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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10/06 06:05:58수정됨
Name   메존일각
File #1   1538773748322.jpg (351.5 KB), Download : 2
Subject   따끈따끈한, 폭풍우를 가로질러 질주한 경험담


(새벽 2시 15분경, 오산휴게소 앞에서)

전국이 콩레이인지 콩까지말래이인지 아무튼 빌어먹을 이름의 태풍 영향권에 본격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어젯밤 8시 반에 광주에서 출발하여 오늘 새벽 3시 반에 서울에 도착했고, 짐부터 풀고 씻고 나와 지금은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 참인데요.

무사한 게 천만다행입니다만, 모든 지역에서 비가 폭발적으로 내리는 것은 처음 겪는 특별하면서도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기억이 생생할 때 이를 공유해보고 싶어 몇 자 적습니다. 내용이 제법 길어질 것 같으며 이하 예사말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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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홍차넷 어딘가에 언급한 바처럼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업무차 전국을 돌아다닐 일이 많아 먹고 살려니 별 수 없이 차를 도구삼아 몰 뿐.

운전실력이 딱히 좋지 않지만 내비 누나와 함께면 어디든 못 갈 곳이 없었다. 서울에서 부산, 경주, 울산까지의 400km 남짓 장거리 운전도 간간이 해왔고, 서울-광주의 300km 정도야 3시간 반 안에 주파하는 여느 때의 일일 뿐이었다. 고속도로에서의 눈길 빗길 운전도 흔히 겪었고, 태풍이 닥칠 때도 몇 차롄가 톨게이트에서 통행증을 뽑아든 바 있었다. 요컨대 앞서 말한 모든 것이 해치우고 나면 '좀 피곤한 일' 정도일 뿐 새로울 것이 없었다.

다만 3주쯤 전 나름 주의했음에도 깜빡 눈이 감겨 터널에서 간단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때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출발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 하고 과자도 좀 샀다. 차 안에 비치한 껌도 충분한 양이 있음을 확인했으니 이 정도면 Ok. 운전 도중 휴대폰으로 음악도 빵빵 틀었고 조금이라도 졸리면 휴게소로 바로 들를 계획이었다.

불금에 퇴근하자마자 바로 상경하면 도로가 몹시 막힐 것으로 예상됐다. 그것만은 제발 피하고 싶어 고향 친구와 저녁을 먹고 출발할 작정이었다. 하루 더 자고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할까도 고민해봤으나 서울에서 오후 스케줄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내 집에서 자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출발 무렵엔 비가 제법 내렸으되 쏟아진다 수준은 아니었다. 남쪽 지방이야 태풍 영향권이라 비가 내리지만 윗 지방으로 가면 괜찮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목적지를 말해주니 내비 누나는 보통 때의 호남고속도로가 아닌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경로를 알려줬다. 누나 말을 잘 듣는 나는 알려주는 길대로 출발했다. 바야흐로 스릴의 시작이었다.

장성터널로 접어들 무렵부터 비 내리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퍼붓는 수준이었다. 고창을 경유하여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도로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도로 어디나 물이 흥건하였고 도처에서 물웅덩이가 갑자기 등장했다. 그때마다 수막현상 때문에 하나의 질량체로 변해버린 차를 컨트롤 할 수 없었다.

인접한 해안가에서 불어닥치는 바람도 비상하였다. 핸들을 정방향으로 놔봤자 조금씩 우측으로 방향이 틀어졌고 별안간 측면을 덮치는 강풍에 차는 휘청하였다. 무협지에 나오는 장풍이란 게 이런 것일까. 이쯤 되니 상당히 겁이 나 양손으로 핸들을 단단히 쥘 수밖에 없었다. 과자쪼가리를 집어들고 씹는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곧 휴게소가 눈에 들어와 본능적으로 핸들을 틀었다. 겨우 봉지를 뜯고 과자를 씹으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상황을 지켜볼 겸 졸음도 방지할 겸, 한숨 자기로 했다. 일어나면 최소한 비가 지금처럼 퍼붓지는 않을 것을 기대했다.

눈이 떠졌다. 정확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빗발이 '더' 굵어진 것이다. 새벽까지는 꼭 집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에 '우선' 출발했다. 와이퍼 세기를 최대로 해봐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군산을 경유하여 서천-공주 고속도로로 방향을 틀기 전까지, 어둡고 시계는 좁으며 도로는 미끌미끌하고 바람까지 센 상황에 맞서 고군분투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차가 정말 없었다는 점. 화물차를 제외하면 승용차는 한손에 꼽을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

내륙으로 완전히 접어들어 측면에서 불어닥치는 체감될 정도의 바람은 없었다. 충남부터는 차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한데 가뜩이나 시계가 나쁜 와중에 가로등까지 없는 구역이 많아 별 수 없이 상향등을 켰다.

'저 때문에 눈이 부시죠? 미안해요 여러분.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우선 저부터 살아야겠어요.'
추월로에서 차들을 추월하고 보니 그 차들도 상향등을 켠 채였다. 다행이다.

차들이 많아지니 25톤급 화물차도 덩달아 증가했다. 화물차를 추월할 때는 평소에도 긴장을 하는데 오늘 같은 날씨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한데 이번엔 상황이 정말 나빴다. 속도를 팍 줄이고 최대한 중앙분리대 쪽으로 붙었음에도 거대한 차바퀴 회전으로 튄 빗물들은 순식간에 전면유리를 덮어버렸다. 들이닥칠 때부터 닦아낼 때까지 약 1초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운전대를 꽉 잡고 차가 돌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엊그제 삐긋한 허리를 의식하며 정자세로 앉았는데 혹시 놓칠 새라 두 손으로 핸들을 쥐다 보니 어느새 어깨는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긴장감을 풀기 위해 공주 휴게소와 오산 휴게소를 더 들르기도 했다. 걱정하는 아내를 의식하며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연락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덧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마치 7일처럼 느껴진 7시간이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전까지는 우기라 해도 300~400km를 운전할 때는 최소한 일정 지역에선 비가 내리지 않거나 내리더라도 이슬비 수준이라 심적으로 쉬어갈 텀이 있었다. 하지만 태풍이 내륙에 상륙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경유지에 비가 퍼부어지는 건 처음이었다.

사고를 직면하여 장거리 운전을 가급적 안 하기로 마음 먹은 게 불과 3주 전인데, 바로 다음 장거리 운전이 이런 꼴이라니. 운도 퍽이나 없어라... 쓰읍.

이제 정말 자러 가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줄 요약]
1. 태풍이 부는 날에는 운전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상책입니다.
2. 정 이동하셔야 하면 KTX 등 기차를 이용해 주세요.
3. 운전을 피할 수 없다면 해안도로만큼은 피해주세요.
4.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평소보다 20~50% 정도 속도를 팍 낮춰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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