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6/29 21:34:13
Name   Eneloop
Subject   (잡문) 꿈 이야기

안녕하세요.
홍차넷 활동을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한동안 아파서 홍차넷은 커녕 현실세계 로그인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습니다.

아픈 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정도의 긍정적인 면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손끝 발끝에서부터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것인지 알게 된다는 것.
고통이 있다가 사라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속적 설교가 쉬이 달성하기 힘든 종교적 상태에 놓이게 되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요.

두 번째. 이건 좀 특수한 경우입니다.
제 경우에 몸에 열을 동반하는 고통이 자주 찾아오는데,
이 열이라는 놈이 그 어떤 환상소설도, 영화도 보여주지 못하는 정경을 보여주곤 하죠.

바람을 연료로 사용하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거리를 누비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의 콧수염 하나하나까지 지각할 수 있는 흑백사진 안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원을 그리는 펜들럼마냥 돌아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건물을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제 뇌를 제가 조립하기도 하고,
청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서, 집 안팎을 돌아다니는 벌레들의 다닥거리는 발소리를 모두 들어야만 하기도 하고,
그 어떤 야한 사진이나 야동도 보여주지 못할만한 관능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모자이크)
몇백대째 내려오는 설렁탕집의 초대 할머니 동생이 살아계셔서 그 분한테 설렁탕을 직접 얻어먹기도 하고,
흔하지만, 살인자가 되어 쫒기기도 하고,
어제는 '미소'라는 단어와 '차석수집군'이라는 단어가 동의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깨어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꿈은 재미있어요. 가끔 특정 약을 먹을 때 더 현란한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 약을 다 먹게 되면 왠지 모르게 아쉽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떤 정신나간 꿈을 꿔보셨는지요.

일년 전, 악몽을 꾸고서 적었던 잡문을 하나 붙여봅니다.

----

  심한 악몽은 종종 가위를 동반한다. 알렉스처럼 묶여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영상을 관람했다.

  나는 이상한 존재였다. 경멸이나 동정의 대상조차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경멸한다면 바라보는 그 눈에 분노가 서려있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든 노력해보려는 따뜻한 눈빛도 아니었다. 요컨대 주체가 되지 못했다.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수정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무슨 사고를 칠까 두려워 친척 누나들을 내게 붙여 감시를 진행했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누나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만은 내게 경멸을 드러냈다. 다트를 배우는 도중이었는지, 아버지 손에 다트가 들려있었다. 끝이 뾰족했던 그 다트들은 몇 마디 외침과 함께 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눈에 박히면 실명하게 되겠지. 다트 강사는 "그러시면 안된다"며 아버지의 팔을 부여잡았다. 아버지는 완강했다. 날아오는 다트 몇 개가 팔에 박혔다. 박힌 팔에서 다트를 뽑아서 아버지에게 다시 던졌다. 뒤로 물러서지도, 앞으로 전진하지도 않았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나 역시 몇 마디 외쳤다. 대부분의 외침은 "왜"라는 질문에 기반한 문장들이었지만,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만난 것은 학교의 교수였다. 교수는 주먹으로 때렸다. 맞으면서 "너 때문에"라는 이야기를 몇개 들은 거 같다. 나도 교수를 주먹으로 때렸다. 교수는 자기 말고도 날 패줄 사람이 많이 찾아올거라고 했다. 난 아버지와 교수를 어떻게 고소해야 할지 생각했다.

  영상이 끝난 후 침대에 앉아 땀을 흘리고 숨을 내몰아쉬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꿈이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에? 두려움과 유약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아마 울면서도 꺾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놈의 세상은, 꿈에서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구나.

(2014.07.08)
----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816 기타. 51 삼공파일 17/02/09 6175 4
    4829 기타. 21 삼공파일 17/02/10 4956 2
    4854 기타. 43 삼공파일 17/02/12 5902 9
    5249 비밀글입니다 38 三公 17/03/21 1102 4
    5288 비밀글입니다 39 三公 17/03/25 1152 2
    1287 기타.사.진. 17 눈부심 15/10/18 11654 0
    10621 기타'김어준의 생각'을 보고, 댓글 셀프점검. 21 DX루카포드 20/05/26 5637 13
    12899 기타'위즈덤 칼리지' 청취 후기 (매우 간단, 노 스포) 및 토론 모임 인원 모집 16 Mariage Frères(바이오센서) 22/06/08 6715 5
    12677 기타'일년동안 책을 엄청 많이 읽고나서 느낀 점' 을 보고 느낀 점 10 회자정리거자필반 22/03/27 6051 5
    9776 기타'적성고사 몰랐던' 유은혜, 광명 고교생 질문에 '진땀' 18 Fate 19/10/04 7225 5
    9635 기타"남성의 매력 = 친구의 숫자"이다? 20 이그나티우스 19/09/08 6124 0
    12795 기타"버버리 체크 쓰면 안 돼"…제주 15개교 교복 변경 추진 8 다군 22/05/09 5395 0
    10776 기타"추미애 장관, '공소권 없음' 박원순 성추행 의혹 진실 파악해야" 4 Moleskin 20/07/14 6273 1
    10180 기타(공포) 얼굴을 가린 방문자 1 키스도사 20/01/14 7495 0
    6000 기타(덕내주의, 뻘글주의) 문통과 연느가 참여한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다짐대회 16 elanor 17/07/24 5954 3
    48 기타(데이터 주의) 간지남 6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5/05/30 10066 2
    7643 기타(마감) #전직백수기념나눔 #책나눔이벤트 36 la fleur 18/06/09 7447 20
    15310 기타(번역) contrapoint - cringe 2 페리카나 25/03/11 1793 0
    369 기타(사진 다수 포함) 수원화성 돌아보기 27 NightBAya 15/06/20 11058 0
    607 기타(수정) 덕후송 '당신은 그 안에'란 음악 기억하시나요? 3 모여라 맛동산 15/07/17 7190 0
    442 기타(수정) 민상토론 징계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35 모여라 맛동산 15/06/26 8429 0
    6276 기타(약혐)디시의 가슴 뜨거운 야매 의사 17 콩자반콩자반 17/09/13 7085 0
    12962 기타(완료) 영화 티켓 한 장 예매해드립니다 - 6.30(목), CGV 8 조선전자오락단 22/06/29 4440 3
    470 기타(잡문) 꿈 이야기 25 Eneloop 15/06/29 9017 0
    383 기타(잡문) 문학에서의 '부사' 사용 63 Eneloop 15/06/20 10083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