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12/31 00:43:08
Name   눈시
Subject   여요전쟁 - 0. 피할 수 없는 한 판

송과 거란, 고려

1. 고려와 거란
"우리 동방은 옛날부터 당 나라의 풍속을 본받아 문물과 예악이 모두 그 제도를 준수하여 왔으나, 나라가 다르면 사람의 성품도 다르니 반드시 구차히 같게 하려 하지 말라. 거란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나라이므로 풍속이 같지 않고 언어 역시 다르니 부디 의관 제도를 본받지 말라. …
"또 강하고 악한 나라(거란)가 이웃하고 있으니 편안한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병졸에게는 보호하고 구휼하며 부역을 참작하여 면제해 주어야 하며, 해마다 가을에는 용맹하고 날랜 인재를 사열하여 그 중에서 뛰어난 자는 알맞게 계급을 올려 주어야 한다."

왕건의 훈요 10조 중 4조와 9조입니다. 제대로 된 분쟁이야 없었지만, 왕건에게 있어 거란은 최고의 가상적국이었죠. 발해 문제부터 굳이 발해가 아니더라도 고구려를 이은 나라가 고구려 영토를 강점하고 있는 나라에게 좋게 대할 순 없었죠. 거기다 고려는 중원과 교역해야 되는데 대립하는 요와 손 잡는 것도 꺼림찍하구요. 원교근공의 원리로도 거란은 좋게 대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왕건은 후진(오대 십국 중 하나)에게 거란을 협공하자는 제안도 합니다.

"발해는 본디 우리의 친척 나라인데, 그 왕이 거란에게 잡혀갔다. 내가 중국 조정을 위하여 거란을 쳐서 그 지역을 취하고, 또 묵은 원한을 갚고자 하니, 대사는 돌아가서 천자에게 말해 기일을 정하여 양쪽에서 습격하게 해 달라"

+) 고려가 발해를 같은 고구려계으로 여겼다는 근거로 쓰입니다. 헌데 이게 우리측 사료에는 없죠. 그냥 기록이 소실된 것일수도 있겠는데, 정통성 문제 그러니까 발해를 인정하면 고려의 정통성이 약해지니까 그런 게 아닐까도 생각해 봤었습니다.

이 때가 942년, 후진에서는 거부하죠. 2년 후, 이번에는 후진이 고려에 협공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 때 왕건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죠. 아침의 혼란에 빠져 있던 고려, 혜종은 그걸 거부합니다. 결국 후진은 송과 거란에 의해 멸망하고, 거란은 그 대가로 연운 16주를 받게 되죠.

이런 가운데서 두 국가는 세력 확장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두 나라가 국경을 맞대게 되죠.

2. 북진과 남진


"거란의 동경부터 우리나라의 안북부(안주)에 이르는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게 점거되었었는데 광종이 이를 빼앗아 가주ㆍ송성 등의 성을 쌓았으니,"

고려의 북진은 대규모 정벌보단 이렇게 하나하나 성을 쌓고 여진족을 쫓아내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 후 여진은 자기들끼리 넓은 지역에서 할거했고, 전쟁도 게릴라전 수준이었기에 이렇게 거점을 하나하나 박아가면서 고려인들을 이주시키고 통치권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거란의 동경"부터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생각은 고구려의 요동까지 갈 생각이었던 거죠.

태조 왕건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까지도 그 작업은 계속됐고, 6대 성종에 이르면서 이런 것도 등장합니다. 성종 9년, 991년의 기록이죠.

"압록강 밖의 여진을 백두산 밖으로 내쫓아 그곳에 살게 하였다"

이게 제대로 된 건지까지는 몰라도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 저 말대로만 해석한다면 압록강 안의 영토는 다 수복했고, 이제 이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여진족들을 내쫓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조선의 체제를 완성한 게 세종대왕이라면, 고려의 체제를 완성한 사람이 성종이었죠. (뭐 고려의 세종대왕이라 할 왕은 따로 있습니다만) 최승로의 시무 28조가 그의 대에 올라왔고, 3성 6부제와 12목 설치를 통한 지방 체제 완비까지... 초기의 혼란을 벗어난 고려는 참 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체 중국 역사라고 하면 영토를 왜 저렇게 크게 해 놓는 건지 -_- 얼씨구 한반도 북부도 드셨어요?


정안국. 발해부흥운동으로 세워진 국가 중 하나입니다.

한편, 거란은 발해 부흥 운동과 여진족의 저항을 꺾어 가며 남진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이, 당시 두 나라의 왕이 모두 성종이었다는 것이죠. 압록강 중류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발해의 유민이 세운 정안국은 982년에 무너집니다.

985년, 송에서는 사신을 보내 거란을 협공하자고 제안합니다. 성종은 이를 받지 않다가, 일단은 알겠다고 하죠. 뭐 결론은 거부 쪽이었던 모양입니다만 -_-a 다음 해에는 거란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지만, 고려는 거부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 고려는 고려대로 압록강에서 압록강 북쪽까지 간 것 같고, 거란은 거란대로 남하했죠. 이미 거란은 고려를 친다고 하면서 정안국을 멸망시켰고, 그 후에도 고려를 핑계대면서 여진을 여러 차례 공격합니다. 그들이 "고려의 땅을 경유해서" 여진족을 쳐서 여진족이 송에게 "거란과 고려가 손 잡았다"고 하소연 하기도 했죠. 거기에 송의 사신이 왔을 때 말 한, 거란의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다는 점 등... 이를 보면 한 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당시 압록강 주변은 제대로 주인이 없었다는 것이죠. 거란과 고려는 남북으로 압록강을 향한 알박기를 계속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고려도 압록강 북에 성 단위의 기지가 있었을 수도 있고, 거란도 남쪽에 그랬을 수 있습니다. 이 둘의 분쟁도 전면전 수준이 아니었을 뿐 잦았던 것 같구요. 하지만 이들은 일단 이 지역에 할거하는 여진족을 몰아내야 했습니다.

이 때의 압록강 확보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랑캐 수준이었던 여진은 고려, 거란, 송이든 가리지 않고 곡식이나 농기구 등을 구해야 했습니다. 헌데 송과 연결할 곳은 압록강 하구, 의주 뿐이었죠. 이 곳을 차지한다는 것은 곧 여진족들을 관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거란은 물론이요 고려 역시 영토 수복 외에 이런 목표가 있었죠. 이 때의 여진족은 참 불쌍하긴 한데 주는 거 없이 미운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_-;

성종이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백두산 밖으로 추방한 991년, 거란은 반대편 위구, 진화, 내원에 각기 세 개의 성을 쌓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건 자명했죠. 여진을 토벌하고 쫓아내서 자국 땅으로 확보하는 평화로운 (...) 시기는 지났습니다. 이제 이 압록강을 중심으로 한 고려와 거란의 담판만이 남았죠.

2년 후, 993년 마침내 거란의 침공이 시작됩니다.

3. D-DAY
여느 전쟁이 다 그렇듯, 이 전쟁도 딱히 기습은 아니었습니다. 고려는 북진하면서도 거란을 경계했죠. 당장 그 송을 가지고 놀던 게 거란입니다. -_-; 한창 좋을 때를 보내고 있었죠. 실제 거란도 정안국 정벌 때부터 심심하면 고려 친다고 하고 다녔구요. 문제는... 이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데 있죠.

"여름 5월에 서북계의 여진이 보고하기를, “거란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침노할 것을 모의한다." 하였는데, 조정의 의논은 '여진이 우리를 속인다.' 하여 방어를 하지 않았다."

그에 이은 8월, 여진은 다시 "거란의 군사가 이르렀다"고 알립니다. 그제야 성종은 병력을 정비했고, 10월에 박양유를 상군사로, 서희를 중군사로, 최양을 하군사로 삼아 북계에 주둔시킵니다.

고려와 거란간의 길었던 전쟁, 여요 전쟁의 시작이었죠.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490 기타수학 잘함 = 공간 감각 좋음? 10 OPTIK 16/12/31 4372 1
    4488 역사여요전쟁 - 0. 피할 수 없는 한 판 8 눈시 16/12/31 4927 2
    4487 일상/생각고맙습니다 7 레이드 16/12/30 4607 5
    4486 일상/생각내 가슴속 가장 아픈 손가락 1 OPTIK 16/12/30 3867 0
    4485 일상/생각마흔을 하루 앞두고... 39 난커피가더좋아 16/12/30 4679 2
    4484 IT/컴퓨터K Global 3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2 집에가고파요 16/12/30 4737 8
    4483 기타고양이와 DNA감식 7 모모스 16/12/30 6357 4
    4482 일상/생각할 일 없는 영혼은 도시를 또 떠돌았습니다 5 황금사과 16/12/30 5672 0
    4481 일상/생각그냥 잡담 6 와이 16/12/30 3599 0
    4480 철학/종교산타가 없다는 걸 언제쯤 아셨어요? 42 기아트윈스 16/12/30 5636 8
    4479 문화/예술나의 놀이의 기원과 변화... 여러분은?? 10 커피최고 16/12/30 5487 4
    4478 문화/예술영화, 소설, 그리고 영화 21 팟저 16/12/30 7352 8
    4477 여행LA 에서 Big Sur, San Luis Obispo 가기 51 elanor 16/12/30 6774 3
    4476 게임[스타1] 마지막 밀리맵 제작기(1) 5 유자 16/12/30 8414 1
    4475 의료/건강비 의료인의 주관적인 웰빙 생활패턴 14 Credit 16/12/29 5738 1
    4474 방송/연예김광석. 그의 21주기. 11 Bergy10 16/12/29 5259 5
    4472 창작'나'로부터 벗어나기. - 삶의 해답은 어디에? 7 SCV 16/12/29 5249 6
    4471 게임배틀필드1 플레이 리뷰 1 인디게이머 16/12/29 7810 0
    4470 일상/생각옛날 이야기 - 2 4 tannenbaum 16/12/29 4067 7
    4469 게임프로야구 매니저 종료 10 소노다 우미 16/12/29 4990 0
    4468 문화/예술잡담 31 팟저 16/12/29 8663 1
    4467 영화이번 주 CGV 흥행 순위 2 AI홍차봇 16/12/29 4082 0
    4466 일상/생각노인의 몸 생각해보기 3 nickyo 16/12/29 4907 6
    4463 게임나름 역사를 바꿨던 사건들 #3 - 파이널판타지7 출격 5 Leeka 16/12/28 4572 2
    4462 도서/문학재밌게 보고 있는 만화들 18 Raute 16/12/28 6498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