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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12/29 06:40:25 |
Name | nickyo |
Subject | 노인의 몸 생각해보기 |
20대 후반이 되면서 몸에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것이 있다면 아플때의 컨디션인것 같다. 10대때나 20대 초중반에 비해서 아픈 몸을 움직일 때의 중력의 영향이 훨씬 더 강하게 육체를 땅으로 끌어내린다. 아프기 시작하면 일단 눕고 볼 일이고, 누울 수 없다면 비척대며 어딘가에 의지한다. 평소에는 성큼거리는 걸음걸이도 이 때는 다리를 땅에 칙칙 끌고다니게 되며 어깨는 구부정하게 앞으로 좁혀지고 얼굴의 팔자주름은 10살쯤 더 먹어 깊어진 모양새다. 지하철을 타면 문이나 봉의 옆을 찾아 기대기 바쁘고, 버스를 타면 빈 자리를 어떻게든 잡으려고 없는 기운에 눈치를 본다. 물론 이보다 더 나이를 먹으면 아플때 돌아다니는 짓거리도 하지 않겠지만. 요즘 들어 생각해보면, 대중교통을 타며 노인분들과 많은 트러블을 겪는다. 아, 트러블이라는게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건 아니고.. 그냥 흔히 있는 발 밟기, 어깨빵, 날 손잡이 취급하기, 밀며 새치기하기 같은 것들이다. 그 중에는 약간의 험악한 말을 궁시렁 대시는 분들도 있다. 뭐 모든 노인 분들이 그러는 건 아니고 젠틀한 분들과 저런 분들이 섞여있는거야.. 그런데 어제 오늘 배탈로 오한과 열에 시달리며 학교에서 병원, 집까지의 거리를 거의 기어오다시피 하고 겨우 약을 먹은 뒤 집에서 16시간은 족히 바닥에 달라붙어 있어보니 어쩐지 그분들이 떠올랐다. 노인의 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오늘 아파서 집에 오는길에 나는 누군가와 스치거나 툭툭 부딪히는 일을 잘 피하지 못했다. 정신도 없었고, 다리도 무거웠으며 당장 서 있기가 벅찼다. 손잡이에 의지하는 것 조차 힘들었고 앉고 싶었지만 워낙에 튼튼해 보이는 체격인데다 옆사람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겨우겨우 서서 왔다. 아, 늙어서 그래. 30을 앞둔다는게 늙었다고 말하는 건 너무 우스운 일이지만, 그냥 그 생각으로부터 떠오른 일이다. 지금의 나로 노인의 몸을 상상해 보는 것. 며칠 전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내 옆구리를 미시며 손잡이마냥 붙잡고 꿋꿋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셨다. 나는 약간 휘청였지만 넘어질 정도는 전혀 아니었고, 그럼에도 기분은 몹시 나빴다. 머리속으로 그 할아버지의 발목을 낚아채서 바닥에 쾅 넘어뜨리고 싶다는 상상을 했을 정도였다. 불쾌감이 끓었다. 그런데 만약 노인의 몸이라는 것이 내가 아플때와 비슷한 상태라면, 그러니까.. 중력이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고 걷고 서 있는 것 조차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며 무엇인가에 기대고 의존하지 않으면 몇 배는 불편한 것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노인분들의 무례하다면 무례할, 그러니까 1990년대 이후 정착되기 시작한 시민으로서의 매너와도 같은 것을 지키지 않는 것들이 몸의 불편성을 이유로 정당화 될 수 있냐고 한다면 그러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 세대의 노인들 중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있고. 그러나 내가 몸이 힘들어보니, 시민적인 매너를 지키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 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시민적 매너를 충실히 지키려 하시는 젠틀한 어르신들 역시 굉장히 많은데.. 아마 제일 중요한 팩터는 그 분들이 살아오던 시대의 교육이나 행동양식일 것이다. 전후의 혼란과 독재, 고도성장기 모두를 거치며 남과 함께하고 배려하는 문화보다는 옆 사람 제끼고 내 새끼 하나 더 먹여야만 했던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에게 시민적 매너라는건 너무 늦게 다가왔을테니. 그러나 그런 교육과 더불어서 나는 현재의 시민으로서의 매너가 갖는 기준이 노인의 몸과는 매우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 역시 드는것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불쾌감이 들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불쾌한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일이었나 하면 그건 또 아닌 것이다. 기분이야 나쁘긴 하지만 그게 뭐 울그락불그락 할일까진 아니다 싶은. 만약 지금의 시민적 매너들이 노인의 몸으로는 처음부터 지키기 힘든 부분들이라면, 그래서 노약자 석 같은게 따로 있는 것이겠지만,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시민적 매너와 그들이 주는 불편 사이에서 우리의 공동체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매너를 칼같이 지키며 서로에게 어떠한 불쾌감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서로에게 작은 불쾌감들을 줄 수 있어도 각자가 처한 사회적 조건들을 고려해서 공동체의 일원임을 관용으로 받아들일지.. 노인의 몸이 이토록 중력에 약한 것이라면, 어제보다는 오늘 좀 덜 기분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운 좋게 오래 살아남는다면 누구나 노인이 될 텐데 어쩌면 많은 규칙들이 노인을 배제와 배려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약간은 꺼슬거리는 부분이 있어서 생각해 보았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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