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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30 23:14:33
Name   No.42
Subject   한 폭의 그림같은 직장 이야기 #3
제가 내일부터 지방을 돌게 됩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이번으로 끝내고 싶은데, 사실 아직도 구구절절 할 이야기가 많아서 어찌될 지 모르겠습니다.
발암행 열차 출발합니다.

그렇게 본부장은 물러나고, 그 자리를 차지한 팀장은 전보다 심한 전횡을 일삼게 됩니다. 팀장을 제외하면 저희 팀은 차장님, 과장님, 디자이너 선배, 저...
이렇게 넷이었습니다. 위로 선배 여직원이 하나 더 있었는데 어찌어찌해서 부서이동을 해서 나가버리고 남은 전우는 그렇게 넷이었죠. 정말 다들 좋디 좋은
사람들입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차장님과 디자이너 선배(이지만 나이는 저보다 어린 이쁜 아가씨라 오누이처럼 지냅니다.)와는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있지요. 팀장의 횡포는 크고 작은 영역에서 끊임없이 저희를 괴롭혔고, 저희는 지쳐갔습니다.

피크는 모두가 사활을 걸고 있는 그 프로젝트였습니다. 차일피일 개발자와의 회의가 미뤄져서 저는 팀장을 다시 들이받았습니다. 시간이 촉박한데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업체를 바꾸든가 해야 한다...는 식이었죠. 그리고 법무팀 형과 결의하고 그 회사에 대한 일시불 지급도 가능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도 정치 비슷한 걸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데 팀장이 어느날 회의에서 폭탄발언을 합니다. 그 업체와의 계약을 백지화하겠다는
겁니다. 자신이 보니까 영 사장의 태도가 석연찮아서 확인하니 회사가 유령회사 저리가라인 지경이랍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이 먼지만 쌓여서 직원들은
어딨냐고 하니 휴가갔다는 식으로 변명하더랍니다. 그렇게 여기랑은 안될 듯 하니까 업체를 다시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6월 말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4월에 지원금을 받았으니 두 달을 허공에 뿌린 겁니다. 저는 그나마 거기랑 일을 안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 애써 자위했지요.

이 즈음에 구조조정으로 인해 새로이 소속되게 된 본부에서 본부 워크샵을 간다고 합니다. 이게 왠 일인가 싶었지만 따라나섰습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이
본부로 넘어온 팀 중에는 저의 단짝친구가 일하는 팀도 있었습니다. 녀석과는 입사동기로 신입사원 식사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이상하게 죽이
잘 맞고 끌려서 술담배를 나누며 단짝이 되었지요. 녀석의 팀은 젊은 남자만 다섯이서 일하는 팀이었는데, 멤버며 팀웍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제가
일하는 곳보다는 그 팀에 껴서 식사하거나 어울리는 일이 더 잦았지요. 워크샵에 가서도 그 팀과 방을 같이 썼습니다. 사실, 그 팀의 팀장형은 젊은 나이에도
카리스마와 능력을 겸비한 좋은 리더였습니다. 그보다 나이가 한참 더 많으면서도 개자식소리 듣는 누구에 비하자니 참... 이 시기에 저도 짬이 좀 차고 인맥이
쌓여가며 알게 된 이야기인데, 제가 일하는 자리가 곡절이 많은 자리였습니다. 제 전임과 그 전임 둘 모두가 팀장과의 강력한 갈등 끝에 일찍 나갔다고 하더군요.
특히 전전임 분은 아예 퇴사하신 것이 아니라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신 분이셨는데, 그 분은 별다른 말 없이도 제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해
주셨습니다. 본인도 겪은 고통이니 뭐... 이런 저런 사정을 대강 알고 있는 친구와 친구 팀의 형들은 저를 잘 달래주며 마치 팀원처럼 받아주었습니다. 본부
워크샵이다 보니 뭐 이러저러 행사가 있었는데 본부장 한말씀에서 저는 벙찌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우리 팀 팀장이 본부 전원에게 거하게 한 방
쏘신 거랍니다. 사정도 안좋은 마당에 한탄강에 큰 숙소를 통째로 빌려서 워크샵이라니...라는 의문을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었는데 세상에 그 비용은 전부
우리 팀에서 낸거죠. 무슨 돈으로? 뻔하죠, 지원금으로. 가계부를 어떻게 썼는지 몰라도 프로젝트가 제대로 될 지 안될 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놓고서 찐하게
생색내고 있었던 겁니다. 기가 막히는 건 팀원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아놔...

양파같은 이놈의 회사생활, 아직 뭐가 더 남았습디다. 결국 업체 서칭에서 어떤 업체 하나가 얻어걸렸습니다. 나름 여의도에 번듯한 사무실도 있고 직원도
활발히 오가는 개발업체가 있어서 계약을 했습니다. 팀장과 저 둘이서 직접 답사를 가보고 괜찮겠다 싶었지요. 안전을 위해서 보증보험 끼고서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개발자들과 더불어서 회의를 하고 드디어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감개가 무량하지요. 이 때가 7월... 지원금 받은지 100일이 지난...
중간검수까지 5개월... 사실 절망적이라고 해도 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플랫폼 사업자 측에 가진 PT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피드백 담당을 서로 하겠다고 부서끼리 다투는 상황까지 연출될 정도였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으신 분들은 다 짐작하시겠으나, 이 이야기에 해피한 부분은 없습니다. 저희가 제작하는 게임의 메인캐릭터 IP를 가진 라이센서가 강력한 태클을 걸게
됩니다. 저희가 의도하고 기획한 기능은 자신들이 따로 개발할 예정이니 그냥 가지고 놀 게임이나 만들어라...고 한 것이죠. 이게 계약 당시에 우리는 당신들
캐릭터로 이러이러한 것을 만들겠소...라고 한 것을 한~참 뒤에서야 태클을 걸고 온 겁니다. 도장찍어줄 때는 언제고... 사실 이 업체가 가지고 있는 IP가
좋다보니 라이센시들한테 몹쓸 짓 하는 양아치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뭐 어쨌든... 당연히 회사나 팀장은 이 태클에 강력하게 어필해 줄 능력도 의도도
없었죠. 그래서 당초 기능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했던 저의 기획은 그냥 간판만 남고 알맹이는 상당수 덜어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예상하시겠지만,
이때까지 고생했던 의미의 상당부분이 날아가버려서 저의 좌절은 생각보다 퍽 컸습니다. 플랫폼 사업자 측에서 좋은 반응을 보인 이유도 결국 덜어내야
하는 부분에 대한 호감이었고, 그보다 근본적으로 지원금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 기능에 힘입은 것이기에, 그대로 개발을 진행하면 많은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물론 속이는 영역까지 들어가야 할 판이었습니다. 이렇게 저희 모두가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던 사업은 크게 휘청이게 되었습니다.

워크샵을 다녀오고 사업이 비틀거리던 때에 팀장은 회의실 하나를 전세내놓고선 팀원 모두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끝장 미팅이라는 것을 하자고 합니다.
끝장 미팅이라니... 팀장의 말에 따르면 부서의 운명은 이미 풍전등화랍니다. 이 시점에서 각 팀원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부서의 생존에 도움이
될 지 각자의 생각을 기탄없이 이야기해보잡니다. 이 때는 팀에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팀장이 직접 영입한 차장님 한 분이 더 계셨죠. 그 분 역시 나름의
필드가 있어서 그 쪽의 사업을 추진하셨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그 분의 아웃풋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그 분 포함 모든 팀원은
나름대로의 생각을 다 털어놨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라이센서의 횡포로 비록 날개가 반나마 꺾였으나, 최선을 다해서 라이센서의 요구와 우리의 계획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개발할 생각이었습니다. 차장님, 과장님, 선배까지 모두 그래도 우리의 살 길은 이 게임에 있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한 10시간 가까이 이어진 미팅에서 모든 팀원, 아, 새로 오신 차장님 한 분 빼고... 나머지 팀원 모두는 지원금 수령 4개월차에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던 그 게임을 부서 사활의 열쇠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미팅 10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드디어 팀장의 입이 열렸습니다. 뭐 긴 말은 없었습니다. 자신은
앞으로 이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답니다. 물론 팀장으로서 행정적인 결제나 이런 부분은 하겠으나, 개발과 관련된 일엔 전혀 관여치
않고 따로 자신만의 사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게 뭔지는 공개하지 않았죠. 그리고서는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는 발언이 나옵니다. 나는 손 떼니까
이제 이 일은 당신들의 일이다. 잘되든 망하든 당신들이 책임 져라. ... ... ^^;;; 기도 안찹니다. 하하핫.

그래놓고 언론에서 인터뷰 하자니까 지가 나가서 뻘소리 합니다. -_-

뭐 차라리 편할 지도 모릅니다. 방만 같이 쓰지 이제 남남입니다. 팀장은 무슨... 팀원들 내팽개치고 혼자 일하겠다는 작자가 무슨 팀장입니까. 저는 아예
잘됐다싶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냥 개발에만 박차를 가해서 검수만 넘기자...하는 것이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새로 선정한 업체의 개발자와
기획자들은 제 의도를 잘 따라와주는 편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회사 인간들보다 더 괜찮냐 싶은 맘이 들었죠. 그런데 청천벽력이 아직 남았습니다. 그
손발 잘맞는 외주 인력들이 느닷없이 결근을 합니다. 업체에 확인하니 집안 일로 결근했답니다. 다음 날. 또 결근. 집안 일. 다음 날. 또. 이번엔 아프다나?
저는 개인적인 채널로 그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당시 외주인력의 리더격이었던 분은 제게 기가막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당시 개발일정이 진행될 때에
저희는 업체 측에 계약금을 지불한 상태였습니다. 그 돈도 적은 돈이 아니라서 그 회사의 인력 정도면 3개월은 거뜬하게 돌아갈 만했습니다만, 임금이 제대로
지불되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계속되는 체불에 개발자들은 출근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들 중 둘이 저희 회사로 와서 구구절절한 그들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지불한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자취도 없답니다. 다만 바뀐것은 사장의 자동차? -_- 그 회사는 사장과 전무 둘이 형제인데
재미있는 것은 사장이 동생이고 전무가 형이더군요. 제게 번번히 집안일이니 병가니 거짓말을 해대던 이는 형인 전무였습니다. 저는 두 명을 저의 바로 앞에
앉혀두고 그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그 둘을 찾았습니다. 지금 거의 1주일 째 개발 진행이 안되고 있는데 그들은 대체 어디있냐고... 전무는 한숨을 섞어가면서
이야기합니다. 그 분 지금 천안에 계시는데 어머님이 편찮으시고 어쩌고 저쩌고... 무성영화 변사가 따로 없습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제 앞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는데 말이죠. 짜증나는 중간의 대화는 죄다 생략하고 저는 나이도 지긋한 그 전무를 불러다가 미친듯이 깠습니다. 네, 갑질을 신나게
했습니다. 말단 사원이 다른 회사 전무를 불러다가 막 퍼부어 댄 것이죠. 대체 우리가 드린 돈은 어쨌느냐. 개발인력들 나가면 뭘로 개발할 것이냐. 등등등.
이렇게 몰아붙이면 어떤 대답이 나오실 지 예상들 하시죠? 나이도 어린 사람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해결책과 답변은 하나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습니다. 지급한 돈은 보증보험에서 빨리 돌려받고 그 회사는 보증보험에서 알아서 털어주도록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퇴사한 개발인력들을 프리랜서로 고용했습니다. 아예 저희 회사의 사무실로 출근토록 하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게스트
ID카드도 쾌속으로 발급받아서 드렸습니다. 정말 자세 딱 잡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때는 8월 중간검수 4개월 남았습니다. .... ㅠ_ㅠ

아, 쓰다가 혈압이 새삼 올라서 죽을 것 같습니다. 결국 오늘 끝을 못내겠네요. 이렇게 적어보니 생각보다 긴 사연입니다; 혹시 같이 혈압을 올려 주실
분들이 계신다면, 다음이나 다다음 정도에 마무리지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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