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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3/18 17:18:08수정됨
Name   化神
Subject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 : 어느 향료 연구원의 이야기 (2편)
부제 : 조향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너는 밖에서 들구 뛰구 그러는게 딱인데 무슨 고상하게..."

향료 연구팀에 배치됐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향료 연구팀'이란 책상 앞에서 일하는 고상한 일을 하는 곳이었다. 나도 어머니의 말씀에 상당히 동의한다. 내가 해왔던 것들 중에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화이트칼라'의 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향료 일을 하게 됐다는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이런 반응이었다. '향? 네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손담비가 내 눈 앞에 있는 듯했다. 나를 알던 사람들은 향이라는 단어에서 나의 이미지를 연결하지 못했다.

"그럼 조향사인거야?"

내가 하는 일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되물었다. 그 때마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잘 와닿지 않은 모양이다. 그동안 조향사를 다룬 콘텐츠들이 조금은 있었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조향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생소한 소재로서 활용하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멋있는 모습들만 보여주게 마련이다보니 이러한 콘텐츠들을 통해서 조향사라는 직업을 알게 된 사람들은 환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향수는 패션과 강하게 연결되다 보니 자연스레 조향사들도 화려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중에게 노출되는 패션 디자이너를 제외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듯 조향사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많은 직업들이 그러하듯, 조향사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임과 동시에 잘못 알려진 직업이기도 하다. 과연 조향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내가 하는 일과는 얼마나 다른가? 이것이 오늘의 주제다.

조향사라는 직업은 유럽에서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는 장갑 같은 가죽제품에서 발생하는 누린내와 같은 불쾌한 냄새를 감추기 위해 좋은 냄새가 나는 약초(허브Herbs)들을 썼던 것을 향료 산업의 시작으로 본다. 향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이 시기에 조향사라는 직업은 가죽세공인이 해야하는 일 중 하나였다. (가죽세공? 약초채집? 어?) 그동안 동물의 체취가 남아있던 가죽 제품과는 달리 약초 달인 물을 적셔서 좋은 냄새가 나는 가죽 제품은 재빠르게 귀족들이 선호하는 제품이 되었고 이내 향료 산업이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개념과 용어를 한국어로 바꾸면 의미의 차이가 발생한다. 조향사라는 명칭이 대표적이다. 퍼퓨머Perfumer는 향료 또는 향수를 만드는 사람을 의미한다. 향료는 약초 달인 물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앞서 말했듯 가죽제품의 불쾌한 냄새를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게(이를 마스킹masking = 덮어버리기 라고 한다.) 하기 위해 약초를 사용했던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제품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제품 특성에 맞는 향료를 만들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향기로운 물질은 수천 종에 이른다. 이중에서도 활용가능한 수백 종에 대해서 조향사들은 모두 기억해야 한다. 프랑스에 위치한 유명 향수 학교 이집카ISIPCA 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일 200개에서 300개의 향료 물질을 암기하는 교육을 기본적으로 진행한다. 매일 이정도 분량의 암기 훈련을 2년간 수행한다. 매일 암기해도 잊어먹고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반복 훈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기본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암기량이지만 실제로 이집카에서 교육받은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는 매우 기본적이고 상당수의 학생은 이미 학습과정 이전에 예습했기 때문에 이집카에서의 향료 물질 암기는 복습처럼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향료 물질을 암기하는 과정은 막대한 분량보다도 과정 자체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후각 체계는 우리가 맡은 냄새를 수치화하거나 문자로 옮길 수 없다. 얼핏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홍시 향이 느껴지면 홍시 향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향의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상세하고 정밀한 표현이 필요하다. 예를들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과들도 일조량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른데 이는 사과를 구성하는 화학물질의 구성비가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향사들은 이러한 미세한 차이를 파악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시각을 통해 얻는 정보는 그 자체로 거의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길을 건너는 사람이 네 명 있다.' 라는 문장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없다. 하지만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향을 맡은 뒤 '이 향은 4만큼 강하다.' 라는 문장을 남겼다고 하자. 다른 사람은 이 문장을 보더라도 그 향의 세기가 얼마나 되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없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문장을 적었던 그 사람조차 이 향을 맡았던 그 때의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서 한참을 고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향료 물질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용사들이 사용되지만 각각의 향료 물질이 나타내는 천차만별의 특징을 문자로 나타내는데에는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심상을 문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100% 전달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향료 물질의 냄새를 맡더라도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한계를 아직까지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향료 회사에서는 매일 50가지 혹은 100가지의 향료 물질을 임의로 제시하고 조향사들은 이를 맞추는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기도 한다. 학생 시절 매일 몇 백가지의 향료 물질을 암기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향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매일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본인의 감각과 실력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이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수련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바로 조향사라고 할 수 없다. 조향사는 최소 수백 종의 향료 물질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사람들에게 필요한 향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향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오랜기간 향이 유지되면서 다른 악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경제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해서 향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조향사라고 하는 것이다.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조향사에 대한 기본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는 Perfumery: Practice and Principles(Robert R. Calkin, J. Stephan Jellinek. 1994.)에서 1장에서 조향사의 기본조건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조향사 교육은 중간에 그만두면 다른 어떤 직종과도 호환되지 않기 때문에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수 년에 걸쳐서 위에서 간단하게나마 언급했던 교육 과정을 버텼는데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만두게 된다면 많은 경우에 그 시간은 거의 쓸모없이 낭비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잘 맡는 향과 못 맡는 향이 존재한다. 특정 향을 맡지 못하는 증상을 부분후각상실증이라고 표현하는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조향사에게 이 증상은 치명적이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동물적인 느낌을 주는 머스크musk향을 맡지 못하는 경우가 30~40% 정도 된다고 한다. 처음 이 향을 맡는 사람의 경우도 잘 구분하지 못할 수 있는데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서 개선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 향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조향사가 되기 매우 어렵다.

  나이가 들면 분명히 후각의 민감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오래 일한 조향사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경험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교육 과정을 수십 년 동안 거치고 또 직무도 수행한 사람이 쌓아왔을 어마어마한 경험을 생각해보면 부분적으로 후각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향사는 거의 본인의 의지로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만나본 조향사는 70세였는데 여전히 현업 일선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후배 조향사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그에게 언제쯤 은퇴할 것 같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생각으로 5년은 더 할수 있겠다고 했다. 이러한 부분은 흔히 생각하는 전문직과 비슷하다. 물론 이제 갓 조향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사람을 시무룩하게 만드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냄새를 잘 맡는 것 외에도 그 냄새를 구분하고 기억하는 능력도 중요한데 이러한 능력 또한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앞서 말했듯 향에 대한 기억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인데 기억력이 좋다는 점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출난 장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조향사는 고독하게 진행하는 작업에서 지치지 않는 인내력과 아름다움을 구별할 수 있는 심미안, 그리고 현실적인 시각을 모두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향료 산업도 경쟁이 치열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겠지만 향료 산업도 고도화 되어 있고 전세계적으로 과점화된 시장인데 반해 이들의 수요 또한 어느정도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여러 회사들이 하나의 제품에 경쟁하지만 결국 빛을 보는 향은 하나밖에 될 수 없다. 많은 수주 산업들이 그러하듯 승리하는 조향사의 반대편에는 무수히 패배한 조향사들이 존재한다. 향료가 선택되는 과정은 상당부분 클라이언트의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이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힘들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담하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지속해나가는 회복 능력이 중요한 덕목이 된다.

특이하게 책에서는 '권력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람은 조향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민해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향료 산업에서 권력을 발휘할 일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중요한 능력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문자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향의 가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클라이언트의 마음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향을 찾아서 만드는 과정은 디자이너들이 작업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참고 : 디자이너를 위한 알쏭달쏭 클라이언트들의 용어정리)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간단한 방법은 클라이언트를 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향이 한 번에 채택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가져가면 모호한 이유로 "다시 해주세요."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디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 좀... 별론데요?" 이런 상황에서 유능한 조향사는 자신의 결과물을 클라이언트가 납득하고 수용하게 만드는데 힘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날것으로 나오는 그들의 말을 잘 해석해서 향에 반영할 수 있게끔 소통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조차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발견해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

이처럼 되기도 힘들고 일하기도 힘든게 조향사이다.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누군가 나를 조향사라고 불러도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저는 조향사가 아니구요~" 라며 길게 설명을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조향사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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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리 다음편 써주세요 현기증난단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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