들으며 웃어봤고, 장동민의 팟캐스트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옹달샘을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아쉬웠습니다.

전 패드립을 즐겼고 살면서 패드립도 많이 쳐봤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제 커리어에 타격이 오는 건 원치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야겠네요. 아직 김자연이 어떤 타격을 받을진 구체화된 게 없으니까요.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고 싶진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 비겁한 놈입니다. 자기가 건전치 못한 놈인데도 그로 인해 따라올 사회적 무게는 회피하고 싶어하니까요. 하지만 전 이렇게 비겁한 놈이 저 하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다른 이들의 눈으로 볼 때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도요. 같은 사람이라도 ‘운지의 꿈’과 ‘그때 그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다른 것처럼요. 사커라인에서 야동 품번을 공유하던 유저 A의 건전성으로는 메갈리아를 용납할 수 없고, 패드립의 패소 대비 모금용으로 메갈리아의 티셔츠를 사 입은 유저 B는 야동 품번 공유하는 남초 커뮤니티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오유에서 박정희-윤정희 스캔들을 떠드는 유저 C는 일베를 용납할 수 없고, 일베에서 노무현-신정아 루머를 믿는 유저 D는 노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구에겐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우리 각자에게 요구하는 건전함이 점점 더 많아질수록 우리 각자가 느껴야할 비겁함은 더욱 더 커질 겁니다.

그래서 전 우리 사회가 제가 비겁한 존재가 될 필요 없는 세상이기를 바랍니다. 성우 김자연이 메갈 티셔츠 샀다고 발발 떠는 사회가 아니라 ‘그때 그 사람들’을 찍은 배우들이 이후로도 자신의 커리어를 문제없이 이어가고, 그걸 모두가 당연하게 바라보는 세상이길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전한 사회란, 사회 구성원 개인에게 높은 수준의 건전성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공직이 아닌 한 그 개인의 건전성과 직업 활동이 분리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전 김자연을 지지하는 웹툰 작가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넥슨의 이번 결정에 반대하고요.



여담.

말이야 저렇게 했지만 실제 ‘운지의 꿈’이 개봉한다면, 사법적으로야 별론으로 할지언정, 사회적 반응은 ‘그때 그 사람들’과 상이할 겁니다. 일단 박정희와 노무현이 같지 않고,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나 그 공과에 대해 비교적 정리가 된 박정희에 비해 노무현의 경우 아직까지도 민감한 정치적 소재이기 때문에요. 당연히 박정희 능욕하는 영화와 노무현 능욕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게 같은 무게를 갖지도 않을 것이며, 예상컨대 아마 분명히 관련 출연진이나 스탭진은 향후 필모그래피에 타격을 받을 겁니다. 적어도 주역으로 등장한 배우는 자기 커리어에 가장 강력한 안티 세력 하나를 만들게 되겠죠. 다른 건 그저 박정희와 노무현이라는 소재밖에 없으며 그 어조와 소위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요. 그리고 이를 과거 ‘그때 그 사람들’과 비교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할 사람은... 글쎄, 일베를 제외하면 별로 많진 않을 거 같습니다.

이것이 과연 온당할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 ‘왜 언론사며 이런저런 사람들이 일베와 메갈리아를 달리 취급하는가’에 대한 이유 하나쯤 건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예, 분명 부당합니다. 둘 다 패드립인데요. 그러나 이는 ‘운지의 꿈’과 ‘그때 그 사람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법한 이야기입니다. 둘 다 고인드립인데요. 박정희의 군부독재며 인권탄압을 이야기한다면 아마 반대 측에선 박정희가 이룩한 경제화 발전이니 기타 등등을 분명 언급할 것이고... 네, 아마 난장판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 난장판 속에서도 모호하나마 어렴풋한 기준쯤이야 사회적으로 용인되겠죠. 예컨대 전두환을 대놓고 까는 영화 ‘26년 후’에 대해선 저런 논란조차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어떤 이들’이 보기엔 여성 문제가 바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냥 납득하라는 소리냐, 메갈리아가 헛짓거리를 해도 냅두란 이야기냐고 제게 묻는다면 전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당연히 납득할 수 없다고요, 그리고 납득해서도 안 된다고요.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메갈리아가 되진 말아야겠죠. 장동민이 아니라 장동민의 옹달샘에 팥을 쏜 개그맨 A가 무한도전 세븐맨에서 탈락하는 일 따위는 없어야하니까요. 전 메갈리아가 싫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싫은 건 메갈리아식, 서울대식 우격다짐이 관철되고 용인되는 세상입니다.


여담2

이번 문제가 어렵긴 합니다. 일단 메갈리아라는 문제 자체가 위에서 말했듯 워낙 민감한 영역에 걸쳐 있고, 넥슨이 김자연의 SNS를 따로 감찰한 것도 아니라 논란이 된 이후에 발견한 것이며, 당장 수요층이 한정된 만큼 타격이 확실하니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할법합니다. 텐데요. 전 그래서 넥슨의 이번 결정을 옹호하진 않지만, 이해는 합니다.


여담 3

진짜 웹툰을 보지 않아 몰랐는데 웹툰 작가들이 독자를 개돼지 취급하는 식의 웹툰을 그렸다더군요. 음... 뭐 4에서 떠들어댄 웹툰 작가들을 이해한다는 표현은 그들의 해당 발화를 용인하고 지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느끼는 어떤 공포를 이해한다는 맥락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외에, 이 글은 이런저런 분들이 지적해주신대로 많은 추측과 비약이 있는데요. 사실 그 대부분은 그냥 드립용이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비유와 사례 차용에 가깝습니다. 실상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 근거는 1에서 대부분 끝나고 2, 3, 4는 제가 느낀 어떤 부조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기나긴 사족에 불과하죠. 그러니 반론을 제기하시려거든 1에 집중하는 편이 여러모로 더 생산적일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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