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6/04 00:18:04
Name   No.42
Subject   설성반점 폐업을 맞아 떠올린 추억
본인의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지나가던 삼촌에게 주워들은 이야기입니다.

먼지 날리던 대운동장 서편에서 농구공을 가슴에 안고 달리는 스피드에 청춘을 걸었던 시절에, 실로 [아무데서나] 주문을 해도 번개처럼 달려오던 설성의 은빛 철가방은 스마트폰 이상의 센세이션이었다. 설성의 음식을 겪어본 이들은 대개 공감하겠지만, 그닥 맛이 특출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속공 하나만은 정말 기가 막혔다.

지금은 우당 교양관이라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자리에, 예전에는 그냥 교양관이라는 무허가 건물(소문에는 그랬는데 과연...)이 있었다. 그 1층에 옹기종기 문과대학의 과실-꽈실들이 모여있었고, 과실은 먹고 자고 떠들고 담배피우고 술마시는 학생들의 집과 같은 곳이었다. 한참 농구공과 씨름하고 과실에 들어섰던 어느 날에, 앉아있던 한 학번 선배가 짱깨나 때리자는 반가운 제안을 한다. 번쩍이는 한화G2 PCS를 꺼내서 단축다이얼을 꾸욱 누른다. 설성쯤 저장되어 있어야 녹두문대생이다.

"여기 교양관 XX꽈실인데요, 자장 곱 두개 부탁드려요."

대답을 듣고 플립을 따악 닫는 감촉을 느끼는 와중에 옆에서 퍼져 자던 다른 형이 손을 번쩍 든다.

"추가, 추가."

"아이, 빨리 말하지, 형."

G2를 열고 재다이얼을 누른다.

"사장님, 방금 주문한 XX꽈실요. 자장곱 하나 추가해주세요."

뒹굴던 형이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헌데, 상황이 오케이가 아니었다.

"예? 벌써 떠났다구요??"

전화를 끊고, 추가를 외친 형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형, 벌써 떠났다는데?"

"뭘 주문하자 마자 떠ㄴ..."

"식사배달 왔어요~!"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번개형. 주문한 3명과 음식을 받아든 2명이 한 마음으로 포복절도했던 날이다. 별로 맛나지도, 싸지도, 깔끔하지도 않던 설정의 그 자장면. 다만 스피드 하나만은 원샷 018 못지 않던 그 자장면도 다시는 접할 수 없다고 하니 아쉬움이 없지 않다. 잘가요, 설성반점.



15
  •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쟁반짜장이 좋다고 하셨어. 야이야이야~~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024 도서/문학선량한 차별주의자 독서후기 7 풀잎 20/10/04 5772 9
13849 일상/생각선물 날이적당한어느날 23/05/13 2950 0
10196 일상/생각선물 1 16 호라타래 20/01/18 5336 16
7457 일상/생각선배님의 참교육 12 하얀 18/04/29 5720 20
10676 오프모임선생님들 족발이 먹고 싶읍니다... 16 소주왕승키 20/06/12 5147 5
10719 사회선생님들은 정의로운가? 12 쿠쿠z 20/06/27 6160 1
891 기타선선한 늦여름 아랫목에 배 깔고 장기 묘수풀이 (댓글에 해답있음) 38 위솝 15/09/02 6385 0
3390 문화/예술선우훈 비평 비평 25 당근매니아 16/07/29 14596 8
7859 방송/연예선의, 미기의 우주소녀 팀 이탈 가능성은? 1 Toby 18/07/16 4635 1
4944 일상/생각선의의 전염에 대해. 6 二ッキョウ니쿄 17/02/20 4258 8
1185 기타선조의 음식, 나폴레옹의 음식 11 마르코폴로 15/10/06 7445 0
486 기타선택받지 못한 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박사과정의 비애 14 Neandertal 15/07/01 8891 0
10205 일상/생각설 연휴, <우리술 대난투> 10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0 6855 9
10841 일상/생각설거지 하면서 세탁기 돌려놓지 말자 22 아침커피 20/08/06 6239 39
12201 댓글잠금 일상/생각설거지론에 대한 단상 61 명절은추석 21/10/24 9994 14
10279 문화/예술설국열차 공동각본가가 본 봉준호 Hong10Kong20 20/02/10 6133 0
4127 기타설득의 3요소 10 집정관 16/11/10 6543 0
7436 일상/생각설레발은 필패 14 그럼에도불구하고 18/04/24 6727 14
12021 철학/종교설문조사 결과 발표 (두둥) 9 매뉴물있뉴 21/08/27 5573 4
1322 과학/기술설사병 이야기 12 모모스 15/10/23 12713 3
2757 과학/기술설사하면 왜 "죽"을 먹어야하나? 35 모모스 16/05/07 16031 0
7619 일상/생각설성반점 폐업을 맞아 떠올린 추억 44 No.42 18/06/04 7175 15
2219 방송/연예설연휴 예능 이야기 14 헬리제의우울 16/02/14 5783 11
2228 여행설연휴 캐나다 방문기~! 22 damianhwang 16/02/15 7880 0
2296 기타설정에 철저히 입각해서 2 klaus 16/02/25 4479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