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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12/30 07:07:46 |
Name | 커피최고 |
Subject | 나의 놀이의 기원과 변화... 여러분은?? |
"놀이" 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제 이미지의 기원은 그림동화책입니다.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도 모를 글자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 그 글자들을 살아 숨쉬게 한다지만, 솔직히 그 어린 나이에는 머리에 그려낼 만한 재료들이 극히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림"은 그 재료들이 되어주었습니다. 그것들은 제 머리 속의 이미지를 보다 명확하게 만들어주었죠.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제 손으로 직접 그려내는 걸 좋아했고요. 이 과정이 바로 제 "놀이"의 기원이었고, 지금까지도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환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폭력으로 다가온 그림과 색깔들....] 몇몇 잡지에 제 그림이 올라가고, 유명 그림 대회에서 입상하며 장학금까지 타게 되니깐, 아마도 화가를 꿈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붓을 아예 놓아버리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한창 개발 중이던 중국 칭다오로 이민을 가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화는 제가 알던 놀이로서의 그림이 아니었고, 서로 다른 아이들을 억지로 하나로 묶어내려는 듯한 红领巾(소학교 학생들이 메는 붉은 스카프)의 빨간색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던 빨간색과는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 폭력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것들을 경험하기에는 중국 대륙은 너무나도 거대했고, 저는 나약한 소년이었죠. ![]() ![]() [시퍼런 유년의 아이콘들...] 다행스럽게도 제 유년은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비디오게임입니다. 가족 사정으로 인한 강제적인 공간, 중국 대륙이라는 그 주어진 공간의 폭력성과 그 곳에 놓여진 나 자신의 무력함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일까요. 도저히 내가 상상해낼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절대 내가 할 수 없을 모습, 행동 등을 버튼만 누르면 가능하게 만드는 이 비디오게임이라는 것은 곧바로 제 인생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게이머로서 막 첫 발걸음을 내딛을 때, 주로 플레이 했던 소닉과 록맨의 메인 컬러가 모두 "파란색"이었다는 점은 뭔가 제 나름의 반항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소닉과 록맨과 함께 비디오 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내 머리 속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낼까"는 "이 게임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플레이 할까"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보통은 격투게임이나 RTS, FPS, 혹은 AOS같은 "대전"형식의 게임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저런 류의 게임들은 플레이어마다 그 스타일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곤 하니깐요. 그러나 저는 사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대전 형태를 그리 즐기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명확하게 "결"이 있는 게임만을 작품으로서 취급합니다. 하나의 게임 대결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게임의 끝이요. 저는 개별 작품들의 고유한 공간들을 새롭게 마주하는 그 순간들과,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선택을 즐기고 싶은 겁니다. 어떤 세계관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게임, 이른바 롤-플레잉 게임(RPG)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셈이죠. 하지만 기술의 문제와 더불어,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라인에 따라가는 게임 구조는 결국 어떤 플레이어이든 간에 비슷한 맥락을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일본식 턴제 RPG든, 북미식 RPG든 마찬가지입니다. 남들과는 더 다르게, 나만의 플레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런 열망들이 모여 만들어진 오픈 월드 형태의 게임 역시 동일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게임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되는 거고 시간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깐요.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세 가지 게임들은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플레이를 하고 싶다"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혁명적인 작품이라고 봅니다. 1. 마인크래프트 다들 아시는, 다양한 종류의 사각형으로 거의 모든 것들을 구현해낼 수 있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는 나만의 플레이로 고유한 공간들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이 만족스러우면 그 순간이 바로 그 게임의 결이죠. 끝마저도 나 자신의 선택사항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이 모델을 기존의 게임 양식에 적용해본 흥미로운 시도가 등장했습니다. 일본국민RPG로 불리는 <드래곤퀘스트> 세계관에 마인크래프트 모델을 융합해놓은 <드래곤퀘스트 빌더즈>라는 게임입니다. 거대한 스토리 라인이 존재하고, 그것에 따라가야 하는 전통적인 구조지만, 그 플레이 방식은 실로 무한에 달합니다. 무에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작업보다는, 용왕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해낸다는 명확한 목적이 게임에 좀 더 몰입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드래곤퀘스트 빌더즈는 시작에 불과할 거에요. 마인크래프트 모델은 앞으로도 기존 게임 양식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줄 겁니다. 2. 저니 정말 짧은 게임입니다. 그 어떤 게임들보다도 짧지만, 그 여운은 가장 길었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플레이 방식? 아마 거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일할 겁니다. 그런데도 왜 이 게임을 꼽았냐고요?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 게임을 할 때, 같은 장소를 나와 같은 시간에 여행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누군지 알 도리도 없습니다. 아무런 정보가 없거든요. 캐릭터도 똑같이 생겼고요. 그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 도우면서 묵묵하게 여행할 뿐입니다. 이제껏 게임을 해오면서 몇몇 파티와 클랜 등을 해봤었지만, 그 어떤 경우보다도 <저니>를 플레이 했던 그 순간, 누군지 모를 그 플레이어에게 가장 강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온전히 나만의 체험인 것이죠. 플레이어들마다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결을 맞이하는 셈입니다. 3. 포켓몬GO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쌓여온 기존의 문화 컨텐츠들과 그 어떤 가상세계 따위보다도 무한한 오브제를 지니고 있는 현실세계가 AR로 만날 때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AR은 놀이의 영역을 진정한 의미에서 확장시키고, 또 고유하게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MS의 홀로렌즈를 위시한 AR 디바이스들이 더 발전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야 하겠지만요. 제 놀이의 기원과 변화, 그리고 그에 대해 생각나는 것들을 주저리 주저리 의식의 흐름대로 써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한 해였던 만큼 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었고, 그 중 "놀이"를 키워드로 잡았습니다. 제 놀이의 주된 영역이 비디오게임이라 거의 게임이야기만 했지만요 ㅋㅋ "놀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마다 다를 텐데..... 궁금하네요, 여러분들의 놀이는 어떤 것일지... 새해에는 다들 각자의 놀이를 즐기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지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새해 복 많이들 받으시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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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적에 "빨강"이 아닌 "초록"이 주는 폭력성을 느꼈어요. 제가 어릴적(90년대 초)에 보았던 애니메이션들이 죄다 우중충한 초록으로 가득했거든요.
지금 동영상을 볼 수 없는 상태라 본문의 글의 설명만 가지고 생각해봅니다.
1.의 경우는 심시티나 롤러코스터타이쿤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아도 될까요? 기본 원자들, 분자들이 주어지고 이것들을 조합해서 어떤 큰 물질을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2.의 경우는 배낭여행을 같이 떠나는 소규모 동료들의 집단이 만드는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공통의 목적지를 이런저런 ... 더 보기
지금 동영상을 볼 수 없는 상태라 본문의 글의 설명만 가지고 생각해봅니다.
1.의 경우는 심시티나 롤러코스터타이쿤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아도 될까요? 기본 원자들, 분자들이 주어지고 이것들을 조합해서 어떤 큰 물질을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2.의 경우는 배낭여행을 같이 떠나는 소규모 동료들의 집단이 만드는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공통의 목적지를 이런저런 ... 더 보기
저는 어렸을 적에 "빨강"이 아닌 "초록"이 주는 폭력성을 느꼈어요. 제가 어릴적(90년대 초)에 보았던 애니메이션들이 죄다 우중충한 초록으로 가득했거든요.
지금 동영상을 볼 수 없는 상태라 본문의 글의 설명만 가지고 생각해봅니다.
1.의 경우는 심시티나 롤러코스터타이쿤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아도 될까요? 기본 원자들, 분자들이 주어지고 이것들을 조합해서 어떤 큰 물질을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2.의 경우는 배낭여행을 같이 떠나는 소규모 동료들의 집단이 만드는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공통의 목적지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함께 나아가는, 그렇지만 그 경험들은 개개인들의 고유의 몫이죠.
3.의 경우는 가상세계+실재세계+포켓몬 이 합쳐졌을 때 어떠한 멋진 하나의 [게임세계]를 이루어내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다중의 세계, 다중의 매체가 어떻게 연결되고 겹쳐질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과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관심이 가게 만드네요.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거리를 가지게 되네요.
지금 동영상을 볼 수 없는 상태라 본문의 글의 설명만 가지고 생각해봅니다.
1.의 경우는 심시티나 롤러코스터타이쿤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아도 될까요? 기본 원자들, 분자들이 주어지고 이것들을 조합해서 어떤 큰 물질을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2.의 경우는 배낭여행을 같이 떠나는 소규모 동료들의 집단이 만드는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공통의 목적지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함께 나아가는, 그렇지만 그 경험들은 개개인들의 고유의 몫이죠.
3.의 경우는 가상세계+실재세계+포켓몬 이 합쳐졌을 때 어떠한 멋진 하나의 [게임세계]를 이루어내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다중의 세계, 다중의 매체가 어떻게 연결되고 겹쳐질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과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관심이 가게 만드네요.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거리를 가지게 되네요.
저는 나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에 맞는 놀이를 찾았다기 보단, 그냥 흥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놀이를 찾았던거 같네요. 다행히도, 저는 그런 것을 꽤 일찍 찾았었습니다. 바로 책과 컴퓨터였습니다. 책은 저한테 소리없는 대화를 해준 벗이었고, 컴퓨터는 저에게 재미있는 도전을 던저주던 미지의 물건이었으니까요. 꽤나 어렸을때 컴퓨터를 옆에 두고 쓸 수 있었는데,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첫 게임이 바로 "인디아나 존스: 아틀란티스의 운명" 이었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이 사전을 옆에 두고 그걸 하는 모습을 본 제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 덕분에 국민학생 치고는 꽤나 많이 아는 학생이 될 수 있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요.
어릴 때 저에게 게임은 '성취' 이외에 '자랑' 거리였습니다.
내가 어떤 게임을 많이 해서 잘 하게 되는 건, 남에게 자랑하고 인정받을 때가 되어야 완성되는 거였죠.
가장 좋은 무대는 또래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때입니다. 마치 4년간 연습 성과를 보여주는 올림픽 선수들처럼 그간 갈고닦은 기술들을 집대성해서 선보이는 겁니다.
기가 막히는 점프타이밍으로 하나도 안 죽고 한판한판 깨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경외의 시선과 터져나오는 감탄들, 그걸 만끽하기 위해 게임하는 겁니다.
근데 어른들은 몰라요. '너는 맨날 하니까 동생 왔을 때... 더 보기
내가 어떤 게임을 많이 해서 잘 하게 되는 건, 남에게 자랑하고 인정받을 때가 되어야 완성되는 거였죠.
가장 좋은 무대는 또래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때입니다. 마치 4년간 연습 성과를 보여주는 올림픽 선수들처럼 그간 갈고닦은 기술들을 집대성해서 선보이는 겁니다.
기가 막히는 점프타이밍으로 하나도 안 죽고 한판한판 깨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경외의 시선과 터져나오는 감탄들, 그걸 만끽하기 위해 게임하는 겁니다.
근데 어른들은 몰라요. '너는 맨날 하니까 동생 왔을 때... 더 보기
어릴 때 저에게 게임은 '성취' 이외에 '자랑' 거리였습니다.
내가 어떤 게임을 많이 해서 잘 하게 되는 건, 남에게 자랑하고 인정받을 때가 되어야 완성되는 거였죠.
가장 좋은 무대는 또래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때입니다. 마치 4년간 연습 성과를 보여주는 올림픽 선수들처럼 그간 갈고닦은 기술들을 집대성해서 선보이는 겁니다.
기가 막히는 점프타이밍으로 하나도 안 죽고 한판한판 깨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경외의 시선과 터져나오는 감탄들, 그걸 만끽하기 위해 게임하는 겁니다.
근데 어른들은 몰라요. '너는 맨날 하니까 동생 왔을 때 양보해' 헐..
아니예요. 내가 맨날 해온 건 바로 오늘을 위해서란 말입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저에겐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
내가 어떤 게임을 많이 해서 잘 하게 되는 건, 남에게 자랑하고 인정받을 때가 되어야 완성되는 거였죠.
가장 좋은 무대는 또래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때입니다. 마치 4년간 연습 성과를 보여주는 올림픽 선수들처럼 그간 갈고닦은 기술들을 집대성해서 선보이는 겁니다.
기가 막히는 점프타이밍으로 하나도 안 죽고 한판한판 깨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경외의 시선과 터져나오는 감탄들, 그걸 만끽하기 위해 게임하는 겁니다.
근데 어른들은 몰라요. '너는 맨날 하니까 동생 왔을 때 양보해' 헐..
아니예요. 내가 맨날 해온 건 바로 오늘을 위해서란 말입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저에겐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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