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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0/15 12:45:09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또!오해영', 사랑의 재발견.


- 평범한 외모?????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의 제목처럼 사랑이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존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사랑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겠지만요. 어쩌면 인류의 태동기에 존재했던 사랑이란 단순히 생식에 대한 본능, 번식을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문명이 배태되기 이전에 인류의 사랑이란, 생식능력과 건강미를 갖춘 이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끌림 정도였던 거죠. 그 후로 사랑의 개념은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변화하고 분화합니다. 기독교도의 관점에서 사랑이란 육체적 쾌락과는 철저히 분리된, 구원을 위한 동기였습니다. 한편, 사랑의 기원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신화인 그리스 신화 속 안드로규노스 이야기 –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하는 – 에 따르면 사랑이란 신에게 도전한 형벌로써 둘로 갈라진 인간이 원래의 짝을 찾아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갈망입니다.

사랑의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변화된 시기는 1774년입니다. 그 해에 괴테의 처녀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됩니다. 유럽 전역을 휩쓴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특별하고 강력한 감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랑을 하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 소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르테르는 끊임없이 사르로테를 갈망하고 그 갈망 때문에 고통받습니다. 타자가 자신에게 스며드는 파국적인 경험 앞에서, 정상적인 마음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정열을 기저에 둔 이 파국적인 경험, 로맨틱한 환상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에 대한 하나의 준거로서 존재합니다.

한편, 세속화된 자본주의 사회, 현재의 세계에서 앞서 언급한 강렬한 사랑의 의미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파국적인 경험의 사랑은 절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칼 폴라니의 지적처럼 인간(노동)도 자연(자본)도 시장 안에서 상품화된 이 사회에서, 사랑만이 시장 밖에서 홀로 독야청정 하길 바라는 것은 순진한 기대일 수도 있겠지요. 애초에 사랑이란 불능의 경험입니다. 타자의 본질은 이질성, 나와 다름이고 이 다름은 필연적으로 불능, 내 마음대로 무엇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로 이어집니다. 긍정의 힘, 성과의 달성이 최고의 목표가 된 이 사회에서 좀처럼 살아남기 힘든 개념이죠. 개인주의, 모든 것이 숫자로 환원되는 사회 안에서 온전히 자신을 타자에게 던지는, 앞뒤 가리지 않는 사랑이란 이미 사라져 흔적만 남은 화석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 오해영’ 속 이야기의 주인공, 오해영은 그런 의미에서 희귀한 존재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사회에서는 말이죠. 그녀에게 사랑은 이미 사라져버린,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있는 베르테르의 경험입니다. 갈망하고 고통받고 로맨틱한 환상 속에 황홀해 하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던질 수 있습니다. 간 보고, 재지 않죠. 돈키호테가 미몽 속에서 풍차를 향해 돌진한 것처럼 말입니다. 극 중 망설이고 오락가락하는 남자주인공을 보면 그녀는 말합니다. ‘왜 참니 ? 참아지니? 보고 싶은데 뭘 그렇게 재니?’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어떤 조건부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죠. 모든 한정은 부정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그녀에게 모든 조건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드라마 속 평범한 캐릭터인 오해영은 그렇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특별해집니다. 사랑이 형해화된 시대에 그녀의 사랑이, 그리고 그녀가 특별한 것은 당연한 일이죠. 드라마의 초반, 파혼과 그 후의 과정을 겪으며 그녀는 깨닫습니다. 부끄러움, 거절의 두려움 때문에 진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사실상 한번 죽었다 살아났음에도 망설이고 고민하는 남자 주인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죠.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건으로 인한 깨달음 -진리에 닿는- 이 그녀에게만 온전히 온 거죠. 그래서 사랑이 왔을 때, 그녀는 그것이 사랑이라 확신 할 수 있었습니다. 갈팡질팡하는 남자 주인공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극의 후반에 그녀는 자신의 로맨틱한 환상을 현실에서 실현해 냅니다. 사실 저는 이 드라마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행복한 결혼에 골인하는 결말이 아니라 사회와 규범보다 더 큰 장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선 그녀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가 더 궁금했거든요. 시청률로 먹고사는 TV 드라마엔 너무 가혹한 기대였는지 드라마는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기대와는 다른 결말이지만,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내 지난 연애가 왜 실패했는가?’ 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얻은 것에 만족했습니다.



사족. 서현진 씨는 연기를 참 잘하시더군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를 자주 접하는 편이 아니라서, 연기의 잘잘못을 평가할 깜냥은 못됩니다. 하지만 어떤 기예든 일정 경지 이상의 성취를 이루면 문외한에게도 그 대단함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오해영 배역 뒤의 서현진 씨가 보이지 않더군요. 오로지 극 중에서 오해영으로서 존재하는 그 연기가 놀라웠습니다. 평범한 역을 맡기엔 너무 미인이라는 것 외에는 흠잡을 구석이 없더군요. 다른 유형의 배역을 맡았을 때의 연기도 기대가 됩니다.


사족2. 촬영 장소, 대부분이 눈에 익은 동네더군요. '저쪽에 주차하면 안 되는데', '저기로 가면 막다른 골목인데' 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자주 지나다니는 동넨데, 촬영하는 동안 한 번도 못 본게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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