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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2/11 23:24:26 |
Name | 소라게 |
Subject | 힐링이고 싶었던 제주 여행기(中) |
다음날 나는 종달리로 떠나기로 했다. 걷다가 본 가게를 가 보기 위해서였다. 버스를 타고 아무 생각없이 종달초등학교 앞에서 내렸다. 묘한 일이지만, 제주에 온 뒤로 강아지들이 유독 나를 따라왔다. 나한테 무슨 음식 냄새 나나. 귀여우니까 좋았지만 알 수 없었다. 마을 길을 따라 걸으니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편안해 보이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들어가보기로 했다. 선반에는 예쁜 잔과 차들이 가득했다. 러시아에서 이따금 들여온다는 차는, 박스만으로도 좋은 느낌이었다. 아직 얼마 걷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대로 차를 마셔보기로 했다. 일번부터 육십번까지 도대체 뭘 선택해야할지 몰랐지만,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 봤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이지 개에게 인기가 좋았다. 가게의 강아지는 한참동안 내 냄새를 맡았다. 너무 오래 맡길래 나는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항변해 보았지만 역시 개님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기다리니 개님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이 궁금한 건지, 놀고싶은 건지. 카메라를 가져가니 그래도 렌즈를 바라봐주는 착한 녀석이었다. 제주에는 무와 당근이 한창이었다. 나는 왠지는 몰라도 그냥 무밭이 좋았다. 섬세한 초록색이 마음에 들었다. 오설록에도 가 보았지만, 나한테는 차밭보다는 무밭이었다. 무 이파리가 더 맘에 들어서일까. 몽글몽글 동그란 모양이. 천천히 걸었다. 사진도 찍고, 이따금 우와 하고 이곳저곳 구경하기도 하면서. 그러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심야술집을 봤다. 이정도면 자연스러우려나. 실토하자면 분위기 좋은 술집이 어디있는지 의도적으로 찾고 있었다. 심야술집. 일곱시부터 영업.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심야술집을 모토로 내세운 가게의 주 메뉴는 튀김이었다. 혼자 온 여행객을 위한 혼술튀김 메뉴가 있길래 시켰다. 하이볼을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카메라로 찍지 않은 건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튀김은 딱 적당하게 튀겨졌고, 주인의 인심도 좋았다. 바삭한 튀김 한 점, 목이 마르면 하이볼 한 입. 원래 안주 한입에 술 한입은 어길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공식이었기 때문에, 술이 떨어지자 도쿠리 한 병을 더 시켰다. 절대로 공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무렴 그렇다. 그렇게 배를 불리고 나니 사방이 캄캄했다. 그러자 비로소 겁이 났다. 날듯이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딸린 펍에서는 삼십분 뒤부터 공연을 한다고 알려왔었다. 방에 잠깐 들러, 가방을 내려놓고는 또다시 나왔다. 펍 이름은 스피닝 울프. 사진을 찍을 때조차 별 생각이 없었는데 늑대가 자전거를 타는 게 상징인가 보다. 그날은 배가 불러서 맥주를 마셨을 뿐이지만, 며칠 뒤에 먹은 피시 앤 칩스 사진을 첨부해 본다. 똑같은 장소를 적고 또 적으면 재미없으니까. 숙소 할인까지 받으면 괜찮은 가격에 훌륭한 맛이었던 맥주 레드락. 스피닝 울프는 칵테일 보다는 맥주를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안주도 맥주 안주 하기에 더 알맞은 느낌이었다. 안주로 시킨 피시 앱 칩스. 바삭하고 따뜻하고, 튀김이야 신발을 튀겨도 맛있지만 신선한 기름에 튀긴 좋은 맛이 나는 피시 앤 칩스였다. 이 숙소의 강점은 퍽 괜찮은 음식점이 대여섯개나 딸려있는데, 숙박을 하면 10% 할인이 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늦은 밤에 여자 혼자 다니기는 꽤 무서우니 숙소 근처에 술 마시기 좋은 가게가 있는 건 괜찮은 선택인 듯 했다. 인디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한 잔 하니 바랄 게 없는 기분이었다. 비로소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야지. 그래야 내일 또 맛있는 걸 먹고 한참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는 숙소 창틀에 기대놓은 맥주를 한 캔 더 땄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내일을 기다리며. 참 오랜만에 해 보는 말이었다. * 하편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사진이 많아 다음 편에 끝내겠습니다 8ㅅ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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