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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1/26 21:30:18
Name   tannenbaum
Subject   죄책감...
https://ko-kr.facebook.com/TheBlueHouseKR/

https://youtu.be/kaq9_yTSEso

얼마전 청와대 청원으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이 청와대 페이스북을 통해 올라왔습니다. 요약하면 방법을 찾아 보겠다. 입니다. 저는 낙태죄 폐지에 찬성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조국 수석의 말처럼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여자가 임신하면 나몰라라 배째는 남자들이 천지삐까리에다가 혼외자가 되더라도 양육비 한푼 안주는 사례야 말하면 입 아프죠. 낙태죄를 물으려면 여자와 남자 쌍방을 처벌해야죠.



여튼간에 오늘은 낙태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요.... 그냥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제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입학하던 해 두번째 재혼을 하셨습니다. 어색함과 기대가 공존하는 시간이 흐르던 어느날 새어머니는 저에게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병원 주소와 약값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중학생이라고 해봐야 열세살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죠. 데스크에 찾아가 아무개씨 약 타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간호사누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와야 약을 내어주는데 열세살짜리가 왔으니까 난감하셨겠죠. 간호사 누나는 집으로 전화를 해 새어머니와 통화를 했고 저에게 약을 내어주었습니다. 약을 받아든 나는 호기심이 생겨 물었습니다. 아직 친해지지도 않았지만 새어머니가 어디가 많이 아픈가 걱정도 되었구요.

[이거 무슨약이에요?]

그러자 간호사 누나는 더없이 곤혹스런 얼굴로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지금이야 그 누나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제가 재차 많이 아파요? 묻자 조용하게 말해주더군요.

[소파수술하면 먹는 약이야.]

그게 무언가 싶어 더 묻고 싶었지만 누나의 표정을 보니 묻기가 뭐했습니다. 아마도 그 간호사 누나는 내가 그 단어를 들어도 무슨뜻인지 모를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실제 저도 몰랐구요. 몇일 뒤 동네 슈퍼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말씀해주시더군요. ※ (정확히는 소파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다른 것이지만 80년대에는 임신중절수술을 소파수술이라고 퉁쳐서 부르곤 했습니다)

20년 쯤 지나고 아버지에게 이유를 들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답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어려웠던 경제 상황에서 동생을 기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저 때문이었습니다. 늦둥이 동생이 생기면 새어머니는 당연한 것이고 아버지 당신께서도 저에게 소홀해질까 걱정이 드셨답니다. 당신께서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머리로야 그럴리 없다 생각하셨지만 자신이 없으셨답니다. 또... 이혼으로 일곱살부터 국민학교 졸업할때까지 친척집과 시골 할아버지댁을 전전하며 따로 살아온 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 더 집중하고 싶으셨다 합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버지 입장이 이해가 되는게 참 서글퍼지고 동생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물론, 동생이 태어나서 철천지 원수가 되었을지 더없이 우애 깊은 형제가 되었을지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냥 이렇게 낙태 이야기를 들으면 나 때문에 소리내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떠나간 동생이 생각나곤 합니다.

저승이라는데가 있어서 혹여나 나중에 만나게 되면 많이 안아주고픈 마음은 아마... 평생 갈거 같습니다.

이럴때는 저승이라는데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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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들의 사정ᆢ있을수있지만 애들에게 알리진 말았으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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