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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15 00:59:33
Name   nickyo
Subject   17171771 -完
"선배!"


여러 상황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중, 정이의 목소리는 날 현실세계로 끌어내렸다. 쩡이의 입에 붙었던 오빠가 선배로 돌아왔다. 목이 타서 침을 삼키자 유난히 꿀꺽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똑바로 마주보기가 민망해서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레 물었다.



"응 쩡아.. 아 미안 귀찮게 두 번이나.. 그거 네가 챙겼구나. 근데 그 안에.."


"네 선배."


"그 ..그 선물 혹시 뜯어봤니?"



말을 끝내고 눈치를 살피려 슬쩍 얼굴을 바라보니 가로등에 비친 얼굴이 미묘하게 읽기 힘든 표정이었다. 쩡이는 한 번에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말을 어물거리는 내게 생각보다 순순히 대답해주며 되물었다.


"이거 선물이에요?"


"어? 아니 그러니까 선물이 아니고. 아니 선물은 선물인데 선물이 아냐."


"..무슨 소릴 하시는 거에요?"


나는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말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거 그러니까 너 줄게 아니고.."


쩡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세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쵸?! 아 진짜 깜짝이야. 전 저한테 주는 줄 알고 뜯었다가 깜짝 놀랐잖아요!! 엄마 아빠 앞에서 뜯었으면 어쩔뻔했어요 진짜!!!"


"어? 어....그 그러게 미안하다 야;"


"진짜 다행이다. 전 솔직히 설마 설마 했어요. 선배가 그럴 사람이 아닌걸 알지만 너무 당황스러워서... 미안해요 겉 포장을 제가 뜯었네.. 그래도 내용물은 다시 티 안 나게 잘 접어 놨어요."



갑자기 머리가 띵해온다. 나는 그 내용물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그게 내 상상 이상의 속옷인건 분명하다. 형은 그런 사람이니까. 쩡이가 건네주는 까만 봉지를 받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쩡이는 그제서야 킥킥 웃으며 날 놀리기 시작했다.


"선배 근데 진짜 대단하시네요.. 여친이 있는 줄 몰랐는데 심지어 그런 선물까지.."


"엥? 그게 무슨..."


"고등학생인데 여자친구한테 그런 선물을 하시다니 진짜 장난 아니네요 그런거 고르면서 눈치 안보였어요? 보기만 해도 진짜 민망하던데 킥킥.. 선배 생각보다 엄청 야한 사람이네요~~~~에비~~~~~"


"야 아냐 무슨 소리야 나 여친 없어!!!!"



상황은 정리되는 듯 하다가 도리어 더 복잡해져갔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쩡이양반 내가 커플이라니.. 내가 커플이라니.. 나는 아니라며, 이 속옷은 형이 여자친구를 선물해주려고 맡겨둔걸 내가 들려서 받아뒀을 뿐이라고 극구 변명을 하였다. 변명이 아닌 사실이었지만, 쩡이는 '여자친구 있는 게 부끄러워요?'라며 그러면 안 된다고 내게 '사랑'에 대해 짤막한 강의를 하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아니라고 말하자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여자친구분이 지금 이러는 거 알면 엄청 슬퍼할 거에요. 같은 여자로써 쫌 실망이다.. 왜 당당하질 못해요?' 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다. 얼굴을 감싸 쥔 내게 쩡이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한마디를 뒤로 하고 집에 들어간다며 휙 돌아가 버렸다.





"오빠! 소문은 안 낼게요~ 그래도 청소년답게 건전하게~~~~꺄하하하하. 연습할 때 봐요~~~"





당시에 나는 음주나 흡연을 모르는 고교생이었는데, 만약 지금이었다면 그날 깡소주가 혈액이 될 때까지 부었을 것 같다. 멘붕상태인 머릿속을 정리하기를 포기한 채, 축 쳐진 어깨로 포장이 벗겨진 속옷상자가 담긴 까만 봉다리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 이렇게 멀었었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괜시리 형이 원망스러웠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쩡이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오빠, 근데 오빠 애인 연상이죠? 그거 학생이 입을만한 건 아닌거 같던데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답장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애인이 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텐데. 차라리 너한테 줄 선물이라고 했으면 뺨이라도 맞으며 차이기라도 했지 이게 뭐야. 차이기 전에 차인 느낌이야.






그렇게 풍랑이 휘몰아치던 하루를 보내고, 나는 그 주와 그 다음주 연습을 모두 가지 않았다. 특별히 이유가 명확하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기운이 빠졌다. 쩡이에게 내가 '애인'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싫었고 그런 모습을 보이고 난 뒤 쩡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까다로웠다. 모든게 귀찮고 맞닥뜨리기 싫어졌다. 그건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여겨졌다. 그 사이 쩡이는 서너번 내게 문자를 보냈다. 왜 연습을 오지 않느냐고. 그냥 시간이 없다거나, 피곤하다거나, 몸이 안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넘겼다. 베이스를 치는 친구는 종종 우리 반에 찾아와 벌써 차였냐며 놀려대었고, 난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어릴 때 도장에서 배운 이단옆차기를 사람에게 날렸다. 바닥으로 풀썩 하고 날아간 그 놈은, "여자한테 차인 분노를 왜 나한테 풀어 병신아!" 라고 외치고는 "까였다고 왜 말을 못하냐!!" 를 외치며 쫄래쫄래 도망갔다. 이가 뿌드득 갈렸지만,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서 쫒아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어떻게 하기도 전에 차여버린'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이대로 조용히 청춘은 끝나는가 했지만 아직 풍랑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방과후 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했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년에 다들 고교 3학년이 되었기에, 이번 공연을 좀 크게 하자는 건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브 보컬인 나는 보통 공연에는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들의 이야기를 반쯤 빈둥빈둥 흘려 듣고 있었다. 그 때, 메인 보컬의 친구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내게 '툭'하고 말했다. '야 너 이번에 공연 같이 뛰어야 되.'





갑자기 공연을 뛰라는 이야기에 나는 다짜고짜 퇴짜를 놓았다. 싫어, 해, 니가 하는데 내가 뭐하러 해, 이번엔 공연 길게 할거야 한 시간 반 넘게 나 혼자 그걸 어떻게 다해.  야 우리 수준에 어떻게 그 많은 곡들을 소화하냐 말이 되는 소릴 해 그리고 공연장이랑 시설은 어쩔 건데. 공연장도 큰 데서 할거야 중고등학교 친구에 친구들 다 불러다 놓고. 그리고 두 달이나 남았잖아 너랑 나랑 나누면 되. 예전에 하던 곡들도 넣고 하면 이번에 새로 연습할 곡 많지 않아. 그리고 니가 요새 연습 안 나와서 그렇지 애들 이제 작년만큼 허접 하지 않아. 아 몰라 나 연습 요새 안 나가는거 알잖아. 너 진짜 공연 한번 안 해도 만족스럽냐? 왜 그래. 같이 하자. 너도 우리 멤버야.





너도 우리 멤버야. 하는 건조한 한 마디에 말문이 탁 막혔다. 그 때만큼은 장난기 많은 베이스도 아무 말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무지 공연이 하고 싶었다. 처음에야 비교 당하는 게 싫었지만 지금은 나름 실력도 붙은데다가, 이왕 고교생활의 많은 시간을 이 친구들과 함께했는데 무언가라도 함께 남기고 싶은 건 당연했다. 나는 스스로의 쪼잔함이 정말 싫어졌다. 문제는 다른 게 아니었다. 쩡이. 쩡이가 걸렸다.



"아 그러니까.."



"오빠!"



결국 스스로의 밴댕이 같은 마음을 이기지 못한 채 공연은 싫다고 하려고 말하려던 찰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쩡이다. 아 맞다, 도서관은 여고도 같이 쓰는 장소였지. 쩡이는 멤버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날 붙들고 잠깐 나와보라며 끌어내었다. 오랜만에 마주치자마자 있는 힘껏 팔을 쥐고 끌어내는 바람에 나는 이렇다 할 말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끌려나갔다.



"오빠 뭐에요? 왜 계속 연습 안 나와요?"



도서관 밖으로 날 끌고 나온 쩡이는 굉장히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며 말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급격히 다가온 쩡이에게 슬쩍 멀어지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행히 생각한 대로 변명을 할 수 있었다.


글자수가 많아서 3개나 쓴거 죄송합니다 ㅠㅠ 도배문제가 된다면 지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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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뭐..나는 서브고 굳이 연습 꼬박꼬박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쩡이는 그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앙다물고 날 째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오빠 그럼 진짜 공연같이 안 해요?" 라고 물었다. 그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어지간히도 솔직하지 못한 자신에, 쥐구멍이라도 찾아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쩡이의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쩡이는 그런 나에게 화가 난 목소리도, 차가운 목소리도 아닌 처음 듣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내가 하자고 했어요. 오빠도 같이. 난 오빠도 충분히 무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같이 하고 싶어요. 같이 해요.."


말문이 막힌 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말을 뒤적거렸다. 싫어. 좋아. 그래. 아냐. 대체 뭐가 걸리는지 나는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쩡이는 답답하다는 듯 한 걸음 더 내게 다가와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빠 설마 그때 그것 때문에 내가 불편해요? 왜 그래요? 나 그거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빠가 나쁜 짓 한것도 아니고."

"그게 아니라..."

"아님 뭐에요 그 때 이후로 갑자기 그러잖아요. 연습도 안 나오고 뒷풀이도 안 오고 문자도 안하고."

"오빠 공연 안 하면, 나 다시는 오빠 안 봐요. 나만 나쁜 애 되는 거 같고, 솔직히 기분 나빠질 거 같아요. 난 오빠랑 같이 공연하고 싶고, 같은 동료라고 생각해요. 그냥 단순한 선후배가 아니라요."


점점 빨라지는 말에 여전히 쩡이의 눈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자, 어느새 나온 밴드 친구들이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뭘 그렇게 비싸게 굴어!" 나는 그제서야, 머리 속에서 고집스레 쥐고 있던 '체면'과 같은 쓸데 없는 것이 꽁꽁 싼 내 마음을 작게나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쩡이를 만난 이후 가장 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너네 내 노래에 맞추려면 고생 좀 할꺼다." 비록 쩡이의 말은 나와 쩡이와의 관계가 너무나 먼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욱신거렸지만, 그 때만큼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뿌듯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울컥하고 목이 시큰거리는게 기쁨의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겨우 참았다. 아마 그 때 눈물을 보였다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으리라.



우리는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맹연습에 들어갔다. 나는 공연의 후반부 약 삼십분과 마무리 듀엣, 3인공연을 맡았다. 연습해야 할 6개의 곡은 익숙한 노래들이었는데, 그럼에도 막상 공연을 하면 가사를 까먹거나 호흡을 놓칠까 두려웠다. 혼자 노래방까지 다니며 죽어라 연습을 했다. 기말고사가 지나고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남은 약 한달 동안, 우린 매일같이 모여 연습실을 들락거렸다. 매번 합주실 빌리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메인 보컬의 아는 음악선배가 겨울에 지방에 내려가는 사이 자기들 합주실을 쓰라고 하였다. 관리비만 내면 된다는 말에 우리는 조금씩 돈을 모아 연습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공연까지 수많은 난관이 기다렸지만, 돈이라는 큰 문제를 쉽게 해결했기에 더욱 연습에 힘이 붙었다.



겨울방학은 12월 19일에 시작했다. 우리는 방학을 하자마자 매일같이 연습실에 모였는데 그것은 크리스마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던 공연까지의 문제들 중에는 포함되어있지 않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커다란 문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길거리에는 커플들을 위한 캐롤이 울려 퍼지고 너도 나도 사랑을 외치며 가장 많은 아이가 잉태된다는 그 날. 기타를 치던 친구는 정말 뜬금없게도, 연습실에서 쩡이에게 '널 좋아해' 라며 고백을 했다. 그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그 누구도 수습할 새가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 건조한 고백이 차라리 거짓이길 바랬지만, 그건 엄연히 벌어진 현실이었다.



사태가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단 둘이 이야기하게 해 주자며, 나는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왜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해도 될 일을 굳이 내가 자처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지은 환한 웃음으로, 장난꾸러기처럼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겨울 밤, 찬 바람이 맨 살에 부딪히는 추위도 타는 속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친구들은 차인다,차이지 않는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키득거렸지만 난 그저 웃기만 했다. 입을 열었다가는 쓸데없는 말들이 나올 것 같았다. 풀어야 할 곳을 모른 채 마음속에 화가 둥둥 떠다녔다. 하얗게 피어나는 입김들을 보며 빌었다. 차여라. 차여라. 졸렬한 스스로의 기도가 통하길 빌었다.



생각보다 일은 빠르게 해결되었다. 기타를 메고 나온 친구는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됐냐며 떠드는 호들갑에, 다음 연습에 보자며 쿨하게 돌아갔다. 평소에도 과묵하고 쿨한 녀석이었는데,이럴 때 마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내심 그 뒷모습에서 왠지 '좋게는 안 끝났다'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연습실에 내려가서 각자 짐을 챙기며, 다들 쩡이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려 애썼는데 역시나 베이스는 아주 자유롭게 '야 정아 뭐라고 했어? 사귀는거야 이제? 받아줬어? 뭐야 야 얘기해주라~~' 하며 정이 주변을 맴돌면서 귀찮게 굴었다. 나는 마이크 선을 정리하면서도 청각에 온 정신을 다 집중했다. 덕분에 허공에서 마이크 선을 몇 번을 감고 풀었는지 모르겠다. 쩡이는 웃는 듯 마는 듯 그런 건 물어보는 게 아니라며 나중 되면 다 알게 될 거라고 했다. 그 순간 덜컹 하고 아랫배가 꺼진 기분이었다. 대체 어느 쪽이니?



연습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쩡이와 나는 같은 방향이라 함께 귀가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묘하게 그 화제만을 에둘러 피했다. 대신에 공연의 레파토리 라거나, 곡 순서. 노래할 때 어려운 부분들 같은 이야기만 돌고 돌았다. 솔직히 그 때만큼 베이스의 천진난만함에 가까운 재주가 부러운 적이 없었다. 나도 그런 뻔뻔함이 필요했다. 티도, 악의도 없이 거리감을 휙휙 좁혀가는 능력은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차마 쩡이에게 묻지 못하고 차창 너머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에게 대신 물었다. 너도 걔가 좋니? 나는 네가 좋다.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니? 그 말을 들은 넌 날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려나.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물음들이 허공을 맴돌았다. 입으로 하는 말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은 채로 우리는 내일을 기약했다. 연습은 우리의 소용돌이치는 감정과는 상관없이 지속되는 계획된 스케쥴 이었고 그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음 날, 우리의 연습은 예상과 달리 파토가 났다. 기타나 쩡이의 문제는 아니었다. 낡은 건물 지하에 있던 합주실 이었는데, 겨울의 추위로 인해 동파가 되면서 전기가 나가버린 것이다. 수리를 하는데 2~3일은 걸린다는 관리인 아저씨의 말씀을 들었다. 다른 연습실을 찾아보았지만 당일에 찾기는 쉽지도 않았고 거리도 너무 멀었다. 결국 우리는 합주실을 쓰지 못하는 동안 개인연습을 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각자 익혀야 할 곡과 파트가 있었기 때문에 일정에 큰 지장은 없었다.



날씨가 좋았지만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가사집에 쉼표를 표시하며 한창 노래를 듣고 있는데 쩡이에게 문자가 왔다. '오빠 점심 먹었어요?' '아니 아직.' 그러자 바로 쩡이에게 전화가 왔다. 쩡이는 근처 마트에 왔는데 같이 밥을 해먹지 않겠냐고 했다. 어디서? 라고 물으니 오빠네 집에서요. 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것이다. 왜..왜? 갑자기?하며 헛웃음을 짓자, 그녀는 '파스타 재료를 세일하는데 혼자 해먹기는 쫌 그래서.. 오빠네 집 비죠?' '어..응..' '그럼 한 삼십분있다 전화하면 마중나와줘요~' 딸깍, 뚜-뚜-뚜-




30초정도 멍하니 전화기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상황은 정리가 안됐지만 어쨌거나 지금 당장 방이랑 집을 정리해야했다. 물론 부모님과 같이 사는 학생이기 때문에 딱히 더 손을 댈 곳이 많지는 않았지만 맞벌이를 하시는 터라 내 방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지는 않았다. 미친 듯이 움직이며 옷을 다시 개고 걸고, 침구류를 정리하고 각종 여자 아이돌 포스터를 떼었다. 책상 위의 두루마리 휴지도 없애두고, 휴지통도 비웠다. 아차 싶어서 컴퓨터도 정리했다. 으아.. 나의..나의 미녀들이.... 그러나 주저할 수는 없었다. 백업의 생활화가 꼭 필요한 일임을 그때 절실히 느꼈다. 잘 가라 내 보물들아! 3초간 묵념을 했다.




쩡이는 생각보다 엄청 편한 차림이었다. 청바지에 패딩 후드를 푹 눌러썼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예뻤다. 날씨가 너무 춥다는 이야기를 하며 발을 동동대는 그녀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다. 머리속에 있는 생각은 너무 많았지만 깔끔하게 정리했다. '밥이나 먹자.' 그 이상은 도저히 사고회로가 버틸 수 없었다. 쩡이는 우리 집을 보며 오~~ 오빠네 집 깔끔하네요. 주방은 어디에요? 오빠도 나 도와줘야 하니까 손 얼른 씻어요. 라며 쉐프 모드로 돌입했다. 나는 생전 처음 양파도 썰고, 베이컨도 자르고, 토마토도 씻었다. 쩡이는 생각보다 엄청 본격적으로 요리를 했는데 굉장히 능숙했다. 지금 내가 하는 파스타들도 다 쩡이가 가르쳐 준 레시피를 따르고 있는데, 맛이 참 좋다.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파스타의 이름은 로제 크림 파스타라고 했다. 베이컨과 양파, 양송이 버섯에 미트볼이 올라간 토마토 크림소스 스파게티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파스타다운 파스타를 먹어본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꽤 맛있어서 놀랐다. 순수하게 감탄하며 '요리 되게 잘한다' 라고 말하자 쩡이는 처음으로 수줍어했다. 그제서야 쩡이가 엄청 귀엽고, 그리고 우리 집에 단 둘이 있다는 상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우와, 방금까지 맛있던 파스타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나 여자애가 해준 음식 먹어보는 거 처음인데..  난 면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도 잘 모르는 채 어찌 저찌 접시를 비운 뒤, 쩡이에게 잠깐 앉아있으라고 하고는 커피를 찾았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핸드 드립을 이용한 원두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그걸 대접할 요량이었다. 달그락 달그락대며 그럴싸하게 커피를 우려내어 서로 양 손에 쥐고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향긋한 커피의 내음이 거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와 오빠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

"엄마가 자주 해 드셔서, 그냥 따라 해봤어."

"향 좋다.. 커피 잘 못 마시기는 하는데 이건 향이 너무 좋아요."

"먹기 힘들면 다른 거 줄까? 주스 같은 것도 있어."

"아뇨 커피 마실래요 직접 타준 건데 아깝게.."

쩡이는 그러고는 연신 '커피가 별로 안 써요!'만 반복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커피숍이 골목마다 있거나 학생들이 즐겨 다니는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쩡이와 커피를 마시며 빙빙 겉도는 대화만을 반복했다. 왠지 모르게 서로 포인트를 피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그걸 깬 것은 내가 아니라 쩡이었다.


"오빠. 기타 오빠가 저한테 고백했잖아요..."


"아. 어. 응!"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목소리가 커졌다. 쩡이는 약간 놀란 듯, 그러나 덤덤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기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생각해보겠다고는 했는데 어떡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 연습할 때 보기 좀 껄끄러울 것 같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응, 응.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를 쳤다. 쩡이는 평소 기타오빠가 그럴 줄은 전혀 몰랐다고,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됐는데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네가 그만큼 예쁘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절대 내뱉을 수가 없었다. 쩡이는 얼마 남지 않은 찻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연신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건 조금 기쁜 말이었다. 쩡이가 기타랑 사귀는 건 싫었으니까.



한참 동안 그렇게 쩡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쩡이는 조금 속이 시원해진 듯, '오빠는 요새 애인이랑 어때요?' 라고 물었다.  아. 그제서야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됐다. 왜 쩡이가 굳이 나한테 찾아왔는지. 쩡이에게 있어서 밴드 멤버 중 유일하게 '애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 뿐이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쩡이에게 '애인 없다니까' 라고 말했고, 쩡이는 '헤어졌어요?' 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쩡이에게 차근차근, '정말' 애인이 없었으며 그건 진짜 형의 물건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필사적으로 해명하는 내게 그제서야 쩡이는 깔깔대며 웃었는데, 자기도 반신반의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오빠가 그런걸 살 수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며. 게다가 크리스마스에도 연습을 하러 나왔으니 없는 거 같긴 했다고. 그치만 오빠는 애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라고 말을 조금 끄는 순간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좋아하는 사람은..있어." 나도 모르게 심장 밖으로 나온 마음이 멈추지 않고 튕겨져 나갔다.


"와 대박! 진짜요? 누구??? 우리학교? 연상? 연하?"


사뭇 다른 표정의 쩡이는 신이 난 듯 물었다. 이번엔 내가 커피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웃어요 생각만 해도 좋아? 라는 쩡이의 말에, 티 많이 나냐? 라고 물었다. 쩡이는 아까보다 더 크게 웃으며 연신 대박 대박 누군지 진짜 궁금하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겠지만서두.. 크리스마스에 근데 연습이나 하고 있었어요? 뭐라도 해보지!! 라고 타박했다. 그리고는, 오빠는 잘 됐으면 좋겠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요 저 연애상담 완전 잘해줄 수 있어요. 쩡이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말이 잘못 튀어나갔다고 생각한 건 조금 지나서였고, 눈이 마주친 쩡이는 당연하죠 오빠!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는데, 아마도 그 순간 쩡이는 뭔가 느꼈었나보다.



"왜요? 잘 안 되요?"

"내가 관심 갖고 있는 것도 걔는 잘 모를걸?"

"오빠는 그런 거 진짜 못 숨길 거 같은데~"

"그럼 알아 챘을까?"

"음...나라면 아마 알아 챘을 걸요?"



베시시 웃는 쩡이의 모습을 보며, 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쩡이는 홀짝이며 남은 커피를 다 마셨고, 우린 몇 초간의 침묵을 공유했다. 그제서야 쩡이는, 무언가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음을 느꼈나보다. 나는 쩡이의 눈을 마주친 채 수많은 생각을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 생각들은 '하지마. 해'로 간단히 나뉘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생각들이 입을 떨어지지 않게 했다.지금은 아니었다. 이럴 예정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기도 했다. 조금 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쩡이는 먼저 커피잔을 들고 일어나 '커피잔 어디다 둘까요?'라고 물었다.' 그 근처에 그냥 두면 된다는 말 대신, 내 입에서는 '쩡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쩡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달그락거리며 '설겆이는 오빠가 해요~'라고 말했고. 난 다시 '은정아'라고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서야 쩡이는,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왜요? 라고 물었다. 이름으로 부른 건, 쩡이가 날 오빠라고 부른 이후 처음이었다.




그건 멋대가리 없는 고백이었다. 굳이 그랬어야만 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그치만 그때의 나는 쩡이의 손을 잡고 그 좋아하는 사람이 너라고 했다. 쩡이는 장난치지 말라며 손을 뿌리치려 했고, 난 놓아주지 않았다. 그제서야 쩡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쩡이는, 정말이냐고. 진심이냐고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쩡이는 한참이나 날 우두커니 바라보았는데, 그 침묵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길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내가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고요를 깨뜨린 것은 쩡이였다. '커피 한 잔만 더 주지 않을래요?' 그제서야,나는 내 손이 축축하게 젖었음을 알고 얼른 손을 놓아주었다.



쩡이에게 따뜻한 커피를 주자, 쩡이는 한동안 말없이 찻잔만을 내려다 보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쩡이는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미안해요. 정말. 정말 미안해요. 그 말은 정말 아팠다. 쩡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더 작은 목소리로 한번 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겨우 조금 건조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미안해 할 일 아니잖아.' 라고 말했다. 그 때 나는 쩡이가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건 차였다는 사실보다도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쩡이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걸 비로소 확실하게 느꼈다. 쩡이 에게 집에 있는 손수건을 쥐어주며, 괜찮다고 몇 번이나 토닥여 주었다. 쩡이는 한참을 미안하다고, 오빠가 싫은 건 아니라고 말했다. 울음이 잦아들고, 조금 진정을 찾자 그제서야 정이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이의 어렸을 적 꿈은 가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중학교시절, 어머니를 따라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요리가 너무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꿈은 쉐프가 되는 거라고 했다. 원래는 고등학교를 요리유학을 위해 프랑스로 가려고 했으나,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일년을 미루게 되었다고 말했다. 밴드를 시작한 건 할머니께서 겨울에 돌아가시고, 한국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어릴 적 꿈을 이렇게라도 느끼고 싶었다고. 그래서 조금 뻔뻔하게 '자기도 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얼굴만으로 밴드를 할 만큼 예쁘지도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할머니는 어릴 적 제가 불러드린 동요를 참 좋아했어요. 정이는 메이는 목소리를 조금 다듬으며, 자기는 내년에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그리고 몇 번이나 말해주었다. 오빠가 싫은 게 아니라고. 그리고, 끝까지 동료로 남아줄 수 없냐고. 머릿속으로 너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기적인 것 보다 훨씬 더 네가 좋았으니까.



며칠 뒤 연습실 수리가 끝나고 모였을 때, 쩡이는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기타 친구는 '공연이 끝난 뒤에' 대답을 들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밴드 생활중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를 나날들은 생각보다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쩡이와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시 동료가 되어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말 공연까지 큰 위기 없이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 나갔다. 중간중간 장소 섭외의 어려움이나, 기계 대여 비용 같은 게 문제가 되었지만 다행히 잘 해결이 되었고, 우리는 연말공연 리허설을 앞두고 있었다.


공연을 일주일 앞에 두고 나는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과 마지막 곡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곡은 앞 곡이 끝나고 짤막한 MC멘트를 한 뒤에 하기로 했는데, 마지막 곡이 끝나고 멤버를 다시 한 번 소개하고 다 같이 합동으로 한 곡을 더 한 뒤 앵콜곡 두 개 정도를 메인 보컬과 듀엣이 나오는 걸로 정했다. 쩡이가 없는 회의에서, 나는 내가 부를 곡의 순서를 바꿔달라고 했다. 친구들은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딱히 어려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었기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우리 공연은 꽤 큰 사이즈의 라이브 하우스를 빌렸다. 다만 조명이나 음향을 잡아줄 사람을 그쪽 하우스에서 빌려 쓸 돈은 없었는데, 다행히 연습실을 빌려준 선배의 소개로 조명과 음향 엔지니어까지 있는 '진짜 그럴싸한' 공연 리허설을 경험했다. 이제까지 연습했던 걸로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리허설이 끝날 때쯤엔 다들 사뭇 기분이 고조되어있었다. 비록 리허설 내내 신나게 까였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는 없었기에 굉장히 흥분되어있었다. 그날 밤에는, 잠이 안 온다고 연습실에 죄다 모여서 새벽까지 악기를 퉁기고 집에 돌아갔다.





리허설 다음날, 공연 본방은 생각 보다 많은 실수와 트러블을 겪으며 진행되었다. 기타 현이 끊어진다거나 선을 밟아서 엠프가 튄다거나 말을 더듬는다거나. 그래도 초청한 사람들이 전부 친구, 동창, 지인이었기에 다들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관객이 되어준 친구들은 나름의 야유와 환호를 보내며 우리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즐겼다. 처음에는 완전히 잘 맞춰야 한다고 서로 부담을 가졌지만 공연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그깟 자잘한 실수가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신나게 놀았다. 정말 최고였다. 평생 이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무대의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내 마지막 멘트와 곡이 남았다. 헐떡헐떡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친구들을 한번 돌아보았다. 이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마지막 말을 할 시간이다. 나는 목을 살짝 가다듬고 마이크를 잡았다.


"어, 제가 처음으로 이렇게 공연을 해봤는데요. 진짜 재밌네요. 아무래도 가수를 해야 하나?"

우- 하는 소리와 몇몇 아이들의 '얼굴을 봐라~~푸하하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이거 공연 준비하면서 사고를 하나 쳤어요. 우리 밴드의 예쁜 홍일점 보컬 쩡이! 쩡이한테 고백을 했거든요?"

우와, 저질렀다. 입 속 침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관객석은 이야~ 우와아오오오오오오~ 푸하하하하 대박~ 와 사귀냐? 사귀냐~ 사겨라~!!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 조명 때문에 친구들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청 재밌어 한다는 걸 목소리 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가볍게 말을 이어갔다.

"사귀긴 뭘 사귀겠어요. 그냥 축구공마냥 뻥 하고 차였구만."

사람들은 자지러지듯 빵 터졌고, 우리 드럼은 센스 있게 그 대목에서 두르르르쾅퉁탕 챵챵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이쯤 되니 준비한 말이 많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냥 되는대로 던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진짜 불편해질 법도 했는데 쩡이도 하나도 어색해하지 않고 이렇게 공연까지 함께 힘내줘서 정말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 사실 기타도 쩡이한테 고백을 했는데, 얘는 공연 끝나고 대답 듣는대요. 와 쟤네 끼리 사귀면 나 진짜 완전히 새 되는거 아닌가?" 하고 슬쩍 싸이의 새 처럼 으쓱으쓱 했더니 관객들이 -우하하하하하하 하고 다시 한번 빵 터졌다. 이번 반응에는 베이스가 둥가당둥당 하며 흥을 돋궈준다. 난 기타를 치는 친구를 향해 씨익 웃어준 뒤, 말을 이어갔다.


"뭐, 그치만 그래도 전 정말 우리 정이가.. 정말 좋았어요. 일년 동안 너무 즐거웠고,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게 해준 우리 친구들이 너무 좋습니다. 기타는 정이랑 잘 되면 친구 안 할거에요. 하하. 농담이구요. 둘이 잘 되더라도, 전 마음 깊이 축하해 줄 겁니다. 어..이제 마지막 곡 하나 남았네요."


잠깐 숨을 골랐다. 시덥잖은 말을 몇 마디 더 했다. 근데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이제 진짜 보내야 할 시간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 끝낼 때다.


"원래는 이 곡을 지금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제가 바꿔달라고 고집을 부렸어요. 정이는 왜 곡 순서를 바꿨는지 몰랐겠지요."


슬플 줄 알았는데, 웃음이 자꾸 터진다.


"얘들아! 일년 동안 진짜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 쩡이!!!! 난 니가 정말 좋았다! 좋은 남자 만나라!!!!갑니다-!!!"


탁 탁 탁 쟈가장 징쟈쟈쟝-

....

안개처럼 사라져 간 다시 못 올 그 지난날
함께한 추억 모두 흘려 보낼게
널 잊어야 해- 힘들어도
널 지워야 해- 기억 속에서
네가 떠난 후에 난 죽을 것 같이 아파도
두 번 다시 울지 않을게
잊을께 잊을께

...


공연은 '나름대로' 즐겁게 끝났다. 우리는 프로가 아닌 그저 스쿨 취미 밴드였고 음도 실컷 틀리고 박자도 실컷 틀렸다. 나중에는 관객 친구 중 흥에 겨운 친구 몇이 무대까지 올라와 춤도 추고, 어깨동무하고 노래도 부르기까지 했다. 비록 지금처럼 술 같은 게 없이도 우리는 충분히 즐겁고 신났다. 고교 2학년이 정말로 끝나가고 있었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꼽으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을 시기였다고 확신한다.



관객이 다 빠지고, 우리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도 없었지만 장비를 대충 정리하며 무대에 주저앉았다. 아예 벌러덩 드러누운 베이스는 내게 '야, 너 멋있더라? 차였지만.' 하고 낄낄대었고,  쩡이는 그런 베이스의 허벅다리를 발로 뻥 차버렸다. 그리고는 내게 와서 쪼그리고 앉아 이마에 딱밤을 딱 치고는, '진짜 사람 난감하게 한다니까.' 하며 배시시 웃었다. 기타를 치던 친구는 내 얼굴에 피크를 탁 던지며, '늦게도 저지른다 새끼야.'라고 퉁명스레 말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내가 요령이 좀 없었냐. 하고 물었다. 베이스를 따라 벌러덩  드러누우니, 무대의 바닥이 생각보다 엄청 차갑다는 걸 느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찝찝함을 달래주는 기분 좋은 시원함이었다.



처음에는 뒷풀이를 하려고 했지만, 다들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각자 집에 돌아가서 주말에 모이기로 했다. 서로 한번 꽉 껴안아주며, 수고했다는 한 마디가 새삼 정말 끝났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각자 차례차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며, 마지막에는 쩡이와 나만 남았다. 우리는 공연 때 삑사리가 난 이야기나, 춤을 추러 올라온 관객으로 온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집까지 도착했다. 쩡이네 아파트 앞에서 헤어지려는 찰나, 쩡이는 잠깐만 더 이야기 하자며 날 벤치로 끌고 갔다. 추운데 감기 걸릴 거라는 내 말에, 아직 너무 아쉽고 꿈만 같다는 그 아이의 손길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따뜻한 캔 커피를 두개 사서 서로 나눠 쥐었다. 쩡이는 날 툭 치면서,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어쩜..' 하고 날 흘겨보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능청스레 캔커피를 마셨다.쩡이는 옆에 앉아서 이제 우리 다시 모이는 것도 별로 없겠다며 아쉬워했다. .. 나도 이제 고 3이니까 대학 갈 생각해야지. 하는 말에, 오빠 공부는 잘 해요? 라고 물어왔다. ...잘 못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라고 하자, 쩡이는 헤헤,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누군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낮설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말이 없다가, 쩡이는 동당대며 입을 열었다.


"아- 유학 가기 싫다.."

나는 그 말에 쩡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꿈이잖아?"

쩡이는 볼멘 소리로 대답했다.

"알아요. 당연히 갈 건데.. 오늘처럼 좋으면 그냥.. 오빠들이랑 헤어지기 싫고 그래요. 내일 되면 괜찮아 지겠지만. 지금은 그래요."

나는 피식 웃으며, 이번엔 내가 쩡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쩡이는 금세 웃으며, '오빠도 이런걸 다 하네.'하고 키득댔다.


"아. 이제 진짜 오빠랑도 얼마 못 보겠다. 나 2월 초에 출국하거든요. 한 달도 안 남았어."

"정신 없겠네.."

"그다지? 준비는 미리 거의 끝내놨어요. 공연에 집중하려고 미리 착착 다 해놨지. 누구누구 씨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그거 내 얘기?"

"음... 누구누구가 두 명이니까 누구누구 씨 들~인가? 히히."

"인기 좋다고 자랑하는 거 봐라~."


쩡이는 헤헤, 하고 다시 웃었다.

"오빠랑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겠다."

나는 괜시리 그 말에 조금 설레며, 장난스레 되물었다.

"그럼 나랑 사귀었겠네?"

"음-귿쎄. 오늘 같았으면..넘어갔을지도? 사실 오늘 쫌 멋있었어요. 감동했어."

그럼 유학 가지마. 라고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고, "이게 선배를 놀리네."하고 웃어버렸다. 쩡이는 살짝 미소 짓더니, 손에서 데굴거리고만 있던 캔커피를 내게 주었다. "따줘요, 나 지쳐서 힘이 잘 안 들어가요."


따뜻했던 캔 커피는 꽤 식어서, 딱 정이의 손 온도겠거니 싶은 미지근함이 남아있었다. 찰칵-하고 캔 커피를 따 주자, 쩡이는 캔 커피를 받는 대신 갑작스레 입을 맞추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녀와 키스했다. 납뜩이가 본다면 뽀뽀라고 했을 것 같은, 그런 키스였다. 살짝 파르르 떨리던 그녀의 입술은 잠깐 동안 내게 머물러갔다.



쩡이는 키스를 끝내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첫 키스에 커피냄새 나는 건 싫으니까..'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멍하니 정이를 바라보았다. 정이는 이내, 고개를 살짝 들어 날 보고는 말했다.


"오빠의 마음을 받아줄 수는 없었지만, 만약 내가 여기 계속 있었다면 오빠를 더 좋아하게 됐을 거에요. 그러니까, 음. 이건 내 나름의 보답. 오빠한테 내 첫 남자친구의 자리를 주지는 못했지만.. 첫 키스는 오빠한테 준거니까."


그리고는 '악-내가 미쳤지!' 하고는 잡을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캔 커피는 오빠 줄게요. 뒷풀이날 봐요!!"하고는 현관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멍청하게, 잡다 만 손을 허공에 뻗은 채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입가에 남은 말랑한 감촉이 현실인가, 꿈인가 하고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미지근한 캔 커피는 여전히 내 손에 있었다.



며칠 뒤, 우리는 다 같이 연습실에 모여 치킨과 피자를 잔뜩 시켜두고 뒷풀이를 했다. 베이스를 치던 친구는 몰래 가져온 거라며 맥주 피쳐를 네 개나 들고 왔다. 우리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종이컵에 맥주를 담아 마시며, 한 해의 시작을 우리의 1년을 보내면서 맞이하였다. 다들 술을 마시기엔 조금 어렸기에 금세 혀가 꼬부라졌고,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거기서 마지막으로 다 같이 노래를 불렀고, 쩡이는 울었으며. 기타치는 친구가 쩡이를 안아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기타에게 좋냐며 쿡쿡 찔러대었고. 물론, 내가 쩡이와 키스를 했다는 건 여전히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쩡이는 그날, 자기가 왜 밴드를 했으며, 내게 했던 이야기들을 다 털어놓았던 것 같다. 유학이야기나, 할머니 이야기 같은 거. 그날, 우리는 공연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한 팀'으로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각자 고3으로 돌아갔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한참 공부를 했을 텐데 우리는 벌써 한 달 가까이 늦은 셈이었다. 웃기는 건, 그 와중에 각자 따로 끊었다고 생각한 사설독서실이 전부 같은 곳이었다는 점이다. 참 지독한 인연이라며 서로를 놀려대면서도, 우리는 그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했다. 뒤풀이 후에 유학준비에 바쁜 정이는 두어번 독서실에 놀러 와서 우리에게 출국일과, 이메일 등을 알려주며 손수 만든 김밥을 주고는 했다. 예전처럼 문자도 주고받고, 통화도 자주 하는 정이는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뭔가 새롭게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정이의 출국 일에 우리는 다 같이 배웅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전날, 정이는 내게 '나 다음에 한국 돌아 왔을 때 잊어버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출국일 아침, 나는 친구들에게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핸드폰을 꺼버렸다. 배웅을 갔다간 울음이 터졌을 테니까. 정이는 유학에 가면 한국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마 이렇게 멀어지는 거겠지. 하며 정이가 들어보라고 녹음했던 시디를 틀고 이어폰을 꽂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래를 못 불렀던 때부터 공연 직전에 꽤 그럴싸한 목소리까지. 정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은 정이가 끝까지 아쉬워했다고 했다. 나는 메일 주고받으면 되는 거라고, 이제 오로지 공부..공부뿐이라며 웃었다. 고3이 지나고, 수능을 보고. 재수를 하고. 대학을 가고. 정이가 프랑스로 떠난 지 거의 10여년이 다 될 때까지 우리는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었다. 그 동안 우리 각자는 새로운 사랑도 맞이하고, 여자친구도 생겼다. 그렇지만, 나는 매번 어떤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될 때마다 17세의 쩡이가 떠올랐다.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하며, 스스로도 놀랄 만큼 여자아이 앞에서 태연해진 내 모습이 때때로 재밌었다. 쩡이가 지금 날 보면 뭐라고 할까?



재수가 끝나고 대학에 들어와 막 새로운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어가고 있을 즈음, 나는 평소에 들어가 보지 않았던 이메일에 접속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어쩌다보니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나는 하도 접속하지 않아 까먹은 비밀번호를 세 번 이나 틀려서 핸드폰 인증을 통해 비밀번호까지 다시 찾은 뒤에야 접속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방치해 둔 탓에 휴면상태로 전환되어 있는 것을 해제하고나니 과거의 잔뜩 쌓인 광고 스팸 이메일들이 가득했다. 한꺼번에 싹 지울까 하다가, 적당히 쓸만한 정보 같은 게 있을까 싶어 대충 페이지를 넘겨보았다.그 스팸 사이에, 낯설은 이메일로 ‘오빠에게’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 야한 사이트 광고겠구나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클릭했더니 이게 왠걸, 쩡이가 보낸 메일이었다.



쩡이는 한국에 잠시 들어올 거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이 메일을 읽는다면 자기가 한국에서 쓸 부모님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줄 테니 꼭 연락해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첨부파일에 넣어둔 노래를 들어달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나는 ‘17171771’이라는 제목의 첨부파일을 열었다. 자우림의 노래였다. 우리가 처음 단 둘이 낙원상가를 가며 꼭 들어보라고 그 아이가 추천해 준 노래였다. 스피커에선 오랜만임에도 여전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교 시절이 떠올라 왠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겨우 눈물을 참았다. 3분여의 노래가 다 끝나고,예전보다 진짜 노래 잘 하네.. 하며 술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첨부파일을 닫으려는 찰나, 스피커에서 끝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만약에요. 만약에.. 이 말을 듣는다면요. 그리고 혹시 지금까지 날 기억하고 있다면.. 내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날 만나주지 않을래요? 난 여전히 그날 그 벤치에 무언가를 뚝 떼어놓고 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 꼭 만나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약간 울먹거리는 듯이 느껴진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쓰윽 닦았다. 재빨리 메일 주소에 대고 그녀의 이메일을 검색했더니 수십통의 메일이 떴다. 하나 하나 읽으면서 그녀가 외지에서 느꼈을 외로움, 힘듬, 그리고 왜 메일을 안 읽냐며 타박하는 것들 모두가 마음을 쾅쾅 때리는 것이 너무나 아팠다. 상념에 잠겨 쩡이의 이메일을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띠링 하고 문자가 왔다. 문자에는 여자친구가 같이 저녁을 먹자고 불러내는 내용이었다. 나는 가만히 핸드폰을 보다가 이내 알았다고 어디로 갈까 물으며 애써 밝게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 열어본 메일을 한번 더 읽은 뒤 망설이다가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읽지 않은 메일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다가 결국 눈물을 무릅쓰고 휴지통에 넣었다. 은정아. 내가 너무 늦었나 봐. 조금 엇갈려 버린 것 같다 우리..






천사의 미소처럼 새들의 노래처럼 이토록 사랑스런 당신이 좋은걸요

어서 내게로 와요. 영원히 함께해요. 우리 함께라면 두렵지 않은걸요-

세상에 단 한 사람 당신.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난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알고 있나요

어쩌면 우린 예전부터 이름 모를 저 먼 별에서 이미 사랑해 왔었는지도 몰라요.

5월의 햇살처럼 10월의 하늘처럼 그처럼 못 견디게 당신이 좋은걸요

어서 내게로 와요 느끼고 있잖아요 어느 새 어둠이 사라져 버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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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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