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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15 13:53:11
Name   수박이두통에게보린
Subject   [회고록] 터키의 추억
수박이가 조별 과제 모임을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말을 조곤조곤 잘 하고 태도도 싹싹한 예절 바른 학우가 있었답니다. 어느날 조별 모임이 끝나자 그 학우는 조원들에게 말했어요.

"학우들, 이번 주에 아주 맛이 좋은데다가 고단백이라서 건강에 좋은 칠면조를 먹으러 갈까?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칠면조를 잡고 큰 파티를 열 것이야."

칠면조. 터키. 형제의 나라. 2002 월드컵 3-4위전을 같이 치뤘던 나라. 터키는 유독 한국과 인연이 많아요. 아, 그런데 칠면조는 그 터키가 아니군요. 어쨌든 수박이를 비롯한 학우들은 칠면조를 먹을 생각에 다들 교회에 가기로 했답니다. 우리 교회가 아니라 그 학우가 다니는 교회이긴 하지만요.

교회가 참 멀었어요. 성남까지 갔어요. 그러나 칠면조를 먹기 위함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마침내 수박이와 학우들은 교회에 도착했어요. 무슨 교회가 이렇게 큰지 모르겠어요. 마치 빌딩 같았답니다. 교회를 이리저리 둘러봤어요. 사람들도 참 많았어요. 다들 표정이 밝아요. 아마 수박이를 비롯한 학우들처럼 칠면조를 먹을 생각에 행복감에 부풀어오른 것 같았답니다.

그런데 교회 어디에서도 칠면조는 도무지 보이지 않아요. 그림이 그려진 계란만 몇 개 있고 칠면조는 커녕 닭도 없었답니다. 등골이 서늘했어요. 칠면조를 먹을 생각에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올랐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수박이를 비롯한 학우들은 당황해마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교회에 초대한 학우가 처음 본 옷을 입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어요.

"학우들, 정말 잘 왔어. 너희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칠면조는 어디있지, 학우?"

수박이를 비롯한 같이 간 학우들은 그 학우를 거세게 밀어붙였답니다.

그 학우는 당황해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어요.

"침착해. 교회에서 준비한 간단한 행사를 하고 칠면조를 먹을 것이야,"

"학우, 침착하지 못한 우리가 미안해. 맥주도 준비 됐으렷다?"

맥주가 있냐는 우리의 질문에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수박이와 학우들은 교회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답니다. 성가대가 나와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이것이 CCM이라는 것인가봐요. 화음이 맞지 않는 것 같기는 하지만 칠면조를 먹을 생각에 귀를 기울였답니다. 갑자기 목사가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목사가 이야기하다 잠시 숨을 고를 때면 "주여" "목사님, 찬양합니다" 와 같은 구호가 터지기 시작했어요. 아, 이것은 마치 술을 마시기 전 "건배", "위하여" 와 같은 구호인가봐요. 시간이 지나자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이상한 분위기로 무르익기 시작했어요. 목사의 말을 듣던 교인들이 하나 둘 씩 흐느끼기 시작하고 자리에 누워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답니다. 울면서 "목사님, 사랑합니다." 를 외치기도 했어요.

"아니, 이것은 대체 무슨 행동이람?"

수박이를 비롯한 학우들은 당황해하기 시작했어요. 조 구성원중에서 우리를 교회에 초대한 학우만 교회에 다녔고 나머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흐느낌과 적극적인 구애활동이 계속될 것 같은 시점에 목사가 교탁을 치며 외쳤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XX를 사랑하고 XX를 믿고 XX를 찬양해야 합니다."

"XX여, 사랑합니다. XX여, 찬양합니다!!"

교인들은 울며 답했답니다.

어랍쇼.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교회는 예수를 믿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XX란 목사에 대한 구애활동을 이루는 것이 이상했어요. 이 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사이비 교회인가 봐요. X바, X됐다. X바, 시X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도중 조원이 기타를 잡았습니다. 연주가 시작되고 성가대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요.

"울트라캡숑 숑짱숑짱~"

교인들은 울며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답니다. 수박이와 학우들은 계속해서 당황했어요. 처음 들어보는 노래라서 입을 맞출 수 없으니 립싱크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노래가 끝나자 다시 목사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수박이와 눈이 마주쳤답니다. 목사가 이상한 미소를 보이며 수박이를 향해 말했어요.

"오늘 처음 온 형제가 있군요. 잠시 앞으로 나와보세요."

목사의 말을 듣고 교인들은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형제여, 환영합니다. 형제여, 사랑합니다."

어째서 이런 안 좋은 것은 수박이만 걸리는지 모르겠어요. 같이 간 다른 학우들도 있는데 말이에요. 목사 XX끼. 수박이는 강제적으로 교탁으로 나갔답니다. 목사는 수박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하기 시작했어요.

"오늘 주님과 XX님 덕분에 우리 형제가 우리 교회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우리 형제의 신앙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수박이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신앙 고백이 대체 뭐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처음 보는데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목사가 싹싹해보였지만 참 미워보였답니다. 그래서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아..저는 칠면조를 먹으러 왔는데, 아직까지 칠면조를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외의 환호성과 박수.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수박이는 당황하지 않고 계속 말을 했어요. "칠면조 언제 나오나요? " 를 시작으로 칠면조를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를 읊었답니다. 칠면조 타령이 계속되다 보니 환호성과 박수는 끊기고 교인들이 수박이를 무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이 분위기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칠면조는 개뻥이었다는 것도 늦게야 깨달았구요. 그래서 수박이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칠면조 못 먹을 것 같으니 저는 이제 그만 갑니다."

이 말을 마치고 교탁에서 내려가 엄청난 속도로 뛰며 외쳤어요.

"학우들, 여기 사이비야!! X바!! 칠면조는 없어!! 칠면조는 없다고!! 터키 X까!!"

웅성웅성. 교인들이 웅성거리고 같이 간 학우들이 당황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학우들도 곧 정신을 차리고 뒤따라 뛰어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학우들만 뛰는게 아니라 몇몇의 교인들도 같이 뛰고 있었어요. 갑자기 술래잡기가 되었답니다. 어떤 교인이 정문을 지키고 있엇어요. 아마 수박이와 학우들 같이 칠면조에 혹해서 온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나봐요. 수박이는 그 교인을 어깨빵으로 밀치고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수박이의 어깨빵 타격은 굉장하거든요. 뒤따라 나오던 학우들도 수박이의 어깨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교인을 뒤로 하고 다들 무사히 탈출했어요.

그런데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쉬려고 뒤를 돌아봤더니 교인들이 계속 쫒아오고 있어요. 이것은 마치 사자가 가젤을 사냥하는 것과 같았어요. '잡히면 죽는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계속 뛰었답니다. 대체 역은 언제 나오는 것일까요. 수박이와 학우들은 뛰고 또 뛰었어요. 택시가 보였어요. 일단 택시를 탔어요. 이렇게 계속 뛰다가는 잡힐 것 같았답니다. 학교를 목적지로 말하고 탈출한 학우들에게 학교에서 모이자고 전화를 돌렸어요. 성남에서 학교까지 택시비는 꽤나 나왔어요. 수박이는 생각했어요.

"XX 학우 개XX, XX새X, XX만도 못한 XX놈."

칠면조를 먹지 못한 수박이와 학우들은 다들 학교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칠면조를 먹지 못했으니 닭이라도 먹자며 치킨에 맥주를 기울였답니다. 그리고 수업 전 교수를 찾아가 칠면조 사건을 이야기했어요. 교수는 칠면조를 먹지 못한 심각함을 잘 알고 있었어요. 역시 교수. 수업이 시작되자 교수는 말했답니다.

"칠면조로 학우들을 사이비 종교로 낚은 학우가 있다. 그 학우는 그 조에서 조별 과제를 하지 말고 다른 조에 들어가 조별 과제를 하도록 해."

그렇게 칠면조 학우는 수박이가 속한 조에서 강제 탈퇴되었어요. 그러나 그 학우는 어느 조에도 속하지 못했답니다. 감히 먹을 것으로 사람을 낚는 못된 학우를 다른 학우들이 같이 조별 과제를 하기 싫어함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수박이와 학우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말 열심히 조별 과제를 준비했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C0를 받았답니다. 칠면조 사건만 없었더라도 C+은 받을 수 있었을텐데요. 먹을 것으로 선량한 학우들을 낚는 학우 때문에 조별 과제를 망쳤다는 것이 참 슬펐습니다.

아아, 터키. 너의 이름은 칠면조. 우리는 형제의 고기가 아니었던가.

98%의 사실, 2%의 픽션.



8
  • 98%의 사실이라니...
  • 와아 이건...
  • 칠면조를 안 주다니..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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