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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4/03 21:27:55 |
Name | 化神 |
Subject | 가방을 찾아서 : 공교로운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 |
이 이야기는 불과 72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1 금요일 저녁 아는 사람들과 모임을 했습니다. 꽤 많이 모였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해서 꽤 크게 벌렸고 1차를 가고, 2차를 가고 12시가 아슬아슬 안 되었길래 아쉬운 사람 몇몇만 3차를 갔습니다. 사당역 앞에 있는 펍이었는데. 2시 (31일 2시 경) 를 앞둔 시점에 가게 마감을 하실 때가 되었다고 해서 돌아보니 마침 저희 일행 밖에 없더군요. 가자 하고 돌아서서 가방을 뒀는데, 없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없습니다. 제 몸통만한 큰 백팩인데 없습니다. 거기에 제 모든 잡다한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제 사원증과 회사 법인카드, 그리고 회사 선배의 법인카드, 재 발급 받은지 얼마 안 된 신용카드와 주민등록증..... 근데 그게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갑자기 퇴근하기 전에 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낮에 파트 회식이 있어서 제가 회사 선배의 법인카드를 받아 계산해놓고 서로 까먹었는데 퇴근하기 전에 생각났는데 별 일 있겠거니 + 귀찮음 때문에 그냥 월요일에 돌려주는 것으로 하고 가방에 넣고 룰루랄라 퇴근했는데 내가 왜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는지 그 때로 돌아가서 제 뺨을 때리며 정신차리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그래도 없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어떻게 해야 되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고민하지만 답이 없습니다. 일행이 저를 보고 어리둥절해 합니다만 그들도 이미 많이 취했고 택시타고 집에 가야 하므로 결국 먼저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당에서 서울대 입구까지 걸었습니다. #2 4시쯤 되었을까 누군가 전화를 합니다. 취중+잠결에 받습니다. 오 세상에 가게 사장님입니다. 씨씨티비에 제 것으로 보이는 가방이 찍혀있고 누군가가 들고 가는것도 보였다고 합니다. 이 가방이 네 것이냐 맞습니다 맞습니다 제 것이 맞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연락하기로 하였습니다. 3시간 겨우 눈만 붙이고 일어났는데도 눈이 저절로 떠집니다. 한가하게 침대에 누워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제 가방을 찾아야지요. 오후 5시 경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사장님이 씨씨티비를 돌려보더니 대충 어떤 일행을 특정합니다. 거의 다 찾았다.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 두 분이 옵니다. 씨씨티비 확인했냐고 물어보길래 그랬다고, 그러면서 사장님이 덧붙입니다. '고의로 그런건 아닌거 같고 술김에 착각해서 들고 간 것 같다.' 네 그건 저도 인정하는 바 입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들고가서 저도 놀랐습니다. '아 그러면 저희는 안 돼요 그거 카드사에 연락해서 당사자 연락해보시는게 제일 빨라요. 이거는 ...' '아 그래요...' '그런데 이게 개인정보가 좀 걸려서...' 사장님이 혹시나 문제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말하는데 경찰이 자릅니다. '아 그런건 우리한테 가르칠 필요 없고.' 녹음 할 걸 그랬습니다만 네 그러라니까 그래야죠. 경찰이 돌아가는 길에 미안했는지 경찰청 유실물 센터를 알려줍니다. 카드사는 월요일에나 연락이 닿을텐데 그 동안 제 가방은 어디로 갔을지... #3 주말 내내 유실물 센터만 검색해봐도 답이 안 나옵니다. 어떡합니까. 고민해봐도 답이 안 나옵니다. 월요일에 출근했는데 회사 출입을 못합니다. 밖에서 문 두드리고 난리쳐서 겨우 들어갑니다. 가방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다 황당해 합니다. 너한테는 참 별 일 다 일어나는 구나. 네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사원증 및 법인카드 재발급 받으라고 합니다. 옆에 선배도 황당해 합니다. 이게 뭐지. 지금 이게 사실인가? 네 선배님, 그 심정에 x 100 정도 하시면 제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죄송합니다... 유실물 센터만 계속 찾아봅니다. 엥 당고개에 제 가방과 똑같은 가방이 올라왔습니다. 놀란 마음에 전화를 합니다. 그런데 아니랍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잘 살펴보시면 거기에 제 사원증과 신분증 뭐 이런것들이 나올텐데요. 아니요 그런건 없습니다. 미치겠습니다. 계속 살펴보니 이번엔 성수역에 제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 올라왔습니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사당에서 잃어버렸으니 이게 그대로 4호선을 타고 당고개를 간 것인가 아니면 2호선을 타고 돌다 성수역에 다다른 것인가. 머릿속엔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지나갑니다. 아 이 사람이 들고가다 자기 것이 아닌줄 알고 그대로 버렸나.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 화장실도 사원증이 없어 못 갑니다. 고민하다 오후 반차를 냈습니다. 이 기분으로는 의자에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점심도 거르고 당고개를 갔습니다. 역무실에 가서 가방을 찾습니다. 와 똑같이 생겼다 내거다 싶었는데 열어보니 아닙니다. 아니 이건 왜 똑같이 생겨가지고 누가 또 잃어버려가지고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왜 난 행복하지 못 해 친구가 성수역에 가서 사진 찍어서 대신 확인해주는데 그럽니다. 아닌거 맞지? 응 아닌거 맞아 사장님은 아직 연락이 안 됩니다. 남 일인데 도와주는게 감사하긴 합니다만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래도 도와주시는게 어딥니까. 4시 30분 쯤 전화가 옵니다. 아 결제하신 분 하고는 통화했고, 그 씨씨티비 캡쳐 해서 보여드렸더니 일행 맞으시다고 하더라구요. 가져가신 분 한테도 전달했는데, 가져간 것 맞다고 하시는데 그 분이 연락 주신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음... 하나 남아있던 최악의 시나리오. 가져가놓고 중간에 버린거라던 그 시나리오가 머릿 속을 다시 한 번 스쳐 지나갑니다. #4 8시가 다 되어갈 때 까지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서로 어찌할 방법이 없어 얼굴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괜히 맥주 한 잔을 시켜서 들이킵니다. 전화가 안 와서 제가 직접 결제한 분 한테 전화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띠리리리리 전화 연결되는 소리에 제 숨이 따라 넘어갈 것 같습니다. "여보세요" "아, 가방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제가 연락은 했는데 아직 연락 안 했나요?" "네 그러시면 저한테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제가 직접 당사자하고 통화를 해보겠습니다." "아, 그런데 그게 그 분이 제가 아는 분이 아니라 친구에 친구라서요 전화번호를 제가 몰라요."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입니까. 일이 꼬이려니 이렇게 꼬일 수도 있구나 마치 제 장도 같이 꼬이는 듯 합니다. 다시 기다립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있는데 문제가 옵니다. 000-XXXX-YYYY 바로 누릅니다. 전화가 갑니다. 받습니다. "여보세요?" 침착하게 녹음 버튼부터 누릅니다. "아 네 저 가방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마시고 일행 것인줄 알고 들고 나왔는데.. " "아 네 그러시면 가방 가지고 계세요?" "아 그게... 저희가 그러고 볼링장에 갔는데 거기에 두고 온 것 같아서 전화를 해봤더니 거기 있다고 하더라구요." "... 어디 볼링장이죠?" " 사당에 볼링장이 하나 있는데 제가 상호는 잘 모르는데 역 근처에 어디 인데..." 그러고보니 생각이 납니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가져다 드려야 하는데, 제가 지금 용산이라..." "아 네, 제가 찾고 연락 드릴게요." 뛰어갑니다. 사당역에 볼링장으로. 보니까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볼링장을 가실 줄이야. 볼링장이 보입니다. 뛰어갑니다. 점원들이 나와서 안녕... 하는데 카운터에 바로 제 가방이 보입니다. 가리키면서 "가방 찾으러 왔는데요." 네네 점원들이 어리둥절 하는데 바로 가방을 열어서 제 주민등록증을 보여줍니다. "제거 맞죠? 가져갈게요. 제가 잃어버린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고가서 놓고간거라. 안녕히 계세요." 우여곡절 끝에 가방이 제 손으로 들어왔습니다. #5 문자를 보냈습니다. 가방 잘 찾았습니다. 그러자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네 그래도 무사히 잘 찾았으니까 괜찮습니다.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죠 머." 네 저는 가방을 찾자마자 너무도 행복해진 나머지 저도 모르게 관대해졌습니다. 띠링 하고 보니 기프티콘이 도착했습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두 잔이었습니다. 그 분이 보내신 것이더군요. 음 보고 있으니, 뭔가 아깝기도 했습니다만. 네 그래도 염치를 아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아마 어제 (4월 2일) 오후 9시 정도였으니 대략 68시간 정도 걸린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6 앞니 두 개가 빠지더니 바로 새 이가 났습니다. 빠진 이를 보는데 뿌리가 썩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난 이는 단단합니다. 뭐야 이가 세 번씩 나나?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 아 꿈이네 하고 꿈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이가 빠지고 새 이가 나는건 길몽이래 무슨 좋은 일 있으려나보다.- - 뭔 헛 소리야 니 가방 찾아서 꾼건데.- 그런 것이었습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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