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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8/03 19:13:34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랩탑 수리 완료에 즈음하여
약 170여 년 전, 제 1차 아편전쟁의 패전에 뒤따른 난징조약이 발효되면서 홍콩은 영국의 조차지가 됩니다. 영국은 홍콩에 총독을 파견해서 통치하면서 신나게 아편을 팔아먹고 또 세금을 걷었습니다. 그러다 아편팔이가 잘 안 되면 또 시비 걸어서 전쟁 일으키고 사람죽이고 하면서 한껏 돈을 벌었더랬지요. 이 돈의 일부는 홍콩 총독의 봉급으로 나갔고, 그렇게 넉넉히 돈을 벌었던 총독 중 아놀드 경이라는 양반이 있었습니다. 이 양반은 죽기 전에 재산의 일부를 모 처에 기부하면서 영국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돈이 후에 아놀드 경 중국학 장학금이 됩니다.


백 수십년 후, 그 돈은 한국에서 온 기아트윈스라는 박사과정생이 쳐묵쳐묵 타먹게 됩니다. 이 친구는 그렇게 받은 돈으로 랩탑을 하나 삽니다. 각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랩탑을 박사 슬레이어 1호로 만들었지요. 동료 중에 이렇게 많은 연구 보조 프로그램을 깔고 돌리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레벨과 능력치가 좀 딸리면 장비라도 좋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랩탑이 와이파이 신호를 못잡기 시작합니다. 아주 못 잡는 건 아니고 잡았다 말았다 감질나게 하길래 대형 가전 체인에서 운영하는 수리프로그램에 맡겼습니다. 맡기기 전에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헛수고였지요. 윈도우즈를 재설치해볼까 생각했지만 그간 설치해둔 연구 보조 프로그램들을 다 다시 찾아서 설치할 걸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해져서 "그냥 랜카드를 바꿔주시오"라고 언질을 주고 맡겨버렸습니다.


인도인 크리스토퍼는 웃으면서 빠르면 7일, 늦어도 10일이면 된다고 하더군요. 10일이라... 너무 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와이파이를 못잡는 랩탑이랑 계속 사느니 10일 기다리고 만다는 심정으로 흔쾌히 맡겼습니다. 정확히 18일이 흘러 오늘, 수리가 다 됐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가서 수리 내역을 보니


OS재설치, BIOS 업데이트


오 이런. 저는 이 인도친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이걸로 고쳐진 거냐고. 하니, 그렇다네요. 한 번 켜서 돌려보랍니다. 일단 와이파이는 잘 잡습니다. 하지만 텅 빈 프로그램 목록이 가슴을 후벼팝니다.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수리비를 물어봤더니 공임비로 60파운드를 달랍니다.


지쟈스 ㅠㅠ


제가 직접 했으면 하루면 됐을 것을 18일 간 해놓고 10만원을 달라니.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수리는 됐고, 돈 안 줄 수 없잖아요. 자기 나름 하드웨어 문제는 아니고 OS문제라고 진단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있었을 테니 공임비가 말이 안되는 수준은 아닐 거라고 믿고 웃으며 돈을 줬습니다. 그 정도 나올 수도 있지요 뭐. 하지만 십팔일이나 걸린 건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386에 윈95 깔던 시절도 아니고 윈10 재설치가 뭐가 어렵다고.....-_-


헤어지기 전에 수리 보증기간에 대해 물어보니 수리후 3개월 이내에 증상이 재발하면 무료로 재수리해준답니다. 재수리도 십팔일 정도 걸리냐고 물어보니 물량이 많이 밀리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네요.


중국인들을 아편굴에 밀어 넣어서 번 돈 중 60파운드가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호되게 당한 인도인의 후손의 주머니 속으로 이렇게 속절 없이 흘러들어갑니다. 돈의 흐름은 참으로 무정하군요. 인도인 크리스토퍼, 씨바신의 이름으로 그대의 앞날에 축복을.



9
  • 씨바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크큭 하고 웃었습니다
  • 삼라만상을 돌고 도는 돈의 여정이 이렇습니다.
  • 이야기에 서사가 있자나요. ㅊㅊ
  • 18일...ㅋㅋ
  • 영국만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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