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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11/10 23:54:43 |
Name | 수박이두통에게보린 |
Subject | 군 시절 에피소드 -1 |
커피님과 1일3똥님이 정복, 군복 사진 올리신걸 보니 갑자기 군 시절 에피소드들이 생각나네요. 시리즈 형식으로 나눠서 적어보려 합니다. 1. 학군단에 합격했다. 합격한 자들을 '가입단자' 라고 하여 교육을 실시하는 날이었다. 쫄래쫄래 셔플댄스를 추며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선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욕을 하며 소리쳤다. "빨리 빨리 안 뛰어와, 이 소년들아!" 그 소리를 듣고 나의 경쾌한 셔플스텝은 전력 질주로 바뀌었다. 허겁지겁 자리에 앉았다. 굉장히 늙어보이는 선배가 단상 위에 오르더니 또 욕을 하며 소리쳤다. 이게 일명 군기잡기인가보다. '너희 같은 느리고 어리숙한 후배 필요없어!!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소년들은 당장 나가!!" 정적이 흘렀다. 그 선배는 또 소리쳤다. "안 나가? 너희 같은 소년들 필요 없다니까? 나가!! 이 아이들아!!" '벌떡' 한 소년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간다. 이 개의 아드님아. 계속 짖어라. 멍멍." 그리고 진짜 갔다. 굉장히 늙어보이는 선배는 당황해했다. "어..음..싶습셉슾 벼봇벼봇." 그 때 훈육관과 나간 소년이 마주쳤다. 훈육관이 말했다. "자네는 왜 가는가?" 그 소년이 말했다. "저 개의 아드님이 욕하면서 나가라고 하길래, 갑니다. 민원 넣을테까 그렇게 아세요." 훈육관은 당황해했다. "어..음..싶습셉슾 벼봇벼봇." 욕을 심하게 하는 굉장히 늙어보이는 선배는 그 자리에서 기합을 받았다. 참 꼬셨다. '천국의 참기름 맛은 이런 맛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2. 처음 맞이하는 하계훈련. 철야행군을 한다고 한다. 훗. 행군 따위. 이미 가입단 동계훈련 때 겪어봤지. 그 때는 순진해서 군장을 착실히 싸서 개고생했지만, 그걸 겪어봤기에 노하우가 생겼다. 우유박스를 두루마지 휴지로 둘둘 말아 군장 안에 넣으면 아주 예쁘게 각이 나온다. 샥샥슉슉 둘둘둘. 아. 내가 봐도 정말 완벽한 각이었다. 완벽하다. 난 역시 멋져. 갑자기 훈육대장이 군장 검사를 한다고 했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녀석. 역시나 걸리지 않았다. 나의 완벽한 각을 자랑하는 군장은 훈육대장 눈에도 퍼펙트해보였던 것이었다. 행군 시작.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헉헉헉. 룰루랄루~룰루 하세요~ 헉헉헉.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무게는 둘째치고 졸음이 쏟아져왔다. 자고 싶다. 나의 신체리듬을 깨트리다니. 나쁜 훈련과정. 동이 트고 대휴식의 시간이 왔다. 좀 쉬면서 한 숨 자야겠다. 웅성웅성.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왜 나의 값진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것이지. 알고보니 국방부에서 후보생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촬영을 한다고 했다. 역시 군대라는 조직은 보여주기 행정의 극치를 달린다. 휴식 끝. 촬영도 하겠다 힘들어하는 연기를 더 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훈육대장이 내가 속해있는 분단에 와서 격려를 했다. 뚜벅뚜벅. 녀석은 웃으며 나에게 접근했다. "수박이 후보생 군장이 무겁.......짉?" 녀석은 예상치 못하게 나의 군장을 웃으며 들어주는 척 하다가 당황해했다. 하지만 너보다 당황했던 나. 이런 나의 마음을 훈육대장, 넌 알았니. 그 모습은 생생히 촬영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 X때따.' 행군을 마치고 학군교로 들어갔다. 우리 모두는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 때 훈육대장은 조용히 나를 응시하며 삿대질을 하며 훈육관에게 뭔가를 말했다. 행군을 마치고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30바퀴 돌았다. 케토톱, 도와줘요. 3. 퍽. 으아아아!! 2년차 하계훈련, 어느 날 새벽. '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학군교 안의 모든 막사에 불이 켜지고 당직 훈육관들이 어디론가 분주히 뛰어갔다. 잠이 덜 깨서였는지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한 훈육관이 막사를 돌며 말했다. 절대 창문 밖을 바라보지 말라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꼭 절대 창문 밖을 바라보는 소년이 있기 마련이다. 같은 막사를 쓰는 한 소년이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으아아아아!! 녀석은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듣고 훈육관은 우리 막사로 뛰어왔다. '창문 밖 보지 말라고 이 못된 소년들아!!' 창문 밖을 바라봤던 소년은 덜덜 떤다. 이쯤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보가 아닌 이상 대충 예상을 한다. 자살기도. 한 소년이 죽기 위해서 창문 밖에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땅에 떨어진 순간 초병 후보생이 그걸 보고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그 날은 아침 점호를 실내에서 했다. 오전 외부 훈련도 모두 취소가 됐고 실내 교육으로 전환 되었다. 정신 교육, 자살 예방 교육. 아마 자살기도의 흔적을 지울 때까지는 후보생들이 볼 수 없게 하기 위해 그렇게 훈련 순서를 바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 식당으로 향했다. 자살기도를 한 소년의 흔적이 미처 지워지지 않았다. 자살기도를 했던 소년을 직접 목격한 초병 후보생은 군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2년차 하계훈련은 학군단 마지막 훈련이다. 더 힘든 훈련을 이미 겪었을텐데, 어떠한 이유로 자살기도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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