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9/10 16:57:40
Name   알료사
File #1   그남자.png (449.8 KB), Download : 4
Subject   고1때, 그 남자.


어떤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은 해보고 싶다, 라는 기분이 처음 들었때, 저에게 그 순간은 마치 임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초의 수정이 된 이후로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거듭해 하나의 개체가 되어 어머니에게 영양공급을 받고 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이야기거리도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 모양새가 완성되어 때가 되면 밖으로 나오는 것 아닌가 하구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좋아한 친구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는 이 떡밥을
최대한 숙성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친구와 저와의 관계에 대한 모든 일들을 완벽한 기승전결로 완성시켜서 내보이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여사님이었어요. 제가 어떻게 그를 좋아했는지, 어떻게 그에게 외면당했고 어떻게 그의 마음을 얻었고 어떻게 그에게 못되게 굴었고 그래서 종내에는 절교나 다름없는 파국을 맞았는지,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래서 저에게 있는 병을 알리고 그것을 핑계삼고 싶었어요. 네 제가 봤을때 이것은 저의 병이에요. 제가 어느 시점에서 가장 좋아하고 그 시점에서 저에가 가장 잘 대해주는 누군가에게 저는 못되게 굽니다. 그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여사님께 제가 여사님을 피하는 이유는 여사님을 그 친구처럼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고 여사님을 싫어해서가 아니라는걸 알리고 싶었어요.

여사님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아무런 사전 기획 없이 즉흥적으로 말해도 조리있게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것 같았어요. 그렇게 잘 정리되어 튀어나온 제 말을 바탕으로 그것을 글로 옮겨 홍차넷에도 써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사고가 났고... 무기한 연기되었던 이 이야기의 분만을 이제 시도해 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마이게시판에 쓰기 시작했던거 다시 꺼낸거예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아요. 제가 최근 마음적으로 약간 힘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아마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봅니다. 제가 가장 고통스럽게 사랑했던 그 남자에 대해서,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아름다운 여자들보다도 더 좋아했고 더 헌신했어요. 그를 만난 이후에 겪은  모든 가슴아픈 짝사랑과 실연도 '그래도 그때만큼은 힘들지 않잖아' 하고 견디게 만들어준 경험이었어요.

어렸을적 저는 왕따였어요. 왕따라는 표현이 없었을 때부터 왕따였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부터 5학년때까지 꼭 한 반에 한두명 이상씩 저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었어요. 저는 당연히 그 왕따라는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나름의 투쟁을 했습니다. 너무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는것 아니냐구요? 아니에요. 그것은 말 그대로 투쟁이었어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저는 그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때의 경험 때문에 저는 어떠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까짓거 당사자가 이겨내면 끝나는거 아냐? 하는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을지도 몰라요. 어떤 아이에게는 그 아이가 나에게 원하는 것보다 훨씬 충직한 꼬붕이 되어보려고도 했고, 어떤 아이에게는 말도 안되는 힘의 격차에도 치고받는 싸움을 시도하기도 했어요. 결과는 비오는날 먼지나게 쥐어 터졌을 뿐이지만 그 이후로는 저를 두들겨 팬 아이가 저를 건드리지 않았어요. 국민학교 6학년이 될 즈음 해서 어느순간 '아무도 나를 괴롭히고 있지 않구나' 라는걸 느꼈고 '드디어 벗어났다.. 내가 해낸거야.. '라는 뿌듯함으로 한동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때쯤 되어서 문득 제가 외로워하고 있다는걸 알았어요. 왕따에서 벗어났다는 기쁨과 안온함에 제게 친구가 없다는걸 뒤늦게 자각한거죠.. 그때까지 저에게 친구란 저를 괴롭히는 아이들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당시에는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왕따의 고통에 비하면 외롭다는건 그저 정신적 사치일 뿐이었어요. 고교진학이 비평준화였던 시기라 나름 공부로 바쁘기도 했고, 여가시간에도 게임을 좋아했던 저는 혼자서도 즐겁게 놀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중3 막바지로 접어들던 때부터 뭔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럭저럭 제가 진학할 고등학교가 윤곽이 잡히면서 여유가 생기고 졸업여행 등 학교 일정도 한숨 돌리는 분위기가 되면서부터 제가 친구가 없다는게 점점 뼈아프게 느껴졌어요. 어느 하교길에 언제나처럼 혼자서 실내화를 운동화로 갈아신고 있는데 지나가는 같은반 아이 하나가 '알료사는 맨날 혼자 간다, 친구도 없나봐' 라고 말하는걸 들었을 때.. (그렇게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게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제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꼭 친구를 사귀겠다고 결심했어요. 고입시험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석달의 기간동안 저는 고입공부할 때보다 더 치열하게 '친구를 사귀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친구는 그냥 사귀면 되는거지 무슨 준비가 필요한가 하시겠지만, 그때껏 한번도 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한 저는 그런 준비가 필요했어요. 도대체 어떤 준비를 했다는 거냐?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바보같고 우습습니다. 먼저 운동을 했는데, 이유는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였어요 ㅡㅡ;

그때 저의 눈에는 싸움 잘하는 아이들이 어쩐지 친구도 많아보였거든요.  운동을 잘한다고 곧 싸움을 잘하게 될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저도 한두대는 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가능하면 선빵으로) 그 한두대로 최대한의 데미지를 입히자, 뭐 그런 식의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 이미지트레이닝도 많이 했습니다. 어떤 트러블이 생기려 할 때 나는 어떻게 거칠게 나갈 것이며 싸움 경험이 없는 내가 선빵을 치기 위해서는 신경전이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에 주먹을 먼저 내야 할 것이며 등등..  그런 바보같은 준비들 중에 가장 병신같았던 짓은 일주일에 한번 오락실에 찾아가 펀치를 쳤던 것입니다 (...) 보통 오락실 펀치를 칠 때면 점수를 높이려고 뒤에서부터 도움닫기를 해서 양손으로 크게 휘둘러 치잖아요? 저는 그 펀치를 저와 싸우게 될 상대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 차렷자세로 서있다가 가장 간결한 자세로 불시에 주먹을 내어 쳤습니다. 그것이 내 실제 주먹의 힘일 거라고, 그래서 그 힘을 측정해 보려고 했던거죠...

두번째 준비는 얘깃거리를 '공부'하는 것이었어요. 친구를 만드려면 말을 해야 하고 누구와 같이 있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저는 인위적으로 준비해 놓은 얘기거리를 연극배우 대사 읊듯 늘어놓을 계획이었던 겁니다.. 하이텔 유머게시판을 뒤지고, 최불암 시리즈(...) 같은 유머 서적도 모으고, 연예인들 동향을 파악하고, 각종 스포츠 소식들을 빠뜨리지 않고 챙겼어요.


세번째는 학교공부였어요. 저는 저의 이러한 계획이 뇌내망상에서 그치고 말 것이라 단정짓고 있었거든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습니까? 친구 못사귀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마음먹는다고 친구가 사겨지나요? 바뀌고 싶다고 희망하고 준비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생각했죠. 새학기 시작되면 와르르 무너질게 뻔해. 마음만 굴뚝같고 실천 못할게 뻔해. 거기에 대한 보험이었어요. 학교 공부는. 예정된 실패에 대한 대비책. 왕따인데 공부까지 못하면 얼마나 살맛 안나겠어요..


3.1절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가 3월2일부터 수업을 시작하잖아요? 저희 학교는 특이하게도 3.1절에 학생들을 등교시켜서 운동장에 모아놓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  그리고 다음날인 3월 2일.  


고교생활 요이 땅.


무서웠어요. 제 자신이 무서울 정도의 실행력이었어요. 너 이거 진짜 한다고? 진짜 하네? 잠깐 이러고 말거면 지금 그만두자.. 이거 삼년동안 못밀고나가..


지금은 학생 수가 적어 각자의 책상이 넓찍히 떨어져 배치된 교실이 많을텐데, 저때만 해도 교실이 비좁아 책상을 두줄 세줄씩 따닥따닥 붙여 앉아야 했어요. 첫날 제 옆에 앉은 동급생이(친구 라고 적었다가 그때 난 친구가 없었다는걸 깨닫고 단어를 바꿈) 가방을 그 아이의 책상과 내 책상이 맞닺는 부분에 걸었어요. 그러면 가방이 제 자리를 살짝 침범하게 되는데 그다지 큰 불편이라고 볼 수는 없죠. 그냥 그러고 있어도 아무 상관 없어요. 하지만 전 거기서 <이게 첫 싸움이야>라고 생각했어요.


야.

옆자리 동급생은 나를 부르는 거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저를 보았어요.

가방 안치워? (...  첫 싸움이다.. 잘해야돼..  선빵이다.. 내가 먼저 쳐야돼..  )

어... 미안, 미안해. 치울께.  

(어라?)


훗날 돌이켜 보면, 첫날의 이 작은 사건은 마치 스타에서 빌드싸움을 이긴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거 같아요. 아직 아무런 교전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상황이 내게 유리해져 있고 어쩌면 이 게임을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거죠.

며칠이 지나서, 어떤 선생님이 저희 반이 아닌 다른 반의 반장을 불러오라는 심부름을 제게 시켰었어요. 별것도 아닌 심부름이죠. 그냥 그 반에 가서 조용히 반장이 누구냐고 물어보고 ㅇㅇ쌤이 부른다고 말만 전하면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그 미션이 얼마나 큰 산처럼 느껴졌는지 아십니까.

그 반에 찾아가서 열려 있는 문으로 안을 슬쩍 들여다 보았을 때, 남학교 교실 쉬는시간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고함소리들로 가득한 그 난장판을 향하여, 숨을 깊게 들이쉬고 배에 힘을 꽉 주고 외쳤습니다.



여기 반장 누구야 !!!



일순 찾아온 고요한 정적과 함께 저에게 주목되는 수많은 시선들. 그 수십명의 시선 하나하나를 눈 마주쳐 가며 노려봤어요. 한명이 눈 내리깔면 다음 한명. 그놈이 또 눈 내리깔면 다음 한명. 네다섯명쯤 눈싸움을 이겼다 싶을 때 한 녀석이 무리에서 나와 말했어요.



제가.. 반장인데요..

ㅇㅇ쌤이 불러.

아.. 네. 지금 가볼께요.

그리고.

네.

나 1학년이야. 존댓말 안해도 돼.

아... 어. 지금 갈께.



(되네? 이게 된다고? 나 국민학교 5학년때까지 왕따였고 중학교 졸업할때까지 공기처럼 살았던 사람인데 이게 된다고?)



이때부터 자신감이 붙었어요. 굳이 치고받는 싸움을 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저에게는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처음 보는 반 아이들과 활기차게 떠들며 어색한 분위기를 제가 먼저 깼어요. 그 에너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두려움이었어요. 절박함이었어요. 더이상 외톨이로 살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


체육시간이면 항상 계단에만 앉아 있던 제가 축구 같은걸 어울려 하면서 좌충우돌했어요.

저는 그냥 어울리는 것만 목표로 했는데 글쎄 축구하면서 골을 넣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것은 평범한 체육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심판받는 곳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나는 아무데도 갈데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죽어라 뛰었어요.

골을 넣으니까 막 아이들이 달려와서 나이스 ~ 하면서 제 등을 두드려 주고 어깨동무 하고 그렇게 중앙선으로 함께 달려가는데

진짜 눈물이 나올거 같았어요.

친구..

이런거였나.. 나 이제 친구 생긴건가..



놀라운건 공부까지 잘됐다는 거예요. 학교 공부요. 당연히 변신에 실패할 줄 알고 들어놨던 보험이요.

공부가 잘됐다고 해봤자 어차피 제가 다녔던 학교는 당시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그곳에서 2류였으니 별 의미는 없었는데

공부 자체보다는 그때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기분이 들어 뭔가 나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첫 모의고사에서 55명중 7등을 했어요. 고입시험에서 커트라인에 걸쳐 겨우 입학했던 저로서는 기대치를 훨씬 넘어서는 결과였지요.

하지만 전 이미 친구 사귀는 재미에 푹 빠져있어서 이용가치가 없어진 공부 따위는 아오안이었지요.

공부?ㅋㅋ ㅅㅂ 나 친구 있다고!  친구 있는데 뭐!  공부같은게 뭐!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 생겼다고오오오오오 !!!!!!

제가 전력을 다했던 것은 친구들과 떠드는 거였어요. 친구들과 무언가를 같이 하는 거였어요. 공책에 줄을 그어 바둑판을 만들고 오목을 두었어요. 지우개를 잘라 장기알을 만들어 장기를 두었어요. 피씨통신 하이텔 유머게시판에서 읽은걸로 아이들을 웃겼어요. 집에 와서는 가십거리 준비하려고 신문을 읽고 뉴스를 봤어요. 팔굽혀펴기를 하고 방문에 설치해놓은 철봉에 매달렸어요. 아이들하고 팔씨름 하자고 말 걸면서 친해지려구요..


두번째 모의고사.. 가채점을 하는데 첫달이랑 점수가 비슷하게 나왔어요. 그런데 시험이 어려웠는지 주변 아이들 얘기를 엿듣는데 저보다 높은 얘가 없었어요. 설마, 하고 무서워졌어요. 1등일까봐.  1등이면 좋은건데 왜 무서웠냐구요?  제가 1등 하면 애들이 와 알료사가 1등이네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제 이름을 입에 올릴거 아니겠어요? 두달째 연일 계속되는 성공적인 변신에 만족하며 지내던 저도 여전히 아이들의 관심이 저에게 쏠리는게 부담이었던 거죠..  옆에서  알료사야 너 몇점이야 하고 묻길래 최대한 담담하게 응 00점.. 지난달이랑 비슷해.. 나 밥먹으러 갈께, 하고는 교실을 나와버렸어요. 아이들끼리 서로 점수를 확인하고 우위가 결정되어서 축하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거든요.. 밖에서 밥을 먹고 돌아와 보니 걱정했던 정도의 호들갑은 없고 평소에 성적관리에 신경쓰던 소수의 몇몇 아이들만 야 너가 일등인거 같다 점수 제일 높아, 하고 말해주었는데 그 말투가 마땅히 그럴만한 애가 그럴만한 결과를 얻었다는 뉘앙스였어요. 무슨말이냐면..  저 병신이 웬일이래? 하는 난리부르스가 아니었던 거죠..  그런 생각을 했다는거 자체가 아직은 저 자신의 뿌리깊은 열등감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는 증거였겠죠.. 저의 변신은 껍데기 뿐이었어요..



제가 행복했겠어요?

네, 행복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무지 좋았죠..  아까 말했던 축구에서 골 넣구 그런것도 좋았고 점심시간이나 하교길에 와글와글 아이들과 몰려다니는 것도 좋았고 야자시간에 애들이 나랑 떠들려고 내자리로 모여드는 것도 좋았고.. (처음엔 제가 찾아다녔는데 나중엔 그렇게 되더라구요)



근데

뭔가 이상했어요.

좋긴 좋은데 뭔가가...  그게 뭐였을까...




아주 오랜 세월을 흘려보낸 뒤에 생각해본 이유가 있긴 한데 지금까지도 그게 답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그건 아마 제 자신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3월 2일 첫 등교길부터 저는 레디 -  신호에 맞추어 새로운 삶을 연기하는 신인 배우였던 거예요. 단 한번이라도 엔지를 내서는 안되는..

체육시간의 축구도, 쉬는시간 점심시간의 잡담도, 제게는 여흥이 아니었어요.

친구라는 전리품을 얻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었어요.

물론 저의 연기력은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 훌륭했고 승리의 열매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어요. (이때 꿀빤 경험 때문에 저는 아직까지도 종종 필요할 때마다 <연기>를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거든요. 반장 불러낼 때의 그 극적인 효과 보세요.. 이거 다시 안써먹고 싶겠어요? )


하지만 전선이 길어지고 초반 승리에 신이 나 스팀팩을 난사했던 저는 급격히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삼년을 버텨야 하는데 겨우 일학기 말부터 지치더니 여름방학 지나고 나서는 완전히 포기했어요.


에이 귀찮아.


왜  분명 행복한거 같은데 힘들지?


왜 그토록 원하던 친구들이 많이 생겼는데 걔들하고 말하는게 아직도 어렵지?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그런데 그때까지 해온 관성이 있어서 원래대로 안돌아가지는거예요 !  어? 이거 어떡하지?  


제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건 제 노력도 있었지만 운이 많이 따랐었어요.


고등학생이 되어 반 배정을 받았는데 같은 중학교 출신이 딱 한명밖에 없었던 거죠.


사람이 바뀌기 힘든 이유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비춰지고 있다, 다른 사람은 나를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느날 안하던 짓을 하면 이상하게 볼 것이다 - 라는 부담이 억제기로 작용한다는게 크거든요.



그 단 한 명의 같은 출신 중학교 아이, 정현진(가명)

저처럼 말없고 조용한 아이였어요.

중하교때에도 서로 친구 없다는 공통점 때문에 저와도 가까웠던. (어? 그럼 그거 친구잖아, 라고 하시겠지만 좀 달라요. 막연한 동지애 같은 거였어요)

걔는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여전히 친구가 없었어요.

저는 한때 저의 성공적인 변신에 취해서 그 아이를 속으로 조금은 비웃었어요. 불쌍히 여기기도 했어요. 너도 좀 바껴야 할텐데. 라고.

2학년, 3학년이 되면서 저는 완전히 무너졌어요. 성적도 곤두박질 치고 다시 잘 어울리지도 못했어요.

현진이는 좀 나아진거 같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만화 캐릭터 같은걸 잘 그렸는데 그게 학교 동아리 애들 눈에 띄어서 서로 그림 교류 나누고 그러는게 좋아 보였어요.

3학년 때 그 동아리 애들 중 몇몇이 저와 같은 반이 됐는데 현진이 칭찬이 대단했어요. 그땐 이미 현진이가 그 동아리 간판이었어요.

수능이 끝나고 놀자판이 됐어요.

저는 사정이 생겨 아예 학교를 결석했어요.

계속 학교를 빼먹다가 다시 학교를 나가야 할 일이 생겼어요.

그때 왜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 저금하는거 있었잖아요.. 천원 이천원씩..

저는 집이 거지여서 그 저금도 몇번 못했기 때문에 찾을 돈도 소액이었지만 그 돈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할 때였어요. 그 돈을 찾으러 학교에 갔어요.

학교 가자마자 현진이가 제가 있는 반에 왔어요.

어, 오늘은 나왔네. 이거 우리 동아리 회지야. 너한테 제일 먼저 주려고 했는데.

받아서 그림을 봤는데 온몸이 감전되는 듯했어요.

현진이가 그림 잘 그리는건 원래 알고 있었어요.

그냥 그림 그리는거랑 컷 구성해서 콘티 짜고 한 작품 만드는거랑 얼마나 큰 차이가 나고 어려운지도.

같은반이었던 동아리 애들이 얘기해줬었거든요.

회지를 펼치자마자 현진이가 삼년동안 연마해온 거대한 무언가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그때 조금 알거 같았어요.

내가 일학년때 만들어진 행복의 옷을 입고 있기가 왜 그렇게 거추장스러웠는지.

불쌍한건 현진이가 아니라 저였어요.

물론 그때 사귄 아이들은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만나는 애도 있구요.

2,3학년은 완전히 교과서와 담 쌓고 지냈기 때문에 저한테 제도권 교육은 고1때 미친듯이 공부(보험으로)한게 전부였구요.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열심히 산다고는 살았는데 고1때만큼 저의 모든걸 쏟아부은 적이 없는거 같아요.

그런데 그게 저의 진짜 삶이 아니라 연기였다니요..

그 정도로 친구를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거예요..

괴롭힘당하면서 자란 국민학교 시절, 괴롭힘에서 겨우 벗어난걸로 만족해야만 했던 중학교 시절, 저에게서 저 자신을 지워서라도.. 가면을 쓰고서라도..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이거 얼마야?


무슨 얼마?  가지라고.  너한테 주고 싶었다니까.


응. 가질거야. 이거 너네 페스티벌인가 뭔가 하는데서 판다면서. 거기서 얼마 받냐고.


아, 00원인데.




저는 학교 저금 받은 돈에서 그만큼을 책상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집으로 와버렸어요. 3년 동안 모은 얼마 안되는 전재산의 대부분이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현진이에게 그런 모욕이 있었을까요. 그땐 어려서 몰랐어요. 그냥 제 부끄러움을 피할 방법이 그 순간에는 그거밖에 없었어요..




자기 자신을 사는 삶.

남한테 잘 보이고 싶은 삶.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그 둘중에 뭔가를 선택할까 하는 고민도 사치였어요.

중요한건 그저 생존일 뿐, 생존해 나가는게 진짜 나냐 가면이냐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아무튼 살아야 했어요.





아 참참참.  그 남자 얘기 해야 하는데.

현진이 아니냐구요? 아니에요. 다른 애 있어요.

걔도 3월 2일에 등장했어야 했는데 왜 얘길 안했징.

그날 그애를 처음 봤는데.

그 첫날,

내 인생 최고였던 동시에 최악이었던 그 일년의 첫날 그 아이가 지각해서 헐래벌덕 교실 앞문으로 들어왔는데...

난 처음 봤을 때부터 그애가 너무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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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금시켜서 글쓰게 하기 모금합니다
  • 감금시켜서 글쓰게 하기 파티원 구합니다.
  • ㅠㅠ
  • 하 참 여기서 끊다니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랍니까? 빨리 추천 먹고 다음 편을 내놓으세욥
  • 하아 마성의 알료샤님... 다음글을 주세여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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