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17/12/10 23:55:45 |
Name | aqua |
File #1 | IMG_9771.JPG (1.93 MB), Download : 9 |
Subject | 선귤당 선비님 |
주말에 보니 제 냉장고에 귤이 가득 있지 않겠습니까? 어인 일인지 지난 주 출장기간동안 고양이를 돌봐 준 친구에게 물어보니 선물로 두 상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니 나눠 준 건 고마운데 이걸 어찌 다 먹으라고...이러니 '부지런히, 잘' 먹으라고 합니다. 곰팡이 탐구생활 찍지 않으려고 지금도 '부지런히, 잘' 먹으며 쓰고 있습니다. 산더미 같은 귤을 보니 제가 좋아하는 선비님, 선귤당 이덕무가 생각납니다. 깨끗한 매미랑 향기로운 귤을 떠올려 자신의 거처를 선귤당이라 칭하고 본인의 호로도 사용한 선비님. 책이 좋아서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라 칭한 이 분. 사방으로 통하는 큰길 가운데도 한가로움은 있다. 마음이 한가로울 수만 있다면 굳이 강호를 찾을 것이 없고, 주변의 소리는 흐려지고 내 안으로 조용히 침잠할 때의 감각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 보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인 것만 같은 사람..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를 못하였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도록 일찍이 하루도 손에서 옛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무럭무럭 자라 이런 글을 적게 되지요.
맹자가 지어준 밥과 좌구명 선생이 준 술이라니ㅋㅋ참으로 유쾌한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때나 지금이나 돈 안되는 학문을 하는 자들의 처지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학문을 하지도 않는데 쓸데없는 책이 많으니 팔아다 술이라도 사줘야겠다능...) 저는 이 선비님을 특히 좋아하지만 옹기종기 모여살던 북학파 선생들 박지원,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이들의 우정도 참 좋습니다. 친구라 하면 무릇 서로가 서로를 까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지원은 이덕무를 '섭구(말을 조심스레 겸양하고 잘 숨는 성질의)충'이라 칭하며 장난치고, 이덕무는 아 내가 '섭구'가 아니라 내 책이 '섭구'라구! 이러고 노는 거나... 서로의 가난에 대해 살피고 서로의 글을 읽고 또 그에 대한 글을 쓰며 서로를 아끼는 모습과 또...
ㅋㅋㅋ초정 선생이 잘못했네요ㅋㅋ 먹는게 얼마나 중한 것인디ㅋㅋ 마지막으로 유난히 마음에 남는 선비님의 사람에 대한 글로 귤과 함께한 독서를 끝내겠습니다.
7
이 게시판에 등록된 aqua님의 최근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